자야곡(子夜曲) - 이육사(李陸史)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 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절여
바람도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디 강물이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노라.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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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 / 1904∼1944
본명 이원록(李源祿)
시인. 독립 운동가. 개명은 활(活), 육사는 호,
경북 안동에서 출생. 보문 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대구 교남 학교에서 수학하고, 1925년에 독립 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하였다. 1926년에 베이징으로 가 베이징 사관학교 제 1기생이 되었고, 다음해에 귀국했으나 조선 은행 폭파 사건에 연류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그 때의 감방 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다시 베이징으로 가 베이징 대학 사회학과 재학 중 루 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에 귀국하여 육사라는 이름으로 처녀작 [황혼]을 <신조선>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 1937년에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했으며, 그 무렵 [청포도] [교목]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3년 중국에 갔다가 다시 귀국했으나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는 일제 암흑기에 최후까지 민족의 양심을 고수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비극을 상징주의적이면서 화려한 시풍으로 노래한 민족 시인이었다. 그 밖의 작품에는 [광야] [절정]등이 있다. 1946년에 유고 시집 <육사 시집>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