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마음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다. 56년 만에 올림픽 8강 첫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김호곤 감독. 필드가 아닌 그의 스위트 홈에서 만난 김호곤 감독은 보이는 만큼의 묵묵함과 젠틀함을 갖춘 ‘한 가정의 온화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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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전망 좋은 남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하얏트 호텔 뒤쪽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새로 지은 4층짜리 빌라.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 외국인 한 명이 내린다. 모두 여덟 가구뿐인 이 빌라에는 그의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사실 이 빌라는 그와 친한 한 인테리어 건축가가 친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살기 위해 지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입주하지 않은 채 외국인에게 임대를 했고, 그의 가족만 작년 말에 이곳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
빌라 안으로 들어서니 유난히 넓은 천장에, 유리문으로 거실과 분할된 비디오룸, 부엌과 방들 사이에 작은 중간 거실이 있는 구조가 참 독특했다. 알고 보니 이 집의 건축가는 ‘UN 빌리지’등 외국인들의 집을 많이 디자인한 사람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시원하게 트인 거실과 TV를 보는 비디오룸이 있고, 거실과 마주 보게 다이닝룸과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부엌이 있다. 그리고 거실 옆 복도를 지나면 안방과 아이들 방, 화장실이 중간 거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벽면에 메이플 바닥으로 모던한 갤러리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가구로 곳곳을 채우기보다 포인트가 되는 액자나 그림, 깔개 등을 곳곳에 배치에 공간에 악센트를 주었다.
이곳에 이사오고나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각종 파티가 많다는 것. 거창한 것은 아니고, 와인 한병에 간단한 안줏거리를 들고 가서 이야기하며 즐겁게 어울리는 것이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함께 어울리는 것이 즐겁다”고 김호곤 감독은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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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갤러리 분위기를 자아내는 거실. 뒤에 걸려 있는 아크릴 액자 3개는 친분이 있는 송경애 작가의 작품을 받은 것으로 하나의 크기가 100호 정도 된다. 집에 걸기 가장 좋은 그림은 벽지처럼 집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림이라는 조언을 듣고 컨셉트에 부합하는 그림을 골랐다. 4인용과 1인용 소파, 오토만이 한 세트인 소파는 12년 전에 구입해 네 번째 천갈이한 것. 워낙 견고한 것을 구입해서 오래 써도 끄떡없고 멋스럽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의 안목이 돋보인다.
침실 현관에서 거실을 ‘ㄷ’자로 한참 돌아 들어가야 부부 침실이 나온다. 드레스룸과 욕실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킹 사이즈의 침대와 TV장,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이 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침실이 나타난다. 아내는 이것저것 지저분한 물건을 두는 것보다 공간을 살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디오룸 거실 바로 옆의 비디오룸. 따로 문을 달지 않고 유리벽으로 분할되어 있는 것이 독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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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룸 가운데 보이는 식탁은 이번에 이사 들어오면서 처형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 ‘>’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대리석에 두꺼운 유리를 올려놨을 뿐이지만. 마치 수입품처럼 고급스럽다. 집 안에 포인트가 되는 '얼룩말 가죽'은 김호곤 감독이 경기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을 때 직접 사가지고 온 것.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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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감독의 집을 방문한 날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 베트남과의 경기가 있고난 다음날이었다. 실력으로는 우리가 우위였으나 약체로 평가되는 베트남을 후반에 2 : 1 역전으로 어렵게 이긴 경기였다. 그에게 화두로 “어제의 경기가 어땠는지” 물었다. 관중 입장에서 보기에도 아쉬운 경기였으니 전문가가 보기에는 얼마나 지적할 부분이 많을까 싶었다. 양쪽 팀의 전술을 분석하며 선수들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장황하게 설명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단 5초로 마무리되었다.
“남의 팀은 평가 안 합니다.” 너무 조마조마해 밖에서 지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끝까지 봤지만, ‘다른 감독이 이끄는 팀에 관해서는 노코멘트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솔직히 그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본인 역시 언론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을 만큼 받았던 경험 때문이다. 20여 년이 훨씬 넘는 지도자 생활 동안 경기장의 야유, 인터넷의 음해성 글, 각종 언론에서 쏟아지는 비방성 멘트들로 이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평가당하는 것도’ 묵묵하게 속으로 넘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번 올림픽만 해도 그렇다. 올림픽 8강이란 신화를 이루었음에도 언론에서는 4강까지 갈 수 있었는데 작전에 문제가 있었다, 팀 분위기가 와해되었다며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축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실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요즘 국가대표 감독의 자리는 참 힘들다. 국내 프로팀들이 선수를 안 내놓으려고 해서 우수한 선수를 소집하는 것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매스컴을 탄 젊은 선수들은 연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제멋대로여서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 그때마다 김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세계지도를 펴곤 한다. 남미와 유럽 대륙을 가리키며 세계적인 축구는 다 여기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렇게 작은 나라, 몇 개 안 되는 프로팀 중에서 잘한다고 우쭐해봤자 얼마나 부질없는 자만으로 끝나버릴 수 있는지에 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그는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튀는 선수보다는 성실히 자신의 자리를 빛내주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외국 선수 중에는 묵묵히 자신의 팀을 위해 뛰는 프랑스의 ‘지단’을 좋아하고, 국내 선수로는 연습 벌레로 통하는 골키퍼 김영광과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조재진을 좋아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옥석으로 거듭나는 선수들이 쏙쏙 눈에 띌 때마다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얻곤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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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천장 빌라의 꼭대기층임을 십분 활용, 천장의 일부를 투명판으로 덮어 집에서도 하늘이 바로 보이고 햇빛이 바로 들어오도록 인테리어했다. 오전 중이라 햇빛이 머리 위에 있어 햇빛 그림자가 붙박이장에 비친다.
모던한 비디오룸 TV와 DVD,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공간. 소파와 테이블만 두어 심플하게 연출했다. 그림을 걸어놓은 쪽 반대편이 거실인데 유리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미니카를 전시해놓은 선반 김감독의 아들은 미니카 마니아. 어렸을 적부터 용돈이 생기면 미니카를 하나씩 사모았다고. 미니카를 아들방과 비디오룸 선반에 올려놓았는데, 자체가 컬러풀하고 깜찍해 장식품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선반 맨 위에 보이는 것은 김감독이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와 상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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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거실 안쪽으로 보이는 공간이 아들방이다. 오른쪽 문은 부엌 옆으로 통하는 문으로, 통로 가운데에 작은 중간 거실이 있다. 정면에 보이는 액자에는 김호곤 감독이 선수 시절에 찍었던 추억의 사진을 넣어 걸어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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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감독님(남들 앞에서 아내는 남편을 감독님이라 부른다)은 참 자상해요. 밖에 나가 있어도 하루 다섯 번 정도는 집에 전화를 하고, 미국에 나가 있는 두 아이들한테도 매일 전화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꼭 듣곤 하거든요.” 아홉 살 연하에, 엄청난 미인에, 애교까지 철철 넘치는 김감독의 아내는 누가 봐도 주위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그들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오빠와 동생으로 자연스럽게 만났다. 당시 아내는 회화를 전공하는 미대생이었고, 김감독은 이미 축구팀 코치로 있을 때였다. “‘오빠’가 ‘아빠’된 경우예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한 번 보시더니 저보다 더 좋아하셨어요. 그 당시에 ‘호곤 오빠’는 정말 멋있었거든요. 운동을 해서 몸도 좋았고, 해외를 많이 다니니까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한 외국 명품 브랜드 티셔츠 같은 옷도 입고 다녔죠.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해외로 경기를 나가면서 ‘기다려줄래?’라는 직접 쓴 편지를 주고 떠났어요. 오래된 사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꼭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바로 결혼했죠. ‘이 사람이다’싶었거든요. 물론 프러포즈는 감독님이 했죠.
” 벌써 훌쩍 커서 스물두 살, 스물한 살이 된 아들과 딸은 지금 둘 다 미국 유학 중이다. 엄마를 꼭 빼닮은 딸은 학교에서 ‘퀸’으로 뽑힐 만큼 미모가 뛰어나며, 골프 실력까지 뛰어나 ‘테네시주 골프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김감독보다 훨씬 체격이 좋은 아들은 ‘비즈니스 마케팅’을 전공할 계획으로, 미식축구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성격이 적극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김감독은 아이들과 레슬링을 하는 등 친구처럼 놀아주었는데, 다 커서 어른이 돼버린 요즘에도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네 명이 한 침대에 누워서 장난칠 정도로 친근하다. 집안 곳곳에 있는 행복한 얼굴의 가족 사진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호곤 감독은 큰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꼭 함께 기도한다. 만일 떨어져 있으면, 시간대를 맞춰서 꼭 온 가족이 함께 마음을 모은다. 따로 징크스는 없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한번 그런 데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별한 내조 비법은 없어요. 인삼과 홍삼을 철마다 달여 드리는 거, 매일 아침마다 생과일 주스랑 두유 만들어 드리는 거 정도? 물론 바깥일 할 때 물심양면 집안일에 신경 안 쓰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김호곤 감독의 아내는 애들을 키우면서도 부업으로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에서 만두 가게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남편의 그늘 아래서만 곱게 지내온 사람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가정을 이끌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더 멋져 보였다. 게다가 알뜰함이 몸에 밴 스타일로, 외국 수입품처럼 보이는 소파는 12년 전에 구입한 것을 네 번이나 천갈이해가며 사용 중이고, 아일랜드 식탁 옆의 의자는 명품과 유사한 제품을 을지로에서 5만원에 구입한 것이다. 촬영 당일날 입었던 옷은 구입한 지 10년 정도 된 것이었다.
때로는 남편의 포근한 안식처로 때로는 남편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함께 일궈온 것이다. 김호곤 감독의 집을 떠나면서 뇌리에 남는 잔상은 멋지고 훌륭했던 인테리어보다 서로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는 한 중년 부부의 모습이었다. 시원한 냉매실차와 케이크를 대접해주는 아내의 푸근한 모습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이심전심이 느껴지는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보며 함께한 세월의 아름다운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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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김감독은 와인을 좋아한다. 집에 와인 냉장고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 저녁이면 부엌의 아일랜드 식탁에서 아내와 종종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손님을 초대해서 함께 마시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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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베란다 여러 가구가 사는 건물이지만 윗베란다는 4층 입주자(현재 김감독네)가 맘껏 쓸 수 있도록 했다. 아내는 그 공간을 그냥 버리기 아쉬워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가로등, 파라솔과 의자, 바비큐 그릴 등을 두어 야외 정원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모두 코스트코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제품들로, 같은 빌라에 사는 외국인이나 김감독의 친구들을 초대해 이곳에서 종종 파티를 벌이곤 한다. 이태원 일대가 잘 내다 보이는 곳으로, 특히 야경이 백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