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동구릉은 신의 정원. 신의 정원 가운데 최고의 신전이다.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3차 회의에서
반론 없이 일사천리로 ‘조선왕릉 40기 전체’의 등재가 확정됐다.
한 왕조가 50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그 왕들의 무덤이 이토록 온전하게 보전되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다.
그 능에 담긴 고유의 철학과 왕가의 예술과 조화를 잃지 않은 자연주의에 모두가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했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처럼 조선의 왕릉도 이들처럼 신비로웠을 것이다.
조선왕릉은 당대 최고의 풍수지리학자는 물론, 조경가와 예술가가 만나 꾸민 왕가의 무덤이다.
최고의 묘지 정원이자 천혜의 녹지로 500년을 이어온 그린벨트다. 그리고 그것이 후세에게는 의연한 축복으로 남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능 가운데 아홉 기가 동구릉에 있다. 22.5퍼센트다.
1408년 태조가 잠들었고 마지막으로 1890년 익종(문조익황제)의 수릉이 이전해 구릉을 이루었다.
1,915,891㎡(58만평)에 17위(왕 7위, 왕비 10위)가 잠들어 있다. 선정릉의 열 배이자 여의도공원의 2.5배가 넘는다.
주차장을 지나 출입구 앞에는 단체 관람팀이 안내도를 보며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있다.
조선 태조고황제 시비
손 당겨 댕댕이 덩굴 휘어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한 암자가 흰구름 속에 높이 누워있네
만약에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
초나라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받아 들이지 않으리
안내도
동구릉 개요
명 칭 | 형 태 | 능 의 주 인 |
① 건원릉 | 단릉 | 1대 태조고황제 |
[첫 왕비 신의고황후 한씨는 개성 제릉, 둘째 왕비 신덕고황후 강씨는 정릉] |
② 현릉 | 동원이강릉 | 5대 문종과 정비 현덕왕후 권씨 |
③ 목릉 | 동원이강릉 | 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
④ 숭릉 | 쌍릉 | 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 |
⑤ 휘릉 | 단릉 |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 |
[인조와 정비 인렬왕후 한씨는 김포 장릉] |
⑥ 혜릉 | 단릉 |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
[경종은 석관동 의릉] |
⑦ 원릉 | 쌍릉 |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 |
[정비 정성왕후 서씨는 서오릉(홍릉)] |
⑧ 경릉 | 삼연릉 | 24대 헌종성황제와 정비 효현성황후 김씨, 계비 효정성황후 홍씨 |
⑨ 수릉 | 합장릉 | 추존 문조익황제(24대 헌종의 父)와 신정익황후 조씨 |
먼저 역사문화관에 들러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보고 시작한다.
역사문화관 앞에 있는 석물 : 1970년대에 해체된 동구릉 외금천교 일부의 홍예모양을 복원하여 전시해 놓은 것이고
그 외에도 왕릉 보수 과정에서 나온 석물들을 모아 놓았다.
홍살문을 지나 재실을 만난다. 재실의 행랑채로 대문, 하인방, 창고 등으로 사용된다.
대문을 들어서면 재실이 있는데 왕릉 관리자의 집무실 겸 제향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재실을 지나면 제일 먼저 수릉(綏陵)을 만난다.
수릉은 조선 23대 순조의 장자 효명세자로 22세에 요절하여 석관동 경종의 의릉 옆에 연경묘를 조성하였다가
그 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되고 능 이름을 수릉으로 하였는데 헌종 12년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현재의 용마산으로 천장하였다. 1855년(철종6년) 다시 천장론이 거론되어 마지막으로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1890년(고종27년) 신정익황후가 세상을 떠나 수릉에 합장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문조익황제 신정익황후로 추존되었다.
문조는 사망시에 왕세자 신분이고 신정왕후는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문조보다 신분이 더 높아
전통과 다르게 신정왕후의 무덤이 왼쪽, 문조의 무덤이 오른쪽에 배치되어있다.
신정왕후는 통칭 '조대비'로 불린 조선의 마지막 대왕대비로 헌종의 친어머니, 고종의 양어머니이며
조선의 최장수(81세 4개월) 왕비, 최장기간(32년 6개월) 대왕대비로 재위했다.
수릉의 비문
① 조선국 익종대왕수릉 신정왕후부우
② 대한 문조익황제수릉 신정익황후부우
수릉 좌측에서 버라 본 전경
수릉을 나오면 바로 현릉이다.
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형태다.
현덕왕후는 문종이 세상을 떠나기 11년전 왕세자빈 신분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 안산의 소릉에 안장되었다.
세조때 단종 복위사건과 관련 폐위 되었다가 중종때 복위되어 사후 72년만에 문종 옆으로 천장하였다.
두 능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유없이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비문 : 조선국 문종대왕현릉 현덕왕후좌강
우측 현덕왕후 능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능이다.
홍살문과 정자각 : 정자각은 조선시대 정자각의 모범이 되는 기준으로 보물로 지정
원래 이성계는 생전에 두 번째 왕비인 신덕황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서 신덕황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본인의 능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었는데 태종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태조의 첫 부인이자 태종의 어머니 신의왕후의 무덤 제릉은 개성에 있다.
태조의 무덤은 다른 무덤과 달리 억새풀로 덮여있는데 태조의 유언에 따라 함흥의 억새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고
매년 정원 초하루 억새풀을 깍는 의식인 청완재를 행한다고 합니다.
비문 : 대한 태조고황제건원릉
신도비(2013년 보물 지정)
왕과 왕비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1408년(태종8년) 건립
전면 : 권근이 글을 짓고 정구의 글씨이며 후면 : 변계량이 글을 짓고 성석링의 글씨로 새겼다.
제향에 사용된 축문을 불사르는 소지대가 있는데 그 후 세종때 소지대를 폐지하고 예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봉분위에 억새가 많이 자랐다.
건원릉 홍살문 부근
커다란 혹을 달고 있는 소나무
건원릉입구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목릉이다.
목릉은 동원이강릉으로 왼쪽부터 14대 선조, 첫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번쩨 왕비 인목왕후의 능이다.
목릉 정자각은 정자각중 유일하게 다포형식으로 지어져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인왕후는 자식을 낳지 못하였고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인 광해군이 왕이 되었다.
광해군은 후궁의 소생이라는 이유와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한 것,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명분에 밀려 인조 반정으로
폐위되었고, 인목대비는 인조 반정을 승인하며 다시 대비로 복위하였다.
인목대비의 무덤은 의인왕후의 무덤은 보이지 않고 선조의 무덤을 보이는 위치에 있다.
본처와 후처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게 한 배려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비문 : 조선국 선조대왕목릉 의인왕후부중강 인목왕후부좌강
축문을 불사르는 예감(소지대 보다 확실히 안전함)
의인왕후 능
인목왕후 능
선조 능 + 의인왕후 능
인목왕후 능
휘릉 : 인조비 장렬왕후의 능
15세의 어린 나이에 인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된 장렬왕후는 인조가 세상을 떠난 후
자의왕대비라는 호칭으로 효종, 현종, 숙종 대에까지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
인조와 정비 인렬왕후의 능은 김포 장릉이다.
조선장렬왕후휘릉
휘릉을 나오면 원릉 뒤쪽으로 숲길 산책코스가 개방 중에 있어 한 바퀴 돌아온다.
중간에 간식도 할 수 있고 약간의 updown이 있어 적당한 샌책길이라 생각이 된다.
산책길을 내려오면 원릉 옆이다.
원릉은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은 서오릉에 있다.
첫 묘호 비문 : 조선국 영종대왕원릉
1890년(고종27년)에 고친 묘호 : 조선국 영조대왕원릉
조선국 정순왕후부좌
원릉 홍살문 + 정자각 + 능
경릉은 24대 헌종성황제, 정비 효현성황후 김씨, 계비 효정성황후 홍씨의 조선왕릉 유일의 삼연릉이다.
비문 : 대한 헌종성황제경릉 효현성황후부좌 효정성황후부좌
정자각 측면
경릉 홍살문
혜릉은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단릉이다. 능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데 능을 정비를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혜릉 정자각
숭릉은 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으로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이다.
숭릉 정자각은 8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17세기 정자각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자각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9곳 왕릉과 숲길 탐방을 마치고 연지를 돌아 출구로 향한다.
연지는 동구릉내에 형성된 3개의 물길을 관리하기 위해 왕릉 담당기관인 산릉도감에서 인공으로 조성한 연못이다.
자연적인 소나무 아치와 홍살문을 나서며 탐방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