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무성한 수풀 속에
한 그루 난초 있어
종일토록 향기를 뿜으면서도
스스로는 그 향기로움 알지 못하네
자기가 내뿜는 향기를 자기도 알지 못하는 난초처럼, 지식과 덕성을 갖추고 사람의 향기를 은은하게 뿜어내지만 어떤 의도와 목적도 없이 그러한 것. 퇴계는 이것이 다름 아닌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하였다. 퇴계는 그것이 진정한 사람다운 모습이라 여겼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무엇인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쉬운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본래 선한 마음, 즉 측은지심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자라면서 남과의 경쟁에 진력함으로써 차차 잃어버리게 된다. 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의 본 마음을 찾기 위해 하는 학문이 위기지학이다. 위기지학을 함으로써 자신의 본 마음을 밝혀 그것을 실천하는 이상적 인간이 성인(聖人)이다. 위기지학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퇴계가 평생 추구했던 학문이 바로 이 위기지학이었다.
퇴계는 실천함이 없이 외적인 명성을 구하고 허식에 힘쓰는 일을 경계하였다. 그것은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남을 위한 공부에 불과하다며,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출발하는 위기지학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맑은 향을 토해내는 난초를 닮은 그런 공부를 지향했다. 그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을 위해 퇴계는 묵묵히 평생을 학문의 길에 정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