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05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태우니’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40 : 26 – 27입니다.
“그가 또 금으로 된 분향 제단을 회중의 장막 안 휘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태우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He put the gold altar in the tabernacle of meeting in front of the veil ; and he burned sweet incense on i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임마누엘!!
모세가 분향 제단을 회중의 장막 안 휘장 앞에 두고 그 분향 제단 휘장 앞에 두고 향기로운 향을 태우니 향기로운 향을 태우니 성막 안에 향료 냄새가 가득하였습니다.
본문의 ‘향기로운’은 히브리어 'sam(삼)'. 향에 사용된 향료(a spice used in incense, 출 30:34; 레 4:7; 레 16:12)를 의미합니다.
또 ‘태우니’는 히브리어 'katar(카타르)' ‘희생제물을 불사르다’, ‘연기로 그것을 올려 보내다.’
카타르(동사)는 '케토레트' : 연기, 타는 희생제물의 냄새, 향 냄새)에서 유래했으며, '희생제물을 불사르거나 연기 나게 하다, 그것을 연기(향기)로 올려보내다'를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6회 나오며, 강조 능동형(피엘), 사역 능동(히필), 강조 수동(푸알), 사역 수동(호팔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카타르는 일반적으로 제의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1회는 비제의적(非祭儀的)으로 사용되었습니다(아 3:6).
카타르는 향을 사르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모든 제물을 태우는 것을 의미하는 전문적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자바흐’)와 병행을 이루는 경우가 있으며(호 4:13, 호 11:2 등등) 또는 번제물과 향을 태운다(바친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대하 13:11). 이와 같이 태우는 목적은 제물을 연기로 화하게 하여, 향기로운 냄새로서 하나님께 올라가게 하기 위함입니다(그 제물의 천적 요소로서 이러한 희생 제사의 대부분은 통상적인 음식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자체가 하나님께 생명(피 blood), 자기의 천직, 그리고 생명의 소산물(즉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바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참조: 렘 44:15).
그 까닭에 가장 좋은 부분(기름, 레 4:10)과 희생 제사용 동물의 초태생(가장 좋은 것과 전체를 바친다는 의미, 민 18:17)은 항상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행위는, 바쳐지는 그 제물을 하나님께 양도한다는 의미는 물론 그 제물이 헌물자를 대속(죽음의 형벌)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요 17:19, 엡 5:2).
요17:19 “또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를 통하여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엡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의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린 것 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행하라.”
히필(사역능동)어간은 진정한(또는 최소한 참되다고 여겨지는) 희생 제사를 뜻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인간은 피조성과 타락에 의해 한계 지워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은혜로운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사의 세목들을 상세히 지정하셨습니다. 거의 모든 세목(細目)이 일찍이 깨뜨려진 바 있으며 파기자들은 참람하게도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요구했습니다(또는 되리라 추측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특선된 가장 좋은 부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삼상 2:16, 레 7:31, 레 4:10).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 방법과 장소를 모두 변경하였는데 이는 분명히 그 결과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게 할 의도였을 것입니다(왕상 12:33, 대하 28:4, 왕하 16:13, 참조: 출 9장). 하나님께서는 단지 외적 부합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지자들은 영적인 것이 진정한 희생 제사의 본질임을 거듭 강조하였ㅂ니다(참조: 암 4:4-5). 사랑은 실제로 순종을 의미합니다(신 6:4-6).
강조 능동형(피엘) 어간은 모세 5경 이후에 비로소 나타나며 이것 역시 예배 의식의 전체 행위를 의미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용례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을 통한 내리막길의 역사를 따르고 있습니다. 의식적으로(제사 드리는 자 편에서) 또는 심판의 뜻으로(기자 편에서) 이 어간에 의해 묘사된 그러한 행위들은 분명히 진정한 예배와 상반되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점을 아모스의 풍자적 진술이 확실히 강조하고 있습니다(암 4:5).
가나안 족속의 예배를 모방한 이 잘못된 제사는 하나님을 능욕하는 행위요(사 65:7), 수치스러운 일(렘 11:17)이었으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렘 18:15) 저버렸다는(렘 19:4)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우상 숭배자에게 아무런 소망과 도움도 주지 못하였습니다(렘 11:12).
말세에 하나님은 한 영원하고(렘 33:18, 히 7:23이하) 우주적인(말 1:11, 참조: 벧후 2:9) 제사장직을 만들 것을 약속하십니다.
구약성경의 의식에는 분향이 가득합니다(사 6:4).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의 휘장 앞에 금을 입힌 특수 재단("금단")을 설치하라고 명하십니다(출 30:10). 매년의 대속죄제는 물론 매일의 조석 번제에도 분향이 수반되었습니다(출 30장). 하나님께서 규정하지 않은 제조 향은 열납될 수 없으며(출 30:34) 한편 하나님이 규정한 제조향을 비제의적 목적에 사용하면 안되었습니다. 이 거룩한 향은, 희생제물의 피를 뿌린 분향단의 숯으로써만 오직 불을 지피게 되어 있었습니다(사 6:6). 다른(이상한) 불을 사용하면 죽음의 형벌을 받는 수가 있었습니다(레 10:1-2).
향 연기는 '기도'를 상징합니다(참조: 시 141:2 눅 1:10, 계 5:8, 계 8:3 이하).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조차도 대속이 필요합니다(출 30:10). 마지막으로 무의식적인 죄는 향단 뿔에 피를 바름으로써 속죄되었습니다(레 4:7).
이것들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의식 중 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단 두 가지 의식입니다. 각각의 의식에서 피를 바르는 장소를 비교해 보면 피를 뿌리는 일과 바르는 일이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속죄 의식(레 16:18)은 바르는 것을 첫째로 놓습니다. 나아가서 두 의식은 그 피가 적용되어야 할 재단(들)이나 기타 등등에 관하여 피를 바르는 각기 상이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 범죄를 위한 의식은(레 4:7) 상징적으로 그 범죄자를, 그의 고유한 언약적 역할로써 다시 섬기도록 복귀시켜 줌을 뜻합니다. 대속죄 의식에서 뿌리는 행위는 각각의 제단들을 정결하게 하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제단들이 예표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정결하게 해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제단들의 불결은 국가의 어떤 행동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의 특성에 달려 있습니다. 즉 그 불결은 인간성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 피를 바르는 이 의식들은 원죄와 무의식적인 죄의 밀접한 관련성 및 그 반면의 뚜렷한 차이점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온몸을 태우는 간구였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 너머에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비로소 슬퍼하시며 몹시 괴로워하시더라. 이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서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며 말씀하 시기를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되 육신이 연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기도 하며 말씀하시기를 "오 내 아버지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무거움이라. 주께서 그들을 떠나 다시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 들로 기도하시고 그 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오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그 시각이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배반을 당해 죄인들의 손에 넘겨졌느니라.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 26 :36-45)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