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 유감
몇일전 아래 기사와 같이 정읍 내장사 사찰이 전기 난로 과열로 전소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였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30대)때 창건하였으나 여러차례 소실을 반복하여 사찰다운 대웅전을 갖지 못하고 인근의 井邑市 笠巖面 大興里의 新興 宗敎로 유명한 차천자집 문간채를 뜯어다 복원하였으며 내장산에 걸맞지 않는 조그마한 대웅전이었다.
지난 69년 3월에 정읍영업소에 배치된 후 수시로 내장산을 방문하였으며 정읍역에서 약 13KM 거리이며 70년대 중엽까지 비구승과 대처승들이 절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싸움을 하였으며 결국은 비구승이 이겨 조계종의 말사가 되었다.
내장산에는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1592년- 1598년)에 왜병을 피하여 잠시동안 굴을 파서 이조실록을 보관한적이 있고 후에 위봉사(전북 완주군 소양면위봉사)를 거쳐 무주 적상산 史庫로 옮겨 갔다고 함)
한국동란때에는 인근의 순창에서 궐기하던 파르티잔이 최후 저항하여 내장산에서 소탕되면서 쌓인 시체가 고내장 골짜기에 가득 메웠다는 애기를 들은 바 있다. 당시 파르티잔 소탕작전을 지휘한 장교가 대한통운 임원을 역임한 분으로 정읍이 고향이나 돌이켜 생각한 바 고향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것같아 정읍을 방문할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시체가 산같이 쌓였던 고내장 골짜기에는 약수터가 있다(영문으로 CHEMIST WATER : 약수)
비자림과 서래봉 등이 유명하다.
내장사 화재에 관한 기사를 첨부합니다.
내장사 화재기사1.hwp
첫댓글 뉴스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런 좋은 역사의 이야기들이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다음주 일요일 운우회에서 가을모임으로 내장산 간다고 했었는데
대웅전을 못 보게 되어 안타깝네...
70년대 회계과 있을때 연성회로 1박2일 갔다온적이 있었고 80년대에도 갔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