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소문
(살전 1:1-10)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요즘 ‘평판’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 사람에 대한 소문, 혹은 판단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력은 좋은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문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실력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도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소문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알려지지 않았던 미담이 알려지면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소문은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인기를 얻으려고 소문을 조작하면 큰 낭패를 봅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임직자를 선출할 때, 사는 동네에 가서 안 믿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잘하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어떤지 살피는 것입니다. 이웃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진실에 더 가까운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집니다. 그렇다고 보여주기식 관심 끌기는 좋은 평가를 얻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을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떤 소문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소문, 교회가 교회다운 소문으로 이웃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옛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하여 소문은 널리 퍼진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천 리가 아니라 인터넷을 타고 온 세상 구석구석에 퍼집니다. 부디 나쁜 소문이 아니라, 좋은 소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로 퍼졌다’고 칭찬을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 북쪽 마게도냐 지방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복음을 전할 때 잠깐 들러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대인들의 방해와 폭력과 고발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려고 했는데 방문하지 못하고 대신 디모데를 보내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있을 때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디모데가 전한 소식은 한마디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살전 3:6)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표현을 씁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본받는 신앙으로 성장했다고 칭찬합니다. 이 편지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먼저 교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참 많습니다. 그중에 교회다운 교회는 얼마나 될까요? 기쁨의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사도 바울께서는 교회는 첫째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1절)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교회라는 의미보다 더 강한 의미로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처럼 생명을 공급받고, 성령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공급받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3절에서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심과 사랑의 성김과 소망의 인내가 있을 때 박해도 이겨내고, 유혹도 참으며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입으로 믿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열심과 충성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없이는 교회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교회 간판을 달 수 있지만, 믿음의 소문은 전해질 수 없습니다.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이 교회에 속한 성도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부르시고 세우셨다고 확신할 때 성도는 교회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교회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말씀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예수 믿어 복 받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내게 필요한 복을 구하려고 합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됩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구할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믿는 사람의 본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삶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다고 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거역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말로 설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굴복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의 주시는 기쁨으로 사도를 본받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환란과 어려움은 인간의 의지를 꺾고 넘어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에 굴복된 신앙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기쁨을 얻습니다. 주님과 함께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6절)라고 하였습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본보기를 따르는 것, 삶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을 본받은 것처럼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 삶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다른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1:7)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큰 변화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능력, 성령의 확신과 기쁨이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서기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힘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변화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소문은 주변으로 전해집니다. 그들의 믿음은 완전하다고 할 만큼 흠이 없는 신앙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말씀은 교훈이 아닙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소망과 위로, 충만한 기쁨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문은 일 잘하고, 교회가 멋있고 사랑이 넘쳐나는 소문이 아닙니다. 주님을 본받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를 본받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를 자랑하고,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고, 주님의 삶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옆으로 걷지 말고 앞으로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새끼 게는 앞으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만 걷습니다. 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십니다. 그 본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요리사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서 자기 생각을 덧붙입니다. ‘이 재료로 바꿔도 같은 맛이 날 거야, 조금 덜 익혀도 괜찮을 거야.’ 그리고 요리가 끝나서 먹어보고 말합니다. ‘맛없네, 그 요리사 레시피는 엉망이야.’ 레시피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따르지 않아서 맛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말씀 듣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소문이 이웃에게 널리 퍼져 주님의 사랑이 전파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