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집2궝 詩 어정(御定) 영은록(榮恩錄)
네 번째〔其四〕
계등의 종이에다 관성의 붓도 함께 / 溪藤作簡管城隨
마음으로 주신 물건 하나같이 흡족한데 / 貺自中心物物宜
청천이라 오로라 그런 재주 없기에 / 不有靑天兼五老
이 지필로 감은시 써내기 어렵구나 / 紙毫難寫感恩詩
위는 종이와 붓에 관한 시이다.
채제공 자신은 대시인(大詩人) 이백(李白)과 같은 재주가 없다고
겸손해하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청천은 푸른 하늘이고
오로(五老)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에 있는
여산(廬山)의 오로봉(五老峯)이다.
이백이 지었다는 시에
“오로봉 봉우리를 붓으로 삼고,
삼상이라 강물을 벼루 못 삼아,
맑고 푸른 저 하늘 한 장 종이에,
내 배 속 들어 있는 시를 써 볼까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라고 한 데서 나온 고사이다.
이백의 이 시는 그의 시문집인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에는 없다.
그러나 구소(鳩巢) 권연하(權璉夏)의 문집 鳩巢先生文集卷之三 / 遊淸凉山錄에
記李靑蓮詩曰
五老峰爲筆。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寫我腹中詩。
나오고
1928년에 편간한
지송욱(池松旭)의 《척독대방(尺牘大方)》에 이백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비교적 많은 학자들이 이 시의 문구를 고사로 인용하였다.
五老峰 / 李白
오로봉 / 이백(?)
五老峰爲筆 (오로봉위필)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三湘作硯池 (삼상작연지)
삼상의 강물을 먹물로 하여
靑天一張紙 (청천일장지)
푸른 하늘 한 장의 종이에
寫我腹中詩 (사아복중시)
내 마음 속 시를 쓰고 싶네
★위 시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쓴 서예작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의 원작자는 이백(李白)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백전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출처가 불명확하다.
*五老峰(오로봉):중국 여산(廬山)에 있는 다섯 봉우리.
*爲(위):~하다. ~되다. ~삼다..
*三湘:중국 후난성(湖南省) 상강(湘江:장강의 지류 중 하나로 동정호로 흐른다)유역 세 지역(瀟湘 漓湘 蒸湘)을 이르는 말.
예로부터 상강지역의 4수(四水)와 함께
'삼상사수'(三湘四水)로 불리어 왔다. <백도백과>
*作(작):만들다,짓다. 하게하다. 삼다..
*硯池:(연지):벼루에 먹물이 모이는 벼루의 움푹 패인 부분. (=墨池)
*一張紙(일장지): <성어> 종이 한 장.
☆紙=帋:종이(지)
☆一張:한 장.
☆張:종이 등 얇고 넓적한 물건을 세는 단위.
☆丈:길이 단위(一丈:10자)
★안중근 의사 유묵감상
안중근의사 유묵:홍익대학교 박물관
★一丈(一張 ?)과 紙는 임서시 확인을 요합니다.(誤字소지)
[출처] 오로봉(五老峰):이백(李白)|작성자 초우 김명염
1909년 10월 26일 이토오를 사살한 안중근은 여순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여러 점의 글씨를 남겼다.
홍익대박물관에 있다는 아래도 그중 하나이다.
왼쪽 하단에 약지가 잘린 왼손 장인이 선명하다.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 이 시의 원작자는 누구인가?
안중근의 창작 시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시의 부분 구절은 16세기부터, 완형은 17세기부터 우리 문헌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국 시인의 작품?
아니다, 중국 문헌에는 비슷한 구절조차 나오지 않는다.
웃기는 건 우리 문헌 기록의 많은 경우, 이 시의 원작자가 이백으로 소개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이백의 호방한 시재를 표상하는 구절로도 설명된다.
하지만 이백의 시집은 물론, 중국 문헌 어디에도 이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지어진 것이 분명하며,
어린이용 한시 학습서 "推句"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두 구절은 의미상 짝이 되지만, 엄밀하게 보아 구문상으로 대구가 되기에는 불완전하다.
추구 부분 (장서각)
둘째, 제 3구 마지막 글자의 판독이다.
조선시대 기록의 경우 3구는 예의 없이 아래처럼 표기되어 있다.
靑天一張紙(청천일장지)
"푸른 하늘은 한 장의 종이"란 뜻이다.
안중근은 張을 길이를 나타내는 양사 丈(장, 한 길)으로 바꿨다.
의미상의 큰 차이는 없다.
문제는 마지막 글자인데, 아무리 보아도 紙 자로 읽히지 않는다.
선입견 없이 보면 線의 약체자 线으로 읽힌다.
이 경우 오른쪽 상단의 점 하나가 없는 게 걸린다.
아래는 Baidu에서 제공하는 線의 이체자 보기이다.
안중근은 이 시를 좋아하여 평소 외고 있었는데,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기억의 착오가 살짝 발생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에 준하여 시를 해독해보자.
五老峰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線
寫我腹中詩.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삼상으로 연지 만들어
청천에 한 획을 그어
뱃속의 시를 쓰노라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유해야 뭐 그리 중요할까!
그 참담한 역사를, 또 안의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잘 되새겨,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