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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당평전2
p.544-백흥암의 글씨 시홀방장 十笏方丈, 주련(소동파의 시 석각화유마상)-추사 글씨
*이 판각 글씨는 만파석란(卍(萬)波錫蘭)의 글씨다. 대흥사 창준昌準화상의 스승으로 은해사 가 화재 이후 1,000칸을 중창할 당시에 백흥암에 머물렀고, 초의선사를 통해 추사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추사체를 잘 써서 추사 글씨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던 서승書僧이었다. 추사에게 은해사의 중요 현판(은해사, 대웅전, 불광, 보화루 등) 글씨의 서사書寫를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최완수, <<추사명품>>, p.54, 93-94). 백흥암 시홀방장 판각 글씨에는 ‘卍波正法’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시홀방장 현판 외에도 기둥의 주련(소동파의 시, <石恪畵維摩像>도 만파석란의 글씨로 추정할 수 있다. 시홀방장 글씨가 萬波誼俊(1796-?)의 글씨라고도 하지만 해인사 해탈문, 동화사 등에 있는 만파의준의 글씨와 비교하면 서체가 완전히 다르다.
2. 완당평전2
p.564-사진의 다반향초 해석-차가 익어 비로소 첫 향기를 내다
*번역: 차는 반쯤 마셨고 향은 처음 피웠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정민 교수의 글 참조)
3. 답사기 중국편1
p.183의 와불상(열반상) 설명-“왼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왼손이 아니고 오른손이다.
4. 답사기1
p.309 동학군의 비기(秘機)
*비기의 한자는 비기(秘記)이다, p.316 본문에서는 동학군의 ‘비결(秘訣)’이라고 하였다.
5. 답사기1
p.328 백파비 원문 끝에 완당학사 김정희 ‘撰弁書’
*‘짓고 아울러 쓰다’라는 뜻의 한자는 당연히 ‘撰幷書’가 옳다. 탁본을 보라. 弁은 고깔 변자이다.
6. 답사기2(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p.123 山自分水嶺 해석-“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해석-“산은 분수령에서 비롯한다.”
“산이 절대로 강을 넘지 못함을 생각지 않는다.”
*자연에서 산과 강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가로지르지 않는다.
1902-1903년에 한반도의 광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지질조사를 했던 동경제대 지질학 교수,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의 산맥 개념(1903년경)은 광물 수탈을 위한 지질학적인 개념이다(신경준 지음, 박용수 해설, <<산경표>>, 푸른산, 1990 참조). 20세기 말의 국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소백산맥이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산맥 개념도가 실리기도 하였다. 산맥 개념은 지질학적인 개념인데 대한제국 시기에 우리 교과서에 도입되어 지금까지 지리학의 기초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일제가 도입한 잘못된 지질학 개념의 산맥을 버리고, 지리학 개념의 산맥(mountains)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고유의 지리학 개념으로서의 산맥, 곧 산경(山經-1大幹 1正幹 13正脈; 간幹은 산줄기, 맥脈은 산과 강이 얽혀서 존재하기에 맥의 이름은 강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념은 산과 물을 분리하지 않고 산과 물을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지형은 산과 물은 얽혀서 존재한다. 산맥은 아무리 작은 물길이라도 가로지르지 않는다. 자연현상에서 산맥은 반드시 물길이 나누어지는 곳에서 시작한다(山自分水嶺). 지리학적인 개념의 산과 물(강)의 개념은 적어도 도선국사의 풍수지리학에 기초한 국토 경영론에서 정립되었을 것이다.
삼국유사 제4 탑상편의 <臺山五萬眞身> 기사에는 오대산이 백두산에서 뻗어 내리는 큰 맥(脈)이라고 하였다.(此乃白頭山之大脈-백두산의 대맥은 ‘白頭大幹’이다.)이라고 하였다. 우리 고유의 지리학 개념으로서의 산맥, 즉 산경 개념은 이중환의 택리지, 신경준의 여지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물론이고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으로 한반도의 산경을 정리한 산의 족보인 <<산경표>>를 조선광문회에서 간행한 것도 일제의 지질학적인 개념의 산맥이 우리 고유의 산경 개념을 밀어내는데 대한 저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은 강과 얽혀 있지 않기에 幹이라 했고, 낙동정맥을 비롯한 13정맥은 모두 강의 이름으로 산경의 이름을 붙였다. 강과 산은 서로 얽혀서 존재하고, 물과 산은 서로 넘지 못하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지질학 개념으로 일제가 붙인 산맥 개념도에서는 소백산맥이 섬진강을 가로지르고 섬진강이 소백산맥을 가로질러서 흐르는 것처럼 되어 있다. 땅 밑의 지질 구조를 표시하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일제에 의해 우리 근대 지리학 교과서에 도입된 지질학 개념의 산맥이 21세기에 아직도 지리학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 하겠다.
‘국토박물관’인 우리 국토, 우리 산하를 누비는 답사여행은 등산인처럼 우리 고유의 국토와 산하 인식 체계인 산경山經을 어서 확립해야 한다.
7. 답사기3-
p.228 부석사는 백두대간의 여맥을 절 앞마당인 양 끌어안는 장엄한 스케일.
p. 326 차령산맥이 화물차 지나듯 길게 뻗어 있고,
*일제가 도입한 지질학 개념 산맥과 우리 고유의 지리학 개념 산경(山經)을 혼용하고 있다. 차령산맥은 금북정맥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지산은 금강 남쪽에 있으니 금남정맥의 지맥에 있다.
8. 답사기3-
p.273- 만약에 구품연지가 있었다면 그 일교차는 아침 안개를 일으켜 청운교와 백운교를 가볍게 덮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보랏빛 안개’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자하문은 진짜 자하문 같았을 것이고, 불국사는 정녕 불국토의 건축적 구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실제로 볼 수 없음이 글을 맺는 이 순간에도 아쉽고 또 아쉽기만 하다.
*안개가 아니고 노을이다. 자하문紫霞門의 자하紫霞는 자주색 노을인데, 흔히 신선들이 사는 궁궐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신선은 보라색 운하(雲霞)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자하주(紫霞酒)를 마신다는 전설이 있다. 도교 신선술 수련법을 기술한 황정경 참조.
노을은 본래 도교 신선의 세계를 말하고, 부처님을 금선金仙(금빛나는 신선)이라고 중국인들이 번안했다. 그래서, 자주빛 노을은 부처의 세계, 부처의 나라를 뜻하는 말이다.
언제부터 자하문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답사기에서 수미종각에 대한 언급도 있으면 좋겠다.
9. 답사기3
p.29 자찬묘비 自讚墓碑-, 자찬묘지명 自讚墓誌銘-
*한자가 오자이다-自撰墓碑, 自撰墓誌銘
10. 답사기3
p.156 도산서당 현판 사진 설명-언제 누가 쓴 글씨인지 모르지만
*도산서당, 완락재, 암서헌, 농운정사, 시습재, 관란헌 모두 퇴계 이황 글씨이다. 육조 묘비명체. (<<명필과 만난 현판>>-한국국학진흥원, 2017)
11. 답사기4
p.51, 55, 61-<주지번이 ‘천하제일강산’을 쓰서 현판을 걸었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톱으로 ‘천하’ 두 자를 잘라내게 하였다>(택리지 팔도총론 평안도편)가 뒷날 누군가가 ‘천하’ 두 자를 새겨넣었다.
*‘제’, ‘일’, ‘산’ 3글자는 송의 미불이 少岱山을 두고 쓴 글씨이고, ‘천’, ‘하’, ‘강’ 3글자는 우리나라에서 덧붙였다. 중국 산동성 태산 태안시 태산신 사당인 대악묘에 미불의 제일산 비가 옮겨져 있다. 강릉 경포대에도 연광정과 똑같은 글씨로 제일강산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미불의 ‘제일산’에 ‘강’자를 덧붙였다.
12. 답사기5
p.147-폭포를 건너다보게 마련인데, 100미터 더 떨어진 거리건만 흩뿌리는 포말 파편에 금세 옷이 젖고,
*泡沫은 거품이다. 물방울이 맞다.
13. 답사기5
p.248-이곡은 “전국 사방에서 선비고 아낙네고 천릿길을 멀다 않고”
*원문의 四方士女 不遠千里에서 사녀는 남녀이다. 여기서 선비 사자는 남자라는 뜻이다.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p.116 참조)
14. 답사기5
p.317-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는 것은 사람의 보통 심정이로되 나만은 산에 올라 울고 물에 다다라 우노니(<<금강산의 력사와 문화>>)
*원문의 而我則登山而笑는 산에 올라 ‘웃고’라고 번역해야 맞다.
15. 답사기5
p.336-마하연(摩訶衍)에서 ‘마하’는 ‘대승(大乘)’이라는 뜻이고, ‘연’은 넘친다는 뜻이다. ‘절간’ 이름이 ‘대승이 넘치는 곳’이라 그랬는지 여기를 다녀간 고금의 이름있는 스님들의 이름을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한다.
*마하연(摩訶衍)은 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Mahayana)의 한문 음역이다. 마하는 크다(大)이고 야나는 수레(乘)이다. 중생을 모두 태워 피안으로 가는 큰 수레, 대승이다. 마하연은 중생 구원을 서원하는 보살의 불교, 대승불교라는 뜻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불교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어서 자신과 중생을 구원하려는 간절한 서원을 이루기 위하여 깨달음을 이루기 위하여 절실한 수행을 하는 암자라는 뜻이다. 절간 이름이 대승이 넘치는 곳이라고 기상천외한 해석을 하였다.
-‘절간 이름이’
*‘암자 이름이’라고 해야 한다. ‘중’, ‘절간’이라는 말은 유교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조선시대 사대부 지배계급이 불교를 비하하며 쓴 말이다. 결코, 21세기 오늘날의 필자가 답사기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절간, 변소간, 뒷간, 헛간, 외양간 등 모두 낮춤말이다. 부처님이라는 성인을 모시고 스님이라는 수행자, 스승이 사는 공간에다 낮춤말 접미사인 간을 붙여 절간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조선시대 사대부도 승려를 높여서 ‘上人’이라는 말을 썼다. ‘스님’이라는 말은 우리말 ‘스승님’의 줄임말이고 한자로는 ‘師’이다. 님자가 붙는 ‘스님’이라는 존칭어를 쓰기 싫으면 ‘승려’라고 하면 된다.
16. 답사기6
p.269-익제 이제현
*익재 이제현
17. 답사기9
p.113 회화나무 괴(傀)자에
*회화나무 괴(槐)
18. 답사기9
p.190-선왕의 힘을 빌려 왕권을 강화고자 했던 것이다.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19. 답사기9
p. 231-한 쌍의 오리는 섬뜰 위에서 뒤뚱거리고 玉砌緩行雙彩鴨
고기 새끼가 뿜내며 우쭐거리는 것이 漁兒自得意洋洋
*섬뜰은 섬돌, 漁兒는 魚兒이다.
20. 답사기9
p.277-네모나고 번듯한 연못을 품은 창덕궁 의
*창덕궁의(붙여쓰기)
21. 답사기9
p.375-奉長樂下回甲
*奉長樂賀回甲
22. 답사기10
p.37-조민벌죄(弔民伐罪, 불쌍한 백성을 돕고 죄지은 자를 벌하다)
*천자문의 조민벌죄(弔民伐罪)의 번역은 “백성을 조문(위로)하고 죄(罪)있는 이를 친 사람은” 이고, 이어지는 주발은탕(周發殷湯)의 번역은 “주나라 무왕 발과 은나라 탕왕이다.”이다.
지은이는 조민벌죄(弔民伐罪)의 해석에서 弔(위로하다)를 조(助, 돕다)로 해석하여 불쌍한 백성을 ‘돕고’로, 伐(치다)을 벌(罰-처벌하다)로 해석하여 ‘벌하다’고 잘못 해석하였다.
23. 답사기10
p.322-동관왕묘 현판 번역
건곤정기(乾坤正氣)
-하늘과 땅의 바른 정기
*하늘과 땅의 바른 기운
만고표명(萬古標名)
-만고에 이름을 남긴 징표
*만고에 이름을 드날림
위량병정(威良秉正)
-어짐과 바름을 겸비한 위인
*어짊을 떨치고 바른 기운을 잡음
24.답사기10
p.412-대과를 포기하고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기도 ‘있었다’.
*대과를 포기하고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25. 답사기10
p.444-무명자는 자기 자신을 이름 없는 ‘사람라고’
*무명자는 자기 자신을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26. 일본편3
p.91-이미 이민간 지 150년도
*이미 이미간 지 1500년도
27. 일본편3
p.262-법원주림(法苑株林)
*법원주림(法苑珠林)
28. 중국편3
p.380-둔간‘술’변(屯墾戌邊)-군대가 변경에 주둔하면서 국경을 지키고, 농업·공업에 종사하는 제도
*戌: 1.수자리(변방을 지키는 일) 2. 둔영(屯營), 병사(兵舍) 3. 지키다
둔간‘수’변이다. 여기서는 戍자가 개 ‘술’자가 아니다. ‘지킬 수’자이다./ 수戍자리: 국경을 지키던 일. 또는 그런 병사.
29. 답사기5
p.327-그러나 마루판의 관솔 빠진 구멍으로 내려다보니
*관솔은 송진이 많은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를 말한다. 금강산 보덕암의 마루판 재질이 소나무인지 모르겠고, 소나무라도 이 문장에서는 옹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30. 답사기11
51쪽 이 절터에 온
*이 절터에서 온
31. 답사기12
p.27 창호과 처마
*창호와 처마
34쪽 강원도 평해
*현재 경상북도 평해
133쪽 백자 달항아리을
*백자 달항아리를
221쪽 북극보전은 보통 절집에서 산신각, 삼성각,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 삼성각
303쪽 利태원묘지
*梨태원묘지(李태원, 異胎원)
312쪽 백두대간
*한북정맥
32. <<국토박물관 순례1>> p.52~53
減減貫夜 盜汗咳不止 常微熱 失酒味 余命計以月 其相雖可哀 吾志不動 神者 人之造作 極樂地獄 一切虛相 皆非實體 三佛固信
願速脫夢幻浮世 而歸于太虛何有之鄕 一九九三年 七月六日 自畵 三佛
기력이 줄고 줄어서 밤새도록 식은땀과 기침이 멈추지 않고, 늘 미열이 있으며, 술맛을 잃었으니 나의 수명은 한달 정도 남았을 것으로 헤아려진다. 그 모습이 비록 애처로우나 나의 지기志氣는 흔들림이 없다. 신이라는 것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극락과 지옥이란 것도 일체가 허상이니 모두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삼불은 굳게 믿는다. 바라건대, 어서 꿈 속 뜬세상에서 벗어나 태허의 무위자연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1993년 7월 6일 스스로 그린다. 삼불.
유홍준 교수는 '감감減減'을 '점점'으로,
'도한盜汗'의 '도'자를 '야夜'에 붙여 '밤이 도둑처럼 찾아온다'로 잘못 해석하고,
'하유지향何有之鄕'을 '향유지향向有之鄕'으로 오독하고,
'향유지향'이 무엇인지 설명도 없이 번역해 놓았다.
'하유지향'은
장자 소요유편에 나오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하유지향'은 삼불 선생이 실수로 '무하유지향'의 '무'자를 빠뜨린 것인지,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는 모르겠다. 의도적으로 '무'자를 뺐다면 앞의 '태허'와 연결하고, '하유지향'을 '어디에 있을 이상향인가'로 반어법으로 해석하면 무하유지향과 하유지향은 같은 말이 된다. 결국, 태허의 무위자연의 이상향으로 해석된다.
무하유지향은 '그 어느 곳에도 없는 고을', '삶을 해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을 말한다. 노계 박인로의 별호 '무하옹'의 출전이다. '태허太虛'는 장횡거의 '정몽正蒙'에 나오는 개념으로 음양을 낳는 기氣의 본체, 주렴계가 말하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해당된다.
33. <<겸재 정선>>(창비, 2026)
p. 151- 용추 계곡 3단 폭포 중 맨 위쪽에 위치한 연산 폭포 바위에 "甲寅 秋 鄭敾"이라는 탐승 기념 각자를 새겨놓았다. 이것은 1980년 최완수에 의해 발견되었다.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나도 한번 찾아가 보았는데 ‘그사이 등산객 발길에 밟혀’ 탁본을 뜨기 전에는 잘 읽히지 않을 정도로 마모되어 몹시 안타까웠다.
*‘등산객 발길에 밟혀’ 마모된 것이 아니다. 등산객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암벽이고, 본래 얕게 새겨져 희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