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의 영성] 비잔틴 양식
지난 5월 호 글의 마지막에 원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드렸습니다. 이 원형에 대한 고민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성전 건축에서는 장방형 공간과 원형의 형태를 복합적으로 결합시켜서 신적 권위에 대한 상징과 성스러움에 대한 요소를 결합시키고 서로마 제국의 건축 양식을 뛰어넘을 더 크고 화려한 양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동로마제국에서 5세기부터 약 1천 년간 계속된 미술이나 건축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을 계승하고 여기에 소아시아나 시리아 등의 요소가 가미되면서 5세기 무렵부터 발달한 비잔틴 양식은, 고대 헬레니즘 미술의 뒤를 이어 고대 아시아의 전통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 등을 더하였습니다. 신흥 그리스도교를 정신적 기초로 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발전하였으며, 이슬람 미술과도 어느 정도 교류하면서 약간의 시대적 변화와 어떤 종류의 일관성을 가지고 10세기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
-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바실리카 형식과 동방의 전통적인 팔각당(원형)형식이 소아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비잔틴 양식 성당의 특징은 바실리카 양식에서 집중형 돔 형식으로 변화되고 돔 안에는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성 소피아 대성당, 모자이크로 유명한 성 비탈레 성당, 성 마르코 대성당 등이 있습니다.
먼저, 비잔틴 양식의 내부적 특징은 모자이크를 통해 나타납니다. 모자이크란 돌, 유리, 조개껍질 등 각종 재료의 조그만 조각으로 무늬나 회화를 구성하여 건축물이나 공예품 표면에 접착제로 붙인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대리석 모자이크로 바닥이나 벽면 장식에 사용되다가 이것을 회화로서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이 비잔틴 미술입니다.
모자이크는 입체감이나 미세한 뉘앙스까지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비잔틴적인 추상 세계를 표현하는 데는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비잔틴에서는 유약(釉藥), 유리를 주로 하고 조개껍질과 금박, 은박을 적당히 섞어 사용하여, 광선의 반사 작용으로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공간의 확대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모자이크는 값비싼 예술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프레스코화로 점차 대체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장식이란 단순한 벽면 미화가 아니라, 조형적 수단에 의하여 공간 내부를 성스럽게 하여 거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를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스러운 것 또는 성스러운 공간은 현세나 물질계와는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건축 내부 장식에 집중되었고, 십자가와 여러 종교 용구, 제단 등이 황금과 보석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비단 등을 사용한 호화로운 염직품이 장식되었고, 건축 장식으로는 색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전형적으로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풍부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
비잔틴 양식의 특징을 집약하고 있는 성당은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리었던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성 소피아 대성당.
‘하기야 소피아’(Аγ?α Σο??α,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는 537년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입니다. 두 번의 화재 사건을 거쳐 537년부터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 서방 제국에 의해서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되었습니다. 1453년부터 1931년까지는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이때 그리스도교 대부분의 모자이크와 유물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아름다웠던 황금색 모자이크와 이콘들은 두꺼운 회벽으로 덧발라지고, 성당의 모습은 감추어졌습니다. 어떤 미술사가들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성 소피아 대성당의 벽면에 두꺼운 회벽을 발라서 원상태의 모습이 간직되었다고 합니다.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해서 지금도 보수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블루 모스크.
성 소피아 대성당을 나와서 조금 떨어진 곳에 블루 모스크라고 알려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있습니다. 외형상의 모습은 성 소피아 대성당과 유사합니다. 1609년 술탄 아흐메트 1세가 7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 칭하는 건물을 완성합니다. 가운데 커다란 돔에 수많은 작은 돔을 얹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건축을 명령한 술탄은 성 소피아 대성당보다는 무조건 큰 돔을 만들어 더 아름다운 모스크를 지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결국 블루 모스크 안에는 육중한 4개의 기둥이 중앙 돔을 바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직경 23.5m의 거대한 중앙 돔은 작은 네 개의 돔이 받치고 있고, 돔 주변에는 수많은 창을 내어 자연의 빛이 내부로 비치게 했습니다. 돔 위에는 황금색 장식을 달았고,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별과 초승달을 얹었습니다. 모스크 내부는 약 2만 천 개에 달하는 파란색의 이즈닉 타일과 260개의 푸른빛의 유리창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로 부르기보다는 파란색의 타일이 많은 사원이라 하여 ‘블루 모스크’라 부릅니다. 500여년의 시간이 흘러 다른 모스크 건축도 성 소피아 대성당의 건축적 기술을 뛰어넘지 못하고 여러 개의 미나레트(첨탑)를 거느린 채 역사적 장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성 마르코 대성당
9세기 초에 지은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은 처음 테오도로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었던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828년 이슬람 세력의 박해를 피해 베네치아로 옮겨지면서, 베네치아 도제(Doge: 최고의 지도자)는 마르코 성인을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선언합니다. 이에 따라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안장하고자 새로운 성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국제적인 무역항이라서 해외 교류가 활발했던 베네치아는 새 성당의 구조를 당시 일반적인 라틴 십자가 평면이 아니라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 대성당을 모방하였습니다. 곧,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평면으로 결정하고 거대한 돔 다섯 개를 십자가 가운데에 하나, 십자가의 네 부분에 각각 하나씩 배치하였습니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건설은 832년에 마무리되었으나 976년에 일어난 폭동으로 소실되었고, 978년에 재건된 뒤 1063-1094년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베네치아 교구의 주교좌성당이 아니라 도제의 개인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성 마르코 대성당은 1807년에 이르러서야 주교좌성당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대성당이 건설되는 동안 나르텍스와 정면이 새로 추가되고 납을 입힌 목조 돔 지붕이 올라갔고, 무엇보다도 내부와 외부의 모자이크가 대성당의 중요한 장식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거의 8천㎡에 달하는 공간에 황금과 청동, 유리, 기타 값비싼 광석을 사용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모자이크는 동로마와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종교와 관련된 엄청난 모자이크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이호 요셉 - 광주대교구 운남동본당 주임 신부.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과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 계획과 설계를 공부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함평 하상성당, 군산 축동성당, 한성대성당 등의 설계에 함께하였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이호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