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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뇌 ①- 과학자의 주관과 과학의 객관성
» 무터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아인슈타인 뇌의 얇은 조각들. 출처/무터 박물관 누리집
나는 20대 초반까지 내 머리가 좋은 줄 알았다. 비록 한 차례의 대입 실패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입학했고 예과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한 번 마음 먹으면 과 수석도 우스운 일이야’라는 생각이 늘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본과에 진학한 뒤에도 내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마음 속 호언장담과 달리 현실은 재시와 유급을 걱정해야 하는 일명 ‘저공 비행’이었다.
속상했던 점은 ‘공감각’까지 동원해 외운 내용들[1]이 정작 시험 볼 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듭된 실패에 하늘을 찌를 듯했던 자신감은 서서히 가라앉아 침몰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성적이 상위권인 동기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탐구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외웠으면 성적이 조금이나마 오르지 않았을까 한다). 몇 시에 등교하고 하교하는지, 식사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동기들과 같이 공부하는지 아니면 혼자 하는지, 몇 가지 색의 형광펜을 사용하는지 등을 흥신소 직원처럼 조사했다.
한동안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는 허망했다. 정식으로 통계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상위권 동기들과 나 사이에는 별 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허탈해하는 내게 친구 정환은 지나가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걔들은 머리가 좋은 거야.” 그렇다. 사실, 조사 전부터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단지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 물론 이렇게 결론 내리는 것이 동기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나의 부족함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분명 ‘머리가 좋은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천재로 일컬어졌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처럼 말이다.
명백히 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의
뇌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만큼 많은 관심을 받은 천재는 드문데, 그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무터 박물관(Mutter Museum)을 방문하면 보존을 위해 크레실 바이올렛(cresyl violet)으로 염색된 아인슈타인 뇌의 얇은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그의 뇌가 남겨진 것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이는 고인이 원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도록 부탁했기 때문이다.[2]
» 머리가 좋은, 아니 천재로 통하는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출처/Wikimedia
Commons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뜬 6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3] 1955년 4월 12일
그는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껴 뉴저지 주에 있는 프린스턴병원에 입원했다.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질환인 대동맥류(arotic
aneurysm)가 고통의 원인이었다. 담당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그는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아한 죽음을 원했던
그는 결국 5일 뒤인 4월 18일 새벽 1시15분에 숨을 거뒀다.
7시간이 지난 뒤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차가운 철제 테이블에 놓였다. 화장을 하기 전에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부검을 위해서였다. 부검은 당직 중이던 병리학 의사 토마스 하비(Thomas Harvey)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는 핀셋, 가위, 톱 등 여러 해부 도구를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몸속을 두루 살폈다. 사인은 예상했던 대로 부풀어 있던 대동맥류의 파열(rupure)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인을 알아낸 뒤에도 하비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두피를 한 쪽 귀에서 다른 쪽 귀까지 잘라낸 뒤 드러난 두개골에 전기톱을 댔다. 이어서 그가 두개골의 벌어진 틈에 끌을 박고 나무막대로 몇 번 두드리자 두개골은 큰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러자 상대성 이론, E=MC2, 광전 효과 등의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냈던 아인슈타인의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척수와 다른 조직을 잘라낸 뒤 아인슈타인의 뇌를 두개골에서 끄집어냈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심스럽게 저울에 올렸다. 천재였던 그의 뇌가 크고 무거울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뇌의 무게는 1,200 그램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보다 크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작고 가벼웠다. 그는 눈 앞의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비는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병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담은 뒤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뇌의 크기와 지능을 둘러싼 논쟁
하비는 왜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들의 뇌보다 클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앞서 소개한 무터 박물관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펜 박물관(Penn Museum)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이곳에는 19세기 미국 과학자이자 의사인 사무엘 조지 모턴(Samuel George Morton)이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여러 인종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다. 훗날 자료 수집가, 객관주의자, 정량화의 화신이라 불린 그는 1000개가 넘는 두개골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연구 자료를 축적했다.
» 모턴이 잉크로 표시를 남기면서 차곡차곡 정리했던 두개골들은 현재 무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각주[4]
뇌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모턴은 처음에 겨자씨를 이용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예수가 작은 믿음을 겨자씨로 묘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겨자씨의 크기는 매우 작다. 그는 체로 거른 겨자씨를 두개골 안에 채어 넣은 뒤 겨자씨를 다시 눈금이 새겨진 원통에 옮겨 담는 방법으로 뇌의 부피를 측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겨자씨로는 일관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그는 지름이 약 0.3 센티미터인 작은 납탄환을 사용하면서 오차를 줄여나갔다.
모턴은 객관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뇌의 크기가 인종별로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백인의 뇌가 흑인의 뇌보다 약 10 퍼센트 정도 더 크며, 백인의 지능도 그만큼 더 높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 마디로 ‘머리가 클수록 머리가 좋다’라고 외친 것이다.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어림짐작의 수렁에서 미국의 과학을 구해낸 사람’으로 칭송받던 모턴의 연구 결과는 이후 오랫동안 반박할 수 없는 견고한 자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197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5]과 1981년에 발간한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원제: The Mismeasure of Man)>[6]를 통해 모턴의 주장이 객관적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굴드에 따르면, 모턴은 뇌의 크기를 측정하고 분석해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즉 ‘인종에 따라 지능에 차이가 난다’란 주관적인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뇌의 크기를 ‘오측정(mismeasure)’ 한 것이었다.
인종을 분류할 때 모턴의 기준은 수시로 바뀌었고, 자료의 선택은 “그때 그때 달라요” 식으로 이뤄졌으며, 최종 결과물에는 잘못된 계산과 편의주의적인 생략이 종종 담겨 있었다. 굴드는 이를 모턴이 의도적으로 조작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종에 대한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연구 결과에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이후 대중은 모턴을 생전에 떨친 명성과 반대되는 방향, 즉 자신들의 주관이 연구의 객관성을 왜곡시킨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7]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 세기를 건너 뛴 논쟁
모턴이 수집한 두개골을 둘러싼 논쟁은 2011년에 다시 타 올랐다. 시작은 굴드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과학의 오측정 (The
Mismeasure of Science)”[8]이라는 제목으로
과학저널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된 논문이었다. 연구는 6명의 인류학자들이 펜 박물관에
보관중인 두개골들을 다시 측정한 뒤 이를 모턴과 굴드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굴드의 비판과 달리, 모턴의 두개골 측정은 대부분 정확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면 연구진의 측정치와 의미있게 차이가 난 모턴의 측정치는 불과 2 퍼센트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 경우에도 모턴은 백인이 아닌 흑인의 뇌를 더 크게 측정했는데, 이는 모턴을 향한 굴드의 비판과 정반대인 결과였다. 다시 말해 모턴은 자신의 주관적 편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두개골들을 측정한 것이었다.
» 세기를 건너 뛴 논쟁의 주인공인 모턴(좌측)과 굴드(우측). 출처/각주[8]
반면 연구진은 굴드야말로 과학자의 주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굴드 역시 분석 과정에서 자료를 선택적으로 수집했고, 통계를 잘못 사용했으며, 자신의 바람에 맞지 않는 불편한 표본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했다. 연구진이 굴드의 자료에서 수학적인 오류를 수정한 결과는 놀랍게도 모턴의 연구 결과보다 더 그의 인종에 대한 가설에 부합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 중 한 명은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굴드야말로 ‘주관적 이념이 극단에 치우친…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9]
연구진의 주장대로 모턴은 30년 넘게 자신을 따라다니던 오명을 떨쳐 버리고 ‘객관주의자’란 생전의 명성을 회복한 것일까? 하지만 그의 객관성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제한점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연구진은 모턴이 분석한 두개골 개수의 채 절반도 분석하지 않았으며, 뇌의 크기와 관련된 요인들(나이, 성별, 신장)을 분석 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연구진도 부지불식간에 굴드를 비난하던 자신들의 덫에 걸린 것일 수 있다. 이들의 논문 제목을 다시 패러디한 <네이처>의 사설 “오측정을 위한 오측정 (Mismeasure for mismeasure)”[10]은 이들의 동기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연구진의 일부가 펜실베니아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모턴의 불명예를 지우려는 노력은 이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과학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란 굴드의 주장을 명확하게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관성을 드러냈다.
뇌의 크기와 지능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고 있노라니 천재적이지 않은 내 머리가 아파온다. 종지부를 찍기 위해 굴드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인간의 재측정 (Remeasuring man)”이란 제목으로 2014년 발표된 논문[11]을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저자 와이스버그(Weisberg) 교수는 모턴과 굴드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를 모턴을 옹호한 2011년의 논문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굴드가 비록 실수를 범하고 사실을 과장하긴 했지만 그의 모턴에 대한 주장은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모턴의 주관적인 편견이 연구의 객관성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1
모턴과 굴드를 둘러싼 세기를 건너뛴 논쟁은 과학의 객관성을 곱씹어보게 한다. 연구자들이 많이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들의 무의식적인 오류와 미묘한 편견은 여전히 연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천재성의 원인을 찾고자 했던 여러 연구들도 역시 이런 측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데 관련 논문이 처음 발표된 시점은 1985년으로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 무려 30년이 지난 때였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토마스 하비가 포름알데히드 통에 담아 갔던 아인슈타인 뇌의 행방을 다시 추적해보자.
하비가 천재의 뇌를 갖고 있다는 소식은 이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신문을 보고서 이를 알게 된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버트는 크게 분노했다. 하비의 독단적인 행동은 화장과 조용한 장례를 원했던 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비는 과학적인 목적에만 쓰겠다며 유가족을 설득해 결국 정식으로 아인슈타인 뇌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은 좀 다르게 생각해서 몇 달 뒤 하비를 해고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하비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1960년에 해고된 것으로 보고한다).
직장을 잃었지만 하비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병원에서 아인슈타인의 뇌를 240개 조각으로 나누었고,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수 천개의 얇은 표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조직들은 두 개의 큰 병에 담아 집 지하실에 보관했다. 뇌 전문가가 아니었던 하비는 여러 학자들에게 뇌 조각을 보내면서 천재의 비밀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무응답이었고, 그나마 돌아온 답장들은 실망스럽게도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하비는 애물단지가 된 아인슈타인의 뇌를 처리할 방법을 놓고 부인과 갈등을 빚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비의 기대와는 달리 연구에는 진척이 없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식어 갔다. 그리고 1978년 스티븐 레비(Steven Levy)라는 젊은 기자가 칸사스 주에서 그를 어렵게 찾아내 인터뷰를 할 때까지[12] 아인슈타인의 뇌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당시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천재의 비밀을 밝혀내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인슈타인의 뇌가 그의 방 한 켠의 맥주 냉각기 밑에 자리 잡은 ‘코스타 사과주스’ 상표가 붙어 있는 상자 안의 병 두 개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세간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한 하비에게 198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주의 마리안 다이아몬드(Marian Diamond) 교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당시 생쥐의 뇌를 이용해 환경이 뇌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던 그는 아인슈타인의 뇌에서도 자신의 발견을 확인하길 원했다. 이에 하비는 각설탕 크기의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 네 개를 ‘크래프트 마요네즈’ 병에 담아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몇 년 뒤인 1985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통해 천재성을 설명하는 논문[13]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하비는 네 번째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리며 오랜 바람을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객관적인 과학 연구, 정말
객관적인가?
다이아몬드 교수가 하비에게 요청한 조각들은 뇌의 좌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브로드만 영역 9)과 각회(angular gyrus; 브로드만 영역 39)였다. 이 영역들은 뇌에서 여러 정보를 연합하는 곳으로 고차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연구를 위해 아인슈타인과 일반 남성 11명 뇌의 4개 영역에서 신경세포(neuron)와 이를 감싸면서 지지하는 아교세포(glial cell)의 수를 센 뒤 서로의 세포 개수나 세포 간 비율을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 브로드만 영역(Broadmann area): 독일의 해부학자 코르비니안 브로드만(Korbinian Broadmann)이 신경 세포의 구축에 따라 정의를 내리고, 번호를 매겨 나눈 뇌 영역.
»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에서 분석된 뇌 영역들. A: 배외측 전전두피질(브로드만 영역 9), B: 각회(브로드만 영역 39).
출처/각주[13] 연구 결과에서는, 아인슈타인 뇌의 좌측
각회에서 ‘신경세포 대 아교세포’의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하면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보다 아교세포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전 연구에서 지적 자극이 풍족한 환경에서 생활한 생쥐의 뇌에서 그렇지 않은 생쥐의 뇌에 비해 아교세포가 많이 관찰된
것을 알고 있었다.[14] 이와 유사하게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신경세포 대 아교세포’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 것은 아인슈타인이 뇌를 많이 사용함에 따라 신경학적 대사(metabolism)를 위해 아교세포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공개된 천재의 비밀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덩달아 아인슈타인의 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비뿐 아니라 이미 학계에서 업적을 쌓고 있던 다이아몬드 교수까지 유명해졌다. 하지만 유명세와는 별도로 이 연구에는 많은 오류가 존재한다.[15] 예를 들면 대조군의 평균 나이가 64세로 아인슈타인의 나이 76세와 차이가 있었으며,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인 사회경제 상태나 사인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그 발견마저도 뇌 영역과 세포의 수 및 비율 별로 이뤄진 총 28개의 분석 중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결과였다.
객관성을 잃은 또 다른 중요한 예는 이중맹검(double blind)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즉 자료 수집을 위해 현미경으로 뇌 조각을 살피며 세포의 수를 세기 전에 연구자들은 이미 눈 앞의 뇌가 아인슈타인의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었다. 이럴 경우 연구자의 주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관찰자 편향(observer bias)’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 이중맹검(double blind): 실험에서 주관성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실험 진행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
이중맹검은 흔히 새로 개발된 약물의 효과를 검증할 때 많이 사용된다. 처방하는 의사와 복용하는 환자 모두 약물의 효과 유무를 알지 못할 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약 효과(placebo effect)’가 방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맹검 역시 연구의 객관성을 완벽히 보장하는 ‘절대 반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예로 이중맹검이 이뤄진 정신과 약물 임상 실험 162개를 조사한 연구[16]를 들 수 있다. 연구진이 제약 회사의 지원을 받은 경우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해당 약물이 효과적이라 보고하는 확률이 4.9배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2
하비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1988년 자격 시험에 떨어지면서 더 이상 병리학 의사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하비는 호구지책으로 플라스틱 공장에 견습생 대우를 받으며 취직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아인슈타인의 뇌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의 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비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이다.
1994년 하비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계기는 영국 방송 <비비시(BBC)>에서 제작한 “유물: 아인슈타인의 뇌(Relic: Einstein’s brain)”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여기에는 아인슈타인에게 푹 빠진 일본의 수학 교수 스기모토(Sugimoto)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찾아 나선 여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중간에 하비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칸사스 주에서 오매불망 바라던 아인슈타인의 뇌와 조우하게 된다.
스기모토 교수는 하비를 만난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금 갖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찾아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아시아인이 고마워서였던지 하비는 스스럼 없이 스기모토 교수의 소원을 들어줬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오래된 병에서 아인슈타인의 뇌의 일부를 꺼내 도마에 올린 뒤 칼로 쓱쓱 썰어낸 부분을 스기모토 교수에게 건넸다. 스기모토 교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가 자축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의 기쁨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좇는 스기모토 교수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스기모토와 하비가 만나는 장면은 45분쯤부터 나온다. https://youtu.be/kbzVZUk__eI ]
2년 뒤인 1996년 하비는 앨라배마 주의 앤더슨(Anderson) 교수의 논문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17] 이 연구는 아인슈타인 뇌의 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아인슈타인 뇌의 신경세포의 수나 크기는 일반인 5명의 뇌와 차이가 없었지만, 더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앤더슨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정보 전달이 보다 짧은 거리에서 이뤄지면서 정보 처리 역시 빨리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 하비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절단한 방식을 간단히 보여주는 그림. 이 연구에서는 배외측 전전두피질(브로드만 영역 9)이 이용됨.
출처/각주[17]
천재의 뇌를 설명하는 또 다른 비밀이 발견된 것이었을까? 하비는 주관적으로 그렇게 바랐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신경세포 덕에 아인슈타인이 천재였다면, 뇌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발견이 확인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치우친 기준으로 자료를 선택해 결과를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측 배외측 전전두피질 한 곳이 아인슈타인의 전체 뇌를 대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다이아몬드 교수나 앤더슨 교수의 연구 결과물은 당시 사회에 끼친 반향과는 달리 객관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 하는 연구자의 주관이 연구 전반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2006년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직학적으로 꼼꼼히 살핀 논문은 앞선 연구 결과들을 부정하고 있다.[18]
문득 정신과학을 공부하는 나의 뒤를 돌아본다. 다른 과에서는 일반적으로 피검사 혹은 엑스레이(X-ray) 등을 이용한 객관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이 내려진다. 그러나 정신과에서는 주로 환자 혹은 보호자와의 면담이 진단 과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주관이 상대적으로 많이 개입할 여지가 존재한다. 나 역시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주관적인 편견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아인슈타인의 뇌가 주는 교훈은 ‘어떻게 하면 머리가 더 좋아질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객관적일까’인 것 같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뇌는 이제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향하는데….
아인슈타인의 뇌 ②: 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 일반인의 뇌(좌측)와 아인슈타인의 뇌(우측)를 비교한 그림. 빨간선이 후중심선, 녹색선이 실비우스열을 나타낸다. 출처/각주
[3]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3
하비는 199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샌드라 위틀슨(Sandra Witelson) 교수에게 손으로 쓴 팩스 한 장을 보낸다.[1] 내용은 간단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하고 싶나요?” 위틀슨 교수가 비록 아인슈타인의 뇌를 요청한 적은 없었지만, 매력적인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 역시 하비에게 짧은 답장을 팩스로 보냈다. “네.”
하비가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심을 보인 여러 학자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위틀슨 교수에게 연락했던 이유는 그의 ‘뇌 은행(brain bank)’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인지 기능과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가 일일이 담겨 있는 많은 뇌를 가지고 대규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비는 여전히 천재 뇌의 비밀에 목말라 있었다. 그는 우물을 찾는 마음으로 낡은 자가용에 아인슈타인의 뇌가 담겨 있는 병을 싣고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연구 결과는 1999년 의학계의 유명 학술지인 <랜싯(The Lancet)>에 실렸다.[2] 당연히 하비도 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진은 평균 지능지수(IQ)가 116인 남성 35명 및 여성 56명의 뇌를 아인슈타인의 뇌와 비교했다. 현미경으로 뇌의 조직을 비교했던 이전 연구들과 달리 위틀슨 교수의 연구는 뇌의 형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시 말해 이번에는 천재의 뇌 속이 아니라 겉이 살펴진 것이었다.
»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던 1921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연구진은
아인슈타인 뇌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이를 살피기에 앞서 뇌의 구조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의 뇌를 옆에서 보면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을 아래쪽의 측두엽과 나누면서 뻗어져 있는 실비우스열(Sylvian fissure)이란 큰 고랑이 있다. 또한 두정엽의 앞부분에는
위아래로 뻗어져 있는 후중심선(postcentral sulcus)이 위치한다. 일반적으로는 후중심선이 실비우스열의 뒷부분보다 앞에
존재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뇌에서는 실비우스열이 곧장 후중심선과 이어져 있었다. 즉 그의 뇌에서는 실비우스열의 뒷부분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더
앞쪽에 있었다. 또한 그의 뇌 무게는 1,230 그램으로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지만, 두정엽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15 퍼센트 더 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의 뇌에서는 두정엽의 아래 부분인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이 더욱 커져
있었다.[3] (맨위 그림 참조).
하두정소엽은 뇌로 들어온 시각, 청각, 체성감각(예. 촉감, 온도, 통증)이 서로 연합하는 곳으로 시공간 인지 기능과 수학적 사고 등을 담당한다. 연구진은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지능과 과학적 영감이 바로 크게 발달한 하두정소엽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독일의 천재 수학자 가우스(Gauss)의 뇌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4] 이전의 연구들과 달리 비교군의 통제가 잘 이뤄진 이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논문 중 가장 많이 학계에서 언급되었다. 또한 천재성의 비밀이 밝혀졌다며 당연히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소개했다.
서로 다른 관찰과 해석, 제 눈에 안경?
6개월 뒤 미국의 알버트 갈라버다(Albert Galaburda) 교수는 <랜싯(Lancet)>에 위틀슨 교수의 논문에 대해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5] 그가 보기에는 아인슈타인의 우측 뇌에서 실비우스열의 뒷부분이 끊기지 않은 채 올라가고 있었고, 좌측 뇌에서 위틀슨 교수가 발견하지 못했던 두정덮개(parietal operculum)라는 작은 주름이 ‘자신의 눈’에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그는 아인슈타인 뇌의 형태가 위틀슨 교수의 주장과 달리 흔한 편이라고 주장했다.
갈라버다 교수의 의견에 대해 위틀슨 교수는 자세한 해부학적 설명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갈라버다 교수가 좌측 두정덮개라고 생각하는 곳은 후중심회(postcentral gyrus)를 잘못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위틀슨 교수의 자료를 다시 살핀 포크(Falk) 교수의 2009년 논문[6]에 따르면, 갈라버다 교수의 손을 들어줘야 할 듯 싶다.
아인슈타인 뇌에 대한 형태학적 논쟁은 신경해부학 영역에서 단순해 보이는 내용조차 의견 일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7] 갈라버다 교수가 언급했듯이 두정엽을 포함한 인간의 뇌는 많은 주름을 갖고 있고, 밖으로 솟아오른 부분인 회(回; gyrus)와 안으로 접혀 들어간 부분인 구(溝; sulcus)가 다양한 형태를 띄기 때문에 육안으로 접근하고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미의 주관성을 표현한 영어 속담을 조금 비틀어 이런 상황을 표현해 보면, ‘뇌는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Brain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고 할 수 있겠다.
» 2012 런던 하계 올림픽 공식 로고. 출처/ Wikimedia commons 한 예로 2012년 영국 하계 올림픽
로고를 떠 올려보자.[8] 당시 이란은 로고를 변경하지 않으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겠다면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로고가 성경에서 예루살렘을 뜻하는 ‘시온(Zion)’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친이스라엘 음모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란의 주장이었다. 정말 로고에 인류 화합을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었을까?
사실 런던 올림픽 로고는 올림픽이 열린 해였던 “2012”를 상징했다. 이란 측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해 로고를 살펴보면 2를 Z로, 1을 I로, 0을 O로 볼 수도 있겠지만, N은 아무리 봐도 무리인 듯싶다. 오히려 로고가 독일 나치당의 만(卍) 무늬 혹은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일각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적 마음에 안 들던 친구에게 회심의 일격으로 ‘똥침’을 날렸던 장면이 떠 오르지만.
이처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을 갖고 있다. 동기가 시지각(視知覺; visual perception)에 끼치는 영향을 살핀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내면의 주관적 동기에 따라 이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9] 혹 위틀슨 교수 역시 아인슈타인 뇌의 복잡한 형태를 살필 때 천재성을 확인하고 싶은 내면의 바람이 해부학적 해석에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4
1997년 당시 뉴저지 주에 살던 하비는 자신을 찾아온 마이클 패터니티(Michael Paterniti)라는 이름의 작가를 만났다.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하던 젊은 작가와 오랫동안 보관해 온 아인슈타인의 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늙은 의사는 이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몇몇 과학자들, 친구들, 그리고 천재의 손녀 에블린 아인슈타인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두 남자는 2월 17일 아인슈타인의 뇌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원통형 가방에 담아 자동차에 싣고 미국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여정의 발걸음을 내디뎠다.[10]
기묘한 조합의 두 남자는 여행의 중간중간 아인슈타인의 흔적이 깃든 곳을 들른 뒤 최종 목적지였던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에블린의 집에 2월 27일에 도착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뇌의 소유자였던 아인슈타인의 손녀와의 만남이기 때문이었을까? 자리에 앉으라는 에블린의 권유를 네 번이나 받을 정도로 하비는 어색하고 엉거주춤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뇌를 꺼내 설명할 때만 잠깐 활기를 띠었을 뿐 한 시간 반 만에 만남을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근처에 사는 자신의 사촌과의 만남이 이유였다.
에블린의 집을 떠나면서 하비는 여행 기간 내내, 아니 그의 인생 내내 품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챙기지 않았다. 임의로 소유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유족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반환이 목적이었다면 11일간의 여행 대신 우체국 소포를 선택하는 편이 더 쉽고 빨랐을 것이다. 어쩌면 하비는 자유로워지길 원했을 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소유한 대가로 직장, 경력, 결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호언장담과 달리 천재성의 비밀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재의 뇌는 하비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니라 저주받은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11]
하지만 에블린 역시 원하지 않았기에 아인슈타인의 뇌는 다시 하비에게 돌아왔다. 결국 이듬해인 1998년 하비는 40년 넘게 갖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과거 근무했던 프린스턴 대학병원에 기증했다(일부 자료에서는 몇 년 뒤인 2000년 초반에 기증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뇌를 건넨 후 집에 돌아오던 그의 심정은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지 않았을까? 이후 그의 행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인슈타인 서거 50주기인 2005년에는 몇몇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던 그는 2007년 숨을 거두었다.
하비의 죽음으로 아인슈타인 뇌의 연구는 막을 내린 듯 했다. 2009년에 포크 교수가 바이올린 연주에 능했던 아인슈타인의 음악적 재능을 설명할 수 있는 뇌 구조물을 규명했지만[6], 이 연구는 위틀슨 교수의 기존 자료를 다시 살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꺼져가나 싶던 관련 연구의 불길은 2010년 다시 타올랐다. 하비의 유족들이 아인슈타인 뇌의 미공개 사진과 표본을 국립의료박물관(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에 기증했기 때문이었다. 천재의 뇌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 아인슈타인의 우측 뇌의 후중심회(postcentral gyrus)에서 두드러진 동그란 손잡이(knob) 모양의 구조물(K;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 여러 연구에서 유사한 구조물이 음악적인 재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각주[6],변형
새롭게 발견된 천재성의
비밀
2013년 미국의 포크 교수는 새롭게 공개된 사진 14장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의 뇌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12] 대부분의 사진들이 흔하지 않은 각도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는 과거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던 뇌 구조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85명의 일반인 뇌 사진과 비교를 해봤더니 아인슈타인의 뇌는 이전의 연구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두정엽 외에도 전두엽(frontal lobe)과 후두엽(occipital lobe)의 여러 영역에서 주름이 많고 굴곡이 복잡하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분석이 이뤄진 아인슈타인의 뇌. 일반인의 뇌와 비교해 두드러지는 부분들은 노란색으로 표시됐다.
출처/각주[12]
뇌의 앞부분에서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전전두피질은 정보의 조직화, 집중의 유지, 작업 기억 등과 같은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에 관여하는 곳이다. 연구진은 이 곳이 많이 접혀 있는 특징 덕분에 아인슈타인이 한 줄기 빛을 타고 여행하거나 우주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s)’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론했다. 아울러 뇌의 뒷부분에 위치하는 시각 피질(visual cortex)의 안쪽 면에 발달한 많은 주름과 굴곡 역시 이런 능력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음 해인 2014년 포크 교수는 중국의 연구진과 함께 한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또 다른 특징을 찾아냈다.[13] 이들이 주목했던 것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란 구조물이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뇌량을 두 대조군 집단의 뇌량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 집단은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나이와 비슷한 평균 74세의 15명의 남성 노인들이었고, 다른 집단은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 브라운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질량-에너지 동등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나이와 같은 평균 26세의 젊은 남성들이었다.
» 뇌량의 해부학적인 위치(빨간색 부분). 우측: 뇌량이 관찰되는 아인슈타인 뇌의 내측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
[13],변형
연구 결과, 아인슈타인의 뇌량은 노인 집단의 뇌량에 비해 두께, 길이 등 비교 항목 10개 중 9개의 항목에서 큰 것으로 나타났고, 젊은 집단과의 비교에서는 6개 항목에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아인슈타인의 뇌량이 두꺼운 것을 양쪽 반구(hemisphere)의 특정 영역 사이의 연결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으로 해석했다. 아인슈타인 뇌의 이런 특징은 그의 천재성, 즉 뛰어난 지능뿐만 아니라 특별한 시공간 기술과 수학적인 재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천재가 괜히 천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뇌라는 신화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이전의 연구들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만큼 더 객관적인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신경과학적 신화(Neuromythology of Einstein’s brain)”라는 제목의 논문[7]에 따르면 답변은 안타깝게도 회의적이다. 논문의 저자 하인즈(Hines) 교수는 이전에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밝힌 처음으로 밝힌 다이아몬드 교수의 1985년도 논문을 “심각한 결함이 있어 연구의 결론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14]
하인즈 교수가 지적한 첫 번째 문제점은 ‘시간의 전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한 추론(post hoc ergo propter hoc reasoning)’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자신의 사고는 심상(image)과 감정을 포함하고, 시각뿐만 아니라 근육도 포함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인슈타인 뇌의 특정 영역이 남다르게 확장되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이는 시간 상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를 원인으로 규정짓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에서 ‘논리적인’ 쉘든이 이미 이런 추론의 ‘비논리성’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빅뱅 이론 시즌 3의 1화의 시작 장면. 아래 '쉘든의 대사' 참조.]
쉘든: 안녕, 엄마. 아니요. 집에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말했잖아요. 아직 집 아니에요. 네. 이제 집이에요. 북극 여행은 놀랄 정도로 성공적이었어요.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거의 확신해요.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완전히 확신해요. 아니요. 엄마 교회의 기도 모임에서 제 안전을 위해 기도한 건 느끼지 못했어요. 제가 집에 안전하게 왔다는 사실이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지는 못해요. 그건 ‘인과 설정의 오류’에요. 아니요. 에스키모 말로 말대꾸하는 것 아니에요.
하인즈 교수가 언급한 다른 문제점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주관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이 갖고 있던 ‘천재의 뇌는 뭔가 다를 것이다’란 바람이 자연스럽게 이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한 예로 뇌의 좌측 상하 전두회(superior and inferior frontal gyri)를 들 수 있다. 포크 교수는 2012년 논문에서 아인슈타인 뇌에서 확장된 이 영역들이 천재성을 설명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이 영역들은 2개 국어 구사자(bilingual)의 뇌에서도 발달하는 곳이다.[15] 주지하다시피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숨을 거둔 아인슈타인은 양쪽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2개 국어 구사 등의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 채 아인슈타인 뇌의 특별한 점을 천재성과만 연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주관성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수 많은 로마인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일하게 두 권에 걸쳐 묘사되는데, 로마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천재성을 고려하면 이런 배려(?)는 당연해 보인다. 그가 천재였던 이유를 그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 밖에는 보지 못하는’ 반면에 그는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오래 전 천재가 남긴 문장은 또 다른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를 둘러싼 이야기와 관련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의 연구자들이 비록 객관성의 함몰이란 이전 연구의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보다 많은 대조군을 선정하고 정교한 통계 방법을 사용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인간의 기대 심리를 넘어서지는 못한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교해야 할 천재의 뇌가 단 한 개라는 근본적인 약점 자체는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뇌를 보존한, 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인 토마스 하비야말로 객관성의 결여와 기대 심리의 충족이란 굴레의 첫 희생양이지 않을까? 자신의 주관적 욕심에 고인의 뜻을 반하는 행동을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뇌를 연구할 만한 객관적인 능력이 없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뇌를 맥주 냉각기 밑에 보관하고, 집 안 부엌에서 칼로 썰어 방문객에게 건네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다니는 등 전문가답지 못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인슈타인의 뇌에 매달리며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책을 읽고, 학원에 가고, 우유를 마시며 우리 역시 사실은 천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을 숭배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위해 조용한 장례와 화장을 원했던 그는 정작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소비되는 것을 기뻐할 것 같지 않다. 비록 아무 때든 그의 뇌를 무터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고 단돈 10달러면 디지털화된 형태로 다운받을 수 있는 것[16]이 현실이지만, 이제는 일반인이든 연구자든 주관적인 관심을 접고 아인슈타인의 뇌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
[주]
[1] http://www.nytimes.com/2006/11/14/science/14prof.html
[2] Witelson, S.F., D.L. Kigar, and T. Harvey, The exceptional brain of Albert Einstein. Lancet, 1999. 353(9170): p. 2149-53.
[3] Sun, T. and R.F. Hevner, Growth and folding of the mammalian cerebral cortex: from molecules to malformations. Nat Rev Neurosci, 2014. 15(4): p. 217-32.
[4] Spitzka, A., A Study of the Brains of Six Eminent Scientists and Scholars Belonging to the American Anthropometric Society, together with a Description of the Skull of Professor E. D. Cope. Trans Am Philos Soc, 1907. 21: p. 175-308.
[5] Galaburda, A.M., Albert Einstein‘s brain. Lancet, 1999. 354(9192): p. 1821; author reply 1822.
[6] Falk, D., New Information about Albert Einstein’s Brain. Front Evol Neurosci, 2009. 1: p. 3.
[7] Hines, T., Neuromythology of Einstein‘s brain. Brain Cogn, 2014. 88: p. 21-5.
[9] Balcetis, E. and D. Dunning, See what you want to see: motivational influences on visual perception. J Pers Soc Psychol, 2006. 91(4): p. 612-25.
[10] Paterniti, M., Driving Mr. Albert: A Trip Across America with Einstein’s Brain.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2013.
[11] http://www.bbc.com/news/magazine-32354300
[12] Falk, D., F.E. Lepore, and A. Noe, The cerebral cortex of Albert Einstein: a description and preliminary analysis of unpublished photographs. Brain, 2013. 136(Pt 4): p. 1304-27.
[13] Men, W., et al., The corpus callosum of Albert Einstein‘s brain: another clue to his high intelligence? Brain, 2014. 137(Pt 4): p. e268.
[14] Hines, T., Further on Einstein’s brain. Exp Neurol, 1998. 150(2): p. 343-4.
[15] Garcia-Penton, L., et al., Anatomical connectivity changes in the bilingual brain. Neuroimage, 2014. 84: p. 495-504.
[16] https://itunes.apple.com/kr/app/einstein-brain-atlas/id555722456?mt=8
[17]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82&page=1&document_srl=305296
[18]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82&page=2&document_srl=303009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