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주흘산
문경의 진산(鎭山)이거니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새재(조령)을 끼고 있어 매우 중요한 산이다.
그러한 연유로 홍건적의 난때 공민왕이 이곳으로 파천(播遷)한 역사가 있다.
25000 지형도
고도표
신산경도
위성
파란선=진행 루트
붉은선=백두대간 루트
우리나라의 3대 아리랑은 정선,진도,밀양 아리랑을 꼽지만, 전지역에 60 여종류에 3600곡의 아리랑이 있단다.
이중 해외에 가장 먼저 알려진 아리랑은 바로 '문경새재 아리랑'이며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방이가..."
의 노랫가락은 어지간하면 몇번은 들어봤음직한 바로 그 아리랑이다.
문경시에서 그 점을 주목해 10여년전부터 문경재재 아리랑제라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옛길 박물관
산길을 다니다보니 길에 관심이 많다.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데, 이번엔 그냥 지나친다. 가볼 기회가 있겠지.
조령 1관문인 주흘관
뒤편으로 백두대간의 조령산이 보인다
여궁폭포
여성의 하반신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며, 일곱 선녀가 머물다 간 전설이 있다.
상하 파노라마로....
폭포로 흘러내리는 수량이 여궁폭포라는 이름에 딱 알 맞은 만큼이라 더욱 신비하다....ㅎㅎ
혜국사가 참으로 아담하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비구니 절이란걸 알겠다.
혜국사의 주어와 목적어가 불분명해 오해하기 십상이다.
'나라로 부터 은혜를 입은 절' 이 아니라, '나라가 이 절로 부터 은혜를 입은' 절이다.
또한, 혜국사라는 이름은 공민왕이 이곳에 파천했다고 붙은 이름이라기 보다
임진왜란때 서산대사가 이 절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바 있어, 조정으로 부터 '혜국사'
즉 나라가 절로 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의 이름을 하사 받은 것이다.
혜국사에서의 전망은 산속 유명한 절처럼 탁 트이는 멋진 조망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을 맑게하고 차분하게 이끄는 느낌이다.
산신각 앞 물푸레나무의 수령이 예사롭지 않을 듯.
껍질 벗은 소나무.
소위 나목(裸木). 수많은 시의 재료가 되기도 한 나목.
공민왕이 집무를 본 행재소인 대궐터 아래에 있는 대궐샘
물이 있는 곳에 집무실을 설치했을 테니 공민왕은 파천시절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오르막 계단이 끝나니 능선길이 시작된다.
어라?
잔설이 있다.....*^^^*
주흘산(主屹山) 주봉
주흘산은 주변에 비해 유난히 홀로 우뚝서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주봉이 주흘산 정상인가 영봉이 정상인가 하는 것에 설왕설래 한다.
그도 그럴것이 높이로만 따지면 영봉(1108)이 좀더 높지만, 조망 정상규모 등에서 주봉(1079)이
두드러지고 예전부터 주봉이 정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혹자는 영봉을 주흘산 최고봉, 주봉을 주흘산 정상으로 부르는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내 견해는 그냥 주흘산 주봉을 주흘산으로, 영봉은 주흘산 영봉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산'이란 '봉'과 달리 정상의 유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라 영봉처럼 산마루만 우뚝 서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흘산은 대간,정맥등의 맥길에서 벗어나 있어 일부러 와야 하는 100대 명산이라 인증받는다...ㅎㅎ
오전에 비해 확실히 미세먼지가 늘었다. 가까운 영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주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여간 아닌데 철모르는 미세먼지 때문에 베리따....ㅠ.ㅠ
문경 지곡리가 뿌옇다....ㅠ.ㅠ
포암산과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좀 더 선명했으면 좋을텐데...
문득 백두대간 포암산,대미산구간에서 눈물샘 추억이 떠오른다.
동행한 산대장 한분이 눈물샘 샘물을 들고 월악산 근처까지 초대형알바를 했던 일....ㅎㅎ
희뿌연 저 너머 황장산이 있을텐데, 못 찾겠다.
주흘산 영봉도 아니고 주흘영봉(主屹靈峰)으로 표기한 것은 이 곳을 주흘산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블랙야크 100 명산 인증지점은 주봉,영봉 두 곳이라 둘중 아무데서나 해도 되지만 한번 더~~~ㅋㅋ
부봉의 여러 봉우리가 까칠하다.
꽃밭서들
'서들'이란 돌무더기 즉 너덜,너덜겅지대를 뜻한다.
그런 서들에 기원석을 쌓아 꽃밭처럼 만들었다 해서 꽃밭서들 이라 부른다.
가을의 한복판을 지나 겨울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풍경
2관문인 조곡관
물이 없어 폭포스럽지 않지만....그래도 폭포다.
재작년 다녀갔을 땐 수량이 많아 폭포스러웠는데...
곧 떨어질듯 아찔한 바위
확대해봐도 식별이 힘들다.
뭔가 안내표지일듯 한데...
고어로 남아 있는 '산불조심 표지석'중 유일하게 순한글 이란다.
조선시대때 충청,전라,경상도와 한양을 이어주는 3개의 도로인 삼남대로중 영남대로.
신라,고려때 까지도 도로망이 꽤 정비되어 수레가 교차할수 있는 도로도 있었으나, 조선 중기후
도로가 외적의 침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인식이 있어 도로를 일부러 닦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있는 도로마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삼남대로조차 말이 대로지 대로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꾸구리 바위
꾸구리는 잉어과의 민물고기 인데, 눈꺼풀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용추약수
어지간하면 물맛을 보는데, 그냥 눈으로만....ㅎㅎ
교귀정
옛 과거길 복원공사 중인듯
무주암
옛날에 술과 안주를 놓아두고 길손들이 마신만큼 알아서 주대를 놓고 갔다 한다.
옛사람들의 푸근한 맘씨가 느껴져 흐뭇하다.
지름틀 바위
조산을 조성해 놓은 곳을 몇개 본 기억이 있다.
1km 채 안되는 거리지만 전기차를 이용했다.
조령(새재)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신립장군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다.
조선 전체를 통털어 최고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뛰어난 무인이지만, 판단착오로 새재를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궤멸당해 한양을 내준 패장.
아이러니는 똑같은 이유로 충무공은 전라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도륙했으니....
신립의 패전은 넓은 들에 배수진을 쳤으나, 왜군의 조총 사거리를 이기지 못해 싸우지도 못하고
거의 전멸했다. 똑같이 전라도 앞바다에서는 조선의 화포(천자총통,지자총통,인자총통등)의 사거리가
왜군의 화포보다 사거리가 길어 왜군의 전함을 원거리에서 화포로 궤멸시켜 조선군은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왜군을 섬멸했던 것이다.
주목할 점은 신립은 왜군과 왜군의 무기에 대해 몰랐고,이순신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
지기지피 백전불패를 떠올리는 대목.
GPS실트랙
주흘산(주흘관~여궁폭포~주봉~조곡관~주흘관)20181201.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