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빨리 크고만 싶었다. 청년이 되면 무엇이든 다 할 줄 알았다. 중년이 된 지금은 다시 청년이 되고 싶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꿈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청년 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의 삶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목회사회학자인 조성돈 교수는 낭만적이기만 했던 청년이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불우 이웃과 관계된 말로 인터넷에 검색에 종종 등장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 전체 자살 인구는 감소했지만, 유독 청년 인구에서는 자살이 증가한 것을 보면 분명 오늘날 청년에겐 도움이 필요하다.1)
21세기에 돈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명성 등을 포함한 모든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2) 특히 이런 신념은 청년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인 회생을 신청한 청년들을 상담해 보면, 남자의 경우는 코인과 주식 투자, 여자의 경우는 사치와 과도한 소비가 주된 원인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왜 그런 투자와 소비를 했는지 물어보면, 대중 매체와 SNS 등의 영향을 받아 빨리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고자 투자와 소비를 하게 되었다고 답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행했던 ‘벼락 거지’라는 말과 함께,3) 많은 청년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불안해 하며 투자라는 지름길을 찾고 있다.
모든 사람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특히, 청년들에게는 더욱,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의 기회들이 주어져야 한다. 생산적인 경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제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패자 부활전’이고 ‘사회적 안전망’이다. 전자는 실패했을 때 다시 기회를 제공하고, 후자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 준다.4) 하지만, 한국 사회는 패자 부활전의 기회가 적고 사회적 안전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경쟁 시스템의 문제에 주목하기보다 경쟁 자체가 공정해 보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듯하다. 그런 경쟁 시스템 안에서 승리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만 가득해 보인다.
이런 시류에 맞추어 교회는 한때 ‘청지기적 삶’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자본주의를 잘 이용하여 더 벌고, 더 소유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였다. 근래에는 주식 투자를 못 하면 마치 무능한 그리스도인이라도 되는 듯이 교회에 투자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일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응들 이면에는,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정직하게 자산을 관리하고 지키려는 청지기적 태도보다는,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여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시점에서 개인 재정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재무 상담은 동일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청년희망재무상담소인 ‘윙즈’는 이런 고민과 씨름하고 있다. 성경적인 재정 관리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경준의 말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성경적 재정 관리를 위해서는 ‘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이후 ‘무엇을 위해 돈을 관리해야 하나?’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5)
윙즈에서 재무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청년들은 취약 계층부터 중산층까지 다양하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그들의 재무 상태표만 보면 그들의 관심과 삶의 무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재무 상담은 돈을 관리하는 문제에서 시작되지만, 막상 상담이 진행되면 핵심은 돈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가 된다. 한 예로, 급여의 10%나 되는 금액을 심리 상담에 지출하는 부분에 관해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어떤 상처가 있고, 현재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 보게 되고, 때로는 그를 지지하거나 어떻게 극복할지를 상의하는 내용으로 상담이 진행되기도 한다. 재무 상담은 단순히 돈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닌 삶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한번은 윙즈에서 상담을 받은 한 청년이 윙즈가 10만 원을 ‘도전지원금’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지원서에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 적는 난이 있었는데, 그 취약 계층 청년은 ‘마음껏 먹어보지 못한 삼겹살을 실컷 먹고 싶다’고 적었다. 그 내용을 본 상담사들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서 울림을 느꼈다.
나는 ‘윙즈’의 청년 재무 상담의 목적은, 단순히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이기기 위한 자본주의적 대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삶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위로하고 함께 고민하며 동행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삶의 위로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긴급한 금융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구체적인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여 함께 이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재무 상담의 중요한 축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을 때 더 온전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은, 어른이 되는 일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윙즈의 청년 재무 상담 사역이 청년들이 함께 날아올라 꿈을 펼치도록 돕는 작은 도움의 날개가 되길 소망한다.
1) 『2022 자살예방백서』(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2. 6).
2) 이수진·김난도, “인스타그램과 현실공간에서의 과시소비행동 비교 연구”, 「디지털융복합연구」, 2020: 19(5), 205-220.
3) 벼락 거지: 2020년 코로나 유행 직후 유동성 증가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할 때, 이 급등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는 거지가 된다는 의미로 등장한 말(편집자 주).
4) 정영태, 『갈등 공화국과 국제이주민』(다인아트, 2023), 36.
5) 서경준, 『주나돈 1』(돈병원, 2022), 81.
첫댓글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의 기회들이 주어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