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올드맨, 출처_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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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프랜즈(이하 디마프)>를 몰아서 보다 밤을 꼬박 세웠다. 평일이었으니 출근 걱정이 천근이었으나 드라마 재미가 만근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청자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그네들의 나이를 보건 데 이번이 마지막 합숙의 만찬일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펄떡이는 대사가 활어처럼 식탁 위에서 춤추고, 배우들은 노년의 삶을 적나라하면서도 흉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요리해낸다.
뇌에 콱하고 박히던 명대사는 두 개다. 하나는 마지막 회에서 나온 박완(고현정)의 독백이다. “90년 인생에 남겨진 거라고는 고작 이기적인 자식이 전부라면, 이건 아니지 싶었다.” 그래 맞다, 혼자 중얼거렸다.
또 하나는 5화에 나온다. 역시 고현정의 내레이션이다. “어떤 사람의 인생도 한두 마디로 정의하면 모두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되고 만다. 내 인생을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해 버린다면 나는 정말 외로울 것 같다.” 또 맞다, 혼잣말 했다. 자신의 엄마에 대해,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자기 딸에 집착하며 극성맞게 살다가 암에 걸린 인생’ 이라고 정리해버리는 순간, 엄마 고두심이 겪어야 했던 삶의 고통, 가족에의 헌신, 친구를 향한 의리, 사랑 앞에서의 설렘 등은 모두 증발돼버린다. 그건 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타인의 삶을 한 줄 혹은 몇 줄로 정리해버린다. 개인의 역사보다는 개인의 캐릭터로만 기억하려 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나와 맞는 사람, 나와 상극인 사람, 정 많은 사람, 욕심 많은 사람.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문상객에게 이런 말도 한다. “평생 한량으로 사셨죠. 그래도 호상이라 다행입니다.” 서사가 거세되면 타인의 삶은 건조하고 무감한 사물이 된다.
<디마프>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을 세밀하게 펼쳐 보였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평범한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더라도, 그이의 삶은 그 자체로 우주만큼 묵직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아주 오래 잔상을 남게 해주는 것이 좋은 소설이다.
대표적으로 『에브리맨』이 그러하다.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필립 로스는 이 소설로 2011년 맨부커상을 받았다. 작가는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시종일관 잔혹할 만큼의 서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몸에 배인 습관으로 그의 삶을 몇 줄로 정의한다면 이러하다.
어린 시절 책임감 있는 부모 아래서 자랐고, 죽음에 대한 두 건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그를 사랑하는 잘난 형이 있으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으나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다른 여자를 만났고 평생 사랑할 딸을 낳았고 바람을 피웠고 세 번째 결혼을 했고 또 이혼했고 지속적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수술했으며 늙어서는 바다 근처의 노인 전문 빌리지에서 살았으나 끝내 섹스와 여자에 대한 욕망을 어쩌지 못했고 계속 병이 들면서 괴팍해진 성격은 사랑하는 형에게도 질투를 느끼다 죽는 일생.
역시 이런 방식은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매뉴얼에나 어울린다. 소설은 장례식장을 시작으로 세밀하게 주인공의 삶을 복기한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별 것이 아니어서 별 것 일 수 밖에 없는 감동 같은 것. 나의 인생이 주인공의 인생과 거의 정확하게 중첩되며 묘한 위로를 전달 받는 것. 독자는 그런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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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프>에서 소설을 쓰겠다는 고현정을 향해 기자 이모 (남능미)는, 내 인생은 소설로 쓰면 전집이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타인의 삶을 짧게 정리하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은 그러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한 숨이 백 가마요, 눈물이 천 항아리인 것이 내 인생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행운의 파랑새가, 기승전(起承轉)에서 갑자기 다시 기(起)로 돌아가는 인생의 장난질이, 삶의 어처구니없는 부조리함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함과 불안감이 되돌아보면 팔만대장경으로 펼쳐져 있다. 그래서 생각하면 지겹고,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디마프>의 노인들은 치매에 걸리고, 암에 걸리고, 돌연사로 불안해한다. 『에브리맨』에서 주인공은 ‘노년은 전투가 아닌 대학살’이라고 말한다. 나는 때때로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노인을 보게 될 때, 당신들의 거침없는 행동이나 나이를 앞세운 무례함에 고개를 돌리면서도, 어휴 저 만만하지 않은 인생을 이렇게 살아낸 분들이니, 그 자체로 당신들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된다, 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살에도 굽히지 않고 맞서 싸우는 노인들을 경외감의 시선으로 응원해주는 것은 또한 미래의 나에게 미리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 일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때 아주 잠시라도 그들의 인생을, 울고 웃고 고통을 겪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희망을 부여잡고 다시 진창에 빠지고 기적 같은 사랑을 만나 들뜨고 그 사랑에 배신 당한 후 허무와 우울에 짓눌려 지옥 같은 밤을 세우기도 했던 그 수 만개의 하루 하루가 엄연히 실존했음을 떠올려 보는 것도, 선거 개표 방송을 볼 때 쏟아내던 당신들을 향한 저주의 말들과는 전혀 별개로, 노년의 인생을 바라보는 젊은 것들의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하고 명품 드라마를 보며 생각했던 것이다.
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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