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맞이할 때면 교회를 다니는 아이나 다니지 않는 아이나 반 아이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코트나 새 점퍼를 입고 오는 아이도 있었고, 카드를 주고받는 아이도 있었다.
교실 창 밖엔 겨울이 쳐다보고 겨울 바람이 지나가고 눈이 내리기도 했다.
교실 안 중앙에서는 난로가 열기를 뿜어내고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난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등교할 때 바뀐 털 모자를 자랑스러워하고 새로운 장갑을 의식하기도 했다.
드물지만 부잣집 아이들은 부모님과 외식을 하거나 선물을 받기도 했다.
내가 사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야 외식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선물 또한 남의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장 철 김장을 돕는 아주머니들, 메주를 쑤는 아저씨 아주머니들, 썰매를 따는 아이들,
바위산에 올라 연을 날리는 아이들,
뜻도 모르면서 "탄일종이 땡땡땡"이나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을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이것이 수십년 전의 크리스마스 계절과 관련하여 내 기억에 찍혀있는 그림이다.
그 중의 한 어린아이는 주일이나 수요일 하나님을 찾아 교회로 향했다.
그 아이의 마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음 밑바닥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끌림과 원칙 같은 것이 있었기에, 한 마디로 은혜였다.
그렇게 지나온 교회 생활은 그 아이에게 최고의 가치와 행복이었다.
교회, 예배, 성경 말씀, 궤도 찬송, 장의자, 강단, 선생님들, 난로 등은 그 아이의
정서를 구성하는 아득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다.
인생에서 슬픔을 피할 수는 없는 것, 슬픔에 동반되는 고통도 역시 불가피한 것.
왜냐하면 그 누구도 머물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정지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 후 학교 친구도 동네 친구들도 흩어지고
이제 그 아이의 기억 속에는 저 아득한 시절 흩어졌던 그리운 친구들의 흐릿한 영상만이 남아있다.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시간들이 그 모든 아이들의 인생을 뚫고 지나갔으며,
그 모든 아이들의 이마에서 인생을 견뎌내야하는 구슬 땀이 흘렀을 것이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때 교회를 찾아 주님을 기리며 예배를 드리던 그 아이는,
자신이 하나님 사랑의 심장 안에 있다는 것과
거기서 지나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영원한 실재를 만나보았다는 체험을 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 년 열두 달 편지 한 장 들어있지 않은 우체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 거기에 담배꽁초를 넣으면 되겠지요."라고 말해야 할까?
그것은 비본질이며 부패다.
우리는 삶의 기간을 비본질 아닌 본질을 배우고
비본질에서 본질로 이동하기 위하여 어린 시절에서 마지막을 향해 인생을 이동하는 것이다.
주님을 알고 믿는 사람만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그 추웠던 겨울 하늘의 총총한 별들이 세월이 흘러도 지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듯이
내 기억 속엔 교회당 한편에 반짝이던 그 전나무 트리가 반짝이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도 그렇게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기를......
2024. 12. 23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하나님을 추구하던 아이는 결국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꺼지지 않는 하나님 은혜의 불꽃으로 아름답게 타오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