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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발 달린 벌☆]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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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달린 벌]
권기만 시집 / 문학동네시인선 072 / 주)문학동네(2015.08.31)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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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권기만
발 달린 벌을 본 적 있는가
벌에게는 날개가 발이다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
꽃에게 가고 있다
뱀은 몸이 날개고
식물은 씨앗이 발이다
같은 길을 다르게 걸을 뿐
지상을 여행하는 걸음걸이는 같다
걸어다니든 기어다니든
생의 몸짓은 질기다
먼저 갈 수도 뒤쳐질 수도 없는
한 걸음씩만 내딛는 길에서
발이 아니면 조금도 다가갈 수 없는
몸을 길이게 하는 발
새는 허공을 밟고
나는 땅을 밟는다는 것뿐
질기게 걸어야 하는 것도 같다
질기게 울어야 하는 꽃도
동거
권기만
얼굴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아무도 본 적 없지만 내 얼굴에는
다섯 마리 토끼가 산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깡충 깡깡충 뛰어다닌다
내가 우울하면 쫄쫄쫄 굶는다
다섯 마리 토끼가 뛰어다니는 얼굴을 보는 건
즐겁다 토끼가 뛰어다니고 있다면 틀림없이
맛있는 대화중이거나 사랑하고 있을 때다
소곤소곤은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다
한겨울에는 토끼도 어쩔 수 없이
말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잠을 잔다 봄이 오고
사방에서 꽃이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 소풍을 간다
꽃 한 송이마다 한아름의 미소가 사는 걸 알아보는 건
토끼다 입 다물고 있어도 봄이 지나고 나면
살금살금 미소가 살쪄 있다
소곤소곤 조곤조곤을 뜯다가 어른 토끼들은
구름 속으로 이사를 간다 큰소리는 토끼가
제일 싫어하는 풀이다 아이들 말은 토끼의 발
버짐 핀 듯 얼굴 왼쪽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새끼 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설국
권기만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는 수전증 걸린 노인 같다
툰드라의 혹한이 창틈으로 세상 끝까지 옷깃을 세웠다
모든 경계를 다 지워야 도착한다는 꿈에서의 열흘,
역사驛舍는 씩씩거림만 남은 주전자 바닥 같다
여행자로 살던 형은 왜 이 먼 곳에 와서 죽은 것일까
시체 보관소에 잠들어 있는 형은 너무도 편안했다
빙하의 바람을 뼈에 새기면 설국을 찾을 수 있다
갈겨쓴 글자가 설인의 흔적 같던 형의 엽서,
교수직을 던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형은
돈이 생기면 보드카만 마셨다
형의 수첩을 보고서야 설국으로 가는 길이 있단 걸 알았다
삶에 행로를 끼워 넣으면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만들어진다
수첩의 흰여우 언덕은 이제 찾을 수 없는 나라다
눈 덮인 북극 하늘을 조금씩 잊으면서 봄은 덧났다
한 송이 꽃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뛰어 내렸다
살아보고 싶은 존재에 가장 가깝다는 나라,
한 번 내디딘 자리에서 지상에 없는 제국을 만나보라고
북극점 받아 안고 가만히 날개를 펴는 목련,
내 눈 속에도 설국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우물
권기만
목마를 때 경주 박물관 간다
뜰 앞 우물에서
공손하게 물 한 바가지 떠먹는다
이 우물 앞에선 텅 빈 마음이 바가지다
조용히 눈감으면
물이 고여와 넘친다
넘쳐흘러 하늘에 가 고인다
하늘 한 바가지 떠먹기 위해
새들은 몸속을 텅 비운다
누가 맨 처음 허공에 우물을 파고
청동의 치마를 둘렀을까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낭산* 너머로 흘러가는 반월半月
우물 속에 잠겨 있다
때가 되면 텅 비어지는 몸을 들고
목울음까지 차오르는 에밀레
한 바가지 퍼서 월성月城이 젖도록
흐득흐득 마시다보면
우물도 달을 퍼서 마시고 있다
*낭산 :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 터가 자리한 경주 보문에 있는 산.
시지리 사람들
권기만
펀질리아 6세의 저녁이다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령하고 혼자만 누렸다는 저녁, 어둠에 지워진 유령처럼 지냈던 시지리 사람들, 박탈당한 그들의 저녁이 쫓기듯 마신 와인처럼 붉게 번진다 핏속에서 거칠게 솟구치던 분노가 센 강을 흐르게 한다 격렬했던 순간이 유람선을 흔든다 그 흔들림이 고대 시지리의 저녁을 통과한다 볼 수 없었던 저녁, 1년에 단 하루였지만 평등한 저녁을 되찾기 위해 펀질리아 6세를 폐위시킨 날도 오늘이다 저녁이라는 느리고 긴 다리, 그 다리를 건너 가족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일어선 날이다 남의 식탁에 오를 저녁을 적시며 와인 속으로 흘러가는 센 강, 핏속에 더 큰 강을 낳는다 이웃으로 돌아와 말없이 출렁이는 시지리 사람들, 천 년 전 사라진 저녁을 다져 구워낸 이야기 한 판, 빙 둘러앉아 파란 보름달 듣고 있다
7번국도
권기만
그는 수상스키를 타고 출근한다
눈을 멀리 두면 물보라를 일으키는 발밑
퇴근 땐 어김없이 북극을 향해 시동을 건다
기러기가 되어 날고 있는 7번국도,
부서지며 흘러가는 것들이
부딪치며 손 섞는 모습은 얼마나 눈부신가
잠에서 탄생할 때
그를 받아 안는 건 바람의 손이다
물방울로 짠 푸른 천을 펼쳐
한 마리 봉황처럼 날고 있는 동해
가끔 영화에서처럼 동해를 몰고 부릉부릉
광속 추월 페달을 밟고 북극으로 내달릴 때
시선을 관통하며 부서지는 까마득한 별빛
활처럼 원근법에 저장해두고
돌아갈 길을 돌아다보면
말없이 V자를 그려주는 기러기 1만 마리 눈빛
처음부터 오로라를 향해 시동을 걸어놓고 있다
물보라를 몰고 출근하는 7번국도,
눈을 멀리 두면
도로는 강으로 진화하고 있다
어머니가 사는 곳
권기만
옷이 엄니 손같이 느껴지는 날
나는 아이처럼 엄니가 벗겨주던 대로 옷을 벗는다
물끄러미 앞섶 바라보던 콧날 참 따뜻하다
내 안의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한 종지 미소 같은 단추를 끄른다
눈물 가득 고인 조그만 호수
주름진 엄니 손마디 물결처럼 일렁인다
얼룩진 윗도리 벗어 빨래통에 던진다
던지면서 돌아앉는 뒷모습에 얼른 다시 줍는다
엉거주춤 벌린 두 팔
어머니가 안아 달랬을 세월 안겨있다
단단히 여며주지 못해 힘들어하던 모습
후줄그레 어려 있다
벗어든 옷으로 엄니 잠시 나를 보듬는다
부시시 까슬하다
주름진 옷 속 조그만 엄니
빨래통에 넣으려다 말고
부둥켜안고 한참 참는다
이팝 1
권기만
입맛이 까칠했던 게지
저렇게 한꺼번에 침 뱉어 놓은 걸 보면
몸속에 게 한 마리 키운 게지
뒷걸음치다 주저앉을 수 없어
혀 깨물고 있었던 게지
바람이 일 때마다 허옇게 부서지는 젖살
정말 먹이고 싶었던 게지
보낼 수 없는 것을 보내
살이 아프다 안으로 곪아터지면
입안에 거품이 이는 걸
죽어도 몰랐던 게지
아버지 돌아오지 않는 탄광촌 언덕
쌀이 익어 이밥처럼 쌀이 익어
허옇게 흐드러진 게지
먹일 수 없어 입으로 끓어오른 햇살
퉤퉤 뒤집어쓰고 허허 곡 하는 게지
찬밥
권기만
언제 저렇게 많은 알을 슬어 놓았을까
식탁 위 고들고들한 밥
형광등 불빛 오밀조밀 들어앉아
금세라도 깨어날 듯이 꼬물거린다
말간 빛의 알갱이
한 숟갈 떠 입에 넣는다
생의 막장마저 물어뜯는 것일까
공복의 창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요동친다
찬밥 한 덩이로 버티기엔 너무 먼 하루
가다가다 어깨 처진 그믐 같은 슬픔,
한 번 더 불어터지고 있다
식탁 위, 섬처럼 떠 있는 밥그릇
살갗도 대지 않고 언제
저렇게 많은 허기를 고봉으로 낳았을까
삭발한 희망 한 덩이로 웅크린 반달
갱도를 비추는 흐린 램프 같다
어디든 막장이라고 자꾸 안전모를 눌러쓴다
몇 번의 굴절을 더 거쳐야
더운밥 둘러앉아 먹을 수 있을까
각삽 같은 숟가락으로 눈물을 캔다
한때 물컹했던 기억
갱차에 퍼 담는 반지하 거실
어깨 처진 슬픔, 한 번 더
불어터지고 있다
콩나물
권기만
곧추세운 코브라 대가리
이빨 잃고도 기죽지 않는
단단한 고요의 음계
정지 화면
멈칫, 하면 먹힌다
그게 그가 진화시킨 포획법
반쯤 먹힌 손으로
모가지째 뽑아 끓는 물에 넣는다
몸뚱이가 허물어져도 풀어지지 않는 독기
진간장 고춧가루로 절이고 버무려도
말짱 쌩쌩
조금도 공손치 않다
고요를 포획하고 어둠마저 포획했음인가
입에 넣는 때를 기다려
이빨 사이로 대가리 들이민다
몸은 버리고 머리로 살아남는 게
진화의 다음 단계라고
머리 전부로 눈 동그랗게 치뜬다
이런 독기 하나 있느냐고
못점
권기만
점만 남기고 몸을 숨길 때 끝까지 잡아주는 힘이 된다 어머니가 그랬다 아버지도 점이었다 번듯한 이름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박씨로 죽은 듯 박힐때 가족을 잡아주는 힘이 됐다 그 흔한 영산잭으로 평생을 머리 한 번 내밀지 않았지만 6남매를 지켜냈다 머리는 한 지점만 지켜내는 표식이어야 한단 걸 언제 알았을까 점만 남는 마지막 족적에서 뿌리가 자란다 내가 누군지 모를 때 머리 내어주고 대책 없이 맞았다 안으로 삼킨 아픔이 못으로 박히는 걸 그때 알았다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던 아버지 순한 눈빛이 내 몸에 박혀 있다 빗방울 망치에 정수리 내어주고 마지막 모를 심고 어리 펴던 어머니 모진 인고의 사랑이 두 눈 깊이 박혀 있다 한쪽으로 기운 의자를 버리려다 말고 저는 다리중심에 대못을 박는다 못점에 든 의자가 점잖게 자리를 고쳐 앉는다
색채 여행
권기만
수묵은 강이다 나는 그걸 하늘이라 읽는다 내 눈에 번지는 것으로 강을 만드는 수묵, 그 침묵의 흘림은 영감이다 수묵으로 꼬리를 감춘 구름 흘러간다 그 왁자한 묵상에 귀가 번진다 바람도 제 살 풀어 흐름을 보탠다 흐르지만 불기도 하는 건 그 때문, 소리가 번지지 않으면 하늘을 얻은 게 아니다 수묵의 잎에 옮겨다놓은 굵직한 물살을 나는 굳이 잉어라 읽는다 커다란 물살을 덮어 눈을 감고 있는 건 그냥 흘러가라는 것, 번지며 밀려오는 잔물결 안으로 돌려놓고 분주한 입질이다 박쥐난처럼 날개의 내면을 다 덮은 구름 이파리들이 밖을 잠그고 벽 속으로 강을 풀어놓는다 잎으로 번진 영감의 꼬리가 흔들린다 지나가던 별똥별 무리가 성운인가 싶어 맨몸으로 뛰어든다 묵상의 귀가 한 번 더 번진다
탑
권기만
돌은 몇 개만 쌓아도 탑이다
가지 위에 가지 올린 나무도 탑이다
한 발 위에 한 발 올려
산에 오르면 탑이 되는 사람들
몸 위에 몸 하나만 올려도
삼층탑이다
구름 위에 달을 올렸다 해를 올렸다
수금지화목토천해
누가 쌓은 탑일까
꽃잎 위에 꽃잎 올려
탑 쌓기 놀이에 분주한
애기똥풀 형제
나뭇잎 몇 장 띄워 탑 쌓고
골짝을 돌아 탑돌이 나선 냇물
서로를 무등 태운
몸 낮춘 샛강
일파만파가, 모두
기단석이다
주남저수지
권기만
누가 벗어놓은 신발일까
달도 신고 구름도 신는다
무당벌레 장수하늘소도
발성법 연습하듯 또박또박
신는다
가창오리 날개에 돋아있던
천둥과 번개의 잔뿌리
구름 운에 맞추어
신는다
발 디딜 틈 없는 고요
물방개로 수놓은 신발 코
개구리도 풍덩!
신어본다
갈대는 언제부터 신발 군락지가 되었나
풀로 자란 무성한 바람
우우 떼 지어 신어보고 있다
물방울 나라
권기만
이슬이 굴러 무당벌레 머릴 친다 상상해봐
화난 듯 알록달록해지는 모습이라니
토란잎에 붙은 이슬을 치어라고 상상해봐
누가 꼬리를 안으로 말고 있다 생각하겠어
햇살이 치어의 등을 간질이면 순식간에 숨어버리지
파란 하늘에 치어들이 와글거린다니
가장 맑은 눈으로 헤엄치는 치어를 상상해봐
몸통도 꼬리도 눈 하나로만 뜨고 있는 치어라니
등을 쓰다듬어주면 물 한 방울 뱉어놓고 달아나지
몇 놈은 수련 뒤로 숨어들기도 하지
그러나 찾아볼라치면 거짓말처럼 숨어버리지
거기 어디쯤 강이 있다고 상상해봐
치어들이 그 쪼그만 눈으로 굴러먹는 물소리라니
또르르 눈만 굴리다 사라지는 치어떼를 만나고 싶어?
가지마다 부레를 걸어놓고 있는 새벽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봐
입질이 느껴져?
광고로 깨어나는 아침
권기만
사거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분수대약국과 모텔 파라다이스가 있고 21세기헤어숍과 신세대약국이 있다. 약간 비켜서서 제우스PC방이 있고 뉴사랑노래연습장이 있고 먼 추억 같은 목성보리밥집이 그보다 더 먼 고구려의 후예 온달생맥주집을 마주보고 있다.
대성가든 주차장에서 바라본 아침은 분주한 이름들뿐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바쁘게 보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동천입시학원을 지나 포토장을 지나면 삼오이발소가 있고 그 옆에 신세계농약사가 있다 신풍전업사 맞은편에 왕손짜장이 있고 주차장이 넓은 원조할매곰탕이 쪼리쪼리분식을 마주보고 있다 그 옆 비학산생 칼국수를 지날 배가 고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한방왕아구찜을 지나 참새구이보다 고소한 유황오리숲숯불구이를 지마나면 점심때도 한참 지난 득 허기가 진다
내가 근무하는 공장 직판 가구마을까지는 아직도 한 구역을 더 가야 하는데 무심코 지나다니던 길이 갑자기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날이면, 이름 불러주지 않을 수 없다 여자 동창이 운영하는 퀸레스토랑을 지나면 유성꽃화원이 있고 금손안마시술소가 있고 그 맞은편에 미래컴퓨터학원이 있고 행복예식장이 있고 신혼미용실이 있다. 고도가 높아 슬픈 보람생명을 돌아서면 울릉도꽃게해물탕이 있고 로데오찜질방과 대보수산이 날마다 파도로 목욕을 하는 북부해수욕장이 있다.
바다를 가슴에 풀어놓고 돌아서면 또다시 반기는 이름들, 내 마음의 규장각 홍익정책마을 지나 고려세탁소 지나면 누렁이한우촌이 있고 대성흑염소와 아담슈퍼가 농부네청과식품과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맞은편에 흙사랑도예공방이 한마음인테리어와 나란히 서서 나를 맞아주는 그 오른쪽에 가구마을이 있다.
오늘도 나는 참 좋은 여행 신라관광을 타고 걸어서 출근했다. 밤낮없이 눈높이를 맞추려고 발돋움한 따뜻한 이웃들, 한 번씩 부르며 지나온 이름들이 그리움 간간한 등불을 걸어놓고 나를 반겨주고 있다.
황금가재
권기만
가재는 불을 좋아해 불을 삼키면 나타나는 황금 갑옷, 누구는 그것을 수의라 하지만 천만에, 그건 하늘을 지키러 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 집게손을 창으로 만드는 동안은 겁쟁이처럼 떨어지는 낙엽도 무서워 바위 밑에 숨어 살지 구름재 넘다보면 황금갑옷의 후예가 사는 불영계곡이 있지 불의 그림자가 어린다는 깊은 계곡 사실은, 차가운 냉기가 뼈를 얼려 뼛속 예기銳氣가 은연중 번쩍거리는 것이지 심심한 아이들이 멋모르고 바위 뒤로 손을 넣으면 점잖게, 잡혀주기도 하고 불 먹여 주면 갑옷을 슬쩍 보여 주기도 하지 그건 황금창의 비밀을 지키려는 방패일 뿐, 별이 무진장 쏟아지는 가을밤 별똥별 구멍으로 하늘로 올라가지 차가운 한기로 몸속 뼈를 제련하는 불영수련장, 한 번 찌르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없는 창을 만들기 위해 뒤로만 물러서는 가재, 가장 날카로운 결의는 청정한 깊이에 터를 잡을 때 한 점의 예기도 드러내지 않지 혹, 그런 가재를 잡았다면 잡혀준 그 정의를 모른 척 잠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정중히 놓아주시라 결코 그 창을 직접 볼 수는 없을 터이니
누가 책을 몸으로 듣는가
권기만
아이샤도우가고양이족을상징한다들었다
지위가높을수록눈꼬리가치켜진다들었다
눈살짝치켜뜨면제비족과여우족을구별할
수있다그러나상징은쉽게정체를드러내지
않는다그흔한징후에도늑대족의거점을찾
아냈단보고는없다동물의원적을언어에숨
겼다들었다발톱이모든혐의를인정했지만
규정된것은언어가아니라다듬어진손톱이
다손톱이발그레다듬어진동물을인간이라
정의한혐의로구금되어도서관에갇혀있는
서책에는정작요술램프를찾아가는지도가
없다용마의날개에기록된여자의허리는여
름이다이불후의계절을누가음악으로듣는
가누가음악으로듣는가한줄의글을쓰면한
줄의글이지워진다한줄의글은한줄의글을
지운흔적이다지우면나타나는불새의발톱
에사자와너구리승냥이와요술램프의거인
이인간으로귀화할때꼭꼭숨어있겠다고쓴
혈적血跡이있다들었다캄캄한밤중이었다
도서관 3
권기만
사막이 직립해 있는 곳엔 가지 마세요 수천만 페이지 모래바람 펄럭이는 구릉, 낙타처럼 걸어가는 독서는 젊음을 화르르 쏟아놓곤 해요 거기 어디선가 별들이 소곤대지만 제 귀는 사르르 스쳐가는 소리만 읽어요 사막을 횡단한 사람도 첫발을 디딘 사람도 똑같이 발을 헛디뎌요 무너지기 좋을 만큼 발밑으로 바람이 흘러요 길이 있다는 말 듣고 길 따라 흘러간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요 갈증이 깊어지면 모래가 물이 되는 사막엔 가지 마세요 은하수가 불모의 강이라고 읽기 싫어요 낙타가 되긴 싫어요 아버진 오래 전부터 모래였어요 바람뿐인 아버지를 낙타라고 읽긴 정말 싫어요
사막으로 출근하고 사막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아버지, 수천만 페이지의 사막을 다 건넌 사람은 없어요 사막을 횡단하다 사막이 되어버린 아버지, 아버질 펼치면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어머니, 스스스 미끄러지기만 하는 어머닌 언제부터 유사의 강이었나요
바람을 만나야 길을 얻는 모래에게 바람은 낙타란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렴 모래처럼 스스스 달려보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니
타박타박 낙타처럼 걸어가는 활자들,
길 잃으러 사막 간다 길 버리러 사막 간다
발굴
권기만
햇살 알갱이로 밥 지어 파는 동네 슈퍼마켓, 똥개 한 마리 Y를 하품 속에 가두고 날짜 지난 수음을 핥는다 전철 타면 지구 끝까지 가라고 꼬리치는 바람, 얼룩무늬 창은 날마다 못 본 척 딴전이다 담뱃갑처럼 쪼그려 졸다 깬,
사내가 분광기로 색감을 살핀다 입맛에서 눈맛으로 변해가던 21세기 색깔의 혁명기, 발굴된 사내는 배가 아니라 눈이 고파 있다 막 주문한 블랙버드에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감겨 있다 물감이 색감을 변주하는 표변주의가 21세기에서 시작됐단 걸 확인하는 순간 사내의 눈에서 36가지 색채가 쏟아진다
물감에 기록된 사내의 녹취록을 옮겨 적다가 불빛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인형극이 공연되는 시간을 발견한다 도로는 무대가 된 지 오래 저 위에 서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지 물감의 층을 내려가자 도로는 불빛 먹는 회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위장이라 소화가 느려서 남은 기록이다 열두시와 한시 사이의 사람들이 춤에 감전된 듯 흐느적거린다
허기는 더 큰 허기를 보면 사라진다 사내는 사라진 자신의 허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진화가 시작된 21세기 사내의 위장을 관찰한다 블랙버드가 보여주는 스펙트럼에서 사내의 의중을 읽는 건 발굴로는 알 수 없다고 적는다 발굴은 창조라고 다시 고쳐 쓴다
몇 천 년의 바람을 갉아먹은 생쥐처럼 허겁지겁 뜯어먹은 눈빛 식사에 포획된 격한 허기는 순금보다 귀한 소장 가치가 있다 국립박물관에 전시한다면, ‘열두시와 한시 사이에 박제된 인형극’과 막 발아한 눈의 위장에서 찾아낸 ‘내장의 도덕적 결벽증’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퇴화가 결벽증 때문이라는 사실은 창조성이 아니고는 알아볼 수 없는 단서다
신인류 기원의 거리였을 자리에 블랙버드를 놓는다 퇴화를 시작한 위장이 사내의 눈에서 한껏 부릅떠진다 쫄쫄 굶어서 모처럼 눈이 파랗게 우러난다
노병의
권기만
물감은 소리를 머금고 감춘다
빛을 통과시키고 빛나듯
붓을 드는 순간 꽃은 떤다
물감에 배인 꽃의 입술
한사코 따라나서 보지만
따라갈 수 없는 너머를 가리고 있는 붓은
문이거나 장막이다
성城의 운명은 무너지는 것
감열지처럼 지나간 흔적만 흑백으로 남은
꽃이 제 몸으로 예언한
물감에 점령되는 날이 온다
성벽으로 감춘 그림
손수건처럼 잡아당기자
에펠탑을 이젤로 쓴
몽마르트르 언덕이 어깨를 드러낸다
빛이 굳어 이젤이 된
시크레 쾨르 상당이 마리아처럼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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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겨울엔 여름이 그립고
여름엔 겨울이 그립다
내 안의 사계는 따로 돈다
그들을 따라가느라
내 언어의 발끝은 부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눈부신 절정은 지금부터라고
꽃이 지고부터라고
2015년 8월
권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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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만 詩集 [※발 달린 벌※]
[ 해설 ] -
시의 힘, 설국으로 가는 기차
이홍섭(시인)
권기만의 첫 시집『발 달린 벌』은 ‘시의 힘’ ‘힘의 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시의 힘은, 시라는 장르가 지닌 고유의 특성들, 즉 직관, 응축, 여운 등등에 의해 발현된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시는 산문과 달리 진정성과 순정함, 비장미와 숭고미에 호소하기 쉽다. 이러한 시의 특성이 한 편의 시에서 잘 구현되면, 그 시는 잘 발달된 근육질을 지닌 ‘힘의 시’가 된다. 힘의 시란, 시의 힘에 대한 숙고와 훈련이 만든 궁극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시단에서는 이러한 시의 힘, 힘의 시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힘의 시’가 잘 보이질 않으니, 마치 골기骨氣가 없는 산처럼 시단도 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깊이 참구해볼 일이다.
그런 면에서 권기만의 시들은 참으로 돌올한 데가 있다. 권기만의 작품들에서는 마치 시를 앞에 놓고 오랜 면벽을 거친 수행자와 같은 면모가 풍겨져 나온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독학으로 문청 시절을 보낸 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함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홀로 절대를 향해 자문자답한 자의 고독이 서려 있다. 이러한 힘과 고독이 특정 공간화한 것이 ‘바이칼’ ‘타클라마칸’ ‘킬리만자로’ ‘마추픽추’ 등이다.
바이칼에 가고 싶다 생각하다 바이칼에 빠졌다 바이칼이란 무슨 뜻일까 태초의 어머니나 큰 거북일 거란 물결이 나를 덮친다 어떤 말은 실제보다 더 거룩하다 타클라마칸이 그렇고 킬리만자로가 그렇다 나는 진정한 연애를 꿈꿨고 열병의 타클라마칸을 횡단하고 싶었다 맨몸으로 바이칼을 헤엄치고 싶다 아니 킬리만자로의 무산소층에서 막 핀 개나리 같은 하늘로 첫발을 들여놓고 싶었다 쉼없이 물을 마셔도 갈증으로 목젖이 내려앉는 타클라마칸에서 낙타는 목청껏 발을 굴린다 걸음을 떼는 순간 정복당한 킬리만자로는 다만 높이의 수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번 빠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바이칼은 발이 아니라 몸을 원한다 몸을 던지라고 시퍼렇게 눈뜨고 있다 죽음보다 깊은 연애처럼
-「바이칼 1」 전문
이 시에서 ‘바이칼’ ‘타클라마칸’ ‘킬리만자로’는 “실제보다 더 거룩”한 절대의 공간이다. 시인은 이 절대의 공간에 가고 싶어한다. 그 공간은 “진정한 연애”와 “열병”이 살아 있는 곳이고, “맨몸”의 순정함과 “첫발”의 순수함이 가능한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인이 킬리만자로보다 바이칼을 더 절대의 자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킬리만자로는 “걸음을 떼는 순간 정복당”하는 “다만 높이의 수식에 불과”한 곳이지만, 바이칼은 “한번 빠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발이 아니라 몸을 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애”는 온몸을 던지는 “죽음보다 깊은 연애”라는 등식으로 나아가는 이 작품은 이번 시집에 담긴 시인의 세계관이자, 시의 정신을 표상한다.
김수영 식으로 말하면 ‘온몸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를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고요하게 만든다. 이 ‘거침’과 ‘고요’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극과 극에서 만나는 동질의 그 어떤 상태이다. 순정한 시인은 이 거침과 고요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며“아무리 말을 삼/ 켜도 목이”(「등대」) 메는 세계에 도전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표현한 대로 “몸을 던지라고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상대와 끝까지 마주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김수영이 죽을 때까지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시인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앞의 시에 등장하는 '타클라마칸'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해준다.
혼자를 수없이 횡단해본 자에게
한 걸음은 소금 한 됫박보다 값지다
멈춰 있으면서 흐를 수 있는 경지는
자신을 수없이 허물어야 도달하는 자리
허문 자의 고요로 상처를 지우고
흐르면서 흘렀던 것마저 지우는,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소진하는 것
모래는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타클라마칸에서
길을 찾는 건 끝끝내 헛수고다
- 「내 안의 타클라마칸」 부분
시인은 앞의 시「바이칼 1」에서 타클라마칸을 “쉼없이 물을 마셔도 갈증으로 목젖이 내려앉는” 곳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낙타는 이곳에서 “목청껏 발을 굴린다”. 소리 지르는 행위와 발을 구르는 행위가 교묘하게 등치된 이 구절은 시인이 인식하는 타클라마칸에서의 실존 방식을 잘 보여준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그 실존의 방식이 “혼자를 수없이 횡단”하고 “자신을 수없이 허물어야” 하며 “흘렀던 것마저 지우”고 “마지막까지 소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연은 시인이 시집을 묶으면서 원래의 문예지 발표작을 개작한 부분이다. 시인은 이 작품을 문예지에 발표할 당시 “모래가 별이 될 때/ 첫발을 허락하는 타클라마칸”이라고 표현했으나, 시집을 묶으면서 “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타클라마칸”이라고 수정했다. 앞의 표현이 모래가 별이 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뒤의 표현은 “발자국”과 “길”에 초점을 맞추어 “혼자를 수없이 횡단”하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내 안의 타클라마칸”이라고 붙였다. 이 제목과 앞의 시「바이칼 1」의 내용을 상호 대조해 유추해보면, 시인은 현실을 ‘목청껏 발을 굴리는 타클라마칸’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길 찾기를 헛수고로 돌리는 타클라마칸을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둘 사이에는 깊은 결락과 심연이 놓여 있다. 더구나 시인이 주석에서 밝히고 있듯이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현실을 ‘목청껏 발을 굴리는 타클라마칸’으로 인식하면서도, “길을 찾는 건 끝끝내 헛수고”라고 인식하는 시인에게는 도서관도 하나의 거대한 사막으로 다가온다.
사막이 직립해 있는 곳엔 가지 마세요 수천만 페이지 모래바람 펄럭이는 구릉, 낙타처럼 걸어가는 독서는 젊음을 화르르 쏟아놓곤 해요 (중략)
사막으로 출근하고 사막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아버지, 수천만 페이지의 사막을 다 건넌 사람은 없어요 사막을 횡단하다 사막이 되어버린 아버지, 아버질 펼치면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어머니, 스스스 미끄러지기만 하는 어머닌 언제부터 유사의 강이었나요
바람을 만나야 길을 얻는 모래에게 바람은 낙타란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렴 모래처럼 스스스 달려보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니
타박타박 낙타처럼 걸어가는 활자들,
길 잃으러 사막 간다 길 버리러 사막 간다
- 「도서관 3」 부분
시인은 독서 행위와 활자들을 “낙타처럼 걸어가는”것으로 표현한다. 이 낙타는 아버지로 변주되고, 이 아버지는 사막을 횡단하다 사막이 되어버린 존재로 나타난다. 이런 아버지를 펼치면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도서관을 하나의 거대한 사막으로 상정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만, 시인이 현실과 관념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현실과 관념의 세계를 하나로 여기고 이를 온몸으로 밀고 나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시인은 ‘체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두 세계를 하나로 밀고 나간다.
앞서 말한 결락과 심연도 이 둘을 함께 밀고 나가면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락과 심연을 견디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과 더욱 치열하게 맞서는 결기를 다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도약을 꿈꾸는 것이다.
콩나물을 “이빨 사이로 대가리 들이민다”라고 묘사한「콩나물」, 구렁이를 “내가 내 손을 물고 있다”라고 묘사한「화급」등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대결의식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시선을 관통하며 부서지는 까마득한 별빛” (「7번국도」) “튀밥 부스러기처럼 흩뿌려져 있는 별/ 여기까지 오기 위해 빛의 터널을/ 차창처럼 내어걸고 참 멀리도 달려 왔다”(「이팝 2」) 등의 구절에 등장하는 ‘별’은 후자에 해당한다. 시인은 한편으로는 버티고, 한편으로는 도약하면서 이 결락과 심연을 견뎌낸다.
아래 시는 시인의 이러한 세계관이 마치 하나의 건축물처럼 실제의 공간을 통해 표현된 작품이다.
마추픽추는 고원 위에 있고
잉카의 도시는 악보 위에 있네
고도가 높아 음정이 되는 심장박동
발맞춰 걷다 노래가 된 라마여
불변의 음정
유적으로 앉혀놓은 마추픽추
8월의 고원이 제단이 되면
별을 따러 올라가는 라마여
그 심장박동 천지를 울리네
희박한 공기는 진공을 불러
심장이 있는 짐승은 모두 북이 되게 하네
고도에 맞춰 점점 높아지는 북소리
몸이 북이 되는 경계를 알 때까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공명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고도를 오르는 라마여
몸은 언제부터 심장의 순례지였나
음정의 요새 마추픽추
타박타박 발소리에 감추고
원색의 옷감이 화음처럼 펄럭일 때
마추픽추는 고원 위에 있고
잉카의 도시는 악보 위에 있네
- 「우르밤바」 전문
우르밤바는 저 유명한 페루의 마추픽추로 가는 계곡에 있는 잉카의 도시이다. 시인은 마추픽추를 “불변의 음정/ 유적으로 앉혀 놓은” 곳이라고 절대성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이 불변의 음정을 향하는 길목에 있는 도시는 악보 위에 있는 것이 되고, 유적을 향하는 라마도 “발맞춰 걷다 노래가” 되어 “몸이 북이 되는 경계”를 알 때까지 “쉬지 않고 고도를 오르는 ”존재가 된다.
잉카 유적을 빌려 표현했지만, 시인이 그려놓은 순례의 지도는 건축으로 말하면 고딕 성당에 가깝다. 높은 곳에 절대를 상정하고, 이 절대를 향해 모든 것을 집중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시「바이칼 1」에서 시인이 주석을 달았듯, 바이칼이란 말은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에서 유래했지만, 이 시에서도 시인의 상상력은 수직적이다. “킬리만자로의 무산소층에서 막 핀 개나리 같은 하늘로 첫발을 들여놓고 싶었다”라는 구절이 이를 입증한다.
‘수직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러한 세계는 이번 시집의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는 고도의 집중력을 얻는 반면, 도식과 관념의 틀 안에 갇히기 쉽다. 그의 시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시적 성취를 이룰 때는 ‘수평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거나, 앞서 언급한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어머니”의 세계를 노래할 때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는 수전증 걸린 노인 같다
툰드라의 혹한이 창틈으로 세상 끝까지 옷깃을 세웠다
모든 경계를 다 지워야 도착한다는 꿈에서의 열흘
역사(驛舍)는 씩씩거림만 남은 주전자 바닥 같다
여행자로 살다 간 형은 왜 이 먼 곳에 와서 죽은 것일까
시체 보관소에 잠들어 있는 형은 너무도 편안했다
빙하의 바람을 뼈에 새기면 설국을 찾을 수 있다
갈겨쓴 글자가 설인의 흔적 같던 형의 엽서
교수직을 던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형은
돈이 생기면 보드카만 마셨다
형의 수첩을 보고서야 설국으로 가는 길이 있단 걸 알았다
삶에 행로를 끼워넣으면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만들어진다
수첩의 흰여우 언덕은 이제 찾을 수 없는 나라다
눈 덮인 북극 하늘을 조금씩 잊으면서 봄은 덧났다
한 송이 꽃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뛰어내렸다
살아보고 싶은 존재에 가장 가깝다는 나라
한번 내디딘 자리에서 지상에 없는 제국을 만나보라고
북극점 받아들고 가만히 날개를 펴는 목련
내 눈 속에도 설국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 「설국」 전문
이번 시집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은, 시인이 지닌 여러 장점들이 잘 결합되어 탄생한 아름다운 시이다. “설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간 형의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국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삶의 구체와 꿈, 그리고 아픔이 어우러지면서 비장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수직적 상상력’보다 ‘수평적 상상력’으로 펼쳐질 때 더 아름다운 화음을 얻는다. 앞의 상상력이 결락과 심연을 낳는다면, 뒤의 상상력은 아래 시처럼 “착한 순록”을 낳는다.
얼큰한 추위가 장딴지 힘을 키운다 툰드라의 냉기 몇 토막 썰어넣고 끓인 고추장국 같은 고산지대 바람이 스무 마리 순록 눈빛을 부려놓는다 초원을 달리던 발자국, 풀과 나란히 돋아난다 발굽으로 두드린 문이 빼꼼히 열리는지, 하늘 귀퉁이마다 하얀 발굽들, 3천 킬로미터 밖에 두고 온 설원이 그리워 귀 쫑긋 세운,
한 마리 착한 순록이 서 있다.
- 「목련」 전문
이 작품은「설국」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목련’을 한 편의 시로 확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설국”이 “설원”으로 바뀌었을 뿐 “설국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시선은 한결 같다. 두 편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맑은 냉기가 서린 순백의 세계를 꿈꿀 때 가장 순정해진다. 거기에는 결락도, 심연도, 도약도 없다. 다만 한 마리 착한 순록이 서 있을 뿐이다.
이 착한 순록을 기른 것은 어머니이다. 앞에서 인용한「도서관 3」에서 시인은 아버지를 사막을 횡단하다 사막이 되어버린 존재로, 어머니를 아버지를 펼치면 나타나는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 바 있다. 아래 작품은 이 “모성의 지평”을 노래한 작품이다.
지표상에 있는 담수의 1/5을 수용하는 아라사와 중원 대륙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의 호수, 내륙의 바다라는 바이칼에서 나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지상의 담수가 남김없이 고여 있을 눈물, 오직 그 자식만 알아보는 물길로 걸어가 닿은 모성의 지평이 원시의 바다를 꽝꽝 잠그고 있는 겨울
걸어 잠그는 힘으로 다시 놓아줄 때 떠난 자들이 돌아온다고 말하던 어머니, 투르크족 전사의 아내로 살려면 칼바람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순록떼가 지나갔다 바람이 부러지는 겨울이다 나는 눈 속에 파묻힌 바이칼에서 어머니가 걸어 잠근 세상에서 가장 큰 자물통을 본다 눈물의 온몸을 본다
- 「바이칼 2」 전문
앞서 인용한「바이칼 1」에서 시인이 “몸을 던지라고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바이칼을 노래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모성의 지평”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모성의 지평은 인고忍苦와 강인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인은「못점」에서 어머니를 두고 “빗방울 망치에 정수리 내어주고 마지막 모를 심고 허리 펴던 어머니 모진 인고의 사랑이 두 눈 깊이 박혀 있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시인은 이런 어머니를 “눈물의 온몸”이라고 정의한다.
「못점」「이팝 1」등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유년은 가난으로 점철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돌아오지 않는 탄광촌 언덕”(「이팝 1」)은 이를 상징한다. 이 가난의 시절을 견디게 해준 사람이 “눈물의 온몸”인 어머니이다. 시인은 이 어머니에게서 고난의 삶을 견뎌내는 인고의 힘과, “어머니가 손을 펴면 내 몸에 만월이 뜬다” (「어머니의 양탄자」)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무한한 평안을 얻는다. 아래 시는 이 인고의 힘과 평안이 잘 어우러져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옷이 엄니 손같이 느껴지는 날
나는 아이처럼 엄니가 벗겨주던 대로 옷을 벗는다
물끄러미 앞섶 바라보던 콧날 참 따뜻하다
내 안의 것을 보는 듯한 눈빛
한 종지 미소 같은 단추를 끄른다
눈물 가득 고인 조그만 호수
주름진 엄니 손마디 물결처럼 일렁인다
얼룩진 윗도리 벗어 빨래 통에 던진다
던지면서 돌아앉는 뒷모습에 얼른 다시 줍는다
엉거주춤 벌린 두 팔
어머니가 안아 달랬을 세월 안겨 있다
단단히 여며주지 못해 힘들어하던 모습
후줄그레 어려 있다
벗어든 옷으로 엄니 잠시 나를 보듬는다
부스스 까슬하다
주름진 옷 속 조그만 엄니
빨래통에 넣으려다 말고
부둥켜안고 한참 참는다
- 「어머니가 사는 곳」 전문
어머니는 “원시의 바다를 꽝꽝 잠그고 있는” 거대한 “모성의 지평”이기도 하고, “눈물 가득 고인 조그만 호수”이기도 하다. 시인은 어머니에게서 이 두 가지 모습을 보고, 얻는다. 전자가 수직적 상상력으로 치달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면, 후자는 수평적 상상력이 빛을 발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응축하고, 이완한다.
권기만의 이번 첫 시집은 다양한 주제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시인이 오랜 각고 끝에 세상에 내놓는 시집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첫 시집임을 감안하여 그의 개성이 확연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분석했고, 자연과 생명, 그리고 시인이 살고 있는 인근의 유적을 노래한 근작들은 다음 시집을 기대하는 것으로 남겨놓았다.
시인과 ‘7번국도’를 공유하고 있는 필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읊조리며 ‘독학으로 문청 시절을 보낸 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함과 남성적인 힘’에 예를 표하고자 한다.
퇴근 땐 어김없이 북극을 향해 시동을 건다
기러기가 되어 날고 있는 7번국도
부서지며 흘러가는 것들이
부딪치며 손 섞는 모습은 얼마나 눈부신가 -「7번국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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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만 시인∥
∙ 1959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 2012년『시산맥』을 통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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