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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봉 남서릉, 맨 뒤쪽이 정개산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천 리 만리였건만
그 동안 걸어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행여 날 저물어
하룻밤 짐승으로 새우고 나면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 고은, 『아직 가지 않은 길』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9월 23일(토), 맑음
▶ 참석인원 : 20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9.6km(1부 8.0km, 2부 11.6km)
▶ 산행시간 : 9시간 45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3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5 -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학곡 마을, 산행시작
08 : 18 - 계곡 건너 산속 진입
08 : 41 - 주릉
09 : 03 - ┫자 신화리 갈림길, 양자산 정상 4.3km
09 : 30 - 634.2m봉
10 : 14 - 양자산(楊子山, 710.2m)
11 : 24 - 임도
11 : 55 - 안두렁이, 1부 산행 종료, 점심, 이동
12 : 50 - 여주시 산북면 송현리 동막골 입구, 동부화재연수원, 2부 산행 시작
13 : 10 - 326.5m봉
13 : 30 - 441.9m봉
14 : 04 - 554.8m봉
14 : 20 - 천덕봉(天德峰, 632.1m)
14 : 40 - 원적산(圓寂山, 559.2m)
15 : 03 - 다시 천덕봉(天德峰, 632.1m)
15 : 58 - 530m봉
16 : 35 - 정개산(鼎蓋山, 소당산, 467m)
17 : 03 -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의 정개산(△433.4m)
17 : 30 - 동원대학교 정문, 산행종료
17 : 42 ~ 19 : 45 - 이천시 신둔(목욕), 호법(저녁)
21 : 09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1부)
2. 산행지도(2부)
3. 양자산 정상에서
4. 뒤가 원적산
▶ 양자산(楊子山, 710.2m)
이제 오지산행도 요령이 생겼다. 이번 주처럼의 추석맞이 벌초시즌에 무턱대고 원행하였다
가는 길바닥에서 부지하세월을 보낼 것이라 염려하여 근교산행을 잡았다. 그렇다고 쉬운 산
은 아니다. 우리 지도에 쉬운 산이란 아예 없다. 어렵게 만들어서라도 간다. 산행인원 20명
(두루 님은 1부 산행을 마친 안두렁이에서 합류하였다). 만차다.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가 맑은 날씨의 조짐이 아니다. 여간 후덥지근하지 않아 하루 종일 갑
갑하고 답답한 한증막의 비지땀과 시야를 버티어야 했다. 송학3리 (학곡 마을) 경로당 마당
에서 산행 준비하고 마을 너른 고샅길 지나 누런 벼 일제히 고개 숙인 농로 따라 오른다. 산
속 임도로 이어진다. 풀숲은 이슬에 축축 젖었다.
등로 약간 벗어난 서림사(영진지도에는 ‘정민사’로 표기되어 있다)에 들린다. 아담한 본전이
덩그러니 자리 잡았고 그 옆에 요사체가 육중한 건물로 우뚝하다. 본전의 현판은 보기 드문
‘수광전(壽光殿)’이다. ‘수광’이 무슨 뜻일까?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석굴암 본존상에서 중요한 부분은 명호이다. 지금까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그것은 석가여
래로 통칭되어 왔으나 이는 뚜렷한 오류임이 구명되었다. 즉, 19세기 말엽 중수 당시의 현판
(懸板)에 미타굴(彌陀窟)이라는 기록이 있었다는 점과,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편액(扁
額)에도 수광전(壽光殿)이라는 표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분명히 '무량수(無量壽), 무량광
(無量光)'을 뜻하는 수광(壽光)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료는 본존상의 명호가
석가여래 아닌 아미타불(阿彌陀佛)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두산백과)
임도는 계곡으로 들어가자 풀숲 소로로 변한다. 이윽고 소로도 끊기고 개울 건너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우리 발걸음이 매양 그렇다. 잡목 헤치고 기껏 한 피치 올랐더니 잘난 등로가
보란 듯이 앞질러가는 것이 아닌가. 잘난 등로 따라 간다. 덤불 숲 사면 한참 돌다가 울창한
낙엽송 숲 오르막에서 대자 갈지(之)자 그린다.
양자산 북릉 주릉. MTB 길을 내었다. 대로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대로는 빗물에 곳곳이 패
였다. 너른 터가 나오자 점호할 겸 휴식한다. 입산주가 의식이다. 오늘 덕산 명주는 명절 즈
음한 택배물량이 넘치는 바람에 뒤로 밀렸다. 하는 수없이 동서울 편의점에서 월매를 데려왔
다. 오뉴월 비지땀을 흘린 탓이 없지 않지만 안주발에 연거푸 들이킨다. 안주는 무명 님이 준
비해온 낙지볶음이다. 아직 따끈하다.
5. 칼렌둘라 아르벤시스(Calendula arvensis, 금송화, 금잔화, 장춘화, 메리골드), 국화과 두해살이풀
6. 칼렌둘라 아르벤시스(Calendula arvensis), 송학3리 경로당 뜰에서
7. 양자산 들머리인 학곡 마을
8. 미국쑥부쟁이(Aster pilosus Willd.),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9.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 Cav.), 국화과 한해살이풀
발걸음이 심심하여 파적하려고 사면 들른다. 간혹 깨금버섯이 보인다. 풀숲 헤치다 엉겁결에
산초나무를 움켜쥐었다. 그 가시에 손바닥이 알알이 쑤시는 영금을 보았다. 인치성 님이 그
얘기를 듣고는 산초나무는 가시가 없으니 아마 제피나무일 거라고 일러준다. 나는 여태 산초
나무인 줄로만 알아온 터라 그러한가 확인해보았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의하면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는
운향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3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우상복엽이다. 가시는
밑으로 약간 굽었으며 길이 1cm로 마주나기 한다. 성숙한 과피를 말린 것을 산초(山椒)라고
한다. 제피나무라고도 한다. 잎은 생선회집에서 곁들임으로 귀히 쓰이며 진공 포장하여 일본
으로 수출되는 전망이 밝은 산나물이다.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희귀 및 멸종식물
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한편, 산초나무(山椒--, Zanthoxylum schinifolium)는
운향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3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우상복엽이다. 가시는
초피나무와는 달리 어긋나기이다. 잎은 산초 특유의 향기가 있고, 열매는 녹갈색으로 식용하
거나 약용한다. 초피나무보다 가치가 적다.
결론,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산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산초나무가 초피나무(제피나무)
인지 다시 자세히 보아야겠다. 가시와 잎이 마주나기(대생 對生)이면 초피나무이고, 어긋나
기(호생 互生)이면 산초나무다.
휴식할 때마다 술추렴한다. 이래서 산을 힘들게 간다. 돌배주 안주는 인치성 님이 아침밥으
로 밥 속에 묻어온 떡갈비를 골라낸다. 전망이 트일 만한 등로 벗어난 바위에 올라 아무리 발
돋움하여도 사방 안개가 자욱하여 막막하다. 양자산 정상. 날이 맑으면 북쪽으로 용문산과
백운봉이 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안개가 캄캄하게 가렸다.
양자산에서 영명사 쪽으로 하산하기가 어렵다.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떼로 갔다가 왔다가 다시 간다. 그러다 양자산 삼각점이 발에 차인다. 면계 따라 헬기장으로
내리기 전에 풀숲에 묻혀 있다. 2등 삼각점이다. 이천 23, 1998 재설. 두 팀으로 나눈다. 면
계의 잘난 등로는 얼마 안 가 영명사 등로를 크게 벗어난다. 대 트래버스 한다. 오지를 만들
어 간다.
잡목 숲 헤치고 계곡 너덜 길 지나고 앞서 가던 산정무한 님이 벌에 쏘였다고 한다. 두 방이
란다. 메아리 대장님의 육성과 수신호 교통안내로 벌집 위험구간을 피해 내린다. 산허리 돌
다 영명사 쪽 주등로인 소로와 만난다. 임도가 나온다. 임도 따라 산모롱이 돌고 그 모퉁이에
서 엷은 능선을 잡아 내린다. 영명사 근처인가 보다. 대로와 만난다.
안두렁이 산속 마을이다. 한적하다. 가을이 알밤으로 익어 길에 뒹군다. 미국쑥부쟁이가 화
초로 흐드러진 길가에 점심자리 편다.
10. 양자산 북릉 주릉
11. 양자산 가는 길
12. 양자산 가는 길, 하루 종일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13. 깨금버섯, 버섯 윗면에 깨를 뿌려놓은 듯이 보인다. 주로 참나무 밑에 군생한다
14. 양자산 정상에서
▶ 천덕봉(天德峰, 632.1m), 원적산(圓寂山, 559.2m)
2부 산행. 동막골 입구로 간다. 당초의 호실령에서 대령봉을 넘으려던 계획을 아쉽게 수정하
였다. 그 대신 천덕봉에서 원적산을 갔다 오기로 한다. 동부화재연수원 앞에서 곧바로 능선
을 올려친다. 봉봉이 가파른 오르막의 첨봉이다. 고도 160m 남짓을 기어올라 326.5m봉이
고, 약간 내렸다가 고도 180m를 게거품 물며 기어올라 441.9m봉이다. 점심 때 반주한 복분
자주 그 아까운 주기가 깡그리 사그라졌다.
441.9m봉 넘고 가파름이 수그러들자 경주하듯 줄달음한다. 어쩌면 천덕봉에서 몇몇만 원적
산을 다녀올 것. 내 발걸음이 급하다. 대간거사 님을 앞세운 선두 5명은 쏜살같이 나아갔다.
554.8m봉은 너른 헬기장이다. 묵직한 땡볕이 가득하다. 두 피치 땀을 오지게 쏟아 붓고 천덕
봉이다. 여기도 너른 헬기장이다. 얼른 목추기고 원적산을 향한다. 왕복 2km다. 내 뒤로는
아무도 원적산을 가지 않는다.
길 좋다. 풀숲 소로다. 더구나 등로 주변은 사계 청소하여 전후좌우가 무제로 거침이 없다.
오른쪽 골짜기는 군부대 박격포와 기관총 사격훈련장이다. 등로를 벗어나지 말라고 가시철
조망 치고 불발탄이 있다고 경고한다. 안개(미세먼지?)가 가시지 않아 원경은 뿌옇지만 산
첩첩 원근농담은 한 경치한다. 억새가 설었지만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등로는 두 차례 길게 쏟아져 내렸다가 ┫자 갈림길 안부에서 바닥치고는 냅다 솟구쳐 오른
다. 원적산. 헬기장이다. 이곳도 사방 조망이 훤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4명이 박 배
낭 메고 올랐다. 그들에게 기념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원적산(圓寂山)의 원적은 입적 또는 열반을 의미한다. 모든 덕이 원만하고, 모든 악이 적멸
한다는 뜻에서 원적으로 표기한다. 원래는 모든 무지와 사견을 버리고 깨달았다는 뜻이었지
만, 그 뒤 스님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원적, 입적, 열반 이외에 죽음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로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적(寂), 택멸(擇滅), 이계(離繫), 해탈(解脫) 등이
있다. 이들의 뜻은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 버리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죽음과 관련된 단어들을 보면, 대부분 깨달음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문화원형 용어사전)
그래도 죽음에 대해서는 실레노스(Silenus)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미다스(Midas)가 실레노스에게 인간에게 최선의 운명은 무엇이냐고 묻자, 실레노스는 이렇
게 대답했다. “하루밖에 못 사는 애처로운 종족이여, 우연과 슬픔의 자식들이여, 듣지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텐데 왜 말해달라고 강요하는가? 최선의 운명은 얻을 수 없는 것, 즉
태어나지 않는 것, 무의 상태로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좋은 운명은 일찍 죽는 것이다.”
15. 천덕봉 남서릉, 맨 끝이 정개산이다
16. 뒤가 원적산
17. 원적산 동릉
18. 천덕봉 남서릉
19. 원적산
20. 맨 왼쪽이 정개산, 아래 골짜기는 군 사격훈련장(박격포, 기관총)
21. 천덕봉
22. 원적산 정상에서
▶ 정개산(鼎蓋山, 소당산, 467m)
해피~ 님이 웃자고 한 얘기일 것이라고 믿는다. 원적산을 들를 맘 전혀 없이 다만 선두를 부
지런히 쫓아간 건 그리로 하산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뒤로 돌아 천덕봉을 다시
가야 했으니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작정한 내 발걸음이 천근만근임에야. 혼자 가
는 산행이 되고 만다. 아무리 발걸음이 급하기로서니 바위틈 비집은 산구절초를 외면할 수는
없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하다. 자연 님은 475.4m봉 넘은 안부께에서 그린힐컨트리클럽 골
프장으로 탈출했다. 아까 동막골에서 가파른 441.9m봉을 오를 때 데미지가 컸다. 오늘도 아
름다운 동행은 해마 님이다. 많은 사람 중 하필 내가 산행을 포기하고 탈출하는 일행의 안전
을 위하여 동행하는 것은 오지산행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마 님은 양자산을 내려올 때
도 지쳐서 뒤쳐지는 무명 님을 뒷바라지했다.
530m봉은 천덕봉 남서릉에서 가장 우뚝한 봉우리다. 첨봉이다. 새로이 산을 가는 것처럼 오
른다. 530m봉 정상은 벤치 놓인 쉼터다. 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난다. 반갑다. 그들이 원적산
갔다 온 후미를 위해서 걸음을 늦추어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혹시 눈먼 송이가 있
을까 그 밑동 주위를 사시되도록 살피며 간다.
490.4m봉 넘어 뚝 떨어져 내렸다가 한껏 높인 봉우리는 467m봉 정개산이다. 국토지리정보
원 지형도와는 다르게 지자체에서 정개산이라고 명명하였다. 정상 바위에 올라서면 지나온
천덕봉과 원적산이 하늘금으로 보이고 신둔 벌판이 발아래다. 정개산 이름의 유래는 한자의
뜻 그대로 ‘산의 형세가 높고 우뚝하며 흡사 솥뚜껑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개산을 넘으면 줄곧 내리막이다. 그러는 중 잠깐 멈칫한 봉우리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상의 정개산이다. 삼각점은 ‘이천 318’이다. 쭉쭉 내린다. 이정표는 잘난 등로 따라 남쪽 사
면을 내려 범바위 약수 임도로 갈 것을 주문하지만 우리는 능선 마루금을 고집한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철조망을 깐 비탈을 지나고 트래버스 하여 금줄을 넘어 동원대학교 캠퍼스에 들
어선다. 스틱 접고 보도 따라 내린다. 정문에 내리니 해마 님이 기다려 시원한 맥주를 대접한
다. 그 달콤한 맛이라니.
23. 산구절초(山九折草, Chrysanthemum zawadskii),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24. 천덕봉 남서릉
25. 정개산 가는 길
26. 멀리 왼쪽이 천덕봉, 오른쪽은 원적산, 정개산에서
27. 동원대학교 캠퍼스(부분)
28. 멀리 왼쪽은 국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