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203]
해외에 발령 받은 책임자들 특히 미주지역으로 떠나는 직원들은 떠나기 전에 나를 찾아와서 극진한 식사대접과 함께 신용장 통지에 대한 부탁을 하고 간다. 이유는 신용장 발행 파트를 담당하는 내가 어느 특정한 점포 앞으로 금액이 큰 신용장을 통지하는 경우, 해당 해외점포는 가만히 앉아서 거액의 신용장 통지수수료나 네고(선적서류매입)시 환가료, 유산스 신용장인 경우 유산스 기간에 해당하는 막대한 이자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해외영업점은 교포들을 상대로 하는 영업에서 뚜렷한 수입원이 없어 적자를 보는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서 신용장을 통지해 주면, 해외영업점 입장에서는, 그 신용장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큰 수입원으로 반갑기 짝이 없는 선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 영업점에서는, 해당 점포로 발령 난 직원이 출국하기 전에 나에게 로비를 좀 하고 오라는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해외정기 발령 때마다 해외 발령 직원들에게 환대(고급식사와 술접대)를 받았고, 심지어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에게도 심심치 않은 로비대상이 되었다.
[에피소드204]
서울에 올라와서는 주일이면 집 근처에 있는 국제 남 침례교회에 다녔다. 오래 다닌 관계로 나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미국 분들도 몇몇 있었다. 그중 미 8군에 근무하는 계급이 소령인 군의관 부부와 우리 부부가 용산 미 8군 영내 장교클럽에서 점심 식사(뉴욕 스테이크)와 후식을 같이했다. 식사대는 나이가 많은 내가 냈다. 나는 잠시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투병 중일 때 우리 집은 극도로 가난했었다. 그때 봄이 되면 달동네 아이들과 앞산에 칡을 캐러 가면서 미군 비행장을 지나갔다. 우리는 지프를 타고 지나가는 미군들을 향해서 껌이나 초콜릿을 달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그때의 미군들은 나에게는 마치 천당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런 미군 장교에게 이제는 내가 점심 식사까지 대접하는 위치가 되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지금은 바로 밑의 여동생의 딸이 미군 치과군의관(소령)이 되어 금년 6월까지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에서 근무하다가 하와이 호놀룰루 미군기지로 이전하여 근무하고 있다.
첫댓글
지금이야 여기저기 미국 본토식 스테이크를 먹을 곳도 기회도 많지만,
당시엔 아마도 매우 드문 기회이고, 또한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터입니다.
저도 미국인 지인의 초대로 미8군 영내에서 스테이크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는데,
와웅,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당시는 미8군 영내에 멤버쉽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곳이었죠ㅡ스테이크요리도 서울에서 보편화된 음식이 아니었고요ㅡ
좋은 귀한일과 관련...
가족관계도
직장도
좋으신 분들
이시네요!
미국에서
그런분들
잘 살아
가십니다!!🙏💗👍💯
응원 합니다!!
수샨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