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주바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파롤린 추기경
바티칸
파롤린 추기경, 남수단 주바에서 “전쟁과 부패로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7월 7일 남수단의 수도에 위치한 존 가랑 공원 묘원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약 1만5000명이 참례했으며,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은 맨 앞줄에 있었다. 파롤린 추기경은 용서와 사랑으로 “악을 무장해제하고 폭력을 물리치라”고 초대했다. 이날 오전 파롤린 추기경은 남수단교회협의회와 국가 과도의회 의원들을 만났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정숙
용서로 “악을 무장해제하고” 사랑으로 “폭력을 물리치며” 온유함으로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 “세상의 악은 세상의 무기로 이길 수 없으며” “전쟁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남수단의 주바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번 다시 폭력, 동족 간의 분쟁,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원과 가능성이 풍부”하지만 동시에 “폭력으로 어두움이 드리운” 나라인 남수단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간구했다.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
살바 키르 대통령은 천막 아래 설치된 첫째 줄 귀빈석에 앉아 미사에 참례했다. 리크 마차르 제1부통령이 그의 곁에 앉았다. 남수단 방문 마지막 날 파롤린 추기경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미사를 위해 모인 약 1만5000명이 “억압, 빈곤, 노동의 멍에를 짊어졌지만” “자유 안에서 기뻐하길 바라는” 백성이라고 말했다.
주바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파롤린 추기경
엄숙한 분위기
이날 미사는 수단 인민해방운동(SPLM) 및 인민해방군 지도자이자 평화협정 이후 수단의 제1부통령을 역임한 존 가랑을 기리는 존 가랑 공원 묘원에서 거행됐다. 이 장소는 교황이 미사를 거행하기로 예정돼 있던 곳이기도 하다. 제단은 남수단 국기 색의 일부인 흰색, 빨간색, 녹색, 노란색으로 장식됐다. 천둥과 바람은 맨발에 흰 티셔츠와 부족 치마와 바지를 입고 피아노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 그룹의 노래와 춤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남수단의 모든 주교들이 파롤린 추기경과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했다. 맨 앞줄에는 영국 성공회, 오순절교회, 장로교회 지도자를 비롯해 남수단교회협의회에 속한 타 종파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미사에 앞서 파롤린 추기경과 비공개로 만났다.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의 사진을 표지에 담은 미사 소책자가 배포됐고, 군중 사이에서는 이따금씩 여성들이 특유의 환호소리를 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지난 7월 6일 오전 벤티우 실향민캠프에서 미사를 거행했을 때의 기쁨의 환호소리보다 더 조용하고 엄숙했다.
교황의 축복
파롤린 추기경은 벤티우 실향민캠프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회가 가득하지만 심각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신생국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평화 순례에 함께하고자 오늘 이곳에 오기를 간절히 원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사말과 축복”을 전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마십시오
파롤린 추기경은 남수단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어려움과 도전에 대처하는 길을 제시했다. 그는 복음이 제시하는 “다른” 메시지로 전진하라고 당부했다. 곧, “악을 악으로 대응하기를 거부하라”는 것이다.
“복수를 단념하고 (...)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파롤린 추기경은 수년 간의 내전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이 같이 말하며 “육체는 어떤 면에서 악에 반응하도록 재촉하지만” 예수님이 “용기 내어 사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덧붙였다. “예수님께서 그 사랑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사랑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악에 복수로 대응하지 않으며,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롤린 추기경은 이것이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거나 폭력 앞에서 약해지고 유순하며 체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악을 무장해제하고, 폭력을 물리치며, 억압에 저항한다는 뜻입니다.”
입당 행렬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 형제로 살아가기
“세상의 악은 세상의 무기로 이길 수 없습니다.” 파롤린 추기경이 이 같이 강조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와 강론이 잠시 중단됐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의를 원한다면, 부당하고 부패한 방법으로는 정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화해를 원한다면, 복수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형제자매를 섬기려면, 그들을 노예처럼 다루면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평화로운 미래를 건설하려면, 가야할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원한과 괴로움에 너무 치중할 때, 우리가 증오로 우리 기억을 더럽힐 때, 우리가 분노와 편협한 마음을 키워나갈 때,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할 뿐입니다.”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금은 억압받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항상 들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의 장인이 되라고 요청하시는 때입니다. 지금은 책임을 지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증오의 벽을 허물고, 온갖 불의의 멍에를 벗기고, 피와 폭력으로 흠뻑 젖은 예복을 용서와 화해로 씻어내야 할 때입니다.” 파롤린 추기경은 이 같이 말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님께서 모든 이, 특히 권위와 큰 책임을 맡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어 폭력과 불안정으로 인한 고통이 종식되고, 평화와 화해의 프로세스가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으로 신속하게 진전될 수 있게 해 주소서.”
미사 말미에는 살바 키르 대통령의 즉석 인사말도 있었다. 그는 교황이 곧 남수단에 올 수 있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남수단의 평화를 염원했다.
국가 과도의회 의장의 환영인사
국회와의 만남
평화에 대한 호소는 활력을 되찾은 과도기 국가입법부인 과도국회 의원들과의 7월 7일 오전 만남에서도 강조됐다. 파롤린 추기경은 지난 7월 6일 국회를 방문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파롤린 추기경은 블루룸에서 약 500명의 의원들을 만나 “민주주의를 위한 여러분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방문 제안을) 즉시 수락했다”고 말했다. 약 500명의 의원 중 2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다. 파롤린 추기경은 “여러분은 민중과 그들의 이익을 대표한다”며, 민중을 위한 “정의, 자유, 번영”을 국회 문장에 새겨진 것처럼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 2019년 교황청에서 있었던 남수단 지도자들의 피정 중 교황이 했던 말을 살바 키르 대통령과의 비공개 대화에서 나눈 것처럼 이날 만난 의원들에게도 되풀이했다. “부탁합니다.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나가십시오. 어려움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민중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과의 대화
파롤린 추기경은 남수단교회협의회 대표들에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의 모든 기대, 갈망, 꿈에 대한 응답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치”하라는 요청이다. 세 번째는 “정의, 평화, 자유, 번영”에 대한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파롤린 추기경은 이것이 “고된 일”이지만 해야 하고 또한 함께 해야 한다며, 지난 7월 6일 벤티우 실향민캠프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개인적 감정을 털어놨다. “저를 정말 놀라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조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 (...) 그들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위해 정의롭게 함께 일하고, 종교와 정치 세력이 함께 뭉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