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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에 있는 한 딸기농장에서 행잉베드 방식으로 재배한 딸기 ‘하늘딸기’를 출하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행잉베드재배’란 딸기 흙이 들어간 넓직한 판을 그대로 천장에서 내린 줄에 매달아 키우는 방식의 농사법인데 관리할 때 잠시 내렸다가 다시 천장으로 들어올려 재배하는 것입니다. 그냥 바닥에 심는 딸기재배와는 달리 작업자 통로가 있는 곳에 베드를 더 설치하기 때문에 시설 이용률과 토지 이용률이 184%정도 더 늘어나며 그로 인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작업자 신체조건에 따라 딸기베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 농사작업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재배법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칠곡군 최초로 행잉베드 방식으로 딸기를 재배한 딸기농장 대표 김씨는 2019년 칠곡군으로 귀농한 초보 농업인이라고 합니다. 이 분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귀농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2018년 화물차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다쳐 귀농을 결심했다”며 “휠체어를 타고 농사짓는 방법을 연구하다 ‘행잉베드재배법’이라는 것으로 딸기 농사를 지으면 작업 효율성이 높아지고 부가가치가 높은 것에 매력을 느껴 딸기 농사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최근 시골지역에 귀농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농산물 생산과 판매에 첨단적인 방법과 새로운 기술이 적용하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단위면적에서 더 큰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수확을 내고 다각적인 판매전략으로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농경산업도 참 많이 발달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생각속에서 오늘 말씀을 접하며 나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인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지역에 살던 가나안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딸의 병을 치유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은 해결되지 못한 귀신들린 딸문제가 예수님을 만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그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과정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도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그 믿음으로 매일매일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 기적을 경험하며 일상에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조건, 첫째는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1, 22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님께서 게네사렛지역에서 사역하시고 다시 떠나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은혜를 갈망하며 기적을 체험하기를 소망하는 이 여인이 예수님 사랑을 체험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지역을 찾아오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7장 2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지역을 찾아오셨고 그 곳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지내려 했으나 예수님의 존재는 너무나 위대하셔서 그 곳에서도 사역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곳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딸 건강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고 이것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말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서 이 곳에 오신 줄 몰랐다든지, 오신 것을 알았어도 예수님을 직접 대면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치유의 기적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예수님께 우리에게 오신 것과 우리가 그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께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기록된 이 상황을 살펴보면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만남은 축복이 되고 어떤 만남은 저주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좋은 사람,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축복의 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평생 고생하며 살 수도 있고 심지어 한번 잘못된 만남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한 소년이 물에서 수영하다 힘이 빠져 죽기 일보 직전에 그 근처 농부의 아들에 의해 구출됐습니다. 도움을 받은 소년은 청년이 된 다음 농부의 아들을 찾아가 옛 일을 감사하며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아들은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의 부모는 돈을 대어 그 농부의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의학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어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노벨 의학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노벨의학상까지 받은 위대한 의사가 된 농부의 아들은 유명한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한편 수영을 하다가 익사될 뻔 했는데 구조되어 살아난 청년은 훗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정치인이 되었는데 바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중 폐렴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때에도 자신이 경제적 도움을 주어 의사가 된 농부의 아들이 발견한 페니실린을 처방받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3장 20절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님과의 만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떤 분위기의 가정환경에서 자라느냐, 성장에 부모님이 어떤 영향을 끼치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형제의 만남입니다. 가족 중 형제는 정말 서로에게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서로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 지 형제우애를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제대로 발견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셋째는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어떤 친구들을 사귀며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길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 각자 배우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가치관을 변화시켜주었는 지, 그리고 서로 밀접한 영적교제, 육적교제를 통해 오고가는 교감을 통해 영적, 육적 도움을 주었는지, 영적, 육적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따라 인생에 대한 안목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람이 인생에서 좋지 못한 만남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정말 나쁜 부모에게서 태어나 부모의 영향이 정말 어두움과 죄악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그 부모밑에서 형제라고 태어났는데 그 형제가 돈 떼어먹고 사기치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친구라고 만난 친구가 괴롭히고 멸시하며 인생의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직장동료라고 만난 사람이 날 괴롭히고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만남 속에서 내가 아쉽고 손해 본 모든 상처가 있어도 하나님만 제대로 만나면 이 모든 상처들이 싹 씻겨질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많은 상처들, 좋지 못한 만남, 잘못된 관계속에서 어려움을 당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해 완전히 해결되고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 잘 만나고 형제 잘 만나고 친구와 직장을 잘 만나고 배우자를 잘 만나 세상사는 동안 승승장구, 좋은 일만 가득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종종 대박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인생 홈런쳤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들은 인생살이 가운데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만나면 사람과의 만남에서 받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싹 씻으시고 회복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에서 접한 모든 좋은 만남을 다 합쳐도 하나님 만나는 이 한 사건만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꼭 만나야 할 우리 주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왜냐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남에서 다 실패했을지라도 예수님 한 번 잘 만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 만나면 모든 인생의 실패가 다 회복되고 모든 관계의 불안이 해결됩니다.
이사야 55장 6,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믿음을 열매로 거둬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내가 잘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내 믿음 가운데 찾아오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 믿음이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 찾아오시기를 기도하고 그 찾아오신 예수님을 매일매일 만나 항상 평안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조건, 둘째는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예수님 발 앞에 절하며 도와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 지 모를까요? 이 간구를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의 가족사를 들춰내야 하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간구를 하고 있는 지 여러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단지 가나안 여인이라고 나와 있지만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이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5, 26절입니다.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오늘 본문에서 가나안 여인이라고 기록된 이 여인은 혈통상으로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족속이었습니다. 그리스계의 아버지와 이스라엘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인으로 사회에서 멸시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라는 말은 수리아지역 북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갈릴리지역보다 더 북쪽 지금의 시리아지역에 살던 이스라엘사람과 이방인들의 혼혈족을 지칭하는 말이 바로 ‘수로보니게’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수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문화국가를 이루고 있기에 좀 덜 합니다만 그럼에도 아직 순수 한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혼혈자녀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모텔 캘리포니아’라는 드라마에서 연기자 이세영이 맡고 있는 캐릭터도 혼혈아역할이고 이 혼혈아인 주인공 ‘지강희’의 사회적 편견극복과정이 주요 주제중 하나인 것을 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정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정서도 너무 비슷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 당시는 더 했겠지요? 예수님 당시 정통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말을 섞는 것도 꺼려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식사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상상치도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취급하고 동물취급하며 인간대접하지 않으면서 근처에도 오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빨리 해결해야 할 일을 들고 우리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만이 그 해결자 되실 수 있다고 믿으며 은혜와 기적을 찾아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치유를 기대하는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의 그 말과 행위속에 정말 간절함이 느껴지고 예수님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맡기는 믿음이 보여집니다.
시편 47편 8절입니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시편 89편 9절입니다.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바람 구름, 안개, 이슬, 비 등 자연을 조종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허약한 인간과 과학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전까지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올스톱되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지금 다시 독감이 퍼지면서 일상속에서 정말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힘든 일상을 보내며 조심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정말 우리 인간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최첨단 과학기계를 만들고 최첨단 의료기계를 만들어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앞에 속수무책인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 하나님만이 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 우리의 권력, 우리의 명예, 우리의 권위를 내려놓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든 조건을 다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대부분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 때 우리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문제해결과정에 내치부가 드러나고 내 자존심이 무너질 수 있다면 문제해결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가나안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가나안여인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의 어려움을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치부가 드러나고 내 자존심이 무너져도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하나님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간절히 간구해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은혜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며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조건, 마지막 셋째는 자신을 인정하며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6, 2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 즉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이라고 알려진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 여인은 “개”같은 존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개와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혼혈인으로 이스라엘 사회속에서 편견과 멸시속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여인이 그 모든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자존심마저도 포기하며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이런 여인을 이렇게 대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소리를 듣고서도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는 지?’ 그래서 ‘개 또한 주인이 주는 은혜로 먹고 산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은혜를 간청하는 것인지... 정말 대단한 믿음, 아니 정말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무시당하고 내가 수모를 당해도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매달리고 버티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이 여인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저와 여러분은 그냥 그 말씀을 그렇습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저와 여러분 우리들이라고 한다면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께 등돌릴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말씀을 읽고 생각해 볼까요?
오늘 말씀 마태복음 15장 26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나안여인 즉, 수로보니게족속 여인의 딸은 치료받을 은혜를 받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오해할 만한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은혜를 받아야 할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방인에게까지 은혜를 나눠주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본문에서 ‘자녀의 떡’은 유대인들 먼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눠줄 은혜를 뜻하는 것이고, ‘개들에게 준다’는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준다는 뜻입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은혜를 간구하러 나왔는데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가 ‘개에게 주는 떡’이라고 예수님 말씀하시니 인간적 생각으로는 얼마나 화가 날까요?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너무나 심한 인신모독적인 말을 쏟아부으시는데 과연 이 분이 구세주, 메시야 예수님 맞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을까?’ 의아하지만 이 여인은 이 상황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보입니다. 인격모독을 당해도 무시와 멸시를 당해도 “주님만이 답이니 예수님께 어떻게든 매달려 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멸시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모른척해도 내 살 길은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심한 말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께 매달리는 이 영혼을 예수님께서는 살리십니다. 믿음을 통해 영혼이 살고 믿음을 통해 육신이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땅 두로에 살고 있는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아셨고 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을 받기 위해 이런 강한 말을 쏟아부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멸시당하는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예수님께서 자신을 멸시하며 천대하는 표현을 하셨지만 이 여인은 그럼에도 예수님을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어떤 난관속에서도 예수님만 붙드니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그 간절함은 인신모독적인 언사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달렸던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입니다. 어떤 대접을 받든 어떤 처지에 놓였든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님이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기적의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없이 완전한 치유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우리의 창조주,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를 무시하거나 모른 척하셔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우심없이는 살 수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사모하며 우리 주 예수님만 붙들고 살아갈 때 믿음의 역사가 열매맺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 온전히 매달리고 온갖 수모와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들어도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실 기적,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고 버텼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내게 뭐라고 말씀하셔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버티며 의지하는 것이 내가 살 길이고 우리 가족이 살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결과는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내 모든 것을 만져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내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내 자존심이 깎이고 내 치부가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솔직한 기도를 하며 문제가 해결하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께서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나를 멸시하는 것 같고 나를 모질게 대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온 세상 주인이시고 온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예수님에게 매달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에 수모와 멸시를 인내하며 예수님만 붙들고 계십니까? 멸시당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기도응답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주님만 의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셔도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자이신 것을 믿고 의지하며 우리에게 베푸실 기적을 기대하며 믿고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인내하며 묵묵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온전히 주 예수님만 의지하며 승리의 날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