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諸 법法은 부동不動이라' 이 가르침은 위대하고 거룩한 선배 스님 의상조사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납득納得understanding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법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질량質量mass을 가진 물질이거나 질량을 벗어난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연기緣起라는 말에는 연멸緣滅이란 말이 내재되어 있다 어떤 상태가 드러나거나 사라지는 데는 반드시 어떤 동기動機motive가 있다 이 동기를 바탕으로 하여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오늘날 '내'가 있기까지에는 우선 65년 전 내 부모님이 계셨고 두 분 인연으로 내가 점지되었다 하더라도 모태母胎내에서의 혹독한 환경을 무사히 잘 견뎌낸 까닭이다
나는 태어날 때 죽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거하면 그럴 수 있었다 1953년 겨울은 특히 추웠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움집은 방한이 잘 안 되었고 고모님이 산모와 갓난아기를 위해 밤새 불을 지펴 방은 통째로 화덕이 되었다 나는 그 때 구들장에 입은 화상으로 인해 평생토록 몸에 흉터를 지닌 채 살고 있다
아무튼 나는 빙설지옥酷寒을 이겨내고 동시에 화탕火湯지옥까지 견디며 지구 위 생명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집안이 너무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다 아니, 학업을 중단한 적은 결코 없다 중도에서 정규교육을 멈추었을 뿐이다 나는 지독하게 책을 읽었다 중국어로 '뚜수读书dushu'는 공부다 나는 13살 때부터 오직 '주경야독'이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독학獨學은 그대로 내게는 독학毒學이다 독毒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읽고 또 읽었으며 검정고시로 중등과정을 이수하였다 나는 한학에 깊이 파고들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비롯하여 《소학小學》《대학大學》《중용中庸》 《효경孝經》《맹자孟子》《논어論語》 《오언당음五言唐音》을 읽고 《칠언절구七言節句》을 읽었으며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읽었다
23살 되던 해 이른 봄 절에 들어온 뒤 불경佛經을 읽는데 신명이 났다 해인사 승가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동안 정말이지 원없이 읽고 원없이 파고들었다 불교 텍스트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읽었다 한 때는《성경聖經》에도 빠져들었고 《꾸란the Koran》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면서《자치통감資治通鑑》과 함께 《예기禮記》《춘추春秋》《시경詩經》 《서경書經》과《동몽선습童蒙先習》을 읽었다
《동몽선습》은 책 이름 그대로 '어린이童蒙가 먼저先 익힐習 책'이다 어렸을 때 대충 들추어보기는 하였으나 나이가 50고개를 훌쩍 넘어서고 나서야 나는 이 책을 즐겨가며 깊이 탐독耽讀하였다 《화엄경》에 버금가는 변화의 경전으로 아직 손대지 못한《역경易經》이 있다 아무튼 오늘의 내가 여기 있기까지 나는 참으로 숱한 인연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움직임이었다
시간time과 공간space이 멈추지 않았다 어떤 사물도 움직이지 않은 때가 없었고 어떤 존재도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현상으로서의 법法 뿐만 아니라 생각으로서의 저 심성心性까지도 멈춘 채로 있었던 적이 한 찰나도 없었다 그런데 '모든諸 법法이 부동不動이라'시니 이야말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정말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모든諸 법法은 아니不 움직인動다' 의상조사의 이 한 마디는 참으로 엄청나다 《화엄경》은 변화의 가르침이다 이른바《주역周易》이 주周나라 때 변역變易의 이치를 설명한 보고寶庫라면 화엄경은 법계연기法界緣起를 통해 생명체와 사물의 변화과정을 설하고 있다 주역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덕을 논한다면 화엄은 사종무애법계로 연기를 설하고 있다
'움직인다'고 보는 것은 껍데기다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것은 움직인다 그러나 정말 물리의 세계는 움직일까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인다고 느낄 뿐이다 하늘天이 공간적으로 활짝 열리開고 땅地이 시간적으로 솟구쳐 쪼개지闢니 엄청난 움직임이 일어났다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이는 움직였다는 생각일 뿐 하늘도 땅도 움직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법성게》는 7자씩 30줄로 되어 있고 2줄을 1연으로 볼 때 15연이다 그런데 여기에 부동不動이 2번 나온다 첫 연 둘째 줄에 제법부동諸法不動이 있고 끝 연 둘째 줄에 구래부동舊來不動이 있다 '제법부동'에는 본래적夲來寂이 붙어 있고 '구래부동'에는 명위불名爲佛이 붙어 있다 따라서 '제법부동'을 이해하려면 끝 연 '구래부동'까지 이해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움직임動'이 무엇일까 움직일 동動 자를 둘로 나누어 보면 소위 중력重力gravity을 벗어나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중력重力은 무게重 힘力이다 이 무게 힘에는 속도가 좌우한다 가령 1kg의 무게를 살며시 올려놓으면 저울의 눈금은 1kg을 가리킨다 그러나 처음부터 1kg을 가리키진 않는다 아무리 조심스레 살며시 올려놓더라도 저울 눈금은 얼마만큼 흔들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물이 저울 위에 놓일 때 그것이 비록 아무리 짧은 거리에 아무리 천천히 내려놓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분명 속도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똑같은 1kg의 무게라 하더라도 100m/h로 내려놓았을 때와 100km/h로 내려놓았을 때는 값이 다르다 중력이란 거리와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부동不動은 중력重力과 반反한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경卿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을 처음 발견한 이래로 중력의 법칙은 자연계를 움직이는 힘의 네 가지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내가 미리 얘기하지만 모든萬 존재有는 당기引는 힘力이 있듯이 동시에 물리치斥는 힘力을 지니고 있다 당기는 힘이 중력, 곧 동動의 힘이라면 물리치는 힘은 반중력, 부동不動의 힘이다
의상조사《법성게》의 첫 연과 끝 연의 둘째 줄에 있는 부동不動의 세계는 1,350년 전 의상이 설파한 '반중력 법칙'이다 《법성게》는 화엄학을 응축한 논리이지만 당시에 이미 중력과 반중력을 설한 것이다 알고 보면 의상조사 학설 이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미 화엄경에서 중력과 반중력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의상조사《법성게》에서 이 부동不動의 대목을 읽어내려갈 때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엄청난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느끼곤 한다 이토록 거룩한 인류의 스승 부처님과 위대한 선배님이 계셨다고 함에 있어서 불교 만난 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이 기쁨을 제대로 풀어 줄 이야기는 내일 '본래적本來寂'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장담하건대 기대하셔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