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DMZ 문학 탐방기
지난해 나는 운 좋게도 우리나라 최전방 DMZ지역을 3차례나 다녀올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번은 피스로드 국토종주 마지막 임진각행사가 펼쳐지던 날,오토바이편으로 임진각과 판문점 주변을 달려 보았고,두번째는 열차를 타고 DMZ로 떠났던 통일 열차 여행이 그것이며, 세번째의 여행은 제 4땅굴이 있는 양구지역 일대와 금강산 입구로 알려진 두타연을 돌아보는 관광스케줄이었다. 글을 써보고자 하는 내용은, 2차와 3차에 걸쳐 DMZ지역을 다녀온 문학 탐방의 내용들을 한데 묶어 써 볼까한다. 순서상 먼저 2차에 다녀온 DMZ통일열차 여행부터 기술해보자.
1, DMZ 통일 열차여행
<기차로, 통일로, 세계로!>의 기치아래, 2016년 8월 10일 통일교육원과 함께하는 제 5회 DMZ 통일 열차여행이 있게 되었다. 열차여행은 행정자치부가 주관하고, 통일교육원과 KB금융그룹,코레일 한국 철도공사,DMZ지역 군부대와 철원군등이 후원하는 가운데, 10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3층 코레일 라운지옆에 집결하여, 신분증확인절차와 후원단체에서 준비한 음료수와 간식등을 제공받고, 열차여행에 대한 가이드의 간단한 안내교육을 먼저 받았다. 금번 열차여행 참여자는 사단법인 한국 통일문인협회( 이사장: 전 덕기시인)를 비롯하여, 통일박람회 참여단과 서울여대 대학생, 홍콩과 일본 유학생,통일 학생 기자단과 일반인,그리고 관계기관에서 나온 인솔및 교육책임자와 봉사요원 스탭진등 120여명이었다. 안내교육을 마친후 열차탑승에 앞서 참가단 단체기념촬영을 갖고, 곧바로 열차는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백마고지역을 향해 달린다 열차안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행사 MC라고 자랑하는 조 완희MC의 사회로 재미있는 빙고게임을 해가며, 통일 교육원 이 금순 원장과의 북한과 통일 관련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조 완희 Mc의 재치로 진행된 토크쇼까지 곁들인 유익한 시간들을 보내며, 달리던 기차는 이윽고 종착역 백마고지 역에 도착했다. 종착역인 백마고지 역에 도착한 일행은 4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하여, 백마고지 위령탑을 향해 달린다. 위령탑이 있는 곳은 5사단 군사지역으로 군인들과 헌병차들이 눈에 띄었는데,헌병차는 우리 일행들을 에스코트를 하기위해 미리 대기하고 있었고... 위령탑은 상당히 걸어서 올라가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고.태극기가 길 양편에 내걸려 환영해주는 듯 반겨 맞는다. 헌병의 안내를 받으며 전체 일행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은 장관이기도 하였다. 참배 역시 군인들이 안내를 맡아주었고, 모든 절차도 그들의 지시대로 따라서 진행되어졌다. 참배식에는 선두에 행자부 정 윤기국장과 박 종완 철원부군수를 비롯하여, 통일 교육원 이금순원장, 통일문협측에서는 전덕기이사장과 고종원회장등이 서고,나머지 일동은 후미에서 참배를 하였다. 참배후 종각이 있는곳까지 올라가 보았는데,그곳에서 한가지 특이한걸 발견했다. 울타리 담장을 쌓아 놓은 돌들은 꼭 제주도에서 많이 보았던 구멍 숭숭 뚫린 돌들이 아닌가! 좀 이상하다 생각되어 물었더니, 까닭은 여기서도 화산이 분출하여 생겨난 현무암이라고 설명해준다 참배를 마치고는 아래 마을에 준비된 오찬장 자리로 이동을 하여 점심식사시간을 갖게 되었다, 식사준비는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따로 식당이 없기에 대마리 부녀회원들이 식사준비를 하게 되었고, 철원군이 자랑하는 오대미쌀로 밥을 지었다는데,아주 밥맛이 죽여주는 꿀맛이었다. 대마리에는 150여호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원주민은 20%정도 밖에 안된다고 이장은 설명해주며,이곳을 오고 싶으면 언제든 지 연락을 취하고 방문해 달라고 친절을 베풀어 주기도..... 마을을 떠나오려는데,철원군청에서 마련했다는 선물들을 잔뜩 차에 올려 주었다. 선물은 철원 특산 오대미와 쌀 국수, 찐 옥수수등 푸짐한 내용들이다.
|
백마고지 위령탑 참배와 대마리 두루미평화관에서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길리에 있다는 3사단 지역 <철원평화 전망대>로 향했다.
평화 전망대를 가는 길은 버스로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 가야했는데, 전망대 바로 주변엔 굉장히 큰 토교 저수지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는 제천 의림지, 그리고 가장 큰 저수지는 예산 예당저수지,또한 뚝이 가장 긴 저수지는 바로 이곳 토교저수지란다.
그런만큼 토교 저수지는 대단한 규모인데 그 넓이가 100만평이 넘는다고 일러준다.
평화 전망대에 오르니 바로 눈앞에는 북한 땅이 내려다 보였다.
멀리는 평강고원과 낙타봉도 보였고, 비무장지대의 생생한 모습을 가까이서 볼수있는 지역...
당장 사진이라도 담아보고 싶었지만 그건 절대금지라고 경고음을 발한다.
이곳 평화 전망대에선 멀지않은 곳에 제 2땅굴이 있고, 전망대와 백마고지 중간 지점 멀지않은 북쪽엔, 옛날 궁예가 터를 잡은 태봉국 도성지가 있단다.
지금은 가볼수 없는 땅이라는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전망대 관람을 마친후엔 정연리에 있다는 한탄천 금강산철교길로 발길을 옮겨갔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철교길을 걸어보다니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끊어진 철로 아래에는 한탄천이 흐르고,철로 위로는 도보로 끝 지점까지 다녀 올수 있다기에 일행은 철로 위를 걸었다.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하지만,북쪽방향으론 사진도 찍어서는 아니된다고 하니 아니 이럴수가...
철로위에 쓰여있는 끊어진 철길 90키로라는 글씨가 더더욱 가슴을 에이게 한다.
마지막 끝 지점까지 들어가 기념사진 하나 남기고 발길을 되돌려야하는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내나라 내땅이면서도 이렇게 선을 그어놓고 가볼수 없다니 참으로 서글픈일이다.
그런 심정에서 우러나온 시 한편을 남겨 본다.
금강산 철교에서
끊어진 철길
90키로만 더 달리면
금강산에 이를수 있다는데
어쩌자고 너는
여기서 내 발길을 가로막고 섰느냐
가고 싶어도 가질 못하고
오고 싶어도 올수도 없는
분단의 서러움
민족의 처절한 아픔은 밀려오는데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견우직녀도 오고 가면서 만나는데
지상에 은하수를 자랑하던 한탄천
너는 어찌하여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단 말이냐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한다
끊겨진 철길 다시 잇고
금강산도 자유로히 오가야하고
통일의 그날이 기필코 성취되어야만 한다
금강산 철교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라, 옛날 인민군 노동당사가 있었다는 현장을 찾았다.
노동당사는 해방이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했던 악명 높은 곳이란다.
당시 노동 당사가 있던 이곳에는 매우 큰 도시가 형성되었던 곳이라고 설명해준다.
폐허가 된 노동당사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통당하며,서러운 일들을 겪었을까를 잠시 더듬어 보기도 했다.
노동당사를 돌아보고 다시 <철마는 달리고 싶다>란 백마고지 역으로 돌아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탔다.
관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귀로에서 탈북 여성 통일 교육원 정 은찬교수로 부터 안보특강을 듣기도 하였고,선물로 올려준 여러 상품들을 게임을 통하여 받아보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정 은찬교수는 탈북동기에서 부터 북한의 실상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북한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반드시 들려주어야만 할 이야기라 여겨졌다.
공산주의를 알지못하고, 좌편향 교육에 국가관과 가치관이 흐려진 우리의 꿈나무 미래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이 크다.
그들에게 이런 안보교육과 최전방의 탐방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껴보며 통일열차 여행을 마무리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가다가 멈추고 만 철마
달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련만
어찌하여 여기에 멈추고 말았느냐
모든 길은 시발역이 있고
종착역이 있건만 너는
어찌하여 이곳에 멈추어 섰단 말이냐
누구의 탓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달리고 싶어도
더는 달릴수 없다니
미어지는 아픔,서러운 심정
시퍼렇게 멍들어 녹슬고 말았구나
언젠가는
다시 달려야한다
녹슨 아픔
민족의 한
말끔히 씻어내리고
철마는 기차게 달려야 한다
둘러쳐진 철조망
그어진 3,8선 걷어내고
우리의 태극깃발
자랑스럽게 휘날리며
저 백두산까지 달려야한다
아니다
신의주를 넘고
만주벌판을 지나
몽골과 시베리아와
저 유럽대륙과 아프리카까지
철마는그렇게 달려야만 한다
2, 양구로 떠난 제 4땅굴과 두타연
두번째로 떠나게 된것은 제 4땅굴이 있다는 양구를 향해 떠나게된 문학기행이다.
2016년 10월 11일 강원도 양구에 있는 최전방 DMZ를 향해, 사)한통문협에서 실시하는, 2016도 하반기 안보관광및 문학기행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아침 7시 출발한다기에, 천안에서 고종원회장과 밤중에 있는 3시 21분 열차편으로 서울역에 도착하니, 아직 전철도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이라, 도보로 남대문사장에 들어가 아침 해장을 시켰다.
보리밥과 찰밥을 시켰는데,덤으로 우동까지 내놓았고,거기에 냉면까지 준다는걸 그건 사양했더니,식사값도 깍아주는데...
식사에 우동까지 먹기도 벅찬데, 이걸 어떻게 다 먹느냐고 했더니, 아줌마들은 보통 우동과 냉면만 먹고 찰밥은 싸가기도 한단다.
남대문 밥집에서 시간죽이기를 하다가, 충무로를 거쳐 압구정동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들이 여기저기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문학기행을 함께한 일행은 한통문협소속 이외에도, 다른 문학단체 회원들이 다소 함께 하였는데, 이날 전체 인원은 46명이었다.
양구에 도착하여 맨 먼저 찾은 곳은 전쟁기념관이다.
을지 전망대와 땅굴 견학을 위해서는 먼저 이곳에서 출입신청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쟁 기념관 앞에는 환영인사를 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이채롭기만 하였고....
출입신청 수속을 밟는 동안 기념관 내부와 바깥에 있는 여러 곳들을 두루 살펴보기도 했다.
전쟁 기념관이 있는 이곳은 양구군 해안면 현리라는 곳이란다.
해안면은 바다도 없는 내륙지방인데, 왜 해안면이라 하였는가 궁금하였는데, 옛날 이 지역에 무서운 뱀들이 많아서, 누군가 돼지를 방목하라 하여 돼지들이 뱁들을 자유롭게 잡아먹고 그 돼지들이 배가 불러 편안했는가 하면, 사람들도 그 뱀잡아 먹은 돼지들을 잡아먹어 더욱 건강하고 편안해졌다고 해서 돼지 해(亥)자에 편안 안(安)자를 붙여 갖게된 이름이랃다.
또 이곳은 펀치볼이라고도 하는데, 동네 지형이 마치 펀치볼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쟁기념관에서 출입신청을 마친후 검문검색과정을 마쳐, 군사도로를 타고 오르막길로 한창 달려가니 을지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 계단을 오르면서 기념촬영들을 하기도 하였고.....
내부 통로 벽면에는 박근혜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진이 걸려 있기도 했다.
전망대 안에는 주변 지세을 한 눈에 볼수 있도록 지형모형도를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망원경을 통하여 멀리 북쪽을 바라볼수 있도록 설치해두기도 하였다.
전망대 바로 눈앞에는 선명하게 남북 한계선이 들어오고, 생생한 비무장지대가 바라보이는데, 사진 촬영은 아예 금기사항....
북방 한계선 너머에는 매봉,운봉, 박달봉, 갈무봉,무산등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오고,날씨가 청명하면 박달봉과 갈무봉 사이로 금강산이 바라보인다고 한다.
브리핑을 하는 장교는 하나 하나 봉우리를 가리키며 친절한 설명을 해나갔다.
참고로 DMZ란 Demilitarized zone의 약어로, 동서 길이 248km이며 , 중심에서 각각 2km씩 떨어진 남북간 4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를 말한다.
이곳 비무장 지역에선 어떤 군사적 시설이나 행동도 금지되는 곳이며, DMZ를 경계로 북쪽에는 북방 한계선, 남쪽에는 남방 한계선이 있으며, 남방 한계선 바로 인근 지역을 민통선이라 하여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단다.
을지 전망대 견학을 마치고, 다시 이동하여 찾은 곳은 제 4땅굴이 있는 곳 ㅡ
북한에서 파내려온 땅굴은 수없이 많은데,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은 모두 4개로써, 제1땅굴은 경기도 연천에 있으며, 제 2땅굴은 철원, 제 3땅굴은 임진각 근처에 있다고 한다.
제 4땅굴은 맨 마지막 발견된 곳으로써, 이곳 땅굴을 찾아낸것은 북한측량기사가 탈북하여 찾아낸 곳이라고....
입구에서 통과하는 길은 우리가 북한에서 판 땅굴에 들어가기위해 판 곳으로, 약 300m를 도보로 걸어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땅굴안에서도 사진촬영은 할수 없도록 통제되어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심히 안타깝다.
우리측에서 판 땅굴을 걸어 들어가면,그곳에서 북한이 판 땅굴을 전동차를 타고 구경할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곳 해설 가이드는 군인이 아닌 아가씨였고, 민간인이기에 더욱 친절한 해설과 답변을 해주기도....
땅굴은 지하 145m,총연장 2052m인데, 우리가 가볼수 있는곳은 남방 한계선에 해당하는 곳까지 겨우 100m뿐이란다.
여기를 이동하는 구간이 참 재미있는 곳이라 여겨졌다.
출발역 이름이 펀치볼 역이고, 종착역까지는 겨우 왕복 2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짧은 역구간이 어디 또 있으랴....
우리측에서 판 땅굴은 둥근 원형으로 정교하게 기계로 파들어 갔지만, 북측에서 판 땅굴은 수작업으로 파들어 왔기에 징으로 판 자국이 역력히 보이고 통로도 좁고 엉성하기 이를데 없었다.
금번 행사 추진에 많은 수고를 해주신 분은 이 영하장군이었다.
이 영하장군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3성장군으로 공군 참모차장까지 역임하였던 장성출신이다.
제 4땅굴 견학을 마치고 오찬장으로 자리를 이동했는데,예약된 식당 이름은 진고개 식당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유행가 진고개 신사가 떠올라 재미있는 이름이라 생각되었다.
진고개 식당은 노래방과 주점까지 겸하고 있어,제법 장사가 쏠쏠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오찬장에서 강원도 명물로 소문난 곤드레 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온통 주변이 곤드레 밭이다.
보라색 꽃이 한창 피어있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곤드레 밭으로 뛰어드는 여인들도 있었고....
오찬회를 마친 문학기행단 일행들이 찾아간 곳은, 양구 제 1경으로 이름난 두타연이었다.
두타연은 해안면이 아닌 방산면이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곳 이목정 안내소에서수속절차를 밟아야 했다.
주변을 보니 여기에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옛길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 전광판이 보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바이크 트레킹을 해보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솟는다.
부산에서 임진각까지는 달려본 경험이 있지만, 금강산까지 갈수 있는 길이 있다니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겠는가!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편으로 두타연을 향해 한참을 더 들어가야만했다.
길 양편엔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린다.
두타연은 6,25전쟁이후, 50년동안 일반인 출입을 할수 없었던 통제구역이였기에, 이곳은 자연자체만으로도 비무장지대와 다를 바 없는 매우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그런데다 자연 경관이 빼어나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 경탄을 금치못할 아름다운 풍광속에 넋을 잃고만다.
양구(楊口)란 버들양자에 입구자를 쓰고 있는 지명인데, 그 뜻은 곧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지역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이곳 두타연에서 곧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갈수 있는 길이 나있는가 하면, 금강산은 앞서 다녀온 을지전망대와 두타연 중간쯤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역인가도 쉽게 가늠할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타연 입구에 도착하니 문화해설사가 나와 주변지세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해나간다.
우리가 모였던 광장 위치에서 높다란 산 꼭대기가 보였는데, 그곳을 일러 장군봉이라고 알려주었고, 주변엔 산양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자주 나타난다고도 하였다..
주변 해설을 마친후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소지섭 소로길을 따라 두타연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때묻지 않은 자연은 마치 태고의 숨결을 느껴보는듯 참으로 신선하고 청정하였다.
조금 들어가니 양구전투 위령비가 있는곳으로 들어가는 길과 평화 누리길, 그리고 두타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일행을 안내한 해설사는 평화 누리길(비목 안내소방향)쪽으로 안내를 하였는데, 잠시 함께 동행하다 괜히 심통이 났다.
짜증나게 나무 이름들을 일일히거명해가며 장황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이러다간 정작 구경할것도 제대로 못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로 마음을 결정했다.
단체관광엔 독자행동은 금기사항이지만, 좀더 많은 곳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갈림길로 다시 되돌아 나와 두타연쪽으로 들어가니 공원이 나타난다.
공원에선 관광나온 다른 여행객들이 문화 해설사의 해설에 열공하는 모습들도 보였고....
공원 입구엔 두타사지 보덕굴의 전설이란 기록의 입간판이 서있다.
이곳에 옛날 두타사(頭陀寺)란 절이 있었고, 보덕굴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단다.
두타연은 금강산 송라암에서 수행정진하던 회정선사가 3년동안 1000일 기도를 진력하던 999일째 되던 날, 꿈속에서 한 여인으로 부터 양구땅 방산면 건송리의 몽골옹을 만나면 관음보살을 친견할수 있다는 선몽을 받아 몽골옹을 찾아나섰고....
회정선사는 이곳 두타연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쪽엔 보리암,동쪽엔 홍련암을 세우고,북쪽에는 두타사 보덕굴이라 하였으니, 이곳이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가 되었다고 전한다.
두타사는 지금은 사찰을 찾아볼수 없지만, 천년 고찰로써 이름 높았던 사찰이었다고 한다.
두타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어 있어, 창건 시기는 고려시대로 판단할수 있으며,조선 중기 학자 이만부가 방문하였던 1723년 이전에 폐사된것으로 보여진다.
두타연의 지명이 1천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데서 연유됐다는 점과, 축대와 와편,도자기편이 산재하고 있어 현재의 위치를 두타사지로 확인되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반면 두타연이란 두타사가 있던 그 사찰앞에 있는 연못의 이름을 말한다.
또한 이곳 두타사 사지터는 양구 10년 장생길의 1년길로 불리는곳이기도 하단다.
참고로 양구 8경이란 제 1경이 이곳 두타연이며, 제 2경은 앞서 다녀왔던 펀치볼, 제 3경은 사명산, 제4경은 광치계곡, 제 5경은 파서탕,제 6경은 파로호,제 7경은 후곡 약수터, 제 8경은 생태 식물원으로 그 순차를 정해두고 있었다.
두타사 사지를 벗어나면 3코스와 4코스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3코스로 방향을 잡고 안으로 더들어가니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내려온다.
계곡물을 바라보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자도 보이고 용소를 이루며 쏟아지는 비경이 연출된다.
정자를 올라 사방을 휘둘러 보고,용소 아래로 내려가니 이곳이 바로 두타연이었다.
두타연은 그야말로 감추어 두었던 비경으로, 참으로 감격스럽고 경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
이곳 물길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송리 수입천 지류에 발달하여 동면의 비아리와 방산면사태리 하류에 위치한 계곡이란다.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오염되지않은 지역으로 천연 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높이 10m,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폭포 바로 아래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두타굴이 있기도 하다.
두타연을 눈이 시리게 구경하다,계곡 아래쪽을 답사하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출렁다리가 나타났고 그곳을 건너 좀더 지나니, 생태 탐방로와 지뢰 체험장이 있었고...
지뢰 체험장엔 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기에 절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금기사항이었다.
또한 산나물 채취도 절대 할수 없는데, 만약 채취하면 자칫 구류도 살수 있다고 엄중한 경고를 내린다.
좀더 내려가다보니 금강산으로 진입하는 입구라는 길이 보이기도 했고,아름다운 단풍길과 맑은 계곡 물길을 따라 상당히 먼곳까지 내려가 보았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운 절경은 끝없이 펼쳐진다.
두타연은 한마디로 무릉도원이며 선경이라 아니할수 없는 멋진 풍광을 지닌곳이었다.
아래 쪽으로 내려가다 전투중 군인들이 남긴 철모와 수통등이 걸려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것은 비목이었다.
가슴 깊이 울렁이는 비목(碑木)의 노래가 절로 연상된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비목은 본래 강원도 화천, 백암산 부근에서 한 명희 시인이 십자 나무만 세워져 있는 무명용사의 돌무덤의 비목을 보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내용의 시를 짓게 되었고, 이를 장 일남에 보여주자 즉석에서 곡이 만들어져 노래로 불려졌다고 한다.
바로 그 유명해진 비목을 나는 이곳 두타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귀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비목과 하류로 흐르는 물길들을 구경하고, 다시 지나왔던 위쪽으로 돌아가니, 그제서야 일행들은 두타연에 이르러 있었다.
내가 다녀온 그곳까지는 안내할 시간이 없어, 단체사진만 담아주고 그곳에서 우리들의 여행은 끝나야만 했다.
언제 다시 올는지도 모르는 차마 발길 떨어지지 않는 두타연을 뒤에 남겨놓고서.....
DMZ지역 문학탐방은 언제 가보아도 또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안보의식고취에도 더없이 좋은 현장교육장이기도 하지만, 반세기이상을 철조망에 둘러쳐진 숨겨진 비경까지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말로만 듣던 땅굴견학이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오고, 어서 남북통일을 성취하여 자유롭게 왕래하는 그날을 앞당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볼수 있는 애국심을 길러주는데도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요즘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전쟁의 아픔이나 북한의 위협적인 상황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
더군다나 교육자체가 잘못되어 안보의식은 커녕,국가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관정립이 잘못되어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때 젊은 새대들이 꼭 이곳을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강력히 권장해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