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를 위한 시창작 강의(16)ㅡ거꾸로 보기 지창영 (시인) 등록일 : 20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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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써 사상과 감정을 공유하려면 남다른 면이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낀다면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의 생각과 정서를 사로잡으려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남다른 면은 대상을 새롭게 볼 때 찾을 수 있다.
대상을 새롭게 보는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로 거꾸로 보기가 있다. 늘 보던 세상도 물구나무서서 보면 새롭다. 익숙한 것도 위와 아래를 뒤집어 보고, 큰 것과 작은 것을 바꾸어 보고, 선후를 바꾸어 보고,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그 낯선 경험에 사상을 담고 감정을 입히면 예술성이 훨씬 높아진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이 보통의 시각인데, 이 시에서는 매미가 나무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표현을 중심에 두고 우는 행위를 묘사하고 읽는 자세를 묘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매미의 간절한 처지가 강조되고 맹렬한 행위가 부각된다.
울음으로 따지자면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을 정도로 세차다. 3연에서 매미의 울음은 어느덧 읽는 행위로 묘사된다. 매미가 나무에 앉아 있는 자세를 무언가를 열심히 읽는 모양으로 본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매미가 우는 모양을 읽는다고 표현함으로써 매미를 사람과 엮어 버렸다. 이로써 매미의 치열한 행위는 곧 사람의 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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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그토록 맹렬히 우는 것은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그 목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절실한 처지에서 자기의 일에 목숨을 걸 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맹렬함이 발현된다. 매미는 큰 나무에 붙어 있는 작은 곤충에서 나무의 멱살을 잡고 세상과 맞장뜨는 큰 존재로 변화되었다. 객체에서 주체로 바뀌었다. 사람도 개인으로 보면 비록 작지만, 주체로서 각성하게 되면 세상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커질 수 있고 그만큼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시에 묘사된 매미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주체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마경덕, 「신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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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주체로 신발은 부속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관계가 거꾸로 되어 있다. 신발이 주체요, 사람이 객체가 된 것이다. 이렇게 역전된 관계를 통하여 인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그래, 그렇지’ 하고 공감하게 된다. 사람은 이곳저곳을 자기 의지로 오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일상에 쫓겨 다니는 것일 뿐이다.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표현에서 진정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이 시의 작가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다른 부속물을 소모품으로만 여기는 일상적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어디 신발뿐이겠는가. 손수건, 모자, 지팡이, 안경 등 우리와 늘 함께하는 사물을 중심에 두고 자신을 객체로 바라보면 평소 생각지 못했던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 혼자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주 속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사물과 함께 나도 존재한다는 깨달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을 한번 거꾸로 보자. 세상 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태어나서 세상이 존재한다. 아침이 되어 참새가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참새가 지저귐으로써 아침이 밝는다. 밤이 되어 잠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들어 밤이 된다. 사람이 흐르는 것이지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 있어 어제가 있다. 자동차가 속도를 높이자 지구 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먼지 한 톨에 우주가 기생한다. 가로수들이 하늘로 뿌리를 뻗고 있다. 비가 땅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해를 삼킨 집어등이 바다를 밝힌다.
위에 예시한 문장들을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남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주체성이 돋보이기도 하고 절실함이 엿보이기도 하고 강렬하게 보이기도 하고 역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부터 물구나무서서 일상을 맞는다면 의미 깊고 기발한 표현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