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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3月 ☞소통과 합력의 달☜
전1:9-18절) 하나님이 없다면
父母님이 출타(出他)하시고, 아이들끼리만 있게 되면, 자연히 집은 아이들 세상이 됩니다. 책상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기도 하고, 항아리에 돌을 던져서 깨기도 합니다. 아이들끼리 어른의 간섭 없이 사는 것은 좋은데, 얼마 안가서 집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만 없다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태(倦怠)*를 말합니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투기 시작해도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한때는 부인들이 권태를 이기지 못해서 시장바구니를 들고, 남편 몰래 춤추러 다니다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때 서울 근교의 모 카바레는 *시장바구니 부대의 댄스 장*으로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권태(倦怠)때문입니다.
대도시마다 엄청난 러브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거기 출입하는 사람들이 부부일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남편이 있고,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죄가 저질러지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권태(倦怠)때문입니다. 전에 가난할 때는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몰랐는데, 이제는 먹고 살 만해지니까 *삶이 권태롭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권태(倦怠)를 이기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부인(婦人)들이나, 돈 많고 시간 많은 사장들의 숙제는 한 결 같이 권태(倦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입니다.
한때 *오렌지족* 이라고 해서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부유층자제들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재미를 찾느라*고 그런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십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마약(痲藥)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비싼 돈 들여 마약을 맞습니까? 권태(倦怠)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노인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노인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노인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러나 노인들이 할 일이 없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앞으로 노인들이 어떻게 권태(倦怠)를 이겨 내느냐?가 사회적 이슈가 될 것입니다.
까뮈의「이방인」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햇빛이 너무나 따가워서 사람을 쏘아 죽입니다.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살인한 까닭이 곧 권태(倦怠)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예(例)만 보아도 지금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 앞에 있는지를 알 것입니다. 즉 인간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며, 살아가느냐?* 아니면,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권태에서 탈출을 시도하느냐?* 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가혹한 것입니다. 즉 먹고 살기 위해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사느냐? 아니면 어디 한 번 신나게 탈선(脫線)하고, 죄에 빠져 죽느냐? 중, 양자택일(兩者擇一)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전제(前提)로 하기 때문에 대개 *하나님이 이르시데*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전도서만은 하나님이나, 하나님 말씀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일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느냐?* 는 가정(假晶)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전제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이 곧 *해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자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는 *모든 것이 해 아래 있지, 그럼 해 밖에 있는 것도 있느냐?* 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해 아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전제(前提)한 세상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보다, 인간에게 반가운 것도 없습니다. 즉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안계시면, 자기 욕심대로 얼마든지 세상을 주무를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이 어디 가셔서 외박이라도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합니까? 집에 친구들을 데려와서 마음대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류의 조상이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범죄도 하나님을 몰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세상 이론(理論)들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달이나, 화성에 보내서 *거기에도 생명체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유전공학자들은 *유전자를 가지고 사람을 복제하려*고 기를 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도 생명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부정하면, 세상은 어떻게 되느냐? 고 묻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정욕을 채우면서* 살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모든 것을 차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인간이 견딜 수 없는 무서운 적(敵)이 하나 찾아오는데, 그것이 곧 권태(倦怠)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면, 우리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태를 참다못해 자살(自殺)을 하거나, 불륜(不倫)의 관계에 빠지거나, 마약(痲藥)에 손을 대게 되는 것입니다.
Ⅰ.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1:9절)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새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뭔가 새로운 것(somethingnew)이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어서,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의미 없는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새것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이 반복적으로 움직이지만, 움직임의 원인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즉 시계의 태엽을 감아 놓으면, 바늘이 계속 움직입니다. 그런데 시계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보고도 *왜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즉 아침이 되면, 저녁이 오고, 저녁이 되면, 다시 아침이 옵니다. 또 봄이 되면, 여름이 오고, 다음에 가을과 겨울이 반복해서 찾아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후에는 죽습니다. 즉 우리 몸에는 *성장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늙기 싫어도 시간이 되면, 어른이 되어야 하고, 늙으면, 죽어야 합니다.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성장하도록 입력(入力)되어 있는 인간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라고, 늙는데, 무엇 때문인지, 누구 때문인지, 왜 그렇게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성에는 두 가지 법칙(法則)이 있습니다. 자연(自然)은 계속 반복되고, 인간(人間)은 성장하고, 늙어서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이렇게 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의문(疑問)을 풀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이것입니다. 즉 먹고 싶은 대로 먹도, 가지고 싶은 대로 가지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일단 생각을 하게 되면, 수수께끼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시계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연(自然)은 계속 순환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순환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자란 후에는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달린 무시무시한 시한폭탄이 곧 죽음과 죽음의 고통입니다.
우리는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인생입니다. 시한폭탄이 터지면서 무지무지한 고통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간의 운명(運命)입니다.
둘째, *새것이 없다*는 말은, 인간은 이미 주어진 것을 가공(加工)해서 쓰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지 못합니다. 창조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이미 주어진 것을 가공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신대륙은 전에도 있었고, 게다가 이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데, 그러면 전에 있었던 인디언들은 사람도 아닐까?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法則)을 발견했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사과는 전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과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도 떨어지고, 감도 떨어집니다. 뉴턴은 이미 있던 법칙(法則)을 최초로 눈치를 챘을 뿐입니다.
즉 어떤 요리사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이미 있는 재료를 잘 배합해서 요리한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새것을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사는 피조(被造)된 존재이지, 절대자가 아닙니다. 즉 우리는 절대로 주인(主人)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님은 아주 재미가 있는 분입니다. 우리 앞에 수수께끼를 늘어놓고, 정작 당신은 꼭꼭 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생(生)의 본질에 관해서 직접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1:11절)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인간들은 모두 고유(固有)한 인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식은 부모에게 유산이나, 사회적 신분을 물려받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生)을 살아주지는 못합니다. 모두 각자 살아야 하는 인생인 것입니다.
부모는 할 수 있는 대로 자식들이 유리한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대신 입학시험을 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군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자식을 대신해서 입학시험을 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인생이 있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이 대신 살아 주는 인생을 찾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영화나, TV 같은 영상매체이고, 또 하나는 스포츠입니다. 즉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면서 사람을 웃겨주고 울려주고, 또 죽어주고 때려 주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영화나 TV에 매달리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Ⅱ.해 아래서 수고 하는 인생
1:12-13절)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자가 해 아래 사는 인생을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나도 의미 없는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드디어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인간들을 괴롭게 하고, 수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수고하는 것*은 무엇이고, *괴로운 것*은 무엇일까?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둘 사이에는 사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즉 *수고 한다* 는 것은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 대부분은 *먹는 것*을 마련하는데 쓰입니다.
즉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집을 나와서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 직장에 가서 죽도록 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비만으로 살빼기 경쟁하는 요지경세상입니다.
또 학생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어가지도 않는 지식(知識)을 머리에 쑤셔넣고, 학교를 마치고, 학원까지 가서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의 에너지 대부분은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데 소모됩니다.
마치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는 다시 고파오고, 그러면 다시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인간이 먹지 않아도 살 수만 있다면, 시간이 많이 남을 것입니다.
어쨌든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쓰고, 여자들은 음식을 만드는데, 시간을 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먹고 사는 일에 쓰지 않으면, 그 많은 시간들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부모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할까?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사우나도 하루 이틀이지, 긴긴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겠습니까? 팬더믹 코로나 시대 해외도 못가고 집콕은 미치는 것입니다.
만약 농사도 짓지 않고, 목축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70-80년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또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도 독방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벽만 쳐다보며, 하루 종일 있어 보십시오. 아마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마저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요즘 강원도 정선에는 카지노 때문에 돈을 날리고, 노숙(露宿)하게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카지노를 찾을 때는 외제차를 타고 왔는데, 돈을 다 잃고, 나중에는 집에 갈 차비조차 없는 것입니다.
경찰서에 가면, 차비로 2만 원씩 준다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가지 않습니다. 이미 노름에 중독(中毒)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짜로 주는 음료수를 얻어먹거나, 새로 온 사람들에게 요령을 가르쳐 주고, 수익을 나누는 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돈은 많고, 할 일이 없으면, 인간은 죄 짓게 되어 있습니다.
또 괴로운 것은 *억압(抑壓)*아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계급이 있어서 신분질서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왕이 전 세계를 조사해보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나라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만약 실수를 해서 왕의 눈밖에라도 나면, 당장 그날로 파멸(破滅)하고 맙니다.
그러면, 왕은 마음대로 살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왕은 자기보다 더 큰 나라의 신하(臣下)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나라 왕은 큰 나라 왕 앞에서 머리를 땅에 부딪치면서 큰절을 해야 했습니다. 혹 큰소리가 날 때까지 머리를 쾅쾅!! 찧으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세상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自然)이 아름답고, 춘하추동 변화도 심심치 않지만, 인간(人間)은 절대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즉 *죄인의 신분으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이 이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삶에 찾아오는 위기들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혹 가족 중에 누군가 위독한 병에 걸렸다든지, 사업에 실패를 했다든지, 사별하게 되었다면, 일상적인 삶을 잠시 멈추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Ⅲ.해 아래 구부러진 것
1:14-15절)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전도자는 인간의 힘으로 결코 바로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구부러진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곧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착한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악한 행동만*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수양(修養)부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수양(修養)을 쌓지 않아서 악(惡)한 짓을 하는 것이지, 수양(修養)만 쌓으면, 그런 욕망은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삐뚤어진 본성은 결코 수양(修養)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안에 있는 엄청난 죄(罪)의 세력은 사람의 이성(異性)으로 다스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의 본성이 한번 자극을 받기만 하면, 발작적으로 분노(忿怒)를 일으켜 통제할 수 없는 괴물(怪物)로 변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죄(罪)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마약과 같아서 자꾸만 빠져들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왜 세상에 교도소(矯導所)가 필요합니까? 죄(罪)가 수양(修養)으로 해결될 문제 같으면, 교도소는 필요 없습니다.
폭포아래서 도(道)를 닦아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교도소 대신에 폭포만 만들면 될 것입니다. 즉 폭포마다 한 사람씩 앉히고, 수양(修養)을 쌓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의 죄(罪)성은 결코 수양(修養)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선(善)해서가 아니라, 죄(罪)지을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거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짓고, 인생을 망친 사람들은 불행히도 죄 지을 여건과 기회에 빠진* 것뿐입니다.
인간 안에 있는 분노(忿怒)가 자극을 받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굽어 있다*고 말합니다. 또 *강철같이 굽어진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두들겨서 펴려고 해도, 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구부러진 것*은 밑으로 움푹 꺼져 있는 것입니다. 움푹 꺼져 있으면, 자꾸만 물이 고여서 썩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모습입니다. 인간 사회는 깨끗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썩은 물이 빠져 나와서 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항상 악취(惡臭)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굽은 마음을 펴고, 사회의 꺼져있는 부분을 바르게 해서 죄를 없애야 하겠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Ⅳ.해 아래서 하는 공부
사람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공부가 아닐까? 공부를 많이 하면, 자기개발이 되고, 지식(知識)이 많으면, 생각의 폭이 넓어져서 과연 현명(賢明)해집니다. 즉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문제를 빠르게 파악할 뿐만 아니라, 자기 의사를 분명히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일을 추진하는 것도 손쉽게 합니다. 학식(學識)이 많은 사람들이 테레비전에 나온 패널(panel)들을 보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말을 잘하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아마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 솔로몬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좋은 머리로 많은 지혜(知慧)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16절)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솔로몬이 좋은 머리로 무지무지하게 공부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지식(知識)과 정보(情報)를 가졌겠습니까? 아마 선생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공부를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솔로몬보다 예루살렘에 먼저 있던 사람은 사울 왕과 다윗 왕인데, 솔로몬이 그들보다 총명(聰明)했다는 뜻일까? 학자들 중에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기 아버지보다 머리가 좋다고 말 할리는 없다*는 근거로 *솔로몬이 전도서의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솔로몬이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비교급 표현이지, 아버지보다 낫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학자들이 *만나본 국내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런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이 사람을 똑똑하게 하고, 지혜롭게 만들지라도 세상의 권태(倦怠)를 이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식(知識)이 많은 사람들이 더욱 권태롭게 살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煩惱)도 많음을* 알았습니다.
지식(知識)은 세상을 사는 경험을 축적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을 잘 사용하면, 살아가는 문제에 도움이 되지만,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인터넷에 너무나 많은 정보가 있어서 사람들이 직접 연구하는 대신에 인터넷에만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보는 어디까지나 정보에 불과하지, 자기 지식(知識)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도움이 되는 지식(知識)은 자기 지식(知識), 즉 독창적(獨創的)인 지식(知識)입니다.
세상에서 영향력을 나타내는 데도 자기의 지식(知識)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솔로몬은 사람의 미친 것과 미련한 것까지 연구했습니다. 그럼 미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미련한 것은 필름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고, 미친 것은 필름이 끊긴 것입니다. 또 솔로몬은 *왜 인간은 광기(狂氣)를 부리는가?*라는 문제까지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연구한 것이 곧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연구한 것입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미쳤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돈 많은 부자(富者)가 미쳤다면, 문제가 다르고, 그 인생은 심각한 것입니다.
결론(結論)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병(病)이 있고, 거기에 광기(狂氣)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드의 연구는 많은 기여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죄(罪)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단순히 인간을 연구한다고 풀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잠제의식은 마치 거대한 구정물통과 같아서 쉽게 연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無意識)안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시53:1절)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그래서 *한번 휘저으면, 온갖 생각과, 경험들이 튀어 나오는데, 차마 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인간에 대한 해답은 *인간을 만든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는 단 하나의 문제도 인간 스스로는 풀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죄(罪)용서를 받아야 죄의 감옥에서 나와서 권태(倦怠)를 이기고, 무의미(無意味)한 세상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아-멘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site/Kakao 선교회 안내
주님의 선교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운 가정과 영생을 위하여
대상 : ▷불신자 ▷개종자 ▷코로나시대 바빠서 교회출석 못하는 자 자발적인 전화 신청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영생 받고 사망 후 천국 가길 원하는 자. 즉▷허무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권태에서 행복으로, ▷염려에서 기쁨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저주에서 풍요로, ▷종교인에서 주님의 제자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불 땔감에서 천국 맨션(mansion)을 원하는자.
물론 각자 의지와 기질과 순종여부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계21:8절)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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