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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간 역사 스테디셀러 재출간…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종교 등
다섯가지 주제로 세계사 맥 짚어… 옛날 이야기처럼 듣는 재미
◇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홍성민 옮김.
17세기의 ‘카페’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Coffeehouse)’를 묘사한 그림. 처음에 커피는 유럽에서 와인과 맥주에 비해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상인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하우스를 짓고 커피를 ‘이성적 음료’로 홍보하면서 급속히 보급됐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6∼17세기 유럽에서 커피의 보급은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맛도 쓰고 영양가도 별로 없는 커피는 와인이나 맥주보다 인기가 없었다. 상인들은 커피를 ‘욕망의 음료’인 알코올과 대조되는 ‘이성의 리큐르(Liqueur, 안티 알코올)’로 홍보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커피하우스’도 지어 사람들의 생산성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결국 커피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16세기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에 의한 종교 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성립된 종교 단체 및 그 분파)의 확산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 상인들의 전략이 들어맞은 것이다.
일본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齋藤孝, 1960- ) 저자는 커피의 확산 과정을 종교와 연관지어 풀어낸다. 이 책은 역사서치고는 독특하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까지 차곡차곡 역사적 사실을 쌓아 엮는 식의 통사(通史)적 접근을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정형화된 연대기를 벗어나 다섯 가지의 주제로 역사의 맥을 짚는다. 다름 아닌 ‘욕망(欲望)'·'모더니즘(modernism)’·‘제국주의(帝國主義)’·‘몬스터(Monster)’·‘종교(宗敎)’다.
첫 주제 욕망(欲望)에서는 커피뿐 아니라 차, 알코올, 코카콜라가 어떤 식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만들어왔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2009년 출간 후 10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는데, 역사 교양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뒤 15년 만에 재출간됐다.
저자는 근대의 시작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속력을 가진 지중해 문명에서 찾는다. 지중해를 에워싸며 발생한 다양한 문명들은 서로 충돌하고 발전하면서 유럽의 원형을 만드는 용광로가 됐다는 것. 그러면서 “일본이 세계사에 본격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늦은 시기”라며 “메이지유신(Meiji維新, 明治维新)을 통해 근대 열강의 반열에 가까스로 끼어들 수 있었다”고 썼다.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의 능력을 꽃피운 근대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저자의 설명이 흥미롭다.
중세와 근대를 움직인 ‘제국주의’는 힘을 과시하고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적 욕망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스파르타의 싸움을 그린 프랭크 밀러(Frank Mille, 1975- ) 원작, 영화 ‘300’(2007)에 이것이 잘 반영돼 있다.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가 스파르타에 요구한 건 “그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지배욕의 표현이었다. ‘무릎 꿇기’는 중국의 전통적인 조공 무역(朝貢貿易)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제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공물을 바친 사신들에게 그 몇 배에 달하는 답례품을 하사했다. 경제적으로는 황제에게 손해지만, 정복욕의 측면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것. 다만 제국주의 발생을 남성성으로만 연관 짓는 관점에 대해선 100% 공감하기는 힘들다.
복잡하거나 심오한 역사적 진리를 다루는 책은 아니다. 그 대신 파편적으로 흩어진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러면서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에 대해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서술한다.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역사 연표를 외우는 데 질려버린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책이다.
✵ 저자 : 사이토 다카시(Saito Takashi 齋藤孝, 1960- ) 메이지 대학교수, 작가는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언어학자. 지식과 실용이 결합된 글쓰기로 발표하는 책의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표작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와 『신체 감각을 되살린다』가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신조학예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아사히 신문 등 유력 일간지의 컬럼니스트로 활약하면서, 최근에는 NHK와 후지TV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 연출하고 있다.
✵ 책 속으로 : 스타벅스(Starbucks)가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탓이 크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로는 그 공간에서 마시는 음료가 다른 것 아닌 ‘커피’라는 데에 있다. 커피는 근대가 가진 ‘잠에서 깨어 있는’ 느낌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음료이기 때문이니다.
그런 커피를 사랑하는 애호가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인간희극(人間喜劇)』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초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이다. 그는 소설을 쓸 때면 먹처럼 검은 블랙커피를 연거푸 마셔댔는데,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남긴 평전 『발자크(Balzac)』를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커피광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발자크의 집필방식은 그야말로 경이적이라 할 만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나흘 동안 책상 앞에서 글만 쓴 적도 있다. 게다가 가끔 집 밖으로 나올 때조차 약간의 먹을거리와 함께 커피를 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글을 썼고, 몸과 손이 굳고 머리가 둔해지면 ‘검은 석유’, 즉 진한 커피를 들이키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한계지점까지 자신을 내몰아 미친 듯이 집필에 몰두했다.
“커피가 위(胃)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념들은 위대한 군대처럼 전쟁터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싸움이 벌어진다. 추억들은 행진의 깃발을 들어 올리고, 태풍과 같은 발걸음으로 들어선다. 경기병은 말을 속보로 몰아 전진하고, 보급부대와 탄통을 거느린 논리의 대포가 쉭쉭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풍부한 감성으로 무장한 발상들이 저격병이 되어 전투에 끼어든다. 인물들은 옷을 차려입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이고, 전투는 점점 강해졌다가 진짜 전쟁터의 싸움이 화약연기에 뒤덮이듯 시커먼 흐름 속에서 끝난다.”
이처럼 발자크는 커피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했다. 한데 그 커피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독특한 커피, “그 누구도 그렇게 검고, 그렇게 강하고, 그렇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자극성의 독물을 조합해주지는 못했다”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커피를 다량으로 마시면서 오랫동안 일한 결과 말년에는 극심한 위통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발자크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커피의 자극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를 넘을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이 서양문화,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칠 줄 모르는’ 지속성의 근간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이미 한계를 넘어선 부분이 많다. 밥 먹듯 계속되는 잔업과 철야는 물론이고 과로사하기 직전까지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서양의 근대화로부터 시작된 과도한 업무형태를 부추기고 지탱해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고 할 수 있다.
― 본문 「발자크의 걸작을 가능케 한 ‘검은 액체’」중에서(20~22p.)
✵ 목차
◦ Desire 1장. 욕망의 세계사 - 물질과 동경이 역사를 움직인다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 스타벅스와 글로벌리즘 / 발자크의 걸작을 가능케 한 ‘검은 액체’ / ‘잠들지 않는’ 근대의 원동력이 된 커피 / 커피하우스가 발전시킨 근대적인 비즈니스 / 존재하지 않는 욕구를 만들어낸 커피 상인의 술책 / 커피가 만들어낸 극심한 빈부의 격차 / 유럽에서 녹차보다 홍차가 더 사랑받은 것은 ‘설탕’ 때문이었다? / ‘차 vs. 커피’의 세계사 /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의 상징이 된 ‘코카콜라’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 금과 철 :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이 식민지화로 이어졌다 / ‘신의 육체’를 손에 넣은 인간 / ‘금’의 이동은 ‘권력’의 이동 / 근대과학을 낳은 욕망의 연금술 / 아름답지 않은 금속 ‘철’이 움직이는 세계사 / 인류 역사에서의 철의 공(功)과 죄(罪)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 브랜드가 현대사회를 지배한다 / 스스로 만들어낸 ‘열망’에 춤추는 현대인 / ‘중심의 이동’으로 보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 무리 짓는 본능, 즉 ‘도시화’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 Modernism 2장. 서양근대화의 힘 - 모더니즘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
1.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딜레마의 근대화 / 근대문명의 딜레마를 만들어낸 ‘가속력’ / 근대유럽의 원천이 된 민주정치 / 중세를 상징하는 ‘카노사의 굴욕’ / 근대가 미우니까 기독교까지 밉다
2.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 ‘신의 용서’를 파는 교회 / ‘신의 언어 = 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종교개혁 / 가톨릭의 ‘느슨함’을 잃어버린 프로테스탄트 / 베버가 꿰뚫어본 자본주의 탄생의 비밀
3. 경시된 근대의 ‘신체’ :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懷疑)’에 대한 회의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섹스를 할 경우 / 원근법이 근대에 발명된 이유 /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 푸코의 『감옥의 탄생』 / 보는 자가 지배하는 세계의 공포 / 정보가 ‘지배하는 눈’을 대신하는 현대사회 / ‘신체’적인 욕구에 굶주려 있는 현대인
◦ Imperialism 3장. 제국의 야망사 - 군주들은 왜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는가
1.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 세계사는 ‘정체성’을 둘러싼 분쟁의 기록 / 제국의 야망의 근원은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 페르시아 ? 중국 / 끝을 몰라 자멸하는 제국 -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우상
2. 성공하는 제국 실패하는 제국 : 그리스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연설’의 전통 / 제국의 본질 - 이집트 왕국과 로마제국의 차이 / 종교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 다른 민족들과 사회적인 구조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붕괴한 로마제국 / 가장 이질적인 제국, 이슬람 세계 / 힘만으로는 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 - 진의 시황제
3. 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 전국제패와 『삼국지』에 자극 받는 남심(男心)의 비밀 / 사후에도 살아남았던 황제들 / 현대세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제국’ / 야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세습금지안’이 필요하다?
◦ Monsters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 -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 일으킨 격진
1.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 마르크스가 간파한 자본주의의 본질 / 자본주의라는 ‘녹슨 기관차’는 왜 멈추지 않을까? / 사회주의 몸체에 자본주의 바퀴를 달고 달리는 중국 / 자본주의의 적은 자신 안에 있다 / 신흥 자본주의 중국과 인도의 역습
2. 20세기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 :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에게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시대 / 스스로 붕괴한 제국 ‘소비에트 연방’ /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미궁에서 탄생한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종교 / ‘평등’과 ‘독재’는 종이 한 장 차이 - 소련 ? 중국 ? 캄보디아의 비극 / 러시아혁명 직후, 소련 사회주의의 실패를 예견한 인물 / 국가의 노예로 전락한 ‘위대한’ 노동자들 / 평등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관료제’라는 장애물
3. 위기가 만들어낸 파시즘이라는 괴물 : 나치스의 파시즘을 받아들인 ‘보통’ 사람들 / 파시즘을 지탱하는 ‘무엇이든지 반대’ 정신 / 제1, 2차 세계대전의 본질 - ‘더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싸움 / 역사상 전무후무한 선전선동가였던 히틀러 / ‘전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든 파시즘 / 현대세계는 과연 파시즘을 무너뜨렸는가
◦ Religions 5장. 세계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 신들은 과연 세상을 구원했는가
1.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 : 근대에 되살아나는 ‘신’들 / 남미 정복의 첨병 역할을 했던 기독교 /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일신교 3형제의 집안다툼이었다? / 다시 종교로 돌아서는 현대인 / 한자와 히에로글리프로 보는 고대인의 종교관 / 세계 신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위대한 힘’ / 종교의 시대보다 ‘신화의 시대’로 돌아가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이 종교를 소생시킨다
2. 암흑이 아니었다! - 재인식되는 중세 : ‘성(性)의 단속 센터’로서의 중세 가톨릭교회 / 성직자가 가장 선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 ‘고해’라는 제도 / 육체를 지배함으로써 인간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했던 중세 기독교회 / 르네상스의 발단이 된 십자군전쟁 / 중세 유럽을 송두리째 뒤바꾸어놓은 연금술 / 연금술의 최종 도착점은 ‘금’이 아니라 ‘화학’이었다?
3.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 : ‘이슬람 = 테러’라는 공포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이유 / 세계 문화의 최첨단을 이룩했던 이슬람 세계 / ‘캐시어스 클레이’가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한 이유 / 무슬림에게 이슬람교는 공동체 그 자체다 / 의외로 ‘느슨한’ 이슬람의 계율 / 전 세계로 확산되는 이슬람 세계 / 인류 역사상 최악의 형제싸움, 팔레스타인 분쟁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Coffeehouse)’를 묘사한 그림
출처: 동아일보 2024년 07월 13일(토) [책의 향기] (서지원 기자)/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