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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키운 아이, 도태우
1. 16살의 소년 가장
도태우 후보는 어린 시절 성실하고 자상하신 부모님 밑에서 가난하지만 밝게 자랐습니다. 이 사진은 시민운동장 앞에 선 도태우 후보의 세 남매입니다. 시민운동장 앞은 도 후보가 아버지와 공놀이를 했던 기억이 사무치는 곳입니다. 어머니는 문학을 좋아하셨고 덕분에 도 후보의 집에는 일찌감치 한국문학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국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로 등단하는데 밑바탕이 되었겠죠. 하지만,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후 생활전선에 나서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3년 뒤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좌반신 불수인 상태로 16년이나 고생하시다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그토록 자상하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마저 쓰러지셨지만, 도 후보는 동생들과 함께 기적처럼 잘 성장했습니다. 훗날 도태우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기적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자랑스러운 정치인이 되어 보답하고 싶습니다.'
2. 인싸였던 고등학교 시절
도태우 후보가 대구고에 입학할 때 쯤에는 힘을 많이 차렸습니다. 2학년 때 학급반장을 하면서 학급 문예지를 만들고, 야구대회 응원단장도 했습니다. 2학년 때 어머니가 쓰러지셨지만, 친척들과 학교에서 도와주셔서 뇌수술을 하시고 어느 정도 회복되셔서 좋았습니다.
이때 도태우 후보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곧 대학에 가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잘 지내게 되고,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세상에 더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 속에 참 열심히, 힘차게 살았습니다. 1987년 학력고사 결과, 도 후보는 대구경북 지역 전체수석을 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욱 각별히 기뻐하고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대구고 동문회와 학교의 도움 속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상경했습니다.
3. 서울대 세 번 입학
도태우 후보는 서울대학교에 3번이나 입학했습니다. 1987년에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공업화학이 커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업화학과에 입학했고, 1989년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의문들을 풀고 문학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대입시험을 새로 쳐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국문과 졸업 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후, 정치철학의 대가이신 김홍우 선생님께 배우기 위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명저 <국가>에서 아테네 사람들은 50세가 되어야 정치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기 위해 언어, 철학, 수학 등 중요한 내용을 공부하고 그 과정을 다 겪은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도태우 후보는 플라톤이 말한 그런 정치인인지 모릅니다. 공학, 문학, 정치학, 법학을 공부하고 지난 5년간 현실정치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능력을 키운 도태우 후보를 이제 보수의 심장 대구, 대구의 심장 중구와 남구에서 국회로 보내주십시오.
4. 마을이 키운 아이, 도태우
도 후보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마을이 키운 아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14살 나이에 아버님을 보내고 정말 많은 분들이 도태우 후보와 가족을 도우셨습니다.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도와주신 부산의 문선생님, 군복무 동안 생활에 보태도록 번역한 책의 인세를 내 놓았던 류 선배, 문학과 인생의 스승 이문열 선생님, 정치의 역할과 임무를 가르쳐 주신 김홍우 교수님, 20년이나 자녀들과 어머니를 돌봐 주신 이모님, 정치활동 후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시며 도우시는 K아재, 2016년 탄핵파동에서부터 긴 세월 시위와 집회현장을 지키며 함께 해 주신 많은 애국시민들이 도태우 후보를 키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지금의 도태우가 있고, 여러분께 보답하는 도태우가 되겠습니다.'라고 도 후보는 말합니다.
5. 지금껏 이런 변호사는 없었다.
중소기업 전문 변호사로 시작한 도태우 후보는 이때부터 이미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후 정치 행보에 있어서도 그는 기회주의나 사리사욕과는 늘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정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2017년 5월 17일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대통령을 유죄라고 믿을 때 변호인단에 합류했고, 그 후 2018년 9월 22일 북한과 망국적 군사협약을 맺은 문재인 대통령을 여적죄로 고발하였으며, 2018년 10월 28일에는 "이 책은 반인도범죄자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했다. 이 책을 일반인들에게 판매·배포하는 것은 납북자 가족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라고 주장하며 김일성 회고록 판매 금지 소송을 하여 판매를 막았습니다. 대구 중·남구에서는 최초의 서문시장 법률자문 위원을 맡고 있고, 현재까지도 코로나와 백신접종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대변인이 되어 힘찬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6. 중·남구의 든든한 아들, 도태우
이제 도태우 후보가 고향인 중·남구의 국회의원이 되려 합니다. 중·남구는 대구의 심장이고, 대구는 우리나라 보수의 심장입니다. 중·남구가 펄떡이며 살아날 때 대구와 우리나라가 같이 살아난다고 그는 믿습니다. 건국의 시작인 국채보상운동, 산업화의 시작인 삼성상회, 민주화의 시작인 2.28 대구학생운동의 발상지가 모두 놓여있는 대구 중·남구에서 정치선진화의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믿음직한 중·남구의 아들, 도태우를 국회로 보내주십시오.
도태우 후보를 30년간 지켜보신 소설가 이문열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을 보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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