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만남
어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길냥이 밥을 챙긴다.
“어딜 가?”
“고양이 밥 주러.”
“울 애기 밥 훔쳐가는 거야?”
“응.”
고양이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반기는 내 손이 막 떨리면서 인상주의 화풍의 사진 한 장이 포착되었다.
만남
이춘희
좋은 만남의 경험들은 우리 삶의 결을 만들면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 11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가을 문학 세미나가 이러한 만남의 장이었다.
만남은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과도 같다. 만남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낯선 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의 만남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로 읽은 책이나 음악, 예술작품과의 만남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길을 걷다가 본 자연 풍경도 일종의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의 순간을 통해 우리는 색다른 감정을 느끼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한동안 원초적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고약한 병으로 만남을 회피해왔다. 모임이나 세미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며칠 전, 행사 때마다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문우 심경애 작가님으로부터 가을세미나 초청 문자를 받았다. 내가 단톡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기에 별도로 연락한 것이다. 가을에 한 번씩 열리는 문학 세미나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서울이라 내 몸이 허락할 것 같았고 꽤 오래 못 본 문우들이 그립기도 했다.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간의 만남이 정말 중요하다. 만남은 단순한 인연을 넘어 마음을 연결시켜준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고 배움을 얻는다. 격월간 수필집을 받으면 일단 아는 사람의 글부터 읽게 된다. 수필을 통해 문우의 근황과 생각, 읽고 있는 책들, 만나는 사람, 가치관과 품격, 삶의 태도와 결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작가가 쓴 글을 통한 만남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 이상으로 친밀도가 높아진다. 수필 문예지가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 합평회를 하고 1년에 2번 이상의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 세미나는 중요한 연간 행사 중의 하나이다.
1박 2일로 진행된 이번 문학 세미나의 열기는 뜨거웠다. 공부와 토론으로 뜨거웠다기보다는 서로의 만남으로 뜨거웠다. 행사는 특강, 글쓰기 소감 나누기를 골자로 하면서도 작가들이 자신의 끼를 한껏 발산할 수 있도록 멋지게 기획되었다. 서울대 명예교수 우한용 교수님의 특강이 끝난 저녁 식후의 장기 자랑은 우쿠렐라 연주, 시낭송, 춤과 노래, 창으로 2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글쟁이들이 이 많은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그맨을 능가하는 문철 작가님의 센스 있는 진행과 김혜수 배우의 낭랑하고 명징한 목소리를 닮은 김기연 작가님의 즉흥적인 춤사위도 인상적이었다. 여흥이 가시지 않은 작가님들은 삼삼오오 호텔방에 모여앉아 별도의 뒤풀이를 했다. 나는 장기 자랑이 끝나자 바로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무리해서 절대 안 되는 ‘귀하신 몸’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다들 일어나 머리를 손질하고 식사 채비 중이다.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다. 제일 일찍 쉬러 들어간 사람이. 그런들 어쩌랴. 내 체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기온이 10도나 떨어졌다. 바람이 몹시 차니 식물원은 가지 말고 얼른 귀가하라는 남편의 독촉에 아쉽지만 컨디션 난조로 더 이상 동행할 수 없다는 문자를 남기고 문우들을 떠나 귀가했다.
나이가 들면서 만남의 질을 고려하게 되었다. 삶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의미 있는 만남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타인의 병고를 폐부로, 피부로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조금씩 만남의 횟수와 폭을 회복하고 있다. 만남은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만남의 대상은 좋은 사람, 양질의 책, 고전 음악, 그림, 길에서 만난 고양이, 나무 우듬지의 까치 등등을 망라한다.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간다. 탁상 달력을 넘기다가 한 장의 그림에 시선이 꽂힌다. 미국 인상주의 화가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 1859-1935)의 <Rainy Midnight>(1885-1899)이다.
비 오는 날, 인적이 드문 거리에 마차 한 대가 달린다. 마차 위 인물의 흐릿한 뒷모습과 비오는 밤이 고요와 적막감을 조성한다. 반짝이는 가로등과 빗길에 반사된 빛의 움직임이 도시의 바쁜 일상과 함께 소외되는 인간의 고독감을 표현한다. 차가운 공기, 상체를 조금 수그린 남자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불빛은 도시 고유의 활기를 품고 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이다. 인상주의는 기존의 전통 회화 기법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시도로 시작되었다. 특징은 순간의 인상 포착, 빛과 색채의 변화 강조, 짧고 거친 붓질, 강력한 색채, 일상 주제와 현대적 풍경,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주관적인 표현으로 순간의 감각과 느낌을 중요시한다. 사진이 발명되고 사진이 세부적인 묘사를 담당하게 되자 일부 화가들은 감각적인 인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택하게 되었다.
지금 한 주에 한 편씩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인상 깊은 순간을 포착하여 굵은 선으로 삶을 스케치하는 글쓰기는 반짝이는 일상의 기록이자 글쓰기의 원형이다. 감각적인 인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내 글이 인상주의 화풍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첫댓글 세미나에서 뵈어서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ㅎㅎ
항상 건강 먼저 챙기시고 그래도 시간이 되시면 종종 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반가웠습니다. 따듯한 관심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