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상처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 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
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을 울었다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다리 아랜 여전히 강이 있었다.
이 시를 감상하며, 이 시를 읽는 묘미는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라는 돌발적 언어이며 다리 아래 강은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인이 바라보는 강은 다리 아래 여전히 있는 강이 아니라 심장이
터질 것같은 한여름 폭양 아래 핀 사랑이라는 붉은 강이며(붉은 꽃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나와 너 사이를 무너뜨린
지금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부재하는 다리이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약 또한 세상에 없는 상처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빙초산을 뿌리며 달려들 것만 같은 어느 심란한 가을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화자가 지금은 내 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랑의 부재를 확인할 때나 그 이전에도 다리 아래 여전히 흐르는 강이 있었다는 각성이며 그러한 내면의 성숙을
통해 상처도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는 소리를 내며 우는 은은한 슬픔을 한편의 서정시로 승화하고 있다는
사실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