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36 ― 500년 된 잉카의 소녀미라를 위한 아가(雅歌)
내게 입 맞추기를 바라니 네 사랑이 석류(石榴) 속 잇바디보다 붉게 젖었구나 나는 자면서도 톡! 톡! 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예루살렘의 딸아 피부가 흑요석처럼 검고 아름다워서 나는 은하수가 은성(殷盛)한 한 채의 밤,
송곳니가 자개처럼 굳고 아름다워서 나는 갈기를 세운 한 채의 늑대
보아라 너와 내가 쉴 침대의 지평선에 저렇게 인주(印朱)빛 초승달이 뜨고, 광야가 뜨고, 얕은 새들이 뜨고, 낚시미늘 같은 대상(隊商) 두어 떼가 뜨고 있다 내 누이 내 신부(新婦)야 청혼 전부터 네 혀에는 수금(水禽)이 노는 갈릴리호수가 있고,
밀화와 법랑의 목덜미에는 흰 창포와, 흰 박하와, 흰 침향목이 자란다
네 소란한 머리칼은 청금과 흑금의 이슬밭을 둘렀다
드디어 네 젖가슴과 젖꼭지는 백합의 알뿌리처럼 밝고, 잔디를 디디는 어린 사슴의 발굽처럼 향기롭다
네 허리는 탄식하듯이 느리고 가늘다 네 강의 하구(河口)가 레바논의 상아망루처럼 부풀다가 어느새 바빌론시(市)의 우기(雨期)처럼 범람하는구나 내가 청의를 벗었으니 다시 입겠으며, 내가 유향(油香)으로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히겠느냐
너는 다만 울 듯이 왼손으로 내 이마를 받아 괴고, 다만 계수(桂樹)의 꽃향기를 싸서 접듯이 오른팔로 내 허벅지를 안을 뿐이다 여인의 무리 가운데 어엿브구나 내 사랑아 네 몸알의 어엿븐 초분(草墳) 위에 운석(隕石) 하나가 빗금을 그으며 내렸다
날이 저물고, 돋을볕 서고, 또 날이 저물어서, 내가 차라리 몰약(沒藥)의 작은 언덕과 사향(麝香)의 작은 언덕으로 간다
- 오태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