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부상당한 남자(L'homme Blesse)’, 1
844∼1854·년, 캔버스에 유채, 81.5×97.5㎝, 오르세 미술관, 파리.
칼에 찔린 듯한 상처를 입은 남자가 나무에 기댄 채 피를 흘리고 있다. 얼굴에는 고통과 슬픔이 서려 있다. 하얀 셔츠는 가슴 쪽에서 뿜어 나오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한 손으로는 망토를 붙잡고 있지만 그가 살아날 가망은 없어 보인다. 그는 왜 다친 걸까?
‘부상당한 남자(L'homme Blesse)’(1844∼1854·사진)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25세 때 처음 그린 자화상이다. 그를 다치게 한 건 다름 아닌 화면 왼쪽에 놓인 자신의 칼이다. 칼의 손잡이 모양은 뒤집어진 C자 형태로 이는 쿠르베(Courbet) 이름의 첫 글자를 의미한다. 상처 입은 그의 표정과 모습은 화살과 곤봉을 맞아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도상을 참조했다. 그러니까 화가는 자신을 순교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에게는 붓이 무기고 칼이다. 핏자국은 물감이다. 망토를 움켜쥔 손 모양은 마치 팔레트를 잡은 것과 흡사하다. 쿠르베는 지금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붓(그림)에 상처 입고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다친 남자의 머리와 상체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기에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테다.
원래 그림에서는 그의 어깨에 기댄 여자를 한 팔로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낳은 버지니 비네를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10년쯤 지난 후 쿠르베는 그림에서 여자를 지워버렸다. 그 대신 칼과 붉은 핏자국을 그려 넣었다. 비네와의 오랜 관계를 끝내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표현한 것이었다. 여인을 지우고 칼을 추가했다는 건, 사랑보다 예술을 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못난 면과 잘난 면이 있다. 쿠르베는 화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사랑에도 실패한 자신을 스스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터. 어쩌면 이 자화상은 못난 과거를 잊고 혁신적인 예술을 통해 낭만적이면서도 영웅적인 남자로 거듭나고픈 욕망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프랑스의 화가,
1006x1410cm © Scewing / wikipedia | 원출처 Public Domain.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19 세기 프랑스 회화에서 사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리얼리즘 화가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데 전념한 그는 학문적 관습과 낭만주의를 거부했다. 그의 독립적인 작품 활동은 인상파나 입체파 같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쿠르베는 19세기 프랑스 회화에서 혁신가이자 작품을 통해 대담한 사회적 발언을 한 예술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쿠르베는 1840년대 말과 1850년대 초에 그린 그림으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쿠르베는 전통적으로 종교적 또는 역사적 주제의 그림에 주로 사용되던 웅장한 스케일로 이상화되지 않은 농민과 노동자를 묘사함으로써 관습에 도전했다. 이후 쿠르베의 그림은 대부분 풍경, 사냥 장면, 누드, 정물화 등 노골적인 정치적 성격이 덜한 작품들이었다. 사회주의자였던 쿠르베는 프랑스의 정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71년 파리 코뮌에 연루되어 6개월간 투옥되었고, 1873년부터 4년 후 사망할 때까지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쿠르베는 독립성,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인해 오만하다는 평가를 당대에 받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전통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 인간 역시 나무나 돌처럼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그라, 인간을 웅장하게 그리는 역사화를 조롱키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세계관은 파산했고, 쿠르베에 대한 평가는 높아졌다.
프랑스의 화가로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겠다며 천사를 그려달라는 요청에 '천사를 내 앞에 데려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래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절망하는 남자(The Desperate Man)’,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Bonjour Monsieur Courbet)’, ‘화가의 아틀리에(화가의 작업실(The Painter’s Studio))’,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 Breakers)’,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 등이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절망하는 남자(The Desperate Man)(자화상)’, 1843-1845년.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자화상’.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화가의 작업실(The Painter’s Studio) ’,
1854~1855년, 캔버스에 유채, 361×598㎝,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Bonjour Monsieur Courbet)',
1854년, 몽펠리아 파브르 미술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 Breakers)’,
1849년, 159㎝×259㎝, 캔버스에 유채, 1849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소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 ‘잠자는 사람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7월 18일(목)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