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과 소음은 믿음의 증거가 아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8~19) 안식일 준수자 일부가 광신주의 정신에 물들었다. …그들은 진리의 샘물을 가볍게 한 모금 홀짝였을 뿐 셋째 천사의 기별에 담긴 정신은 알지 못한다. 광신적인 시각이 바로잡히기 전까지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1854년 운동의 가담자 중에는 ‘악인의 부활이 없다.’ , ‘다가올 시대가 있다.’는 등의 그릇된 견해를 들여온 이들이 있다 . 그들은 이런 견해와 자신들의 지난 경험을 셋째 천사의 기별과 엮으려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함께 어울릴 수 없다. 악인의 부활이 없다거나 다가올 세대에 대한 그들의 특이한 견해는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사탄이 마지막 때의 이설들 속에 짜 넣은 심각한 오류이다 . 이런 오류는 하늘의 기별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은사들’이라 일컫는 활동을 벌이며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교회에 주셨다고 말한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고 자신들이 칭하는 무의미한 소리를 지껄이는데 인간은 물론 주님도 온 하늘도 그 뜻을 모른다. 이런 은사는 사람들이 대기만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것이다. 광신주의, 가짜 흥분, 가짜 방언, 요란한 동작이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은사로 여겨져 왔다. 이 부분에서 속은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광신주의와 야단법석이 믿음의 특별한 증거로 여겨졌다. 강렬하고 신나는 시간이 없으면 집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집회의 감화는 유익하지 않다 . 바른 근원에서 비롯한 행복이 아니기에 들뜬 기분이 가시고 나면 집회 전보다 기분은 더 가라앉고 만다. 영적인 성장에 가장 유익한 집회란 엄숙하게 마음을 깊이 살피며 자신을 알고자 하면서 간절하고 매우 겸손하게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집회이다. 『교회증언 1권』, 411~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