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마당에 피워낸 꽃)
다시 첫눈이 내리면
김 난 석
지금도 바닷가의 그 도시에 가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은밀한 바람소리를 들을게다.
내 슬픈 기억의 편린. 질곡 속에 옷을 벗어 내리는
여인이여! 아, 슬픈 나의 소냐여!
얼마 전 오랜만에 세 글벗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나온 삶의 뜨거웠던 열정들을 굴곡진 시대의 길바닥에
한참이나 하얀 거품으로 쏟아내었다.
그러다가 차 한 잔 앞에선 숨을 죽이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중년이후 점점 세월이 가면 하나씩 비워갈 수밖에 없으니,
담배를 끊는 게 일망(一忘)이요 술을 끊는 게 이망이요
여자를 끊는 게 삼망이요 맨 마지막으로 끊는 게 곡기(穀氣)라는데,
그게 바로 사망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나누곤 한참이나 웃어댔다.
그러고 보니 나로선 담배는 끊은 지 오래고
술도 한두 잔만 마시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여자야 내 집 꽃밭에 물을 주어본 지도 오래니
사망에 이르지 않으려면 곡기라도 잊지 않고
꼭 챙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것보다 나에겐 오매불망, 잊을 수없는 서넛의 기억이 있으니
그 중 하나는 나의 슬픈 소냐를 만났던 일이다.
젊은 시절 레미제라블의 자벨경감 역을 맡아
항구도시 부산의 어느 무대에 올라선 늦은 가을날,
임시 묵고 있던 숙소에 한통의 쪽지가 들어왔다.
어느 기관장이 그곳 집단창녀촌의 포주(抱主)에게 정식영업허가증을 내주고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고 있으니 단죄하라는 것이었다.
날이 밝자 우선 그곳에 잠행해보기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머뭇거릴 것도 없이 가리켜주었다.
곧바로 접근하여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관계기관에 들려
이런저런 정황을 탐색해 들어갔다.
저녁 여덟 시 쯤 이었을까, 묘령의 여성으로부터 숙소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의 실태에 대해 제보하겠으니 만날 수 있으면
자세히 이야기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어느 호텔의 커피숍을 만날 장소로 정하고
잠시 기다리니 미모의 여성이 나타났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으려니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기색이기에 호텔 방을 빌려 들기로 했다.
처음엔 맹물만 마시더니 술 한 잔 하고야 말문을 열었다.
두 잔을 거푸 마시고는 솔솔 이야기를 풀어댔지만
맥주병은 금세 비어졌다.
술 한 병을 더 할 수 있느냐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양주 한 병이 들어왔지만
이야기를 마친 후 마시자고 밀어두었다.
결국 그곳의 상황을 다 듣고 난 다음에 서로의 사정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갔다.
집창촌의 실태야 직접 확인해 들어가면 밝혀지겠지만
그녀의 개인사정은 가정과 사랑에 결손이 생겼다거나
사생아를 부양하고 있다는 것 등으로
통속잡지에도 흔히 나오는 이야기이니
확인할 것도 아니요 다 인정할 것도 아니라고 접어두었지만,
사람의 생혈(生血)을 빨아대는 건 모기 전부가 아니라
그 중 일부의 암컷이 몸속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한 것이란 생각을 하니
집창촌에 있는 그들 전부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의 슬픈 누이들이 아니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는 죄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성스러운 창녀 소냐로 부터 구원을 권유받는다.
소냐는 그의 십자가와 성경책을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쥐어준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를 열어보지도 않았지만
소냐의 감화에 죄를 털어놓고 속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이 죄인이 된 사연을 회상하면서
때 묻은 영혼을 씻기에 몸부림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구원의 길을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밤새 죄인의 입장이 아니라고 항변할 뿐이었으니,
이것이 전부였으며 그리곤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늘만이 알 뿐...
이튿날 아침 여섯 시 경,
본능적으로 황급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인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지난 밤 마셨던 양주병은 모두 비워졌으며,
나의 양복과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는 가지런히 옷장에 걸려있었다.
그 것 뿐이었지만 어찌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아침은 비교적 포근했는데도 첫눈이 살짝 내려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신선하기만 했다.
관계기관에 들려 차근차근 확인해보니
지난 밤 그네가 이야기 한 상황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네들이 스스로 갱생조직을 만들어 운영해나갔고,
관계기관은 신상이동상황 파악과 검진 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연령에 따라 수입금이 삼천만원 내지 오천만원에 이르면
강제로 탈퇴시키고 있었으니,
그런 조직의 부회장을 이 여인이 맡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그들의 신상카드를 뒤적이면서
사진이며 주소며 이력들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이 조직에 더 이상의 손질은 오히려
파리를 사방에 날려 보내는 꼴이 되고 말리란 생각을 하고
아무 말 없이 물러나고 말았으나
이미 그들의 내밀한 곳을 다 들여다본 꼴이 되었고,
그들 모두를 대신한 한 여인과 은밀히 밤을 함께 한 뒤였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굴곡진 사회에 의해 심신이 비틀어졌다가
성직자나 창녀에 의해 구원을 받는데,
우리는 모기와 닮은 원죄의 씨앗인지도 모를 일이다.
원죄의 씨앗은 아니더라도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한
원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단죄하기 위해 왔노라고 항변만 했으니 그런 것이었던가...
아름다운 여체는 풋사랑의 대상만이 아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한 것. 그들도 기회가 주어졌다면
사라지지 않는 영상으로 치환되었을 것을...
지금쯤 그녀는 그 약속을 다 지켜냈는지...
영혼은 위안을 찾았는지... 내 슬픈 소냐여!
올해도 막바지의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얼마 안 있으면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내리고 다시 첫눈도 내리려니,
이제 남녘으로 나들이할 때면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그곳 허심청(虛心淸)에도 들려 몸도 마음도 말끔하게 씻어 내려야겠다.
(지난날의 단상 중에서)
유곽의 맛을 아는가.
조개껍데기에 된장과 고추장으로 버무린 조갯살을 소로 넣고 구워 낸
향토음식이 유곽이다. 반찬으로 술안주로 별미인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알리라.
향토음식 유곽 말고 가슴 아픈 유곽(遊廓)도 있으니
몸 파는 여인들이 모여 있는, 소위 홍등가를 말한다.
몇 해 전 인천 미추홀에 마지막으로 남은 옐로우하우스를 폐쇄하면서
그곳에 생활근거를 뒀던 여성들에게 정부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로
진통을 겪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2018. 8. 22. 경인일보)
유곽이라면 과문하다 해도
몇몇 지역이 떠오른다.
젊은 날 찾아봤던 위 부산의 완월동이 그렇고
대구의 자갈밭이 그러하며
대전의 중동 10번지가 그렇고 서울의 미아리나 청량리 588이 그러하다.
허나 그 역사야 성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던가.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예수의 이 말은 간음한 여성에게 돌을 던지려던 남성들에 대한 경고였다.
욕정에 못 이겨 간음한 여성이나 남성은 그렇다 치고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 몸을 판 여성(요즘은 남성도 있다한다)들에 대해선
어찌 한단 말이냐...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어린 이야기들이기에 아플 뿐이다.
자갈밭에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
2022. 7. 11.
첫댓글 유럽에서는 사업자등록증을 내주고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는나라가 늘고 있습니다.
.
.단속해봐야 어차피 지하조직의 자금줄이 되니까 법의 보호하에...
.
.그래서 인신매매가 없어졌다고...
그렇군요.
그게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고
가난의 산물이기도 한데
영원한 술래잡기일겁니다.
@석촌 이 사업은 자금도 많이 필요없고 불황도 없으며 본인의 능력에 따라 재벌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흠
@음유시인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게요.
그게 선진국이라고 다를게 없는것 같습니다.
@석촌 선진국중엔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특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남자들의 관광코스(구경만)...
@음유시인 맞아요
그게 파리를 쫒는다고 쫒아질 일이 아닙니다.
자벨경감역을 맡으시곤 소냐를....
어사 박문수를 떠올리며 한번더
찬찬히 글을 읽었습니다.
80년대 초반 처음 미국에 갔었을때
친구가 가있다는 보스톤의 외각
소도시를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미군부대가 있었고 동두천의
미2사단에 병력을 파견하고 철수하는 업무를 관할하는 부대였읍니다.
그러다보니 미군과 국제결혼을 해서
그곳에온 양공주촌 출신의 아낙네
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었죠.
그들의 대부분은 저학력으로
영어도 서툴고 아직 미국생활에
익숙치도 않고 . ...
몇년만에 한국에서 젊은오빠(그당시
30대초반의 새신랑 이었으니)
왔다고 너댓명이 먹을것 한접시씩
싸들고 찾아와서 밤새도록 하소연 하는 이야기중에는.....
석촌님 덕분에
나름대로의 소냐를 상상해 봅니다.
아이구우, 부끄럽게도...ㅠㅠ
80년대, 아마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테지요...ㅎ
그녀를 본순간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양주) 너무 마셨기에 그녀의 샤워소리를 들으며
잠들어버린 평생 후회스럽고도 남을 기억이 제겐있습니다
ㅎㅎ
너무 많이 마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