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배달합니다
지난해 5월, 충북 제천 우체국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삐뚤빼뚤한 글씨. 받는 이 자리엔 번지도 없이 달랑 '충북 제천시 용두동 할아버지께'라고 적혀 있었다. 보낸 이 역시 이름도 없이 '대전 우성 유치원'이라고만 돼 있었다. 당연히 반송되어야 할 우편물. 그러나 집배원은 어버이날을 맞아 할아버지께 편지를 쓴 어린 동심의 예쁜 마음에 또 편지를 받아 보고 기뻐할 어르신의 얼굴이 떠올라 번거로움을 감내하기로 했다. 그러곤 114에 문의,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예, 여기 제천 우체국인데요. 그쪽 유치원에서 보낸 편지에 주소가 제대로 안 나와 있어서요." "어머, 죄송해요. 제가 편지를 일일이 확인 못했네요. 뭐라고 적혀 있죠?" "제천시 용두동이라고만 나와 있어요. 할아버지집이 그쪽인 꼬마가 누구인지 좀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데…." 잠시 후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린이 이름은 유영재. 아이네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영재 어머니도 시아버지댁 주소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할아버지 성함과 하소동 파출소 부근이 집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집배원은 탐문 수사를 하듯 파출소 부근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동네 사람을 만나 묻기도 하고, 노인정에 들르기도 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꼬박 발품을 판 끝에 허름한 단독주택에 사는 60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허, 고 녀석, 이젠 한글 다 떼었나보네" 하며 편지를 받아들곤 환하게 웃었다. 대전 우송 유치원에서 제천 우체국으로 감사의 카드가 전해진 건 지난 연말. "집배원 아저씨 덕분에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대가가 없어도 자신의 맡은 바를 충실히 한다'는 것이죠. 이름도 모르지만 영재의 편지를 배달해 준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이름도 모르는 집배원은 이학성(33)씨다. 올해로 집배원 생활 6년째를 맞았다. "여긴 시골이라 주소를 대충 적어 보내는 편지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일해요." 요즘 농촌이 다 그런 것처럼 제천에도 홀로 사는 노인이 많다. 그들에게 이씨는 한국전력 직원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전달할 땐 이씨가 아예 전기료를 받아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 그가 구역을 바꿔 다른 곳으로 우편배달을 가면 때때로 노인들이 우체국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단다. "아, 왜 전기 요금 받으러 안 와!" 까막눈인 노인들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것도 이씨의 몫이다. 취재진이 제천에 내려간 지난 15일, 공교롭게도 한 할머니에게 미국에 사는 아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 핵교 문턱도 못 가보았으니, 어서 뜯어봐." "어머니, 추운 날씨에 잘 지내시는지요. 저희 네 가족은 몸 건강히…." "아, 좀 천천히 읽어. 그래 가지고 뭔 말인지 우예 알겠어." "아이 할머니, 저도 빨리 다른 곳으로 배달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안 읽겠다는 거야, 이눔아." 이씨가 편지를 다 읽자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곤 이씨를 쳐다보며 "편지 보낸 막내아들이랑 똑같이 생겼어"라며 얼굴을 비볐다. 부엌 아궁이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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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배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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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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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소
19.01.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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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하루가시작돼는군요
즐겁고행복하게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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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행복하게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