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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최대집' 조차도 파업 전날에는 정부와 타협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를 걷어차고 지금까지 투쟁을 주도해 나가는 것은 젊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다. 파업 참여율에서도 의대생>전공의>전임의>개업의 순으로, 연령이 낮으면 낮을수록 조직율이 높게 나타난다.
[1-2] 「주 80시간 노동하는 전공의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던가, 「비인기과의 낮은 수가」 같은 이슈는 쉽게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구호임에도 투쟁의 전면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오히려 전면에 도드라지는 구호는 공공의대 만들면 현대판 음서제가 된다던가, 정부가 북한에 의사 퍼주려고, 혹은 전라도에 의대 하나 만들어주려고 일을 벌인다는 쉽게 논박 가능한 가짜뉴스 수준의 프로파간다 뿐이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은 진지하게 이런 주장들을 생산하고, 또 퍼나르고 있다.
[1-3] 뭔가 이상하다. 젊은이들이 파업에 나섰다길래,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순 궤변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모두 실패한다고 가정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만 고르고 골라 투쟁의 당위성으로 끌어다 삼는다. 이런 질 낮은 논리에 여론이 등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차가운 여론 속에서도 이 젊은이들은 뭔가 악에 받힌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궤변을 반복한다.
[1-4] "한 해 이과 수험생 중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뽑은 3000명의 수준이 겨우 이거 밖에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바보짓을 하는게 아니다. '의사'라는 안정적 일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을 고통받으며 경쟁해왔고, 결국 승리했는데, 그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밥그릇 투쟁이 맞지만, 한가지 더 있다. 한 세대를 구분짓는 이데올로기의 전면화이자, '청년 인텔리 우파'의 등장이다.
[2-1] '이데올로기의 전면화'이며 '새로운 우파의 등장'이라고? 단순한 밥그릇 싸움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표창원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리버럴과 좌파들은 흔하게 사회 부적응자들이 일베의 사상에 물들며 청년 우파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일베와 청년우파를 다룬 많은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일베'를 구성하는 인구학적/생애사적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주1)는 대부분 실패했다. 오히려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건, 사회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청년도 일베의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2] 내가 살아오면서 본 수 많은 청년 우파들 상당수는 학창시절에 부모와 교사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더 많은 파이 획득을 위한 무한 경쟁 체제를 '삶의 순리' 혹은 '게임의 규칙'처럼 받아들인 이들이다. 이들이 이 게임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경쟁을 삶의 순리이자 게임의 룰로 받아들인 이상, 이 룰을 위협하려 하는 이들은 모두 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게임의 규칙'을 위협하는가, 바로 '평등'이니 '진보'니 하는 것이다. 조금 이해 되었는가?
[2-3] 수능 몇 달전 정신차리고 바짝 공부해서 서울대 붙는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 과거 엘리트와 현재의 엘리트는 마인드 셋 자체가 다르다. 지금 의대생과 전임의를 이루는 세대들은 (80년대 이전 학번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노력과 인내, 그리고 이 고통의 끝에는 밝은 미래가 있을거라는 자기암시를 통해 그 자리 위에 올라선 이들이다. 70만명이 일렬로 등수매겨지는 수능에서 이과 상위 3000명에 든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렇게 간 의대에서도 공부와 경쟁은 끝이 없다. 그러나 이는 고통스럽지만 견딜 수 있다. 이들에게 경쟁은 당연한 삶의 순리거나, 게임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삶에는 경쟁과 노력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들에게 '시민단체 추천 전형'(가짜뉴스(*주2)다)이라던가 '조국 딸의 의전원 입시 비리 의혹', '농어촌 특별전형' 같은 건 그간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 '평등'을 이야기하는 '진보'와 '진보세력'이란 냉소(*주3)가 아니라 '뜨거운 분노'다. 그렇기에 극우 유튜버나 할 법한 가짜뉴스에 동조하며 대중성 없는 투쟁을 의심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낙오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냉소하지만, 이들은 짱짱센 '의사'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 목숨을 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다.
[2-4] 저들이 억울해하며 울부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의사정원 증가 반대투쟁은 기본적으로 밥그릇 투쟁이지만 '노력에 따른 대가'라는 '삶의 순리' 혹은 '게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밥그릇 투쟁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주 80~100시간 노동은 참아도 의사 정원 10% 증원이나 '전라도 공공의대'는 불공정이라며 못 참는다. 평생을 경쟁속에서 살아왔고, 결국 승리한 이 젊은이들을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건 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사는게 옳은 삶이라고 말해온 건 그들의 부모와 선생, 그리고 교수들이지 않은가. 이들의 투쟁이 신기할 정도로 대중성과 엇나가는 까닭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좁고 고립된 사회를 의심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이 의사/의대생들이라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론] 사실 이런 '인텔리 우파'의 징후는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던 이화여대 학생들의 점거투쟁 때 부터 보였다. 그들은 학내 정치집단을 포함한 외부세력의 '다른 의도 있는' 개입을 엄금했으며, 결국 학벌 기득권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에 반대하던 수많은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걸 "요즘 젊은이들은 더 이기적이다" 혹은 "엘리트 주의"라고 단순화 하긴 어렵다. 이 '현상' 혹은 '이데올로기'는 좀 더 생애사적 맥락에서 구성된다.
'생애사적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은 정치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농부의 아들이 전쟁통에 국군에 징집되어 반공전사가 되어 전역하게 되는 것과 닮아있다. 분노한 이 젊은 의사들의 학창시절은 전쟁과도 같은 트라우마 였을 것이고, 의사/의대생이라는 지위는 이들에게 무공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의 울분과 비이성을 이해해야만, 현상을 바로 볼 수 있다.
의사들도 알고보면 가난하고 불쌍해서 저렇게 투쟁한다느니 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나이브한 관점은 제발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그들을 연민해달라고 쓴 글이 아니다. 그 반대다. '경쟁'과 '시험'이 이 불안안 세상의 유일한 '정의(justice)'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끊임없이 교육되고 있으며, 사회 진보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 언제고 튀어나와 인생을 건 반동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젊은이들은 경쟁과 시험으로 점철된 자신의 젊음을 보상받고, 또 이 젊음이 옳았음을 인정받기 위해 우파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젊고 진보적인 사람이라면, 2020년 젊은의사/의대생들이 보여준 저 비이성과 분노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이다. 당신은 앞으로 평생 저런 또래 우파들과 싸워야만 할테니까.
어쩌면 이게 우리의 시대정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때 '반공'이 그랬던 것 처럼.
이게 지금 사회로 나오는 고학력계층들의 마인드일수도있겠네요
첫댓글 알앗는데 의사가 천룡인은 아니지...
사회적 균열이 정치적 균열과 정당 체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 차원의 art of manipulation이 요구되죠.
만약 저대로 정치 균열이 정착된다면 사회적 합의 대신 정치적 이득과 일부 사회 집단의 배제를 추구하는 강성 정치 팬덤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겠죠.
우파 좌파가 아니라 내거 내놓기 싫은거죠 뭐 근데 그게 어쩌면 당연한걸수도 공익적인 마인드로 내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나눠줄수 있는 사람이 이세상에 얼마나될까 더구나 우리나라 처럼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저조차도 이번 부동산과 수도이전에 내 이권이 걸려있어서 민주당의 개똥같은 정책에 반감이 없었다면 의사들의 저 반발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막상내가 저들보다 먼저 통수를 맞아보니 의사들의 맘이 쪼금은 이해가 감
동감입니다.
방법자체가 병맛이고 마인드가 다 드러났지만 누군들 자기 밥그릇에 민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이미 그런 인식을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잘난 의사쌤이 아니라서 표출을 못할 뿐이죠.
얼마 전 나가신 학살님이 가지던 인식(제 또래도 대체로 그런 식으로 사고 많이 하는듯)만 봐도 사회 내 청년 세대 중 분위기 주도하는 치들의 인식이 어떤지 대략적으로 보여집니다
솔까 고학력 인플레 속에서 맘속에선 정치적으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청년 세대가 많을 겁니다
그게 시대정신 맞을걸요
물론 의사들만의 엘리트 의식은 별개로 원래부터 있던 거지만요
(이건 전문직에 들어간 청년 세대가 기존에 존재하던 엘리트주의를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던 집단행동, 차별의식 표출을 대놓고 하는) 자기들 방식으로 흡수했다고 보는게...)
과거 세대와 달리 사회가 ㅈ되든 아니든에 대한 고려는 제끼고 고생하는 것은 그냥 안 참는 게 트렌드이죠
다만 의사들은 사회적으로 봐주는 게 많았으니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으니 여차하면 사표 쓰고 런하는 형식이 일반적인 듯 하네요
근데 어차피 과거에는 올바른 척, 고상한 척 하면서 가면 쓰고 내밥그릇 지키던 거 이젠 대놓고 하는 거 정도의 차이일 뿐인 것 같죠
의대생들은 단순 이익추구 집단일 뿐, 정치세력이나 추구하는 이념이 있는 집단은 아닌데 그걸 왜 우파라 부르는 지 모르겠네요 만일 박근혜나 이명박 정부에서 의대생 증원을 추진했어도 의대생들은 이번과 동일하게 행동할 텐데, 그때는 좌파라 부르실 건가
그때 증원추진했다가 그만둔다는 구두약속만 듣고도 파업접었던게 저 계층이거든요 ㅎㅎ
@racoon 의사들이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고 봐야죠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때는 로비질과 인맥만으로도 정책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의사협회에서 파업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보수정권시절에 의료 민영화가 시도될 때, 또는 원격의료가 시도될때 마다 개업의들의 반발이 엄청났지만,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서 스스로 중단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설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 정부는 로비질 정도로는 정책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집단행동으로 나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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