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제 27 장 아직까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 유상목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껏 눈을 돌릴 틈도 찾지 못하고 귀로만 인식하던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며 터져 나오던 비명은 아들 유화성이 이곳까지 뚫고 오며 베어버린 적도들의 비명인 것 같았다. 그걸 증명하듯 유가검보 검대원들의 복장이 아닌, 관중들로 변장한 차림의 사내들의 시선이 한 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 이놈!” 흑령권 초강용도 그걸 깨닫고 두 눈 가득 노기를 뿜어냈다. 그 노기가 고스란히 주먹을 통해 터져 나왔다. 퍼엉- 훨씬 더 짙은 흑무속에서 폭음이 울렸다. 찌이잉- 부친 유상목을 옆으로 밀쳐낸 유화성의 검에서 날카로운 검명이 울렸다.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는 검명은 어느덧 폭음을 집어 삼키고 흑무마저 흩어버렸다. “아들이 오히려 낫군!” 흑령권의 신형이 흑무 속에서 나타나며 비릿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아버님!” “화성아!” 유상목은 고함을 질렀다. 고함소리는 재차 터지는 폭음에 묻혀 버렸다. “어린놈이 대단하구나.” 다시 한 번 격돌한 초강용은 어쩔 수 없는 감탄 한 마디를 토했다. “노물, 당신 역시!” 똑같이 받아친 유화성이 이번에는 선제공격을 하며 날아들었다. 유화성의 청풍검에서 표풍광망의 초식이 펼쳐지며 그물 같은 빛무리가 초강용을 덮어갔다. “어림없는!” 콧방귀를 뀐 초강용이 쌍 권을 각각 두 번씩 내갈겼다. 퍼퍼퍼펑- 연속적으로 네 개의 폭음이 터지며 흑무와 광망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광망 한쪽이 찢기고 흑무 한 자락도 싹둑 잘려나갔다. “윽!” “으음!” 각각 답답한 신음 한 줄기씩 토한 두 사람은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때 유화성이 유상목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아버님! 제가 다시 한 번 공격하면 아버님께선 몸을 피해 철무전(鐵武殿)으로 가십시오. 곧 뒤 따라 가겠습니다.> 유화성의 전음에 유상목은 움찔 신형을 굳혔다. 전혀 입술을 움직인 것 같지 않았는데도 유화성의 전음은 또렷하게 귓전에 전해졌다. 그건 자신으로서는 불가능한 경지였다. 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장남의 그런 경지에 유상목은 희열에 앞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아니다. 이자는 내가 맡을 테니 너는 남은 대원들을 데리고 철무전으로 가거라.> 유상목은 최대한 은밀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유화성 만큼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는 전음술 이었다. <아버님. 이젠 제 부탁도 좀 들어 주십시오.> 유화성이 애원하듯 다시 전음을 날렸다. ‘화성아!’ 유화성의 전음에 유상목은 가슴속으로 피눈물이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유가검보의 다음 대를 이끌어 갈 강한 아들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묵살시킨 부탁이 대체 몇 번 이었던가? 결코 미워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섬세한 심성을 가진 아들이 얼마나 가슴에 못이 박혔으면 이런 순간에서조차 그런 말을 토하는가? 그런 마음에 유상목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수작들이냐?” 유상목이 전음을 날리는 것을 눈치 챈 초강용은 한 소리 고함과 함께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젠 그의 주먹이 시커멓게 물이 들어 있었다. 흑령권이란 별호는 일 권을 내지를 때마다 그 주먹에서 흑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지은 것이기도 하지만 초강용이란 이름 앞에 그 별호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지금처럼 그의 주먹이 검은 색으로 변한 데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였다. 최근에는 그의 주먹이 저렇게 검은 색으로 변한 적이 없었다. 팔성 이상의 공력이 주입되었을 때에야 그의 주먹은 흑색으로 물이 드는 것이다. <어서요, 아버님. 아버님께서 살아 남으셔야 대원들도 살아납니다.> 다시 전음을 날린 유화성은 청풍검을 휘둘렀다. 청풍검에서 한 줄기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표풍일섬의 초식이 내뿜는 검기였다. 그러나 그 검기에는 표풍일섬과는 뭔가 다른 기운이 내포되어 있었다. 유가검보 표풍검법 최후의 초식인 표풍무형이었다. 초식의 경계가 무너지며 표풍일섬속에 표풍답설이 숨이 있을 수도 있고 표풍광망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가소로운!” 이미 한 번 표풍일섬의 공격을 받아본 초강용은 조소와 함께 오른쪽 주먹의 각도를 묘하게 꺾으며 유화성의 가슴을 갈겨갔다. 초장용의 먹구름 같은 권풍이 유화성의 가슴에 작렬한다 싶은 순간 표풍일섬의 검초 속에서 폭죽 같은 검기들이 온 세상을 뒤덮은 듯 뻗어 나왔다. 표풍만리! 표풍무형에 의한 초식의 경계가 무너지며 표풍일섬 속에서 표풍만리의 검초가 쏟아진 것이다. 전혀 예상 못했던 공격에 초강용의 얼굴이 주먹과 같은 색이 되었다. 우권을 급히 회수한 초강용이 쌍권을 어지럽게 교차하며 연달아 여섯 번의 주먹을 후려쳐갔다. 고막을 터뜨릴 듯한 폭음이 울리며 흑무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그 순간 한 개의 그림자가 흑령권을 향해 돌진했다. “크윽!” “큭!” 두 개의 짧은 비명이 터지며 흑령권 초강용과 유상목이 한 몸뚱이처럼 얽혔다. 초강용과 유화성이 격돌한 후의 빈틈을 노려 유상목이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친 것이다. “이, 이……!” 자신의 심장 깊숙이에 박힌 유상목의 검을 보며 초강용은 불신 가득한 눈으로 신음을 토했다. “이런 개 같은…….” 초강용의 주먹이 이미 시커멓게 죽어 들어가고 있는 유상목의 가슴을 향해 다시 들어올려졌다. 쐐액- 일순 넋을 잃고 있던 유화성의 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초강용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굴렸다. “아, 아버님……. 아버님, 왜?” 유화성이 절규하듯 외쳤다. “왜… 왜, 제 마지막 부탁마저 안 들어 주시는지요, 아버님. 크흑!” 유화성이 허물어지는 유상목을 안으며 절규를 토했다. “화성아… 내 아들아…….” 유상목이 자꾸만 굳어져가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아무리… 아들이 믿음직스러워도… 이런 상황에서 등을 돌릴 아버지는…… 세상에 아무도 없단다.” 유상목이 유화성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 크흐흑!” 유화성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가거라. 어서 가서… 대원들을 이끌고 철무전으로 들거라. 거기서 버티면… 숙부들이 올 것이다.” 유상목이 유화성을 밀쳤다. 점점 생명이 빠져 나가는 몸이었지만 유상목의 팔에서는 무서운 힘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님 제발, 제발…….” “어서 가거라. 너만 살아 있다면… 나 또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어서 가거라, 내 아들아.” 유상목은 흑령권의 가슴 깊이 박힌, 유가검보주의 신물인 표풍검 손잡이를 유화성에게 쥐어 주었다. “철무전에 들거든 이 손잡이를……. 어서… 가거라…….” 그 말을 끝으로 유상목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버님-” 유화성은 부친의 시신을 끌어안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나 결코 길게 울고 있을 상황이 아님을 인식한 유화성은 흑령권의 가슴에서 표풍검을 빼들었다. 검이 뽑아져 나온 흑령권 가슴에서는 아직도 식지 않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 내렸다. 표풍검을 뽑아든 유화성은 초강용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우우우-” 사자후를 토한 유화성은 건물 하나를 돌아 장원 복판으로 몸을 날렸다. 혼전이 일어나고 있는 장원 앞마당에서는 갑작스런 사자후에 놀란 사내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휘익- 유화성은 초강용의 수급을 서왕문 사내를 앞으로 던졌다. “우우-” 초강용의 수급을 본 서왕문의 사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반면, 검을 들고 우뚝 선 유화성을 쳐다본 유가검보 대원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건 극히 짧은 순간의 역전일 뿐이었다. 서왕문도들은 수장을 잃었지만 숫자가 훨씬 많았다. 유가검보의 검대원들은 적장의 수급을 보고 지르던 환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처절한 현실을 인식하고 다시 필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동요하던 서왕문도를 중 누군가 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모두들 초 노야의 원수를 갚아라!” 그 목소리에 서왕문도들의 눈빛이 맹수들처럼 이글거렸다. 유화성은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자신의 청풍검 대신 보주의 검인 표풍검이 섬광을 뿜었다. “크윽!” “크악!” 피에 굶주린 야수가 된 유화성이 지옥도를 그렸다. 단말마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피분수와 함께 피어올랐다. “모두들 저놈부터 베어라.” 자연스럽게 수장이 된 서왕문의 문도 한 사람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유화성은 더욱 더 그들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공자, 안 되오!” 자신들에게로 쏠렸던 인원들이 유화성에게로 몰려가자 숨 쉴 틈을 얻은 검대원 중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유화성은 더욱 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공자!” 다시 유화성을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유화성의 검무는 멈추지 않았다. “보주-” 다른 한 사내가 찢어질 듯 고함을 질렀다. 보주가 죽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넘기지 않는 표풍검! 그 검을 든 유화성은 그들에게 이젠 새로운 보주였다. “보주! 당신은 이제 혼자 몸이 아니오, 보주!” 또 다른 사내 하나도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유화성은 냉정을 되찾았다. “모두, 모두 철무전으로 이동하시오!” 서왕문의 모든 인원들을 자신 쪽으로 쏠리게 한 유화성은 어느 순간 훌쩍 몸을 솟구쳐 포위망을 빠져 나오며 고함을 질렀다. 검대원들 앞에 날아 내리는 유화성의 눈빛에서는 조금 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살귀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야수 떼들 속에서 살아남은 대원들을 이끌어야 할 임무를 어깨에 걸머진 냉철한 수장의 모습만이 검대원들의 동공가득 비춰졌다. “어서!” 표풍검법을 휘두르며 유화성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유화성의 고함에 얼마 남지 않은 대원들이 유화성과 함께 급급히 신형을 날렸다. “헉!” “헉!” 서왕문의 무사들이 물러나자 유가검보 일검대 무사들의 목에서 거친 숨소리들이 연방 터져나왔다. 아직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어서 지옥 속에 있는지 구별이 안 되는 상태까지 이른 것이었다. 뒤이어 몇몇 사내들이 토악질을 해댔다. 바닥에 뒹구는 시신에서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피 냄새도 역겨웠겠지만 그보다는 과도하게 진기를 끌어 올린 후에 따르는 장기들의 뒤틀림 현상이었다. 기혈이 뒤틀려서 토악질을 하던 사내들은 동료의 육신과 배 밖으로 흘러나와 잘려진 내장에서 피어오르는 혈향에 다시금 토악질을 했다. 그들 속에는 유화경도 있었고 백봉령주도 있었다. 진우청도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정신없이 용호곤을 휘두를 때는 느낄 새도 없었는데 잠시 이렇게 소강상태를 보이자 자욱한 피 냄새와 잘려진 육신들, 그리고 그 육신들에서 뭉클 뭉클 피어오르는 허연 김들이 창자를 울렁거리게 했다. 그 지독한 황산의 수련 속에서도 끄덕 없던 내장이었지만 강변에 펼쳐진 참상은 욕지기를 느끼게 했다. 겨우 욕지기를 억누른 진우청은 유화결을 쳐다보았다. 악다문 유화결의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지독한 분노 때문이었다. 인간은 누구보다 겁이 많은 존재이다. 맹수에 쫓기던 동물들은 그 순간만큼은 온통 겁먹은 눈빛을 하며 필사적으로 달리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면 금방 잊어버리고 풀을 뜯거나 먹이를 찾는다. 반면, 인간이 그런 경험을 당했다면 평생 그때의 두려움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만큼 인간은 겁 많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게 도를 넘게 되면 인간들은 오히려 두려움이란 감정을 상실하고 어떤 짐승들 보다 더 잔인해진다. 지금 강변에 펼쳐진 상황은 수십 번도 더 두려움을 상실할 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이젠 완전히 두려움을 상실한 유화결은 분노로 턱을 떨고 있었다. 두려움을 상실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강변 저 끝 쪽에 있는 관중들! 한 사람의 시체가 이곳 어디에 잔인하게 도륙되어 있다면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완전히 상실할 만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반 이상 남아 지옥도를 구경하고 있었다. 진우청은 문득 진저리를 쳤다. 산 속에서 맹수가 먹이를 잡아 그 고기를 뜯어 먹는 장면은 이렇게 진저리 쳐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도륙한 장면은 소름이 끼쳤다. 격전 속에서는 그걸 못 느꼈지만 지금은 확연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격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소강상태는 놈들이 자신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좀 더 확실히 죽이려고 전열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그 틈에 이쪽 역시 전열을 정비 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이쪽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숫자가 작았다. 진우청은 고개를 돌리고 숨을 골랐다. “고맙소, 살려주어서.” 분노를 억누르고 조금 진정한 유화결이 진우청을 향해 말했다. 급박한 순간에서는 곰탱아 도와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정중히 말하고 있었다. 진우청은 목구멍 안에서 무언가가 왈칵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대체 무슨 원한을 졌기에 이런 보복을 당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지옥도 속에서 자신은 살아남았다고 살려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단 말인가? 산 아래쪽의 인간들은 항상 이렇게 살고 이렇게 감사를 한단 말인가? “짐승 같은 놈들!” 진우청은 벌컥 소리를 질렀다. 그건 유화결을 향한 것 같기도 했고,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인간들을 향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이런 참상을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이거나……. 유화결은 흠칫 고개를 돌려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그 소리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해라 물렁탱아!” 진우청은 겨우 감정을 누르며 답했다. 포위망이 훨씬 더 두껍게 쳐진 상황에서 언제까지 산 아랫사람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오히려 더 처절한 혈겁의 상황 속으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도 몰랐다. “난 상관없으니 부디 동생을 보살펴 주시오! 부탁이오.” 유화결의 눈에 다시 핏발이 섰다. 그러나 말은 여전히 정중하게 하고 있었다. “네 동생이니 네가 해! 난 이제 이곳을 떠날 테다. 이 벌어먹을 동네 정말 정 떨어졌다!” 진우청은 정말 떠나기라도 할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찾았다. 그러나 길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엄중한 포위망이 물샐 틈 없이 쳐져 있었다. “모두 가운데로 모여라.” 가장 많은 상처를 입고 이제야 겨우 숨을 고른 유상기가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두 다리로 서있는 일검대 숫자는 서른 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멀쩡한 모습을 한 대원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로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조카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진우청 만이 굳건히 땅을 박차고 서있을 뿐이었다. 그 굳건한 청년 때문에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이런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정체가 뭔지, 왜 자신들을 도와주었는지 몰랐지만 생명의 은인이란 것만은 확실했다. 유상기는 그 은혜에 대한 인사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극심한 피로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신형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남은 대원들과 함께 재차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린 부하들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심하게 신형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몇 명은 여전히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게워내고 있었다. 진기의 역류가 아직까지 계속되는 모양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다시 격돌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유상기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들은 겨우 목숨만 연명한 채 숫자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놈들은 아직 야수 같은 살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숫자도 몇 배로 많이 남아 있었다. “숙부님!” 유화결이 이를 악다문 표정으로 다가왔다. 뒤를 따라 유화경도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걸어왔다.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 다행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두 조카들의 생존이 너무 기뻤다. “흐흑! 숙부님!” 유화경이 피를 토하듯 오열을 토하다가 일검대원들을 의식한 듯 터져 나오는 오열을 제대로 내뱉지도 못하고 도로 삼켰다. 잠시 조카들의 생존을 기뻐하던 유상기는 이를 갈았다. 반나절도 아니었다. 단 반 시진을 조금 넘긴 시간 안에 이곳으로 온 일검대가 이렇게 당했다. 대대로 이곳에서 번영을 누리고 검보로까지 성장한 유가검보의 식구들로서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참혹한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유화성과 구원대가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본가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기운을 회복하고 몸을 추슬러라! 어떻게 해서든 너희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유상기는 자신의 목숨으로 두 조카들을 살릴 결심을 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가소로운 놈들!” 조카들과 대원들을 독려하는 유상기의 귓전으로 냉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인들과 같이 있던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내지른 소리였다. 한참 떨어진 거리였건만 마치 귓전에 입을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가까이 들리는 소리에 유상기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은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왜소한 노인은 마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남아있는 유가검보의 무사들을, 그리고 진우청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기만 하려 했다.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겠지만 되도록이면 같은 편이 아닌 것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일검대를 무찌르고 유가검보 본가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최대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대원들만 추려왔다. 거기다 수염이 있는 대원들은 수염을 밀었고, 반대로 수염이 없는 대원들은 만들어 붙이는 식의 변장도 했다. 그런데 몽둥이를 든 곰 같은 어린놈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이젠 그런 위장술은 포기하고 자신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최대한 빨리 저놈과 남은 유가검보 놈들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쯧쯧!” 왜소한 노인 옆에 있던 뚱보 노인이 혀를 차며 강변을 향해 손짓을 했다. 뚱보 노인의 손짓에 따라 강변에 있는 나룻배에서 단궁(短弓)을 든 사내들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그들과 함께 한 명의 중년인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유유자적 걸어오고 있었다. 제일 뒤에 쳐져 있었지만 중년인의 모습은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 진우청도 컸지만 중년인의 체격은 정말 컸다. 진우청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옆으로 벌어진 어깨와 몸통은 쌀자루 몇 개를 포개 놓은 것 같았다. 유화경의 상처를 돌보고 부하들의 상처를 살피던 유상기는 포위망 뒤에서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대체 어디에서 이런 인간이?’ 유상기는 신음을 삼켰다.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들이었지만 정체를 알 만한 사람들은 없었다. 특히 흑의를 걸친 저 거한을 보니 더욱 그런 심정이 되었다. 아무리 관중이 온 강변을 메웠지만 저런 인간을 못 보았을 리 없었다. 수많은 관중들 틈에 섞여 들어왔어도 저런 인간은 표시가 난다. 그런데 저런 인간을 보았다는 보고도 없었고, 오전 내내 눈에 뜨이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수많은 관중들 틈에 섞여 자연스럽게 휘주로 몰려왔겠지만 저 인간만큼은 은밀히 숨어들어 인근의 객점이나 저 강변의 나룻배 속에 은신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룻배를 타고 왔을지도 모른다. 많은 관중들과 그 관중들에게 먹거리와 특산품 등을 팔기 위해 모여든 나룻배는 이놈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잠입경로가 되었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내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한 사람들은 관중들과 함께 스며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 아침 나룻배를 타고 숨어들어 막판에 포위망을 짜고 나타난 것이리라. 유상기는 쌀가마니 몇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중년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중년인의 시선을 한 가닥도 남김없이 진우청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온 중년인이 입술을 움직였다. “네 이름이 무어냐?” 쌀가마 같은 중년인은 자신들에게 최대의 피해를 준 진우청의 정체를 알고자 했다. 그걸로 보아 이제껏 치룬 진우청의 비무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랬다면 가명이나마 진호산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리라. 진우청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누구와 대면하든 내려다만 보았지 이렇게 올려다보긴 처음이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이름도 없는 놈이냐?” 중년인이 다시 물었다. “알아서 뭐 하시려오?” 진우청은 뚱하게 내뱉었다. 이름이야 자신이 사용하기 보다는 남에게 알려주고 남이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경우로 있는 법이다. 자신에게 위압감을 주는 덩치가 그런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놈이?” 진우청의 답변에 뒤에 있던 왜소한 노인이 눈을 부릅뜨며 거인 옆으로 나섰다. 부하의 잘못을 추호도 용서 않고, 격전장에서도 가차 없이 추궁하여 자결을 하게 만들었던 노인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왜소한 노인은 등이 휘어진 꼽추였다. 그래서 더 작고 왜소하게 보였다. “비켜 있으시오, 관 노인!” 거구의 중년인이 고함을 질렀다. “뭐, 뭐라?” 중년인의 고함에 왜소한 노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때 덩치 큰 노인이 빠르게 다가와 꼽추 노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 주책바가지야. 그러게 젊은 아이들 싸움에 왜 끼어드느냐? 뒤에서 느긋이 구경하는 것도 숨이 차는 나이에…….” 큰 덩치의의 노인이 꼽추 노인을 뒤로 끌고 갔다. “마철웅(馬鐵雄)!” 거구의 중년인을 쳐다보며 뭔가 의심스런 표정을 짓던 백운 노인은 나직하게 신음을 토했다. 그 신음에 움찔 놀란 기색을 보인 유상기는 부릅뜬 눈으로 거인을 노려보았다. 마철웅이라면 익히 소문을 듣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겉모습은 청동거인 같아 외공의 고수를 연상케 했다. 외형상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그의 절기는 솥뚜껑만한 두 손바닥으로 펼치는 장법이었다. 덩치가 크면 당연히 힘은 세겠지만, 내력으로 뿜어내는 장법까지 그 덩치에 비례한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철웅은 그런 비례관계가 성립되는 사람이었다. 커다란 체구와 함께 커다란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력은 정말 위력적이었다. 유상기는 마철웅의 내력을 떠올려 보았지만 마철웅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리고 여전히 이들이 어느 단체에 속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철웅이 아직까지 어떤 단체에 속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사천성에서 홀로 돌아다니던 권장의 고수였다. 그때 마철웅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놈의 노는 모습이 하도 가상해서 죽이기 전에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서 그런다. 이름이 무엇이냐?” 마철웅은 강변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다시 진우청의 이름을 물었다. ‘죽이기 전에 이름을 알고 싶다고?’ 진우청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마철웅을 쳐다보았다. 죽일 놈의 이름은 알아서 무엇 한단 말인가? 죽이고 나서 정성스레 비석이라도 세워 줄 것이란 말인가? 정말 웃기는 얘기였다. 그리고 또 죽긴 누가 죽는단 말인가? 이곳에서 죽으려고 돌산 꼭대기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그 고생을 한건 아니다. 진우청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이?” 진우청이 여전히 대답은 않고 피식 웃자 마철웅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러기 전에 당신 이름부터 밝히시오. 남의 이름을 알고 싶으면 그게 순서가 아니오?” 진우청이 애써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 마철웅의 표정이 여러 번 변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는 진우청을 보고 이놈이 자신을 놀리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후, 진우청이 정말 자신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판단이 들자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 이름은 마철웅이다. 붕산철장(崩山鐵掌)이라 부르기도 하지.” 이름과 별호를 밝힌 마철웅은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그는 자신을 이곳까지 나오게 한 인간이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풋내기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상기의 짐작대로 마철웅은 오늘 새벽 나룻배를 타고 은밀히 이곳에 잠입했다. 유가검보를 무너뜨리게 위해서는 이곳보다는 유가검보에 투입되는 것이 옳았지만 일이 틀어지면 유가검보보다 이곳이 더 귀찮아 질수 있었다. 아직까지 방관자가 되어 저 멀리서 구경만 하는 수많은 관중들! 그들 중에 누군가 선동을 하여 이 지역 패자인 유가검보를 돕고자 하면 즉시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일장에 날려버리며 조기에 진압할 생각이었다. 그런 임무엔 자신이 제격이었다. 큰 덩치와 무시무시한 장력으로 선동하는 사람들 몇 명만 사전에 피 떡으로 만들어놓으면 군중들은 양처럼 순해진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유가검보의 일검대 백 명이 무너지는 상황에 자신이 대신 칼 받이로 나설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느긋이 배 안에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이 끼어들었다. 노인과 덩치 큰 청년! 노인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덩치 큰 청년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단 한 명이었지만 누군가 선동하여 관중들이 몰려온 것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결국 마철웅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필요를 느끼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내 이름은 진호산이오.” 진우청은 비무대 위에서 쓰던 가명을 짤막하게 밝혔다.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자에게 굳이 본명을 밝힐 이유는 없었다. “아직 별호는 없고… 별명은 곰 사냥꾼 정도로 해 둡시다.” “곰 사냥꾼?” 마철웅은 진우청은 말을 잠시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우하하!” 마철웅은 설마 누군가 자신을 곰이라 놀리리라고는 생각 못한 듯 다시 광소를 터뜨렸다. 목청껏 웃음을 토한 마철웅은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모든 행동을 중지한다. 어기는 놈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피 떡을 만들어 버리겠다.” 마철웅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 후 회의인들, 특히 꼽추 노인과 뚱뚱한 노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저 못돼 먹은 놈! 네놈은 아비 어미도 없느냐?” 꼽추 노인이 주먹을 흔들며 고함을 질렀다. “없소!” 간단히 답한 마철웅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진우청을 향해 손짓을 했다. “이리 오게 젊은이. 곰 사냥꾼의 사냥 실력이 어떤지 한 번 봄세.” 마철웅은 처음 해보는 신나는 놀이 앞에 선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젠장!’ 진우청은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이는 것을 느끼며 내심 불평을 토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놈들 때문에 싸움에 휩쓸리긴 했지만 이 싸움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변해 당사자들은 숨을 돌리는데 자신만 곰 찜쪄먹게 생긴 인간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빌어먹을!’ 진우청은 다시 한 번 불평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물 같은 포위망!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상처 입은 사람들! 싫든 좋든 이자와의 대결은 불기피해 보였다. 다행히 이자가 자신과 대결할 때만은 아무도 못 움직이게 했으니 다른 곳으로 신경이 분산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또한 대결의 순간 동안은 유가검보 사람들은 다친 상처를 돌보고 실낱같으나마 기력을 회복 할 것이다. 쨍-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하나로 합쳤다. 용호곤을 허리에 걸친 진우청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라! 그리고 제발 이겨라, 곰탱이!” 다급해지니까 유화결은 다시 막말을 하며 나왔다. “조심 하게나.” 백운 노인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도 들렸다. ‘젠장! 집 떠날 때보다 더하군!’ 내심 투덜거린 진우청은 붕산철장 마철웅 앞에 섰다. 마철웅의 입이 옆으로 쭉 째졌다. 정말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아이 같은 미소였다. “오 초 동안 수비만 하겠다. 그러니 마음껏 놀아 보거라.” 마철웅은 한층 더 짙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냥 다섯 대 한꺼번에 맞아주면 안 되겠소? 웬만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진우청은 마철웅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보며 말했다. “우하하! 갈수록 재미있는 친구로군.” 마철웅은 다시 한 번 대소를 터뜨렸다. “유가검보 일검대에게서 보다 자네에게 쓰러진 사람들이 더 많네. 그러니 그 제의는 사양하겠네.” 마철웅이 고개를 저었다. 진우청은 용호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마철웅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웬만한 어른의 허벅지보다 더 두꺼운 어깨가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살아가며 덩치에 위축되는 상황에 마주치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 휘이잉- 허리 어림으로 비스듬히 용호곤을 내리고 있던 진우청은 마철웅의 어깨를 향해 쾌속하게 휘둘렀다. 갑작스런 공격에 마철웅은 대경하며 상체를 틀었다. 파앗- 제대로 맞았다면 퍼억! 하는 소리가 났겠지만 비껴 맞은 마철웅의 어깨에서는 그런 소리가 났다. 마철웅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보기와 달리 약삭빠른 데가 있는 놈이군.” 마철웅은 슬쩍 어깨를 흔들며 태연한 척 중얼거렸다. 그때 진우청이 다시 팔을 흔들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전혀 준비 동작이 없었지만 용호곤은 최단거리로 마철웅의 허리를 때려갔다. 마철웅은 이번에는 준비하고 있은 듯 커다란 손바닥을 활짝 펴서 용호곤을 막았다. 따앙- 용호곤과 마철웅의 손바닥이 부딪친 곳에서 쇳소리가 크게 울렸다. 인간의 손바닥과 쇠몽둥이가 부딪쳤는데 그 격타음은 쇠와 쇠가 부딪친 것과 거의 같았다. “손바닥이 철판 같군.” 붕산철장에 용호곤을 부딪친 진우청은 손목으로 전해지는 강한 반탄력을 느끼며 마철웅의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그것으로 철웅의 손바닥은 산을 무너뜨릴 정도인지는 몰라도 철장, 즉, 쇠손바닥이라는 것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런 수수깡 같은 막대기로는 내 손바닥을 간지럽게 하는 정도밖에 안 된단다, 아이야.” 마철웅은 씨익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이제 세 번이 남았다.” 마철웅은 다시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진우청이 시선을 온통 가려왔다. 진우청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천천히 날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코와 입으로만 숨을 쉬는 게 아니다. 코와 입은 숨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관문일 뿐, 정작 숨을 쉬는 것은 온몸이다. 온몸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숨을 쉰다. 마철웅의 손바닥도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숨결 속에는 어김없이 빈틈이 있었다. 마철웅 역시 그걸 메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메울 수 있는 것은 천룡신무 뿐이지.” 낮게 중얼거린 진우청은 용호곤을 휘둘렀다. 쉬이익! 용호곤이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오자 마철웅도 손바닥을 마주 휘둘렀다. 그 순간, 용호곤이 미세한 각도로 궤적을 바꾸며 마철웅의 손바닥에 부딪쳐갔다. 까앙- 이번에도 어김없이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뒤이어 진우청의 용호곤이 붕산철장에 막혀 뒤로 튕겨나는 모습도 조금 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진우청은 용호곤으로 마철웅의 손바닥을 두드리는 순간 마철웅의 눈 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이젠 두 번이 남았구려.” 진우청은 용호곤을 휘익 휘두르며 마철웅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마철웅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만큼 신력이 남다르다는 말이었다. 진우청은 다시 용호곤을 휘둘렀다. 마철웅의 손바닥이 이번에는 훨씬 더 강하게 부딪쳐 왔다. 진우청은 용호곤에 불어 넣던 호흡을 갑자기 끊어버렸다. 그에 따라 무겁게 선회하던 용호곤 끝이 예측 못할 속도로 흔들렸다. 용호곤을 쳐다보던 마철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다시 용호곤이 무거운 진동음을 토해냈다. 천강검초에서 뿜어내는 천강음이었다. 따앙- 쇳소리가 다시 울렸다. 앞서의 두 번과 변함없는 크기의 소리였으나 마철웅의 눈 꼬리는 훨씬 심하게 떨렸다. ‘으음!’ 마철웅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몽둥이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몽둥이에 손바닥을 부딪치는 순간에는 뭔가 잘못 부딪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집어 낼 수는 없지만 어딘가 잘못 맞았다는 느낌이었다. 정상적으로 부딪쳤으면 결코 이런 기분이 들 리 없었다. 어릴 적에 하고 놀았던, 손바닥으로 모래 덩어리 부수듯 통쾌한 느낌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짓궂은 놈들이 있어 그 모래 덩어리 속에 돌멩이를 하나 감추어 놓은 것을 두드렸을 땐 이런 느낌이 들었다. 예측 못한 돌멩이가 손바닥 어느 곳에 부딪치면 꼭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두 번이나 연속됐다. 그리고 둔중한 통증이 손바닥에서 어깨까지 전해져 왔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붕산철장을 십 성 익힌 후에는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통증이었다. “아직 한 번이 남았소.” 진우청은 용호곤을 휘리릭 한 바퀴 돌렸다. “그래 마지막이다, 이놈아! 이번이 끝나면 다시는 내 몸을 두드릴 기회가 없을 테니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보거라.” 마철웅은 호탕하게 말하며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는 젖 먹던 힘으로만 두들겼는데 이젠 밥 먹던 힘도 조금 보태겠소.” 제법 그럴듯한 말을 내뱉은 진우청은 용호곤을 휘둘렀다. 휘익- 용호곤이 여전히 지극히 단순한 궤적을 그리며 붕산철장에 부딪쳐 왔다. ‘이번에는!’ 마철웅은 다시는 손바닥에 잘못 부딪친 느낌을 받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양 손바닥에 불끈 내력을 불어 넣었다. 마철웅의 쌍장이 훨씬 크게 부풀어 올랐다. 이 상태에서 장력을 발출하면 산을 무너뜨리는 붕산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비만 하는 상황이기에 장력을 발출하지 않고 맨 손으로 부딪쳐만 갔다. 터엉- 이제껏 부딪친 소리와는 많이 다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몽둥이가 나무에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젠장!” 활짝 펼쳤던 손바닥을 말아 쥔 마철웅은 불만스런 목소리를 토했다. 이번에도 잘못 맞았다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잘못 맞은 것 같았다. 손바닥이 화끈거렸고 손목이 얼얼했다. 뒤이어 어깨까지 저려왔다. 와락 인상을 찌푸린 마철웅은 용호곤을 쳐다보았다. 다른 장치나 비밀무기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세 번이나 잘못 맞은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가? 내력의 차이가 극심해 온몸으로 그것이 느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무언가 빈틈이 생겨 그 속으로 몽둥이가 파고 든 것 같은 느낌! 세 번 모두 그런 느낌이었다. 초식이라면 빈틈이 있겠지만 그냥 내력으로 마주치는 데도 빈틈이 있단 말인가? 마철웅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역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데는 진우청 만큼 취미가 없었다. 잘못 맞았다면 잘못 맞은 대로 부딪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잘 맞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제껏 경험에 의하면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거의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제 끝났구나, 꼬마야!” 마철웅은 흐릿한 미소를 흘렸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한 어린애를 쌍장으로 짓이겨야 한다는 것이 꺼려졌지만 다섯 번의 공격을 양보했으니 그것으로 마음의 짐은 벗었다. 이젠 쌍장을 마음껏 휘두를 일만 남은 것이다. “우선 그 이상한 몽둥이부터 부러뜨려주마!” 마철웅의 손이 부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저 큰 거구가 어떻게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마철웅은 박투에도 고수였다. 온 몸이 무기나 마찬가지인 그는 평소에는 이런 박투술로 상대를 짓이겼다. 그러다 고수를 만나면 붕산철장으로 상대했다. 휘익- 진우청은 괘곤(?棍)의 수법으로 곤초를 앞으로 잡아 당겼다. 초식이랄 것도 없이, 빠르게 낚아채 오는 마철웅의 손을 피해 곤을 잡아당긴 것이다. ‘또?’ 마철웅은 쌍장에 곤이 잘못 부딪쳤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잡을 수 있는 빠르기였고 수법이었다. 그러나 시커먼 몽둥이는 지극히 단순한 움직임으로 손아귀를 빠져 나갔다. 불끈 끌어올린 내력이 손끝에 이르고,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진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기는 지극히 짧은 순간! 그 순간에 용호곤 끝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건 순전히 찰나의 느낌일 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인 이상 그런 틈은 어쩔 수 없는 법! 그것 때문에 놓쳤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마철웅은 다시 한 손을 뻗었다. 일장을 날려 떡을 칠 땐 치더라도 저 요상한 몽둥이는 기어코 빼앗아 똑같이 후려쳐 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휘잉- 곤초를 당겨서 마철웅의 손아귀를 피한 진우청이 곤의 아랫부분인 곤파를 쳐올렸다. 마철웅의 무릎이 곤파의 궤적 끝에 다가왔다. 마철웅은 곤을 잡아채오던 손을 회수하며 통나무 같은 다리로 곤을 차올렸다. 이번에도 용호곤은 뱀이 수초를 빠져 나가듯 흐느적 마철웅의 다리 사이로 빠져 나갔다. “제법!” 마철웅은 한 마디 짤막한 외침과 함께 다른 한 쪽 다리로 진우청의 상체를 걷어찼다. 둘레 길이가 진우청의 다리보다 한 뼘은 더 나갈듯한 마철웅의 다리가 막는 것은 용호곤이든 진우청의 몸통이든 모조리 으스러뜨리겠다는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걸렸다.” 차올리던 다리를 중도에서 뚝 꺾은 마철웅이 정강이에 용호곤을 끼었다. 뒤이어 발목 또한 교묘하게 틀어 뱀이 대나무를 감고 오르듯 용호곤을 감았다. “흐읍!” 용호곤을 감은 마철웅의 다리에서 엄청난 압력을 느낀 진우청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집채만한 바위라도 얹혀진 듯 무겁던 용호곤이 서서히 가벼워졌다. 진우청은 깊이 들이 마신 숨을 양쪽 팔을 향해 불끈 내뿜으며 용호곤을 들어 올렸다. 마철웅의 다리에 의해 짓눌려지던 용호곤이 서서히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전혀 뜻밖의 반격에 마철웅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자신을 향해 힘자랑을 하는 무식한 놈이 있을 줄 몰랐는데 지금 그런 놈을 만났다. 마철웅은 기도 안찬다는 표정으로 다시 다리에 힘을 불어 넣으며 난간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올라타듯 용호곤을 온몸으로 짓눌렀다. “하앗-” 진우청이 기합성과 함께 아랫배 깊숙한 곳에 뭉쳐 두었던 호흡을 강하게 내뱉으며 용호곤을 흔들었다. 마철웅의 다리에 결박당한 용호곤이 용트림을 하듯 출렁거리며 마철웅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으윽!” 나지막한 비명을 토한 마철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용호곤을 감았던 다리를 풀었다. “어린놈이 대체……?” 마철웅의 얼굴에 불신의 감정이 강하게 퍼져 나갔다. 뱀처럼 다리를 틀어 결박한 쇠막대기에서 전해져오는 힘이 허벅지 살을 찢을 듯 거세였다. 계속 다리로 결박하고 있었다간 살갗이 터질 것 같았다. 설마하며 진우청을 쳐다보던 마철웅은 급히 상체를 숙였다. 용호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날아온 것이다. 퍼억- 마철웅의 등줄기에서 파육음이 터졌다. 허공에서 방향을 바꾼 용호곤이 마철웅의 등줄기를 두드린 것이다. “크아아- 이놈!” 하룻강아지에게 발뒤축을 물린 심정이 된 마철웅은 마침내 포효를 터뜨리며 진우청을 향해 돌진했다. ‘곰 보다 더하군!’ 마철웅이 거대한 신형이 덮칠 듯 쇄도해 오자 진우청은 두 마리의 곰이 한꺼번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느낌을 받으며 마철웅의 가슴을 향해 용호곤을 찔러 넣었다. 타앙- 마철웅은 손등으로 용호곤을 쳐내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스스스- 진우청의 몸이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마치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마철웅의 신형 역시 조금도 지체 없이 진우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쨍- 청명한 쇳소리가 울리며 용호곤이 용곤과 호곤으로 분리 되었다. 투닥- 먼저 용곤이 달려드는 마철웅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철웅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지만 쇄도해드는 속도는 전혀 변함없었다. 휘익- 마침내 거리를 좁힌 마철웅의 손이 진우청의 어깨를 잡았다. 진우청의 어깨가 흐느적 무너졌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 같기도 하고, 물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한 진우청의 움직임에 허공만 움켜진 마철웅은 반대쪽 손을 활짝 펴서 진우청의 가슴을 쳐왔다. 상체를 튼 진우청은 마철웅의 손바닥을 향해 어깨를 강하게 부딪쳐갔다. 무모하게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마철웅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용무의 수행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에 날린 사부의 호두알만큼 무섭지가 않았다. 퍼억- 용린탄주의 반탄기를 잔뜩 끌어 올린 진우청의 어깨와 마철웅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 사이에서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용호곤과 마철웅의 손바닥이 부딪치는 쇳소리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키며 강변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두 사람 근처에서 한 줄기 모래먼지가 휘익 허공으로 솟구쳤다. 충격파가 일으킴 모래바람이었다. “수, 숙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던 유화경은 유상기를 쳐다보았다. 가슴은 아니더라도 붕산철장의 손바닥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사람치고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진우청도 그렇게 되어 저곳에서 쓰러진다면 자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목숨이 될 것이다. 유상기도 긴장된 표정과 함께 모래먼지 속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모래 먼지가 걷히며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네 사부가 누구냐?”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이 된 마철웅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려줘도 모를 것이오.” 진우청이 짤막하게 답했다. “그렇겠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 같은 아이를 기를 사람이 없어.” 마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재대로… 아니,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붙어야 하겠군!” 소매를 끌어올린 마철웅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우청을 바라보았다. 산을 무너뜨린다는 별호가 붙은 자신의 철장을 맨몸으로 막아내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인간이라면 더없이 힘든 승부가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마철웅의 다리가 움직였다. 커다란 덩치가 일순 공처럼 웅크려졌다가 폭발하듯 튀어 나왔다. 그리고 양손을 쭈욱 뻗었다.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열십자로 교차했다가 강하게 앞으로 밀었다. 퍼엉- 용곤과 호곤에 막힌 붕산철장에서 폭음이 울렸다. 마철웅의 쇄도를 막은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동시에 휘둘렀다. 용곤은 마철웅의 허리를, 호곤은 마철웅의 목을 노리고 들었다. 선풍보를 밟은 마철웅의 몸이 쾌속하게 회전했다. 진우청의 상체도 같이 회전했다. 마철웅은 기다렸다는 듯 수도를 만들어 진우청의 가슴을 찔러왔다. 스스스- 진우청의 온몸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천룡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박투에 있어서도 대가라 할 수 있는 마철웅의 손발이 창칼이 되어 찌르고 베어들 땐, 진우청의 몸은 구름처럼 허허롭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마철웅의 몸이 물러날 땐, 진우청은 풍차처럼 용호곤을 휘두르며 마철웅은 두드려 갔다. ‘이놈은 마치 온 몸이 따로 따로 살아 있는 것 같다!’ 두 눈을 부릅뜬 마철웅의 뇌리 속으로 그런 생각이 섬전처럼 지나갔다. 빠르게 쳐나가면 어느새 흩어지고, 뒤로 물러나면 빈 공간을 물처럼 메워오는 진우청의 움직임에 마철웅은 어느덧 숨이 가빠 옴을 느끼며 손발의 움직임을 늦추었다. 정말 기도 안 차는 일이었지만 박투술로는 이길 수 없는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초식도 없고, 일정한 보법도 밟지 않고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그 움직임은 바람이나 물처럼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고, 흐르고 싶은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흐르는 것 같았다. 자신의 박투술로는 점점 더 거리만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움직임을 멈춘 마철웅은 온 내력을 양 손바닥에 모았다. “하아앗!” 커다랗게 부풀은 쌍장에서 마철웅의 성명절기인 붕산철장이 뿜어져 나왔다. 마철웅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거리를 벌림에 따라 용곤과 호곤을 하나로 합칠 준비를 하던 진우청은 고막을 울리는 고함소리와 함께 손바닥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마철웅의 숨결에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천룡후(天龍吼)?” 진우청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호흡의 소모가 심하니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고는 절대로 터뜨리지 말라던 천룡후! 어제 인장호와의 대결에서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았지만 인장호의 것이 도랑물이라면 마철웅의 천룡후는 거대한 강물 같았다. 온 몸을 삼키고, 온 뼈마디와 근육을 짓이길 듯한 장력이 진우청을 덮쳐왔다. 진우청은 무의식적으로 용곤과 호곤을 놓았다. 그리고 마철웅과 똑같이 쌍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추방당하기 바로 전날, 비안개가 사방팔방 두껍게 감싼 돌산 꼭대기에서 사부의 가르침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펼쳐 보았다. 지금처럼 쌍장을 앞으로 내밀거나 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마철웅이 하는 것처럼 쌍장을 내민 것이다. 사부께서는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서서 온 몸 구석구석 사부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숨결을 돌리고, 몸속에 가득채운 그 숨결을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었다. 사부의 호통이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잘못 펼친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두껍게 내리 깔린 운무는 여전했고, 돌산도 여전했다. 사부의 당부대로 호흡의 소모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느꼈다. 그러나 사부께서 그렇게 염려하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부께서는 우려감 가득한 표정으로 거듭 거듭 당부하셨다. 죽음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로 펼치지 말라고……. 사부의 당부가 귓전에 쟁쟁했지만 지금 이순간은 용린탄주의 반탄기만으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느꼈다. 아랫배 깊은 곳에 뭉쳐 두었던 호흡을 한꺼번에 다 뿜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아아앗!” 진우청은 강변이 떠나갈 듯 천룡후를 터뜨렸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였습니다.
ㅈㄷㄳ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