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의 탄생 ㅡ날짜 변경선
- 하린
떠나기 싫은데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최후와 최선이 뒤섞입니다
기억을 안다고 하는 순간 달아나는 기억이 있습니다
매번 마지막이고
매번 처음인 자리
연애도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발목이 오늘의 발목으로 바뀌었을 때
질문이 넘나듭니다
날개는 혁명입니까
너머는 새롭습니까
정착은 기쁨입니까
난 왜 마침내 당신과 내가 헤어진 양수리입니까
지구는 둥급니까
누군가 돌아온다는 약속이
왜 깡통처럼 굴러다닙니까
이곳이 사라지면
그곳이 된다고 확신할 때
당신을 위해 달력을 찢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수만 마리 새떼 속
한 마리 새처럼
난 점점 무뎌져 가고 있습니다
ㅡ격월간 《현대시학》(2023,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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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겨울의 복판에서 떨고 있을 때 상하의 나라 베트남을 찾아 일주일 넘게 지냈습니다
날짜변경선을 완전히 넘은 게 아니어서 우리나라와 2시간 차이가 나더군요
지구촌 곳곳에서 베트남의 문화 역사 풍광을 즐기려도 찾은 관광객이 정말 넘쳐났습니다
우리 일행은 고희를 전후한 지인들로 여행사 가이드만 50대였네요
어딜 가나 우리말을 들을 수 있고, 호텔 라운지나 레스토랑에 한국인 천지였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장소에서 부딪히는 경우는 없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이들끼리 속삭이면서도 공통된 대화는 없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일방적으로 해설하고, 안내에 열심이었으며 개별로 궁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여행사에서 계획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이끌다보니
참가자의 개별 상태는 고려될 수 없었겠지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걸 봤고, 다르게 느꼈습니다
베트남은 후진국도 아니었고, 경직된 사회주의국가도 아니었으며
단지 젊은 세대들이 날개를 펼치기 위해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푸르게 느꼈습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걸은 탓에 돌아와서 사흘 째인데도 아직 종알에 밴 알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