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85
ㅡ 삼국통일의 시대 7
(신라 최고전성기 진흥왕직후 시대와 '미실'과 '비담')
오늘부터 쓰는 '진흥왕'이후 신라 이야기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 대부분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Mbc드라마 선덕여왕>이 50% 에 가까운 시청율을 올리며 엄청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일반사람들은 그 드라마 내용을 신라말 역사적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항상 이야기했듯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기는 하지만 80% 이상이 창작된 허구라고 생각하고 봐야 된다.
그러나 신라말 사실의 역사로 들어 가기 전 드라마를 보고 이미 고착된 여러분들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화랑세기와 미실, 비담 진위문제> 부터 정리해 가겠다.
화랑세기 진위문제는 <고대사는 흐른다 69 진흥왕 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참고 바란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되었던 <선덕여왕이 쌍둥이로 태어났다> 는 설정은 극적인 흥미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인 요소이다. 선덕여왕(덕만공주)에 대한 역사 기록에는 그녀가 쌍둥이로 태어 났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또한 드라마에서 선덕여왕보다 더 인기 끌었던 드라마 진짜 주인공 이었던 <'미실'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애매하다.
'미실'은 주로 후대 설화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여성 정치가 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정사인 김부식 '삼국사기'와 야사를 많이 기록한 '삼국유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랑세기'에는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다.
참고로 '필사본 화랑세기' 의 위서 논란 때문에 '환단고기'와 비슷하게 오인되어 '화랑세기' 란 책 자체가 위서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필사본 화랑세기' 가 위서일 수는 있었도 신라시대에 쓰여진 '화랑세기' 라는 책 자체 는 실존했던 역사 책이 맞다. 다만 이미 사라져 현존하지 않을 뿐 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김대문이 저술한 여러 책들 제목이 나오고 그 기록을 인용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아래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故金大問花郞世記曰,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말하기를, "어진 보좌와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이로부터 생겼다."라고 하였다.]
ㅡ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 37년(576) 원화를 받들다 ㅡ
[김대문은 전(傳)과 기(記) 몇 권을 지었다. 그 가운데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 남아 있다.]
ㅡ 삼국사기 김대문 열전 中ㅡ
<고대사는 흐른다 69편>에서 화랑세기 진위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했지만,
이처럼 삼국사기가 '화랑세기'를 인용했듯이 화랑세기는 신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어쨋든 화랑세기는 역사적 기록이자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료로, 현대 한국 소설, 드라마, 영화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주제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이야기>도 '화랑세기' 인물과 설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미실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요한 여성인물로 언급되어 있다.
'미실'은 신라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시기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여성으로, 자신 미모와 지혜를 이용해 여러 왕 및 화랑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과 화랑조직을 잘 활용하는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화랑세기에서 등장하는 주요 미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미실은 지귀(신라 귀족)와 정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뛰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다. 미실은 진흥왕 후궁 으로 들어갔으며, 진흥왕 총애를 받았다. '화랑세기'에는 진흥왕과 미실이 서로 눈이 맞았을 때 서라벌의 다른 남녀들을 불러모은 다음 예절염치 팽개치고 단체로 정을 나눴다는 기록이 있다.
미실은 진흥왕 총애로 인해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키웠다.
미실은 진흥왕 둘째아들 '진지왕' 과도 관계를 맺으며 왕실 권력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했다. 진지왕이 4년만에 폐위된 배경에도 그녀의 정치적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실은 화랑들과 교류를 통해 자신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그녀는 화랑제도를 이용해 자신 세력을 공고히 했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김유신' '김춘추'가 미실이 키운 화랑도 였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신라 내부 뿐 아니라 외교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미실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과 전설이 혼합되어 있으며, 특히 현대 드라마나 문학 작품에서 큰 영감을 주는 요소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강렬한 권력자 이미지로 재해석 되어 일반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런데 김부식이나 일연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쓸 때 화랑세기는 존재했고 많은 참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미실이야기>는 아예 쏙 빼 놓는다. 당시 관념으로도 도저히 미실행위는 받아들이기 힘 들었을까? 하긴 지금 시각으로 봐도 진흥왕과 미실의 집단 성행위는 도저히 받아 들이기 힘들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못지 않게 인기를 끈 '비담'에 관해서도 간단히 언급 하겠다.
'비담'(毗曇)은 미실과 같은 시대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
'삼국사기'에도 그의 행적이 기록 되어 있다.
그는 선덕여왕(재위 632~647) 말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왕통치를 반대하는 세력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 재위 말기, 비담은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647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10일 동안 수도 경주를 공격했다. 그러나 선덕여왕 측근 김유신과 김춘추 연합군에 의해 진압 되었다.
반란은 실패로 끝났고, 비담과 그의 세력은 처형되었다. 이 사건 직후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그녀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즉위한다.
드라마에서는 미실이 비담의 어머니로 묘사되었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미실의 존재자체 마저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미실과 비담 사이의 관계도 역사적 근거는 없다.
'화랑세기' 사료적 신빙성에 대한 아직도 논란이 있기 때문에 오늘 쓴 내 이야기는 전적으로 사실로 받아 들이기보다는 설화적 요소로 함께 고려해서 받아 들이길 바란다.^^
다시 선덕여왕 업적에 본격 들어가기 전에 진흥왕 이후 왕들 업적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본다.
1. 25대 '진지왕'(재위576~579)
'진지왕'은 '진흥왕' 둘째아들이다. 진흥왕 첫째 아들 '동륜태자'는 내 글 69편에서 언급했듯이 진흥왕 후궁 '지소태후' 담을 넘다 개에 물려 죽었다고 '화랑세기'에 나온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어쩟든 동륜태자는 일찍 죽었고 덕분에 둘째인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진지왕 재위기간은 4년으로 짧았으며, 기록에 따르면 진지왕 치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으며, 방탕한 생활과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신하들로부터 불만을 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지왕은 결국 신하들 강요로 왕위에서 물러난 것으로 추정 된다. 특히 진지왕 여성문제가 너무 심했다고 전해진다.
음란하다는 이유로 화백회의를 거쳐서 폐위당했다는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다.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없이 <진지왕 본기>만 놓고 보면 '노리부'를 기용해 백제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새로이 성을 쌓고 제사를 지내는등 별 사건 사고없이 그저 편안하게 지내다 승하한 왕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화랑세기' 기록에는백제 중심지인 (지금 익산)까지 공격했다는 기록도 있어 진지왕이 그렇게 암군은 아니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륜태자 아들 (진평왕)이 어려 즉위를 못 하고 삼촌인 진지왕이 대신 즉위했다 물려줬거나, 진평왕 쿠데타로 물러난 것으로 추정한다. 진지왕에 대해 나쁜 기록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진평왕과 그를 따르는 신하들 쿠데타로 물러난 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다 보여진다.
진지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후 기록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퇴위는 신라역사에서 보기 드문 강제적 왕위 교체사례로 꼽힌다.
2. 26대 진평왕(재위 579~632)
'진평왕'은 진흥왕 큰아들 동륜태자 아들로 진흥왕 손자 이다. 선덕여왕 아버지이기도 하다.
진평왕 시기는 진흥왕 신라 최고 전성기를 지나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과 안으로는 왕권약화 및 정치불안으로 위기에 몰려있던 시기였다. 진평왕은 이런 신라 상황을 외교를 통해 극복해 내고 진흥왕 때 3배 가까이 급격히 확장된 영토와 인구를 기반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했으며, 뛰어난 신하들을 중용해 국가 기반을 닦아놓은 신라 중요한 시기를 이끈 명군으로 볼 수 있다.
진평왕 긴 재위기간 내내 고구려와 백제 침략에 시달리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으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해 냈기에 신라가 삼국시대 최후 승자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평왕은 신체 크기가 매우 큰 것 으로유명하며, 선덕여왕등(덕만공주) 공주들과 얽힌 많은 이야기 들이 존재해서 인기 있는 왕 이기도 하다.
사실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키가 '삼국유사'에 11척이라 나온다. 고대사의 1척은 전한의 1척인 23cm를 기준으로 한다. 현재 키로는 253cm이다. 어마어마하다.
한국 역사상 최장신이자 인류 역사상 최장신 국가원수이다.^^
사실 선덕여왕 드라마 삼분의 이는 진평왕시대 이야기이다.
진평왕 재위기간이 워낙 길고 당대에 김유신, 김춘추 등을 비롯 전설적인 화랑들과 정치가등 우리가 대략 알만한 삼국통일전쟁 시대 위인들이 대부분 등장하는 시기라서 그들에 가려져 진평왕 존재감이 적은 편이다.
딸임에도 덕만공주(선덕여왕)를 통해 왕권계승의 길을 열었다.
이어서 '선덕여왕' 시대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