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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대전에서 이사 온 강정옥씨와 수정이 엄마 소복순씨, 혜선이 엄마 박윤순씨가 고추를 다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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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희뿌연 물안개라도 피어오를라치면 무릉도원 같겠다. 저기 저 다리 건너 산아래 보이는 마을은 이름 그대로 편안하고 아늑해 보인다. ‘안터’랬다. 강을 가로질러 저쪽 세계는 왠지 달라 보인다. 다섯 봉우리 오봉산 품 안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집들로 형성된 마을은 머릿속에 형상화된 고향이라는 이미지에도 맞닿아 있다. 낯설지 않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게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 보다 머물고 싶던 곳, 첫 인상으로 그냥 남겨두기엔 많은 호기심을 자극했던 곳, ‘안터’를 찾았다. 초겨울 찬바람이 오후의 햇살과 일전을 벌일 그 무렵에..
안터, 그 옛 이름의 흔적들
현재 안터의 행정구역 명칭은 동이면 석탄1리이다. 예전에 없었던 인공호수와 다리가 지금은 떡 하니 앞에 놓여 있어 배산임수 형태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지만, 이는 안터의 수몰 흔적이라고 해야 맞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좋은 전답을, 대청댐이 다 앗아갔다고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곤 한다.
현재의 석탄1리는 ‘안터’와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진 ‘피실’과 ‘덩기미’ 마을을 합쳐 일컬었던 마을명칭이었다. 석탄리란 지명은 이제 온전히 ‘안터’만의 몫이 됐다. 안터가 살아남은 것은 ‘편안한 곳’이라는 마을 지명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터 사랑방 구멍가게에서
안터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조그만 구멍가게는 안터 사랑방이다. 해질 녘 전인데도 벌써 술잔이 거나하게 돌았나 보다. 조봉현(46)씨와 김창열(42)씨가 소주를 건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발그레한 얼굴에 취기가 올랐지만, 지나치지 않은 얘기들이 구수하다. 가게 뒤편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김장준비에 한창이다. 고추 다듬기에 여념이 없는 네 아주머니들, 마을의 살림살이를 도맡아하는 여인들임에 틀림없다.
올해 대전에서 이사 온 강정옥(47)씨와 수정(최수정·6)이 엄마 소복순(36)씨, 혜선(조혜선·옥천상고2)이 엄마 박윤순(40)씨가 고추를 다듬고, 하준(최하준)이 엄마 이규선(33)씨는 1살배기 하남이를 업고 오후 햇살에 일광욕을 한다.
“마을에 불편한 거 없나요?”하고 물었다. “마을회관이 뒤에 있어서 자주 사용이 안돼요. 할아버지들 맨날 버스 정류장 안에 앉아 계시고 거의 무용지물이에요. 마을 앞에 설치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대청댐 유휴지라 쉽지 않았나 봐요”, “마을에 공중전화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업이 끝났는지 막 들어온 혜선이는 버스문제에 대해 말한다. “버스가 6시40분하고 8시20분 버스가 있거든요. 그런데 8시20분버스는 많이 돌아서 학교에 도착하면 너무 늦어요. 6시40분은 너무 이르고요. 7시30분 버스가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혜선이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란다. “겨울에는 날이 늦게 밝잖아요. 얘들 너무 일찍 가서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다른 마을보다는 버스가 자주 들어오니까 너무 편한 얘긴지도 모르겠네요.” “교육문제도 있어요. 수북리까지는 학원차가 오는데 다리건너 석탄리에는 안 오거든요. 아무래도 학원교육에 대한 혜택을 못 받아 다양한 교육을 시킬 수 없어요.”
“우리 마을 참한 노총각들 많아요. 장가 좀 보내야 해요” 이 말에는 아줌마들 저마다 찬조발언을 한다. 아줌마들 갑자기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는데 밥 먹으러 가자고 의견규합을 한다. 오늘 늦은 점심메뉴는 갈비인 모양이다. 식당 봉고차가 오더니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사라진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을의 옛날을 듣다
구멍가게 사랑방이 중장년층의 사랑방이라면 버스정류장 사랑방은 노년층의 사랑방이다. 어김없이 그 자리엔 노인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정류장 안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노인을 만났다. 최원근(67)씨, 류덕봉(68)씨, 김경재(64)씨, 강기문(65)씨, 황영근(60)씨. 류덕봉씨는 아직도 정정한 말투로 마을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가 수몰되기 전만 해도 엄청 컸지. 130여 가구에 6∼700명이 넘었으니. 굉장했어. 안터만 해도 웃말, 아랫말, 앞갈래, 솔모랭이, 진택거리 등 다섯 개 마을이 있었어. 여기 살기 좋았다잖아. 그러니 고인돌도 나오고 그러지. 옛날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거 아녀? 저기 굄돌(고인돌, 충북문화재 10호)하고 아밴형돌(선돌, 충북문화재 156호 : 애를 밴 임산부 모양의 돌이라고 ‘아밴형돌’이라고 했다)하고, 진택거리 주살맥이(마을 안쪽 선돌)가 마을을 지켜줘서 마을이 평안하게 지금까지 있지. 6.25 전쟁 때도 아마 한 사람도 안 다쳤지. 매 정월 열나흗날이면 거기다 마을 사람들 다 모여 제사 지내.”
현재, 안터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과 선돌이 각각 충북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터 선돌은 흔히 임신형 선돌로 불리는데 임신한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조각작품처럼 보인다. 배부분에 둥근 원이 표시되어 있는 점이 학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고인돌 또한 군내에서 드문 북방식 고인돌로, 덮개 돌을 둥글게 쪼아 전체적인 형태를 거북이 모양을 이루도록 했다.
마을의 이런저런 이야기들
마을 최고령자인 조규평(85)씨와 김남홍(83)씨는 집 앞에서 문틀에 톱질을 하고 있다. 누가 차로 대문 기둥을 부러뜨렸다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톱질을 한다.
“이거 내가 다시 고쳐놔야지. 문기둥을 이렇게 작살내놓고 갔으니..” 옆에 김남홍씨는 술이나 한잔 받아오라고 농을 건다. 최장근 이장의 마당에는 여러 마리의 새끼 도사견이 햇살을 쬐고 있다. “마을 살기 좋지요. 인심도 좋고. 얼마 안 있으면 선사공원도 생긴다고 하잖아요.” 배인득(83)씨와 며느리 경훈(최경훈)이 엄마는 김장에 열중이다. 잠깐 들렀더니 아예 김치 한포기에 밥 한 상을 차려 놓는다. “어여 먹고 가. 손주 같아서 그려.” 후식으로 커피까지.
낯선 나그네에게 이만한 인심 선뜻 베푸는 것이 바로 시골인심이라던가. 손주 최경훈(27)씨는 현재 충북과학대 학생회장을 맡고 있단다. 마을 뒤편 커다란 소막에는 최영세(70)씨가 소먹이를 주고 있다. 최영세씨는 전봇대 옆에 있는 마을 최고 어른 ‘주살맥이(선돌)’의 위치를 알려준다. 저기 멀리서 콩수레를 끌고 오는 박월하(63)씨는 마을의 제사 지내는 법에 대해 설명해준다.
“정월 열나흗날 10시경에 저기 마을 안쪽 주살맥이에 제일 먼저 제를 지내고, 그 다음에 마을 입구에 있는 임신한 선돌에 지내고, 마지막으로 고인돌 앞에 있는 선돌에 제사를 지내면 밤 12시쯤 돼.”
여름날 반딧불의 추억
안터엔 여름이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6월 초순부터 시작되는 반딧불. 이는 조용히 오솔길을 걷는 야간산책에 믿음직한 벗이 된다. 밤하늘 총총히 은은하게 발광하는 별빛과 화려하게 공간을 수놓는 반딧불이의 서치라이트는 그것만으로 여름밤을 채우기에 충분하게 한다.
반딧불이는 여름밤의 화려한 불꽃축제 외에도 여러모로 안터에겐 큰 의미를 지닌다. 반딧불이는 주로 청정지역에 서식하고 있어, 바로 안터가 청정지역임을 선언해주는 중요한 인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