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동생 이시영 대한민국 초대 부대통령). 그런데 이번에 이 분을 주제로 KBS에서 <자유인 이회영>이라는 5부작 드라마를 하였다.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을 공영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한 점은 크게 돋보였지만 5부작 정도로 끝나 너무나 아쉬었다. 50부작을 해도 시원잖을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욱 아쉬운 점은 9월 11일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8월 29일 첫 방송된 이후 전국기준의 시청률이 10% 대를 계속 밑돌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회영은 이시영을 있게 만들었고 항일독립운동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의 거점을 국내에서 외국으로 돌린 것이 1919년 3·1운동 이후라고 하는데, 이회영 선생은 이미 1905년 을사조약이후 다음해 곧바로 이상설을 만주에 보내어 서전서숙을 세우게 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6형제가 온가족 40~60여 명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1912년 신흥무관학교 세워 독립운동의 기반을 세웠으니,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틀은 우당 이회영 선생에 의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언급할 때 가장 첫 번째 그 이름을 떠올리는 가문이 바로 이회영 선생이다. 이회영 6형제는 삼한갑족(조선 역사상 가장 부유한 가문)의 후예로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이었다. 한양 땅에서 그분들 땅을 밟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그분들이 나라가 망하자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건너갔다. 명문가 출신으로 그냥 편하게 한세상 살다갈 수 있던 분들이 타국에서 독립투쟁을 하기 위해 현재 가치로 무려 1조원에 해당하는 액수를 몽땅 독립운동자금에 바친 것이다. 6형제는 일본의 통치 밑에서 비겁한 안위를 누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재물은 물론 가족의 안녕과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만주로 떠난 것이다. 이들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투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 한인촌을 만들어 해외로 이주하는 한인들을 집단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그분들 모두 해방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여섯 형제 중 유일하게 해방 후에 살아 돌아오신 분이 다섯째 성재 이시영 선생이다. 나머지 분들은 행방불명되거나 병사하였고 이회영 선생의 경우 흑색공포단을 조직,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조카 이규서(둘째 형 이석영의 아들)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더 황당한 것은 둘째 형 이석영 선생은 상해에서 ‘아사’(굶어죽음)하셨다. 삼한갑족의 후예가 굶어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분들이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한국인이다. 참고로 성재 이시영 선생의 며느리 분이 올해 100세로 이시영 선생 묘 옆에 움막을 짓고 거처하고 계시다고 한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지? 나라가 망했을 때 이완용이는 일본으로부터 15만원(당시 돈)을 받았고 이회영 형제는 400만원(당시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바쳤다. 그러나 이완용의 후손들은 잘먹고 잘살면서 대한민국의 최상위 계층으로 지내고 있지만 이시영 선생의 후손은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 현실... 바로 역사를 잊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현재의 방향, 목표가 없어진다. 또한 과거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자유인 이회영'은 한ㆍ일 강제병합 100년 특별기획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정동환, 안재모, 이아이, 홍일권, 김응수, 권오중 등이 출연하여 연기도 돋보였고, 일본인 기자 기무라 준페이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엮어간 기획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다루기 전까지 이회영이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공부를 거듭할수록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있구나'라고 감탄했다"는 신창석 감독은, "이회영이 김구 선생만큼이나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겠다"고 하였다.
이 가을에 인터넷을 통하여 “자유인 이회영, 해방을 향해 쏘다”를 다운받아 찬찬히 감상해 보길 권한다.(신 감독의 결의 그리고 드라마를 본 네티즌의 반응을 유념하자)
“이런 드라마를 그리며 항상 언니와 기다려왔어요. 고등학생이라 잘보진 못해서 많이 아쉬웠어요. 많은 분들이 이런 드라마에 관심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드라마 많이 방송해주세요. 존경합니다. 이회영선생님!” (사랑스런 아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자주 독립군에 대한 드라마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더 생겼습니다.” (eogksalsrnr)
“역사적인 사실이 너무너무 슬퍼서 참고 보기 힘든 드라마... 절대 권력 집안에서 자라 만주로 이주... 많은 형제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다 굶어 죽기까지한 철저한 실화...” (태구)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기까지 하다. 요즘은 너무 원색적인 드라마들이 많은데 더 가치있는 드라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가신 선인들을 많이 알게 되고 기릴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접할 수 있게 해 주시길...” (코람데오)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신 한국인의 큰어른! 그분의 선조 이항복 선생께선 임진왜란 때 왜구와 싸우셨고, 우당 선생께선 일제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이거 반드시 본방 사수해야합니다!” (각시탈V)
“이회영과 젊은 그들' 울면서 읽었다. 이 나라에서 어느 누가 독립운동에 나서리요. 독립군을 누가 하려 하겠는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빌어먹는다는 역사가 있는데.... 망할...”(수완동)
“학생들에게 수업에서 많이 얘기했었지만 이회영씨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않아 많이 아쉬웠었어요. 박정희나 이순신보다 모른다는게 말이 안되죠.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무한도적)
김동춘(역사학박사, 북경우리문화센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