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양식의 걸작이자 밀라노의 상징인 두오모(대성당) 외부 정면과 옆면 모습입니다. 2006년 6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밀라노 두오모(대성당, Duomo di Milano)
고딕양식의 걸작이자 밀라노의 상징인 밀라노 두오모(대성당)는 1386년 밀라노의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의견에 따라 대주교 안토니오 디 사루초가 기공하였다. 그 후 400여년이 지난 1809년 나폴레옹 왕자에 의해 길이 157m, 너비 92m, 높이 108.5m의 대성당으로 완공되었다.
밀라노 두오모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마치 숲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에 135개의 첨탑 하나하나마다 조각품을 올려놓아 그 수가 무려 3천 개 정도에 이른다. 성당 내부에는 100m 높이의 유리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고, 천정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대성당 입구 청동문은 성모 마리아와 성 암브로시오의 일화를 담은 부조 작품으로 유명하다.
고종희 교수의 이탈리아 예술산책 : 밀라노 ‘두오모 성당’ 밀라노를 방문한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두오모 성당이다. 두오모(duomo)란 말 자체가 대성당을 의미하기 때문에 밀라노의 두오모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밀라노의 두오모는 처음 보는 순간 그 높이와 화려함에 아찔함을 느낀다. 수백 개의 뾰족 석탑들이 레이스로 수놓은 것보다 더 정교하게 장식되어 성당의 외벽을 뒤덮고 있는데 고딕성당으로서는 세계 최대요,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 다음가는 규모란다. “역시 밀라노”라는 찬사를 받아내는 밀라노의 명물 제1호다.
내부는 거대한 기둥 숲이라 할 만한데 기둥들의 높이와 굵기로 인해 보는 이를 두 번 놀라게 한다. 길이 158m, 너비 93m, 높이 60m의 공간을 대형 기둥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와는 대조적으로 벽은 얇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다. 천상을 재현한 듯한 신비스러운 색상이 빛과 함께 교회 내부를 비추는 광경은 감동적이다. 육중한 건축물 무게를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색유리로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은 건축 공법 역사상 가장 기록에 남을 혁명이었으며, 고딕 건축의 승리였다.
이 성당은 그 규모 외에도 건설 기간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 1387년 시공에 들어가 19세기까지 공사를 계속했으니 5세기 간의 공사요, 밀라노의 근대사와 역사를 같이 한 셈이다. 성당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 조각가, 화가, 유리화가, 공예가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초청된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었다. 밀라노 역사에 등장하는 정치인, 종교인, 예술인 또한 성당의 건축사에서 각기 한몫을 했다. 1380년대에 대성당을 짓도록 첫 주문을 내린 당시 밀라노의 군주 장 갈레오초 비스콘티, 레오나르도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루도비코 일 모로 공작, 건축가 브라만테, 추기경이자 성인(聖人)에 오른 카를로 보로메오,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밀라노 두오모는 대표적인 고딕 양식이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이 성당 외에는 고딕성당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시에나와 피렌체의 대성당이 그나마 체면을 살리는 정도다. 서양의 건축사에서 고대 로마 이래 주도권을 잃지 않았던 이탈리아지만 고딕건축만큼은 프랑스에서 탄생하여 발전한 것으로 역사적 명성을 프랑스에 넘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고딕 성당은 밀라노에 있으니 규모로 오리지널리티를 압도한 경우라 하겠다.
두오모 앞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고 그 옆에는 ‘갈레리아’라 불리는 명소가 있다.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아치 정문과 함께 19세기 중반경에 만들어진 곳으로 거대한 유리 지붕으로 덮인 실내 거리다. 이곳에는 유서 깊은 카페, 서점, 음식점, 상점이 있는데 고급스럽고 격조 높은 밀라노의 쇼핑거리다. 아이쇼핑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곳이며, made in Italy 상품과 그들의 예술적인 디스플레이 수준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내가 즐겨 찾는 서점도 있다. 미술사 전문 서점으로서 수십년 전에 출간된 서적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최고의 고급상가가 즐비한 명소 거리에 미술사 전문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밀라노의 예술 수준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양여대 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문화일보 2005년 8월 1일]
밀라노(Milano)
밀라노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州都)로 포강의 지류인 티치노, 아다두 하천 사이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130만 명(2000년)이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다. 374년에 성 암브로시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부터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오는 오늘날에도 밀라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5~6세기에는 훈족, 고트족의 침입으로 시가지가 파괴되고, 다시 랑고바르드족의 점령 하에 들기도 했다. 샤를마뉴의 치하에 들게 된 무렵부터 밀라노 대주교의 권력이 강대해지고 인구도 증가하여 11세기에는 롬바르디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163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시가지가 파괴되었으나, 밀라노는 롬바르디아동맹에 가담하여 1176년 레냐노 싸움에서 황제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 후 귀족가문의 지배와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1861년 이탈리아왕국에 통일되었다.
밀라노의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가운데 4세기 말에 건립된 성 암브로시오 성당, 백대리석 고딕양식의 밀라노 대성당, 브라만테의 손이 가해진 성 마리아 성당과 그 성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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