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통/전통주의와 현대/탈현대
얼마 전 어느 서예잡지에서 '전통서예란 무엇인가?' 특집에 이어 '현대서예는 무엇인가?'라는 그럴 듯한 제목으로 기획물을 다룬 적이 있다. 전자의 질문에 답한 여러 서예가들은 물론 심지어 대학 서예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까지 자기당착의 모호한 답변들로 얼버무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부터 용어에 대한 개념의 정의나 질의의 핵심적 전제도 없이 마치 교실의 어린 학생이 무작정 손들고 선생에게 질문하듯 저급한 수준의 접근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니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통서예'가 마치 서예의 한 장르로 양식화된 결과물인양 착각한데서 기인된 오류일 뿐이다. 한편 전/후 특집상의 문맥으로 볼 때, '현대서예'가 소위 '전통서예'에 양립된 그 무엇인 것처럼 구분하고 있어 더욱 질문의 혼란은 가중되기 마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질의 자 와 답변 자들 모두 '전통의 개념을 혼돈하고 방황하고 있는 건' 그 개념에 대한 몰이해와 전통과 고전, 전통과 전통주의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음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철학적으로 보면 '전통서예란 무엇인가?'의 물음은 애초부터 모순으로 읽힌다. '무엇인가?'의 물음은 결국 '전통서예' 그 자체로 환원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 듯한 명제의 진지한 앎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란 무엇인가?'는 사실 매우 불확실한 물음인 것이다. '전통서예'에 대한 그릇된 통념(고정된 관념)을 전제하고 물었을 때는 더욱 무의미한 도로에 그치고 말게 된다. 그러니 답변 자는 '전통서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무슨 뜻으로 질문하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전통서예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사람은 우선 '누가, 왜 전통서예를 묻는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바보가 아니라면 우문 과 우답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듯, 자칫 동어 반복적이고 비생산적인 물음은 모처럼 잡지사의 특집의 의도와는 반대로 한국서예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특집기획자는 명심해야 할 줄 믿는다.
전통은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완료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현재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된 가치의 지속성이자 창조된 현재진행형의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란 계통적 특성이자 그것에 내재된 창조적 정신성을 일컬음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통은 그것에 역행하는 보수적 전통주의나 의고적 고전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진정한 전통이란 어느 때나 역사에 대한 주체적 해석력과 그 실천에서 기인하는 자연생명의 계통인 것이지, 죽은 목숨처럼 정체되거나 화석화된 유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통적 서예나 보수적 색채의 전통주의 서예라는 말은 가능해도 현대서예에 대립된 개념의 '전통서예'란 말은 성립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전통적이고 전통주의에 입각한 서예라 할지라도 시간의 현재적 개념으로 볼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오늘 여기의 현대서예(당대서예란 개념에서 현대서예이지 현대주의 서예로서 '현대서예'는 아니다.)일뿐이지 고대서예나 근대서예의 아류적 '전통서예' 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의 전통적 서예나 전통주의 서예도 현대서예에 속할 때만이 성립 가능한 것이지 현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조차 없음이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명제도 하나의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성을 내포한 현대서예도 현대주의 서예와는 그 차별성을 드러낸다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보통명사로서 현대는 단순히 당대의 의미에 속하지만 예술사조로서 현대주의(모더니즘)는 객관적 전통주의 양식과는 아주 다르게 주관주의적 경향으로 더욱 복잡다기한 현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20세기 한국서예는 유감스럽게도 현대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현대주의 개념은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에 탈현대(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더욱 생소하기 마련이다. 한국 현대서예사의 낙후성과 모든 문제점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개념 없는 이론은 공허하며 이념 없는 예술은 종속적 맹목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의 전통 없이는 전통의 창조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전통의 답습만 존재할 뿐이며, 마침내 전통의 단절을 가져 올 따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예라는 동양고유의 예술장르에서의 현대성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전통성부터 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비록 늦었지만 당대적 현대서예에서 현대주의적 '현대서'로 성장하기까지 그 현대성을 성격 지우는 조건에 대해서도 규명해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본고 에서는 현대성으로부터 탈현대성의 중첩된 근간의 양식들을 언급하고, 아울러 그에 따른 예증으로서‘90년대(89∼99년)를 중심으로 한 한국현대서예의 동향과 21세기 한국서예의 전망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2. 전통성 - 창조의 전통과 전통의 창조
서예에 있어서 창조적 현대성의 조건을 논하기 전에 전통성과 전통양식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미술사 연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고유섭(高裕燮 1905∼44)은 일찍이(1941년)「조선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의식의 자각, 자의식의 확충을 위하여는 부단히 전통을 찾아야 하며, 부단히 전통을 찾자면 부단히 그 특색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 전통을 돌보지 아니하였고, 너무나 오래 특색을 찾지 않고 있었다. 이는 결국에 있어 자아의식의 몰각이며 자주 의식의 몰각이다. 자아의식과 자주의식이 몰각된 생활, 그것이 실로 산 생활이 아니며 문화인의 생활이 아니다. 이 뜻에서 우리는 조선미술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일제 강점기 전통의 단절에 대한 반성적 우려와 주체적 전통의 계승을 거듭 당부하고 있는 민족주의자적 살아 있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지나 세기가 바뀌도록 우리는 부끄럽게도 한국미술의 전통 가운데에서도 그 핵심에 해당하는 한국서예의 전통과 그 특색에 대해 제대로 정리해 놓은 문헌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아직 한국에 서예사학자가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체계 있게 쓰여진 반듯한 한국서예사 한 권 출간된 것이 없다. 다만 한국서예의 특색을 논하는 자리이면 의례히‘동국진체(東國眞體)’를 들고 나오거나 고작 위대한 천재 추사체(秋史體)의 김정희를 간판스타처럼 앞세운다. 그것도 검증된 자기 논리나 현대적 예술론의 관점이 아닌 주석잡담이나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알량한 수준에 불과하기 일쑤이다.
그리고 또 있다. 흔히 쓰이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서여기인(書與其人」의 전근대적 사대서법이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대부분 해괴한 괴변이거나 오독(誤讀)에 지나지 않는다. 법고(法古)는 옛 것((古)을 본받는다(法)는 뜻인데, 옛 것을 본받기만 한다고 새 것이 창조될까?중국 것을 본 받는다고 내 것이 창조될까? 한번쯤 의문을 가져 봄직도 한데, 대부분 2∼30년을 선생 체본 쓰기로부터 중국고전(비첩) 흉내내기에 아까운 청춘을 다 허비하고도 모자라 전통서법이랍시고 그것의 계승을 도모한다.
법고(法古)가 고전주의적이라면 창신(創新)은 현대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통시성으로 봐도 오늘, 여기의 예술인 창조행위로서의 현대주의적 성격의 서예는 기본적 자양분으로서 가치를 제외하면 보수적 고전주의나 사대적 전통서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옛 것은 옛날에 있고 오늘의 것은 오늘에 있는 것(昔物自在昔, 今物自在今)이지, 옛 것이 지금의 것이 될 수 없듯 지금의 것 또한 옛 것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즉 석물(昔物)과 금물(今物)은 서로 오고 갈 수가 없는 이치는 시간의 일회성(一回性)과 동시성(同時性) 때문이다. 어찌 법고의 고(古)가 창신의 금(今)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피상적 형식에 얽매이는 법고는 법고일 뿐 자유로운 창신이 될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서여기인(書與其人)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서와 人을 일치시킨 예(藝)보다는 법(法)과 도(道)에 치우친 전근대적 개념이다. 물론 글씨와 그것을 쓴 사람과 무관할 수는 없다. 글씨는 곧 쓴 사람의 마음씨란 말도 있긴 한다. 하지만 글씨쓰기는 커녕 그 글뜻도 모르고 그리고 있는 문맹(文盲)한 오늘날에 와선 작가의 마음씨와 너무 동떨어지거나 아예 무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글씨만을 논하자는 단순논리가 아니라 현대예술로 서예술에 대한 논급에서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아득한 얘기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서여기인(書與其人)에서 서(書)가 서품(書品)이라면 인(人)은 인품(人品)에 해당된다고 했을 때, 서가 인격 수양과 출세가도의 도구이던 시절(봉건왕조시대)의 서가 예술창작의 매체가 된 현대의 서예와는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음에도 오늘날 한국서예가는 예술가와 선비라는 이중적 가면을 쓰고 표리부동의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실용서는 현재 거의 자취를 감췄음에도 예술서를 지향한다는 대부분 서예가(書藝家)들이 비예술적인 자기모순의 깊은 질곡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좋은 경귀(經句)와 아름다운 싯귀(詩句)는 다 골라 쓰면서 속마음은 먹색 보다 더욱 검은 철면피의 정치가나 상업적 모리배나 다름없는 교수서예가와 사대서법가도 있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더욱 중요한 문제는 현대인이면서 현대서를 쓰지 않고 사전에 있지도 않는‘전통서예’를 열심히 본받고 또 가르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앞장서서 호도하는 잡지사와 유아독존적 편견에 입각하여‘절대조형’을 강요하고 있는 자도 있으니 서예술을 논하기 전에 실로 한심한 꼴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절대조형’이란 절대자의 영역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러한 조형은 인간 세상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인(人)과 서(書)의 양자관계를 필자의 견해로 바꾸어 풀어 본다면 주체적 심물(心物)과 객체적 심물로 구분하여 해석 할 수 있다. 주체적 심물이란 아직 마음속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문자)조형, 즉 심물조형(心物造形)을 말하고, 객체적 심물이란 필묵의 동시성에 의해 이미 표현된 결과물로서의 조형심물(造形心物)을 말한다. 전자는 창작의 바탕인 무형물에 속하고 후자는 감상과 비평의 대상인 유형물에 속한다. 따라서 무형에 없는 물(物)은 유형화 할 수 없고, 유형화된 물(物)은 무형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는 매우 중요하다. 전통의 공간성과 현대의 시간성이 교차되는, 유형/무형을 조화롭게 합일시키는 물파서예(物波書藝)의 창작 원리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3.현대성 - 매체와 주체 그리고 제도적 공간
20세기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전통과의 단절을 통한 개별성의 극단적 추구를 들 수 있다. 가히 인문사상의 개벽이라 할 수 있으리만치 다양한 개념과 착종된 양식들의 범람으로 복합적이고 난해하다. 전쟁과 기아, 이데올로기와 정치, 인구와 통신등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이라고 해서 역사와 무관하게 초연할 수는 없다. 미술사조와 역사의 강은 어쩔 수 없이 함께 흐르기 마련이다. 하나의 지구촌화된 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그 밀접성이란 헤아리기 조차 어렵게 되었다.
그 가운데, 20세기 미술사 가운데 포함된(엄밀히 말해 굴욕적이나마 제대로 그 가운데 포함시키지도 못하고만 셈이다) 서예사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동양 3국 전체의 총론으로 보나 저마다의 각론으로 보나 주어진 위상의 초라함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멸망당하지 않고 명맥은 유지했다고 21세기 후손들에게 그나마 자위해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돌이켜 반성해 보면 서양미술에 대결한 동양서화는 무참히 참패당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물론 무지의 탓만은 아니었다 해도 새천년을 앞둔 지금은 일방적 흐름에 내맡겨 물구경이나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는 전환기에 이르렀음을 자각해야 될 줄 믿는다.
20세기 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산업의 혁명시대로 진입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위 근대화는 서구화요 현대화는 과학화의 추세였으니, 동양3국 한자문화권의 낡은 전통이 되다시피 한 서법·서도·서예(명칭의 역사 順)로서는 거대한 서양(西洋)의 황금빛 조수(潮水)에 감당하기 조차 힘들었음을 스스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음직도 하다.
하지만 동양정신의 자주적 주체성의 상실과 서구 제국주의에 병든 또 하나의‘자아의식의 몰각’이 더 큰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 와중에서 우리는 동남쪽 해협으로부터, 또 다시 붉은 대륙으로부터 역사에 없었던 질곡을 겪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실로 초토화된 문화의 암흑기와 예술의 궁핍기로 기록될 만큼 금세기의 절반을 환난 속에 보낸 셈이다.
문화와 예술은 시련과 궁핍속에서 꽃된다고 했던가!사실 과도한 서구화의 현대미술 사조 속에서도 현대서예가 꿋꿋하게 살아 그 푸르름을 더해 갈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도리어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 일제 암흑기를 거쳐 해방공간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서예가 출발되고 다시 초토화된 분단상황에서도 경제 발전과 더불어 서예인구의 저변확대로 작가층이 두터워진 90년대 들어와서는 다양한 목소리와 빛깔의 서예단체와 그룹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한국현대서예사 속에서 모더니즘 성격의 운동과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의 작품을 탐색하기에는 만족할 만큼의 성숙된 것은 아니나 자료의 빈곤과 다양성의 결핍이라는 악조건하에서도 그것들의 공통된 현대성(Modernity)은 찾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작업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할 문제는 현대서예의 당위성을 위한 현대성의 조건을 알아 보는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서예에 있어서 현대성의 조건이란 어떤 것인가?간략히 살펴 보겠다. 서예가 현대서예로서 성립될 수 있는 성격의 조건은 다음 세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매체의 현대성이다. 서예는 고대 문자의 새김질에서부터 지필묵(紙/筆/墨)이라는 고유의 도구사용으로 다른 예술장르와는 차별화를 가져 왔다. 칼에 의한 문자새기기와 붓에 의한 문자쓰기는 서화동원론과도 관계없이 회화(동양미술)로부터도 독립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서예가 디자인 개념에 더 가까운 서구의 캘리그라피와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서예가 회화보다 고도로 발전된 동양에 있어선 일찍이 실용성과 예술성을 병행하여 발전해 왔으며, 더욱이 상고시대 한자(漢字)의 상형적 특수성과 지필묵의 발달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를 가져 온 것은 특기할만 하다.
그러한 현상은 동양3국으로 분파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문자의 창조와 더불어 시대성에 따라 더욱 개성 있는 발전을 지속하고 있기도 하다. 인류문명사에서 최고(最古)문자인 바빌론 문자나 이집트문자는 모두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졌는데, 유독 한자만은 부활된 동이문명 (史實 고대문명단위로서 황화문명은 동이문명임이 갑골문연구로 이미 밝혀 졌다) 으로 아직도 청춘이다. 특히 금년은 갑골문 발견 100주년이 되는 해다.
어째서 한자(엄밀히 말하면 동이문자이다)만 살아 남았을까?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그것은 모필(毛筆)의 발견이다. 매체의 특수성으로 문자쓰기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문명의 문자는 모두 칼의 시대에 끝나고 말았다. 오직 붓의 시대로 넘어온 문명의 문자만이 고도의 인문사상과 더불어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예의 필묵은 회화의 매체일 뿐만 아니라 시(詩)의 매체이기도 했다. 시서화(詩/書/畵) 3절 중에 서(書)가 빠지면 시(詩)도 화(畵)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것을 종합한 특수한 매체가 곧 문인화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매체가 현대문명의 서구화로 어쩔 수 없이 낡은 전통의 골동품이 되고 말았다. 신선도 군자도 선비도 우리 서예계는 그다지 없다고 말한다면 버럭 화낼지 몰라도 붓으로 글씨를 써서 작품보다는 이름을 팔아먹고 사는 입장에 할 말이 또 있을까 궁금하다. 과거도 없어지고 대서방도 없어졌는데 어떡하는가 되묻는다면, 그럼 붓을 꺾든지 예술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오늘날 직업 예술가는 작품을 팔아 문화생활을 영위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예가 대부분은 현대예술에 대해 무지하다. 아예 터부시하기 조차 한다. 학자인양 제법 선비인체까지 한다. 비록 비전공의 과도기적 책무의 교수와 석/박사도 있긴 하다. 그런데 대안도 없으면서 '현대서예'를 매도한다. 최소한의 다양성까지 부인한다면 그것은 도를 지나 몰상식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통의‘틈새를 파고든 현대서예’라느니,‘서예는 글씨만 잘 쓰면 되는 것이다’에서부터‘물파서예가들은 글씨를 잘 못쓰는 자들의 모임이다’까지, 심지어“서양인들의 기법이나 일본의 전위작가들이 시도한 것 등을 모방하여 서예의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으로 비평가적 담론도 서슴치 않는다. 그것이 시대에 낙오된 전통서예’가들의 주장인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한국서예를 획일화하고 사대화하고 아예 멸망시켜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서예는 부흥할 것이다. 현대서예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꿋꿋하게 살아 그 푸르름을 더한 다음에는 꽃 필 것이다. 찬란하게 꽃피울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는 멀티미디어의 사이버 공간 속에 사는 현대인은 현대사상에 입각해 현대서예를 쓰자!지필묵과 문자(서체)를 더욱 다양하게 우리체질에 맞게 개발하여 쓰도록 하자!문자의 해체도 탈의미도 무방하다. 매체의 현대화는 곧 국제화와 세계화의 첩경이기도 하다. 현대서예가 서예의 범위를 벗어나고 물파서예가 물파예술이 되면 어떤가?다른 장르로 넘겨 주면 될 게 아닌가?서예가 한국미술에 공헌하면 어디 덧나는가?서예가는 화가를 겸하면 왜 배아픈가?옛날엔 시/서/화를 모두 합해 시인묵객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것이 서예술의 진정한 저변확대의 첩경인 것이다.
둘째, 주체의 현대성이다. 서예의 현대성을 규정하는 요인으로 매체 보다 주체의 역할이 더 중요함은 두 말할 나위로 없겠다. 현대서예의 중심성은 무엇보다 작품의 주체가 되는 작가의 의식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주체적 심물(心物), 즉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올바른 전통개념으로부터 기호학과 해체주의 등 동시대의 서양사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철학적 미학적 관점을 총망라한 의식구조가 현대성을 규정한다. 모든 창작물은 작가의 사유체계와 현대적 문화환경으로부터 주어진 이미지(心象/心物)의 내면적 세계로부터 베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성의 주체는 곧 시대정신에 입각한 작가의 내면 의식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뚜렷한 인식론적 관점이나 주장없이 현대예술에 가담하기에는 이미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다. 전통적 필묵으로 흰 화선지에 무슨 문자나 혹은 무슨 서체를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는 글씨이긴 하지만 서예술(예술작품으로서 서예)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은 범람하는 아류성과 기초적 단계의 수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고유성과 작가의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문제이다. 차별성과 독창성이 없는 전통적 답습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더 더욱 논할 수 없는 문제로서 서예계 밖에선 더욱 발붙일 수 조차 없음이다. 우리는 그 만큼 고도의 전문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진정한 서예술의 부재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필자가 참관한 100년 역사의 48회 베니스 비엔날레전시장들 속에 쏟아지는 빛의 입체적 영상물과 평면의 사진들은 즐배해도 서예는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서구미술 지향의 광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수묵화와 문인화전은 있어도 서예전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과대 포장된 감이 없지 않은 '세계서예' (전통서예와 마찬가지로‘세계서예’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전북 비엔날레만 소리없는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월간미술」(7월호) 기자는 제1회 때 보도와는 달리 지방 뉴스난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이상하게도 주체측은 관객동원과 매끄러운 행사진행에 있어 커다란 실망을 안겨 주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시회를 개최하는 경우에 서예 관계자나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이외에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는 결국 비엔날레 경영으로는‘옥의 티’로 남게 된다. 이번 서예비엔날레는 개최사실을 도민들 조차 모를 정도여서 집안잔치로 끝나 버렸다는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유명한 비엔날레가 열리면 관람자가 넘쳐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이번 서예비엔날레는, 전시를 개최하기 전에 어떤 층을 감상자로 겨냥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고지를 해봤자 늘 텅빈 자리만 남길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인용이 좀 긴듯 하나 서예가의 주체성 뿐만 아니라 서예행사의 주체성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옮겨 본 것이다. 이는 서예의 현대성과도 관련되는 문제로서 2회째인 99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엔 전통적 서예 위주의 행사의 표본으로서 현대서예에 대한 기획은 찾아 볼 수 없다.‘세계서예’를 표방하는 전북비엔날레가 어느 시대의 예술을 취급하고 있는지 한번쯤 자성해 봐야할 줄 믿는다. 외국작가에게만 상을 주는 제도도 주체성을 상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서예가 아닌 아시아서예(동양3국외에 다른 여러 국적의 참가작가들은 이민간 화교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아시아 작가끼리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리라 본다. 돈은 우리 세금으로 내고 상금은 우리 보다 더 부자거나 강대국이 타간다?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셋째, 제도적 공간의 현대성이다. 서예의 현대성을 구축해 주는 제도적 공간이라는 세번째 조건 없이는 앞에서 예시한 두가지 조건 역시 성립불가능 해진다. 작품과 작가가 있어도 현대적 제도의 장치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위 서예문화의 인프라에 해당되는 제도적 조건, 즉 미술관이나 서예관의 전시공간 확보, 사회교육기관의 확대와 대학교육의 설립, 이를 원활히 홍보하고 유통시키 위한 인쇄물이나 전문잡지, 그리고 작품의 정당한 가치 평가를 부여해 주는 평론과 역사서술 등의 뒷받침을 말한다.
구시대와는 달리 이러한 새로운 제도와 조건들이 작가와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한국현대서예의 성격을 결정지우는 우리나라의 제도적 공간의 현대성은 아직 미흡하기만 하다. 타장르의 예술에 비해 겨우 초보단계의 수준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모든 문제점들이 보수적 전통고수나 문화적 사대주의에 의한 의식의 낙후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나마 몇몇 뜻 있는 원로서예가들의 노력에 의해 예술의전당에 서예관이 개관되고 대학에 서예과가 신설되었으며, 잡지도 새롭게 정비되기 시작하여 논단이나 전시평이 실리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서예의 창출을 위한 현대성의 조건으로서 제도적 구조조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채, 새로운 세기를 맞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혁명적 의식의 전환을 가져 오기 전에는 당분간은 퇴보의 길을 막는 것만으로도 여간 여렵지 않는 악 조건의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제도적 개선을 위한 아무런 노력 없이 지난 10여년 동안 상업적 공모전만 150여개로 늘어난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터이다. 도리어 협회들이 그것을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서단에 있어서 미래지향적 현대성의 걸림돌은 모두 이 공모전이라는 전근대적 제도에 있다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말이 무슨 서예대전이지 전시(大展)가 목적이 아니고 계파형성과 갈등의 악순환을 가져 오는 운영과 심사가 목적이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운영/심사위원의 권한은 가히 카르스마적이어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권능자처럼 무소불위로 금력(金力), 권력(捲力)에다 애정(愛情)의 힘까지 동원하여 그 칼자루를 마구 휘두른다. 힘없고 가난한 서민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만큼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선생대접이 소홀하다고(공모전 입상 댓가) 제자를 무자비하게 파문하기도 한다. 그 병적인 열기가 식기 전에는 한국서예의 현대성은 요원하기만 하다할 것이다.
슬로건은 모두 그럴 듯 하다. 서예문화 발전에 기여와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이다. 알고보면 장사하자는 속셈이다. 진전한 고급예술은 저변확대를 선동하지 않는다. 고도의 인문정신이 요구되는 서예의 대중화의 길은 질적 저속화만을 재촉할 뿐, 세계미술 속에 경쟁력은 제고되지 않는다. 식민지시대의 잔재물인 공모전이라는 낡고 병든 제도를 아직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한, 서예는 미술(Art는 본래 공예에 가까운 개념으로 순수미술을 나타낼 때는 Fine Art라 표기한다. 일본인들의 신조어‘美術’도 꾸밈의 기술에 지나지 않는 서예의 하위개념이다)의 종노릇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술의전당 서예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은 현재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전시/교육/관리/운영을 각기 나누어 몇 편의 논문을 써도 될 만큼 방대한 규모이다. 그만큼 문제성도 방대하다. 그러나 실제적인 모습의 서예관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허울대만 근사한 속빈 강정이다. IMF한파에 얼어 붙어 인력은 줄고 금력(예산)도 동결된 상태이며, 독립된 사무실과 그 자료실 조차 슬그머니 사라진 상태이니 더 이상 무엇을 탓할 수 있으랴 싶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 문제점을 간단히 열거하면 첫째, 전문인력이 전무하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다든가, 동양에서 유일하다든가 하는 서예 전문기관에 큐레이터(서예전문 학예사), 연구원 한명 없이 전시기획을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으며 (이 점은 우리나라 국립박물관과 미술관도 같은실정이다. 서예작품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회화의 대부분이 서와 한문을 모르고도 감식하기 불가능함에도 서예전공 학예연구원은 1명도 없는 걸로 안다), 자료가 있다한들 자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둘째, 교육의 합리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높은 수강료와 높은 강사료로 인해 전수받는 수강생이나 전수하는 강사 모두 특별한 신분처럼 되어 있어 기회균등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커리큐럼으로 교육되고 있는 것도 아닌 일반 서예학원의 도제식 교육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데도 말이다. 어떤 특정인은 10년을 줄곧 강사직을 역임한 바도 있다.
셋째, 홍보의 부족이다. 그만한 전문기관에 자체 홍보의 독립된 기관지 하나 없다는 것은 시대성에 뒤떨어진 행정력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무슨 전시가 기획되고 있으며 어떤 전시가 있었는지 전국의 대부분의 서예인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단일행사 하나에 수천만원의 세금을 쓰면서 국민의 문화적 향수는 물론 서예관계 전문인마저 알 권리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안이하고 무책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개인 홈페이지는 물론 요즘 왠만한 전문기관이라면 자체홍보 인터넷 싸이트를 다 갖고 있음에도 서예관은 잠만자고 있다. 예술의전당 소개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예술장르에 비에 언론매체 홍보도 미온적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하나의 좋은 예로 지난 9월 4일 오픈한 3년여에 걸쳐 기획했다는「동아시아 문자예술의 현재전」도 그렇다. 기관장과 출품작가 (한국측서예가6명) 외에는 초대장이 발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픈식에도“서예관계자나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고도 서예관의 10년동안 관객의 수가 고작 같은 예술의전당안에 위치한 미술관의 1년입장객에도 못믿친다고 투덜 댈 수 있겠는지… ‘전시는 있어도 관객은 없다’는 서예관의 10년 전통을 언제 불식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넷째, 현대식 장비를 갖춘 서예자료실 운영과 서예박물관 기능을 겸한 복합공간으로의 전환이 아쉽다는 점 등이다.
이상 서예관이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했지만, 서예작품을 기획 전시할 수 있는 전문화랑·하나 없다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필자로선 막막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서예전시를 거부한다. 대관신청마저 잘 받아주지 않는 실정이다. 왜? 무엇 때문일까? 협회나 대학이 한번이라도 구체적 대안을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연중행사의 공모전에만 치루면 그것으로 협회의 할 일이 다 끝나는지 묻고 싶다.
160년 역사 밖에 안 된 사진예술은 세계적으로 오래전에 미술관에 진입했는데, 미술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데도 하필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예는 왜 찬밥신세 일까? 비예술로 취급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지난 1년간 도올아트센타의 기획을 맡아 신춘기획시리즈전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직하게 말해 한국서예는 아직 독립된 매체로서 예술장르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다음은 교육제도의 현대성에 관한 문제이다. 대학서예교육의 효시인 원광대학교 서예과의 설립(1989)에 이어 대구·경북·대전 등 네 곳으로 확대되었다. 다행히 호남대학의 미술과내 서예전공과 경기대학의 대학원에서의 서예전공 설치가 준비되고 있다는 최근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인문계열에 소속된 대전대학 서예과를 제외하곤 모두 미술대학에 속해 있음에도 미학이나 현대미술 이론과는 무관한 것처럼, 대부분 커리큐럼에 제대로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니 현대성 보다는 전통성에 의존한 법첩과 체본위주의 도제교육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왜 그런가?교수진 대부분이 서예를 학문으로도 현대예술로도 전공하지 않은 데다 (한문과 전공이 주류이다) 묵수적이거나 보수적 사고의 소지자들로서, 여전히 공모전에 관여하고 있다는 데 보다 큰 원인이 있다. 학교 밖에서나 안에서 그들의 관심이 공모전에 쏠리는 한 전근대적 교육형식인 도제식 방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의 현대성의 제도적 조건으로서는 출판매체(서예 관련서적 및 서예잡지, 신문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서예전문 월간잡지는 현재 여섯 종류가 있고 협회 기관지 형태의 년간도 2종 출간되고 있다. 그 중 월간지로서는 통권 217호를 기록하고 있는 잡지(「月利書藝」)도 있다. 그 나머지는 2∼4년 미만의 지령이므로 서예인구 200만을 헤아린다는(공식집계가 아닌 크게 부풀린 숫자로서 필자의 견해로서는 그 10분의 1인 20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 하다.) 서단의 규모나 이웃 중국·일본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광고형식의 전시소식이나 짧은 외부기사가 고작일 뿐, 본격적인 전시평이나 시사적인 논평과 작가론은 매우 드문 편이다.
인쇄매체의 제도적 환경과 관련하여 또 다른 구성조건인 평론가의 위상과 역할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잡지의 수가 적은 만큼 서예평론가 수도 한 손으로 꼽을 만큼 몇몇 되지 않는다. 평론가를 양성시키지 못한 원인은 서단의 총체적인 책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예가들이 비평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작품평에 익숙하지 못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비평가도 재담같은 말장난이나 평을 위한 평이 아닌 작품의 결함을 정직하게 보완해 주고 나갈 방향을 보다 정확히 안내해 줄 수 있는 관련 학문에 대해 다각도의 심층적인 공부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고, 비평가는 자기 이론과 관점에 따라 비중있는 전시기획을 통해 작가를 발굴 양성해야 할 사명도 요구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항은 작가와 평론가의 양립된 제도적 장치를 위해 관용과 이해로서 서로 공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선후배간의 존경과 사랑을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 믿는다. 지난달 대만에서 목격한 일례로,「대만미술평론전집」10권을 출간 (「예술가」출판사와 대만성립 미술관 공동출판)하는 과정에 있었던 미담과 보기 좋은 광경이 인상 깊다. 이미 작고 했거나 생존해 있는 대표적 원로 평론가 11인을 선정해서 매권마다 한 사람씩(2권만 2명합 분)전생애적 평론활동과 업적을 평가하는 작업을 그들의 후배나 제자뻘인 3∼40대 젊은 평론가들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새로운 각도의 대만현대미술사이자 일종의 메타비평전집이기도 한데, 책도 아름답지만 선후배간의 존경과 신뢰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필자는 우리나라도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에 미쳐서는 모든 여건이 시기상조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4. 한국서예 - 예파/법파/조형파/물파
필자는 한국서예사의 근대와 현대의 구획문제를 다음과 같이 나눈 바 있다. 근대서예를 19세기초 자하(紫霞)와 추사(秋史)로부터 해방 전까지로 보고, 현대서예는 1945년 소전(素筌)손재형으로부터 시작된다(「월간미술」99년 4월호 P. 50「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참고)고 하였다. 그 이유는 조선후기의 진경문화시대(숙종-정조)에 이룩한 동국진체에 이어 19세기는 청대 금석문화와 고증학의 유임으로 새로운 근대사상이 싹튼 시기였기 때문이며, 서구사상의 본격적 도입시기인 1910년이후 일제강점기는 이완용으로부터 선전(鮮展)을 통한 친일파의 득세와 추사체 아류가 횡행한 근대한국서예사의 쇠퇴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어서 현대서예의 출발점을 1945년 소전으로부터 보는 것은, 그가 그해 9월 조선서화동연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으면서 식미지하에 써오던 서도(書道)라는 명칭 대신에 현대적인 명칭의 서예(書藝)로 쓸 것을 주창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해방공간으로부터 국전(國展) 30년의 역사를 서예가인 소전이 주도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곡(原谷)은 그의「한국서예사」에서 이 명칭의 사용과 그의의에 대해“소전이‘서도’대신에‘서예’로 한 것은 우선 일제강점기 때의 불쾌한 기억을 씻어버리자는 뜻도 있지만,‘서예’라고 한 것은 더 합리적이요, 현대성을 띤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보듯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서예사의 근/현대 구분의 단서로서의 시대의식은 물론,‘서예’라는 명칭에서‘현대성’을 발견한 사실이다. 새로운 서예술, 즉 현대서예로의 진입을 위한 역사적 문화적 통찰로서의 시대성에 대해 반성해 볼 수 있는 일종의 사명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식민지하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의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대서예의 출발은 근대서예와 마찬가지로 결코 일본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예술의 근대적 성격의 극복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하지만 20세기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우리는 정보와 교육적 인력의 축적에 있어 그들 보다 낙후된 채, 뒤쫓아 가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해방 후 대학의 미술교육자들 대부분이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화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여실히 증명된다. 히다이 난코쿠(比田井南谷)의 일본 현대서(전위서)의 효시라고 불리우는「電의 바리이에이션」은 이미 1945년에 제작되었다.
한국서예의 현대성은 외세의 이데올로기 의한 남북전쟁으로 인해 좌절된 채, 미술문화 전반에 걸쳐 미국화라는 서구지향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유일한 관전인 국전을 통해, 서예뿐만 아니라 미술계 전반을 장악 주도했던 소전은 스스로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창작은 물론 한국서예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하지만 장기 집권과 자기 서체 보급이라는 문제로 국전 후반기는 반대파의 대두를 불러 오기도 했다.
한편 군사혁명정부는 한글전용화를 발표하기에 이르고, 한자를 근간으로 하는 서예는 점점 대중화와 저속화의 길을 가게 된다. 마침내 청말의 추사시대를 방불케 하는 비첩파들에 의해 북비(北碑)가 크게 유행하면서 특정인의 서체의 아류가 법서(法書)가 된다. 땅속에 묻혀 있던 묘지명이 부활하여 수입되고 무식한 육조(六朝)의 속서(俗書)가 시체(時體)로 둔갑한다. 마침내‘서예’는 신사대주의‘서법’으로 명칭마저 바뀌고, 한국서예의 현대성은 또 다시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나마 관전에서 민전으로 발전한 제도에 힘입어, 80년말에서 90년초까지 비록 과도기적이긴 해도 앞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변화의 목소리를 내게 된 중요한 시기이다. 필자는 현대 한국서예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편의상 네시기로 구분하고, 작품유형 역시 네가지로 나눈 바 있다. 제1기 국전전기(1∼15회), 제2기 국전후기(16∼30회), 제3기 미술대전기(92∼98년), 제4기 서예대전기(89∼ )가 전자에 속하며, 예파(藝派 : 서를 현대예술로 보는 유파), 법파(法派 : 서를 전통 서법으로 보는 유파), 조형파(造形派 : 서의 양식적 조형성을 강조하는 유파), 물파(物波/Neo-Wave :필묵을 心物之波, 즉 선의 파동으로 해석하는 유파) 등이 후자에 속한다. 이는 특징적 유형일 뿐, 반드시 유파의 성격은 아니다.
다시 시기별로 그 유형을 살펴보면, 제1기는 예파(素筌과 一中 등)가 주도한 시기이고, 제2기는 예파에 맞선 법파(劍如와 如初 등)의 등장시기이며, 제3기는 법파의 전성시기이고, 제4기는 예파와 법파가 분리되면서 조형파(1991∼96 )의 부침과 물파(1997∼ )가 탄생한 시기이다. 특히 제3기는 예파와 법파의 2세들이 등장하는 시기로 중도파 (예파도 법파도 아닌 중도적 기회주의파)와 더불어 기타 잡파(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 행동을 하는 재야파)들이 착종하던 백화제방식의 과도기적인 시기이다.
새천년-서예는 살아남을 것인가?
뉴밀레니엄, 한국서예는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디지털 정보혁명이 '서예'영역이라고 예외로 남겨 두지는 않을 것이다. 수천년 전통의 필기도구인 붓이 펜으로 바뀐 20세기 변혁만이 문제가 아니라, PC의 도입으로 아예 사무실에선 종이마저 사라지는 살풍경의 대변혁의 세기가 눈앞에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무거운 벼루는 물론 지필묵은 이제 더이상 보배(四寶)가 아니다. 선비가 과거공부를 위해 명필로 책서(冊書)와 시문을 초하고 궁녀와 규수가 아름다운 한글서체로 봉서를 올리던 시절도 지금은 TV나 인터넷 모니터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는 서예가를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에 가서나 만나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두꺼운 종이책들마저 사라지고 무거운 책가방이나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서가도 더 이상 없다고들 말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전자책(E-Book)이 책가방과 서가를 대신한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선조가 인류문명사에 최초로 선물한 금속활자 발명과 한글 창제이후 최대의 변화가 출판계에 일어나리라고 한다. 전자책의 출현은 출판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독서환경, 생활방식마저 모조리 바꿔놓고 말 것이기에 서예계라고 무풍지대로 가만히 남아 있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전자책이 일반화되면 종이와 인쇄나 제본, 유통의 비용이 사라지듯, 서예인들로 아날로그식 서체자전이나 서예잡지를 보기 보다는 보다 값싸고 편리한 디지털방식의 웹진(Web-Magazine)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활자에서 바이트로의 전환과 네트워크는 21세기 인류문명 전반에 걸쳐 대혁명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지필묵을 사용하는 서예술의 생명은 끝나고 말 것인가? 한마디로 필자는 그렇게 전망하지 않는다. 신세기의 신기운(新氣運)에 의해 보다 밝고 정직한 심성(心性)으로 보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다양성의 서예술을 창조해낼 것이라 믿는다.
디지털시대일수록 도리어 우리다운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씀의 예술과 맑고 아름다운 기운을 전할 수 있는 순수 매체로서 한국서예는 더욱 귀하고 소중한 대접을 받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만큼 참된 서예가와 서예작품의 희소가치도 높아 질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동이문명의 동이문자를 온전히 회복하고 이미 우리 문자화한 한자는 물론 인류문명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훈민정음을 잘 갈고 닦아 음양조화로 풀어 함께 표출해 낸다면 한국서예는 세계의 문자예술을 대표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영원히 빛나리라 확신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 인류의 정신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이 거룩해야 하고, 다시 거룩한 민족성을 회복하려면 우선적으로 민족통일을 이룩해야만 가능하리라 본다. 남북이 싸우고 동서가 불목하는 오늘의 민족심으로서는 도덕성 부재의 상업주의(자본주의)의 서양 물질 문명에 예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년 20세기로 족하지 않는가?
아무리 종이책을 버리고 전자책 독서 열기가 뜨거워진다고 해도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는 더욱 소중하게 우리의 가슴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성훈에 "군자지조(君子志操)는 사시청향(四時淸香)이라" 하였듯 21세기형 서예가는 군자가 되는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지, 글씨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에 달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씨(서예)를 쓰든 문자를 새기든(전각/서각) 그림을 그리든(문인화/군자화) 새천년엔 우리 모두 군자가 되어야 하리라 본다. 여군자! 남군자! (후천운도는 地天泰運으로 양음이 아니라 이미 先天에 예고된 음양시대이다). 우리 모두 참된 군자가 되자! 심정필정(心正筆正)의 문필(文筆)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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