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감정의 강도(强度)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불의의 부상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 태권도 동아리에 속해 있던 나는 혼자 연습을 하다가 낙상을 한 적이 있었다. 공중에서 체육관 마루로 그냥 홱하고 떨어진 것인데 오른 허리 쪽이 몹시 아파 한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간신히 의무실에서 파스를 얻어 와 붙인 게 고작이었다. 그 시절은 내게 몸보다 마음이 힘들던 시절이었고, 돌이켜 보면 그저 만만한 몸만 학대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국선도 입문
졸업하던 해 나는 내가 원하던 대학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정말 길었던 외지 생활을 접고 귀향 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때마침 국선도 단전호흡 도장이 집 옆에 있었고, 그것도 무슨 인연인지 걸음으로 오십 보도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시작은 몸이 아파서라기 보다 정신적인 평안과 규칙적인 생활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첫 수련 한 달 간은 전에 운동한 이력때문인지 수련이 크게 어렵지도 않았고 수련한 후에도 매우 개운해서 하루가 씩씩했다. 그러던 것이 한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허리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때때로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괴롭혔다. 동네 병원에서는 '척추 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물리치료로 처방을 해 주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곧바로 국선도에 대한 회의가 밀려 왔다. 그 무렵 나는 수련 시간보다 몇 분 앞서 나와 수련 전 국선도 잡지며, 신문 스크랩 해 놓은 것들, 국선도 책 등을 삼십여 분간 읽곤 했는데 선뜻 헤아리기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선도에 대한 지적 매력과 믿음 같은 것이 생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갈등했다. 그리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했다. 몸이 나를 주저앉힐지 몰랐던 것이다. 몸이 내게 복수를 한 것일까?
고심 끝에, 그리고 사범님의 확신에 용기를 얻어 수련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것도 전보다 더더욱 열심히.
통증 완화를 느끼다
하루에 세 번씩 수련을 나갔다. 허리가 아프더라도 악물고 했다. 그러나 차츰, 그러한 오기에서 나온 수련은 나쁜 습관의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간 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몸도 역시 나의 일부가 아닌가?
처음 호흡이 밑으로 내려왔다 싶으면 늘 다쳤던 오른쪽 부분이 딱딱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차갑고 딱딱한 덩어리가 호흡에 늘 돌덩이처럼 걸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호흡하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오른쪽 부위의 배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부분이 녹아 내리듯 사라지면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련이 정도를 더하면서 열기가 느껴질 때면 그 부분이 신기하듯 녹아 내리고 호흡이 원활해지는 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그만한 원기에는 미치지 못했는지 수련이 끝나면 다시 딱딱해지곤 했다.
허리 통증은 처음 1년 간 심했고 2년째 접어들면서 견딜만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도 이것저것 해볼만한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강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질 않는가. 딱딱한 송판 위에서 목침을 베고 반년을 자 보기도 했고, 벌침을 맞아 보기도 했고(알레르기 때문에 가려워 죽는 줄 알았다.), 경상도 의성인가 뼈를 맞추는 데 가 보기도 했고, 허리에 좋다며 무슨 나무 즙이니 지네 간 것을 먹어보기도 했다. 어디 한의원서 누가 허리를 고쳤다면 수소문하여 침을 맞으러 다니기도 했고 한약을 지어먹기도 했다.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언젠가 공적인 자리에서 국선도에 대한 소감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내 우울했던 이십대를 견디게 해 준 구원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나에게 겸손과 낮추는 법을 알려준 스승은 국선도 이전에 '병'이었는 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몸을 학대하며 젊은 날을 보내지 않던가.
현대를 살면서 국선도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옛날 선인들에겐 국선도가 궁극적인 도를 깨우치는 길이었는 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신선이 되는 길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서 그게 가능할까. 또 의미가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 얘기가 나온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가로 신의 아버지인 제우스로부터 형벌을 받는다. 그 형벌이란 바위에 묶여 제우스의 신조인 독수리로부터 간을 쪼아 먹히는 일이다. 쪼아 먹힌 간이 다시 자라 회복되면 어김없이 독수리가 나타나 간을 쪼아먹는 형벌. 그 형벌은 죽지 않는 신에게 계속되는 영원 불멸의 형벌이었다.
나는 종종 그러한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떠올리곤 한다. 일껏 수련하여 수련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사나운 세상에 빼앗기거나 스스로 낭비해 버리고 만다. 몸이 소중하다는 귀한 깨달음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가. 깨달음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늘 초심의 상태마저 유지하기 힘든 나를 질책하며 하루하루와 분투하는 '형벌'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는 아닐까. 비록 세상 속에서 늘 얻은 만큼 잃어버린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내 곁에 국선도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귀한 인연인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나의 마지막 이십대는 여전히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다시 한 번 초심을 확인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몸을 낮추며 고요를 얻는다. 비록 또 언젠가 하잘 것 없는 내 의지는 내 스스로 무디어지겠지만, 국선도를 옆에 두고 기꺼이 이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감내해 나갈 것이다.
(국선도 단전호흡 그리고 사람에서 발췌)
첫댓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이라~......회복되면?.....내어주고?~차면?...비워지고?................인생사 같네요!!~.....그 회복과 비움의 갈증을 국선도를 통해서!!~~체득해야 겠네요!!~........^*^....정혁님 지금도 수련 잘 하고 계시겠죠?....ㅎㅎㅎ
언제나 초심으로 수련하시는 모습이 늘 존경스럽답니다..
제 수련진도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몸이 안좋아서 몸만 나았으면 하는 맘으로 욕심없이 시작하여...처음에는 욕심없이 하니 잘되다가 몸이 좀 나이지니 욕심이 생겨서 무리하니 더 안좋아지고 몸이 나은것은 잊어비리고 진도가 안나간다고 짜증을 내고... 그러다 다시 나빠지면 또 후회하고...
건강은 나날이 좋아지는데 체력은 어느 정도 좋아지고는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합니다. 늙음과 국선도가 한 판 승부를 벌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