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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상민 윤보와 중인 문의원
윤보는 솔가지를 툭툭 분질러 동강이를 내고 있었다.
"니 머하로 오노?"
우렁우렁한 목청이 납짝하게 엎딘 초가지붕을 넘어 울려퍼졌다. 술병을들고 두벅두벅 걸어온 용이는 풍수장이같이 집 둘레를 한번 둘러본다.
"옳거니, 니 내 생일이라고 술 받아왔고나."
"야."
"그란해도 속이 허추해서 주막에 갈라 캤더마는."
"미역국은 어찌 됐소."
용이 빙그레 웃는다.
"우찌 되기는, 방바닥에 이마방아 몇 분 찧고 묵었지러."
기분이 좋아서, 입술은 다물려 있었으나 양쪽 눈꼬리가 아래로 처지면서 윤보는 연신 웃는 얼굴이다. 읍내나 이웃 마을뿐만 아니라 타도에까지 그 기량을 인정받은 대목수 윤보가 사는 집은 툇마루도 없이, 마당에서 곧장 방문을 열게 되어 있는 방 한 칸에 부엌 하나, 울타리 없는 막살이었다. 대장간에 식칼 없다는 말이 있고 밤낮 자르고 끊고 하기 때문에 바느질장이 목수 잘사는 것 못 본다는 말이 있듯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이다. 식구라고는강아지 한 마리 없이 객지를 떠돌다가 철새같이 돌아와서 강가에 낚싯대를드리우는, 그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천지간에 혈혈단신, 집이 무슨 소용일까마는 부모의 기일을 알면서 그냥 넘길 수 없고 물이라도 떠놔야겠으니 다만 그 일 때문에 막살이나마 집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믄서 후사는 와 생각 안 허는고?"
담뱃대를 두드리며 마을 노인들이 나무라면
"임으로 되는 일이요?"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제. 혼자서 자식 만든다는 말은 못 들었구마."
"아따, 죽은 입이 밥 묵겄소. 눈어적에 흙 들어가문 고만이라요. 구신이 어디 있소. 물이라도 떠놓는 것, 그거 다 자식된 도리라고 생전의 부모 은공을 생각해보는 것 아니겄소? 내 당대믄 고만이지 머할라고 이 풍진 세상을 내 자손보고 또 살아달라 하겄십니까."
하며 허허 웃기가 일쑤였다. 운보는 나머지 솔가지를 무더기로 모아쥐고 우지끈우지끈 분질러 부엌 바닥에 던지고 나서 강건너 산을 바라보다가 마마 자국이 두드러진 굵은 콧망울을 벌름거린다.
"바람이 좀 일겄다마는, 아 들어 안 가고 머하노?"
우두커니 서 있던 용이는 기어들다시피 방으로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실하게 짠 궤짝이 먼지가 폭신폭신한 윗목에 하나, 때묻은 이부자리는 개켜서 궤짝 위에 얹혀 있었으며 연장망태는 윗목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빌어묵을, 간밤에 멧돼지가 내리왔던가배."
뚝배기랑 고추장 보시기를 을씨년스럽게 들고 들어오면서 윤보가 말했다.
"뒤안에다가 감자를 좀 묻어놨더마는 낭태질을 해놨구마."
"울타리가 없인께 안 그렇소."
퍼질러앉은 윤보는 손에 든 것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궤짝 사이에 끼워둔 북어 한 마리를 낚아채 대가리를 비틀어버리고 쭉쭉 찢는다.
"이 동네는 그래도 밥술이나 묵은께 그렇지, 기찹은 농사치기를 울타리 있이믄 머하노. 시장스럽다.하기는 짐승들도 묵어야, 그래야 강포수도 살 거 아니가."
용이는 뚝배기에 철철 넘게 막걸리를 붓는다.
"형님 잔 드시오."
받아서 단숨에 들이켠 뒤 뚝배기를 내밀며
"니도 마시라."
술을 부어주고 윤보는 찢어놓은 북어를 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천상 겨울은 여기서 날 긴데, 우찌 견딜 만합니까."
입속의 것을 우물우물 씹으며 윤보는
"와, 양식 없을까봐? 설이나 세고... 발시가 상그러버서 어디 멀리 가보까 싶다마는..."
"여전히 시끄러운갑소. 머 소문 들은께 서울서는 또 역적모의를 하다가..."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보는
"그거 다 실없는 소리제. 머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핀잔과 불만 섞인 투로 말을 막았다.
"대국이 왜놈한테 항복을 했이니 그게 망조라 말이다. 왜놈들이 개미떼맨쿠로 기어올 긴데, 벌써 항구에는 왜놈들 장사치들이 설친다 카는데 허수애비 같은 임금 있으나마나, 총포든 놈이 제일 아니가. 흥, 동학당이 벌떼같이 일어서도 별수없었는데 몇놈이 쑥덕거리서 우짤 기라?"
비웃었다. 올해들어 서울서는 정부 전복을 모의하다가 발각된 사건이 두번인가 있었다. 하나는 전 중추원참서과 한선회, 친위연대 대대장 이근용이 중심이 되어 계획했다가 실패했고 다시 칠월에는 전 총순 송진용, 전 시독 홍현철 등의 음모가 폭로되어 처형되었다. 거년에도 있었던 비슷한 사건이었다. 용이는 그 소문을 어떤 나그네한테서 들었던 것이다. 갑신년 시월, 터무니없이 배짱 좋고 호탕한 김옥균이 박영효와 더불어 믿어서는 안 될 일본 세력을 등에 없고 개화당이라는 기치 아래 주먹구구식 정변을 일으킨 이후 굵직한 사건만 대충 추려본다면 동학란과 동학란으로 인한 청일전쟁, 옥호루에서 일본 잡인들에 의해 민비가 시살된 사건, 친일내각의 총리대신 김홍집과 농상공부대신 정병하가 광화문 앞에서 군종과 순검들 손에 타살되고 탁지부대신 어윤중이 난민에게 살해된 것을 들 수 있다. 이같은 간헐적 변란의 밑바닥은 또한 끊임이 없는 소요와 불안과 혼돈의 도가니였다. 단발령과 국모 살해에 반발하여 도처에서 들고 일어난 유림들은 의병을 이끌고 일인들과 지방 관헌을 습격하고 살해함으로써 한사코 저항했으며 민란도 여기저기, 남은 채 있는 불씨가 언제 바람을 타고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며 전봉준, 김개남을 위시하여 수많은 지도자를 잃은 동학당 역시 그 조직이 지하에 숨었다고는 하나 신앙과 억압에 대한 반항으로 묶여진 완강함을 경시할 수 없었다. 한편 오랜 후견국 청나라가 패하고 물러간 뒤 노다지의 땅, 조선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이미 임자가 안중에 없는 신흥의 소위 대일본제국이 제정러시아를 상대하여 취득권을 위한 각축전을 벌이는 그 틈새에서 다른 열강들 역시 이권을 노리며 군침을 삼키는데, 이와 같은 양상의 측면에서는 또한 서로 외세를 업고 혹은 왕실을 인질 삼아 그칠 줄 모르는 권력투쟁을 일삼는 것이었다. 연달은 새 법령와 법령의 혁파가 발포되는, 그야말로 조령모개의 정치적 혼란을 빚게한 새로운 문물제도는 오백 년 세월동안 쌓아올린 가치관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상층에 이를수록 그것은 심하였고 중앙에 가까울수록 급격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판국에, 백주대로를 도깨비의 무리가 우왕좌왕하는 판국에 왕권이 그리 대단했을 것도 없고 몇몇 어리석은 야심가가, 혹은 우둔한 애국자가, 양복 입고 갓쓴 광대 같은 인물이 설혹 정부를, 왕실을 엎어버리고자 모의를 했다 한들 윤보의 말대로 그것은 대단치도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깟놈의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고 대국이 넘어졌이니께 이자는 왜놈하고 노국놈이 또 대가리가 터질 기구마. 그눔 아아들이 먼지 개멩했다고 해서 그래 상투 자른 양반들이 입고 지고 지랄들 하는가 본데 개멩이라는 기이 대체 머꼬?"
"..."
"개멩이라는 기 별 것 아니더마. 한말로 사람 직이는 연장이 좋더라 그것이고 남으 것 마구잡이로 뺏아묵는 짓이 개멩인가 본데 강약이 부동하기는 하다마는 그 도적눔을 업고 지고 하는 양반나리, 내야 무식한 놈이라서 다른 거는 다 모르지마네도 옛말에 질이 아니믄 가지말라 캤고, 제몸 낳아주고 키워준 강산을 남 줄 수 있는 일가? 천민인 우리네, 알뜰한 나라덕 보지도 않았다마는... 세상이 하도 시장스러바서 이자는 일도 하기가 싫고 사시장철 푸른 강가에 앉아서 붕어나 낚아 묵고 살았이믄 좋겄는데 그것도 어렵게 될긴갑다."
그들은 다시 술을 부어 서로 권한다. 윤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을 밖의 고장을 모르는 용이는 윤보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없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용이 입을 떼었다.
"형님도 생각 좀 달리 해얄 기요."
윤보는 힐끔 쳐다본다. 용이 입에서 동학당 얘기가 나올 줄 생각한 모양이었다.
"언제꺼정 심만 믿고 살겄소."
"언제 내가 심 믿고 살았더나? 심을 믿었이믄 벌써 뒤졌든가 했겄지."
"자리를 잡고 앉아얄 기요."
"그럴 뜻 눈꼽만치도 없구마. 머니머니해도 젤 좋은 건 날라댕기는 새라. 알겄나?"
"모르겄소."
일부러 시치미를 뗀다.
"사람 사는 기이 풀잎의 이슬이고 천년만년 살 것같이 기틀을 다지고 집을 짓지마는 많아야 칠십평생 아니가. 믿을 기이 어디 있노. 늙어서 벵들어 죽는 거사 용상에 앉은 임금이나 막살이하는 내나 매일반이라. 내야 머어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사람의 맘속에 있는 기라. 두 활개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마."
"좋다고 해서 어디 하고 저븐 대로 하믄서 그렇게 살 수는 없지요."
"그런께 자리 안 잡는 거 아니가. 나도 니 맨치로 개 핥아놓은 죽 사발맨치로 생깄이믄 버얼써 장가들어서 계집 자식 덕에 낙도 보고 고생도 했일 기다마는 이런 낯짝 해가지고 어느 계집년이 날 섬기주겄노. 허나 살아본께 다 이런대로 올가분해서 좋고... 욕심이 사람잡더라고 이팽이 그눔 보지? 멩태맨치로 삐삐 말라가지고 일에 환장한 눈아니가."
"따른 식구가 많은께요."
"그런께 내가 하는 말 아니가. 지 아무리 나부댄다고 농사치기가 자게 전답 자식눔한테 물리겄나?"
"아 형님을 홀가분해서 좋고 그 형님은 식구 땜에 일하는 낙으로 사는거 아니요."
이번에는 용이 쪽에서 놀려대듯이 실쭉 웃는다.
"하기야 모두 나같이 산다믄 그것도 큰일이제. 씨가 마를긴께.강포수하고 내나 이리 살아주지."
자기와 비슷한 텁석부리 강포수를 들먹이며 윤보는 태평스럽게 웃어젖힌다.
"속 편하겄소."
"하모 편하고말고."
윤보는 정말 속 편한 사내였다. 훌륭한 목수의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돈을 탐내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아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내켜 일자리로 떠나게 되면 이번에는 설마 몫돈 쥐고 와서 땅뙈기 한 마지기라도 사겠지, 이번에야말로 돈 좀 남겨다가 집손질이라도 해서 어디 불쌍한 여자 얻어 살지 않을란가 하며 남의 일이나마 이웃들이 기대를 걸어보는데 마을로 돌아오는 그는 언제나 빈털터리였고 다음날부터 낚싯대를 을러메고 강가로 나가는 것이었다. 돈은 벌어서 어디다 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술은 과한 편이지만 여자에게 돈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고 투전판에 드나드는 일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온다간다 말없이 연장망태 짊어지고 훌쩍 떠나는데 낯선 마을에 가서 삽짝을 고쳐 주기도 하고 외양간을 지어주기도 하여 밥술이나 얻어먹으며 떠돌아 다니다가 돌아오곤 했다. 윤보가 동학당 했다는 것을 마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윤씨부인도 윤보가 동학당에 가담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사실과 좀 차이가있었다. 윤보는 동학교도가 아니었고 농민도 아니었다. 갑오년 정월, 고부에서 탐관으로 악명높았던 군수 조병갑이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민들을 사역하여 멀쩡한 만석보를 개축해놓고 사역비커녕 과중한 수세를 영세농민들에게 부과함으로써 오랜 세월 수탈만 당해온 농민들의 원한과, 탄압에 견디어온 동학교도들의 분노는, 이때 고부의 동학교 접주였던 전봉준이라는 지략에 능하고 담이 찬 지도자에 의해 폭발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이 고장에 머물러 있던 윤보는 새벽의 말목 장터로 달려 가죽창에 흰수건을 동여매고 첫 계명을 기다리는 천여 명의 군중속으로띄어들었다. 고부에서의 거사는 조병갑이 축출됨으로써 일단 농민들의 승리로 끝이 났으나 그러나 정부의 그릇된 사태판단의 미봉책은 안핵사 이용태에 의해 터지고 말았다. 새로운 탄압과 무모한 횡포는 사태를 역전시켰던 것이다. 다시 일어난 전봉준은 보다 조직적이며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하였으며 각처에서 많은 무리가 호응해왔고 김개남, 김덕명, 손화중을 위시한 거물급 동학 접주들도 그들의 병력을 이끌고 전봉준과 합류했다. 고부 백산에 거점을 둔 이들 동학당은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보국안민' '척왜척양'이라는 뚜렷한 혁명의 명분을 세워 폭동으로부터 전쟁의 양상으로 바꾸어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민중봉기가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되어가는 동안 윤보는 줄곧 그 대열에서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며 박달나무같이 건장한 몸을 날려 무리들을 선동하고 사기를 돋우며 언제나 앞장섰다. 일자무식의 어림짐작과 직감으로 철통 같은 집을 짜세우던 대목수 윤보에게는 싸움에서도 어림과 직감으로 민병을 모아 철통같이 뭉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과격하고 정열적으로 날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그는 전봉준과 버금가는 위세를 떨친 가장 투쟁적인 접주, 태인의 지휘자요 윤보는 말단의 병졸에 불과했으나,잘하는 바느질장이는 조각을 내지 않고 옷을 마르며 기량 좋은 목수는 동가리를 내지 않고 재목을 다루듯 싸움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 다급하지도 않은 살생이나 방화 같은 자투리를 내는 것을 윤보는 꺼려했던 모양이다. 농부도 교도도 아닌 윤보에게 그들과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신분이었고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야심이 없었던 만큼 그네들보다 여유가 있었다면 있었다 할 수도 있겠고 순수했다면 순수했다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식한 윤보가 혁명에 대한 자각을 가졌었던지 그것은 의심스럽다. 그의 행동을 일종의 협기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을런지. 동학군이 관군에게 전주성을 내어주었을 때, 애당초 무엇을 신봉하고 누구의 지시를 받고하는, 조직이 싫은 윤보는 마치 집 한 채를 지어주고 나면 연장을 챙겨서 떠나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 대열에서 떨어져나왔다. 그해 구월 다시 일어난 동학군은 싸움의 목표를 항일구국에 두고 배수의 진을 쳤으나 산야는 피로 물들고 참담한 패배, 재기할 수 없는 비극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싸움에 윤보는 참가하지 않았다. 전봉준도, 김개남도, 손화중도, 그 밖의 많은 동학의 지도자들은 지금 죽고 없다. 윤보는 이곳저곳을 쫓기기도 하고 숨어다니기도 하면서 떠돌다가 지난 봄에 마을로 돌아왔는데 마을은 윤보에게 발붙이기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동학당 했다는 막연한 소문이외 윤보의 행적을 소상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까닭인지 최참판댁 윤씨부인은 동학당에 대해서 퍽 동정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동학군을 도와주었다는 소문도 얼핏 지나갔고 그것은 아마 동학군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숱한 인명을 살상하고 파괴,방화를 했으며 읍내에서만도 강변 솔밭에서 토호, 아전, 군교, 이들과 결탁한 향반들을 처형했음에도 최참판액에서는 도망치려는 하인들이 몇 명 붙잡혀 매를 맞았을 뿐 별 피해가없었던 실정에서 나온 말인성 싶었다. 군자금을 댔느니 어쩌니 하는 말은 쉬쉬하고 곧 지워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보가 윤씨부인의 두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윤보는 윤보대로 최참판댁에 경의를 표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술을 함께 마시고 잡담을 좀더 하다가 용이는 낚싯대를 든 윤보를 따라 강둑길로 나왔다.
"저기 읍내 문의원아니가?"
용이 말을 윤보는 들은 척하지 않았다.
"아아 참, 간난할매 땜에 오시는 갑소."
"평생 니는 매이살아야 할 인재밖에 못 되겄나, 용아."
내뱉으며 용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윤보는 강가 모래밭으로 내려간다. 터벅터벅 모래를 밟고 가는 윤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용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으나 노엽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참판댁 마님은 안녕하시오."
월선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용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최참판 문전에 이르러 말에서 내린 문의원은 집안으로 들어갔고 돌이는 마구간에 말을 넣은 뒤 길상이를 찾는다.
"길상이 없소."
김서방의 아들 개똥이 녀석이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오면서 말했다.
"어디 갔노."
"모이겄소. 히히힛..."
덮어놓고 입을 헤벌리며 웃는다. 길상이보다 네 살 더한 열일곱인데 개똥이는 김서방 가슴에다 못을 박아놓은 천치였다.
"아나, 그라믄 니가 봉순어매한테 갖다주어라. 읍내 월선이가 주더라 카고, 알겄나?"
하며 돌이는 조그마한 꾸러미를 건넨다. 삼수가 곁을 지나가면서 곁눈질을 했다. 개똥이는 연신 히히힛 웃으며 뛰어간다. 이때 길상이는 도장 안에 있었다. 술독이랑 멍석,사닥다리, 못 쓰게 된 연장 따위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일년 내내 응달진 도장의 공기는 냉엄하면서도 습했다. 길상은 독을 등지고 앉아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주머니칼로 깎고 문지르고 다듬고 하는 손길은 조심스럽고 섬세해 보인다. 그가 손질을 하고 있는 탈바가지였다. 아직 채색은 하지 않았으나 모양으로 보아 하나는 소무인 성싶고 다른 하나는 샌님 탈인 것 같았다. 도장 안의 희미한 광선을 받은 두 개의 탈은 채색이 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으나 윤곽과 생김새가 정묘하여 괴기한 느낌을 준다. 보통 탈을 만들 적에는 나무나 박, 송피같은 것 혹은 부피 있는 종이 같은 것이 재료가 되는데 길상은 생각을 달리하여 가늘디 가늘게 깎아 만든 댓살로 이리저리 대충 모양을 엮은 뒤 초배를 한번하고 나서 못 쓰게된 한지, 찢어내어 버린 장지종이를 모아 잘게 찢어서 풀에 으깨어 살을 붙이고 그것을 여러 날 걸려 말린 뒤 다시 살을 붙여 모양을 다듬고 해서 지금은 주머니칼로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길상은 절에 있을 적에 금어인 혜관스님한테 그림그리기를 익혔고 탈바가지는 동구 밖에서 묵고 간 사당패들이 가진 것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길상은 구례 연곡사에서 온 아이었다.
"저놈 상호를 보아하니 중 될 놈은 아닌 듯싶소이다. 돌보아주시는 것도 공덕이 될 것이요."
연곡사 우관 스님이 절에 온 윤씨부인에게 말했던 것이다. 떠나올 때 윤씨부인 가마 뒤에 서서 울먹울먹 하는 길상에게
"이놈 길상아, 개천에서 용난다고 했느니라."
굵은 불덩이 같은 눈망울을 굴리며 모스님은 호통치듯 말했다. 구례에서 평사리까지 그리 긴 도정은 아니었으나 길상은 왜 노스님이 자기를 최참판댁에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절 밖의 세상을 모르는 길상은 모든 눈에 띄는 것이 다 신기했다. 아름다운 섬진강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 궁금하였고 뗏목을 타고 가는 뗏목꾼, 장배의 사공이 강물을 따라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도 신기로웠다. 하늘 끝간 데가 어디멘지 세상은 넓고 또 넓은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던 것이다. 구천이보다 몇 달 앞서, 윤씨부인이 찬 가마를 따라 최참판댁에 왔을 적에 사랑의 뜰에는 절보다 앞서 분홍빛 석산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길상이는, 서방님의 눈은 노스님의 눈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낯선 집에서 길상이 둘레둘레하고 있을 때 간난할멈이 와서 물었다.
"니가 절에서 왔다믄?"
"예."
"대사께서는 편안하시고?"
"예."
묻는 간난할멈 곁에 바우할아범이 눈을 꿈벅꿈벅하며 길상의 대답을 함께 듣고 서 있었다.
"원체 기골이 좋으신 어른이니께."
늙은 내외는 서로 마주보며 눈으로 얘기하듯 하더니
"말 잘 듣고... 서방님이 꾸중하시더라도 맘에 끼지 말고... 여기 있으믄 중 되는 것도 다 안낫겄나."
간난할멈은 치맛자락을 걷어 코끝을 닦고 눈을 비벼대었다. 지금도 길상이 머릿속에 그때 그 광경이 왠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최참판댁에 와서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서방님을 찾아온 선비 한 사람이
"고놈 참, 꼭 통인감이군 그래."
하며 침을 삼킨 일이 있었다. 밀꽃같이 윤이 나는 진사립을 쓴 허위대가 헌칠한 선비였다. 길상은 통인이 무엇인지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간난할멈에게 물어보았다.
"사또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머시매 말 아니가. 니가 하도 잘생기서 그랬는갑다."
길상에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그해 겨울 거지꼴을 하고 이집에 찾아온 구천이의 모습이다. 객식구만 같은 생각이 들어 외로웠던 길상은 처음부터 구천이를 정답게 느끼었다. 해나절쯤 먼산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우두커니 서 있기를 잘하는 구천이를 멀리서 숨어보는 길상은 왠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서방님이 출타중이었던 어느 날, 길상이 땅바닥에 퍼질러앉아서 숯덩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왼손에 병을 들고 오른손은 버들가지를 든 관음상이다. 관음상 아래쪽을 그려 내려가다가 무심결에 눈길을 돌렸을 때 큼지막한 짚세기가 보였다. 길상의 눈이 저도 모르게 거슬러 올라간 곳에 구천이의 어두운 눈빛이 있었다.
"자비상이구나."
"야."
길상이 기뻐서 얼른 대답했다.
"어디서 배웠노."
"절에서 맨날 그맀소."
"절에?"
"연곡사 혜관스님이."
구천이의 눈빛은 더 애기할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장차 저도 금어가 될 기라 하심서 맨날 초화를 그리게 했심다."
"글공부를 했느냐?"
말씨가 달라져 있었다.
"예, 조금."
저도 모르게 길상이 역시 '야'에서 '예'로 말이 달라져 있었다.
"안 하며 잊어 버린다."
"노스님께서도 그리 말심하셨습니다."
구천이 눈이 순간 흔들렸다.
"세상이 달라질 거라 하시믄서."
흔들리고 있던 눈에 조소가 지나갔다. 그 후 구천이는 틈이 날 때마다 길상을 손짓하여 불러다가 남몰래 글을 가르쳐주었다. 혜관 스님은 성미가 급하고 변덕이 심해서 꾸짖기를 곧잘 했으며 잘못도 없는데 쥐어박곤 했는데, 그러나 길상은 글을 가르칠 적에 말이 적고 엄격해 보이는 구천이가 혜관스님보다 더 두려웠다. 길상이 물감을 챙겨내어 탈에 채색할 준비를 하는데 밖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났다. 귀녀가 마님이 부른다고 했다. 길상이 뛰어갔을 때 문의원은 막 대청에서 신돌 위에 내려서고 있었다. 엉겁결에 길상은 절을 꾸벅 했다. 문의원은 연곡사의 노스님하고는 죽마고우로서 길상은 문의원을 절에서 여러 번 뵌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문의원은 절을 하는 길상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깐깐하게 마른 늙은이, 백설 같은 수염에 묻힌 얼굴은 맑고 인자하게 보였다. 윤씨 부인은 두 손을 맞잡고 대청에 서 있었다. 언제나 다름없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태도는 사부를 모시는 것 같은, 일찍이 뉘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경건한 태도였다.
"사랑에 뫼셔라."
목소리는 딱딱한 얼굴과 마찬가지로 억양이 없었다. 문의원의 모습이 사랑으로 사라진 뒤에도 윤씨부인은 손을 맞잡은 자세로 그냥 서 있었다.
"나으리마님, 읍내 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드시라 하여라."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길상이 마루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문의원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안녕하시오."
했을 때 책을 읽고 있던 최치수는 비로소 돌아보았다. 그 눈은 생소했으며 윤씨부인의 정중한 태도와는 달리 앉은 채
"앉으시오."
했다. 그들은 서로 맞절을 하였다. 문의원은, 최치수의 신분을 인정해주는, 그러나 여유가 있는 정중한 태도로, 최치수는 주치의에 대한 약간의 사의를 나타내는 지극히 관례적인 태도로, 인사를 끝낸 문의원은 도폿자락을 뒤로 젖히며 정좌했다. 늘씬한 몸매에 치렁치렁 땋아내린 머리채를 흔들며 귀녀가 상을 보아가지고 온다. 전과 같이 문의원은 서방님의 진맥을 하러 온 것 같지 않다고 길상이는 생각했다. 그 동안 최치수는 앓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심부름을 시키지나 않나 하고 사랑앞을 서성거리는 길상은 그러나 마음은 도장에 가 있었다. 채색만 하면 탈은 끝이 난다. 어서 끝내야지 하는 생각에만 가득 차서 기어이 길상은 도장으로 뛰어가고 말았다. 두 손을 모아호호 입김을 쐬고 비비고 하다가 그는 마지막 완성의 즐거움을 가만가만 누르고 물감을 풀었다. 이제 죽어 있는 두 개의 탈은 살아날 것이다. 길상은 혀를 반쯤 내물고 붓을 움직인다. 소무와 샌님, 두 개의 탈이 다 되었을 때 해는 반나절이 훨씬 지나 있었다. 길상은 두 개의 탈을 치켜들고 밖으로 달려나간다.
"길상아!"
길상이 걸음을 멈추고 보니 그곳은 부엌 뒷문 쪽이었다. 봉순네가 팔짱을 끼고 부엌 뒷문을 향해 서 있었다.
"문의원께서는 아즉 안 가싰제?"
"야."
"머하시노."
"사랑에서 말심하고 기십니다."
봉순네는 팔짱을 낀 채 초조한 안색을 띠고 바깥쪽을 한번 내다보듯하더니
"간난할매 진맥이나... 마님께 말심디리야겄는데... 길상아."
"야."
연이네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연이하고 마을의 드난꾼 여치네가 새앙을 다듬고 있었다. 고뿔이 들었는지 여치 어매는 자꾸 자꾸 손등으로 코를훔쳤다. 봉순네는 길상을 불러놓고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지
"니 어디 가노."
하고 새삼스레 물었다.
"봉순이한테요. 별당에 가요."
"거긴 와."
"이거."
하며 길상은 탈을 치켜들어 보인다.
"그기이 머꼬?"
봉순네는 눈을 깜짝깜짝한다.
"탈이요."
"어디 보자."
길상은 부엌 문 가까이 가서 그것을 내밀었다.
"정말이구나. 이기이 어이서 났노."
"맨들었소."
"니가?"
"야."
"이 사람들아, 이거 좀 보래? 참 희한치도 않다."
연이하고 여치네가 일손을 놓고 왔다.
"니가 정말 맨들었나?"
"야."
"니 참 희한한 재주 가짔구나. 얼래? 이 샌님은 째보도 아니고 너무 이뻐서 남자라 카겄나."
연이는 소무 탈을 제 어미에게 가져다 보인다. 연이네는 전을 부치다말고 혀를 끌끌 찼다.
"청승스럽게도 맨들았다. 너무 재주가 있어도 빌어묵는다 카는데 이 머시마야, 이자 이런 것 맨들지 마라."
초조했던 것도 잊었는가 봉순네는 아주 감동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 말 안 하네라.복 없이믄 재주라도 있이야제."
길상이 편역을 들고 나왔다. 찬모보다 침모인 봉순네의 감정이 훨씬 더 화사했던 모양이며 제 자신이 손끝 재주로 살아가는 신세라 재주에 대해 변명하는 감도 없지 않다.
"애기씨가 좋아라 하시겄다. 내 니 공딜이 맨든 심덕이 고마워서 상 하나주께. 올 설에는 말이다, 읍내 오광대 구겡시키주지."
"야?"
"너거들도 욕봤인께, 봉순이하고 함께 보내주께."
"정말이지요?"
"하모, 와 내가 니보고 헛말 하겄노."
봉순네는 별 생각 없이 길상에게 약속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