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오스트레일리아의 남동쪽으로 폭이 약 2000㎞인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주로 북섬(北島;11만 4690㎢)과 남섬(南島;15만 460㎢)의 2개 섬으로 되어 있으며, 그밖에 스튜어트섬·채텀제도를 거느리고 있다.
면적 26만 8680㎢. 인구 390만 8037명(2002년 통계). 대체로 남위 33∼53˚, 동경 162∼173˚ 안에 있다. 관할 도서로 토켈라우제도, 쿡제도(1965년 자치정부 발족), 니우에섬(1974년 자치정부 발족)이 있다.
1907년 영국의 자치령이 되고 1947년에 정식으로 독립하였다. 영연방(코먼웰스)가맹국이며 공용어는 영어이다. 수도는 웰링턴.
국명은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A.J. 타스만이 Staten Landt(남국이라는 뜻)로 명명했으나, 뒤에 네덜란드의 한 지명을 따서 Nieuw Zeeland(새로운 젤란트라는 뜻)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또한 마오리족(族)은 아오테아로아(Aotearoa ; 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이 나라는 폴리네시아문화권에 속하지만 19세기 중엽이래 영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을 받아들인 결과 백인의 비율이 90%를 차지하여 그 밖의 폴리네시아도서와는 다른 발전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남반구에 있어서 백인주도(白人主導)의 나라로서 생활수준이 높은 완전복지국가가 되어 있다. 국기는 영연방가맹국임을 나타내는 유니언잭에다 남십자성을 나타내는 4개의 별을 배치한 것이다. 뉴질랜드국가(國歌)는 < God Save the Queen>과 < God Defend New Zealand>의 2종류가 있다.
#지형·지질
국토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며 주섬인 북섬과 남섬이 남북으로 이어져 (감마)형태를 하고 있다. 지형은 산이 많고 화산도 많으며 척량산맥은 특히 높고 험준하다. 해발고도 200m 미만의 저지는 전체 섬 면적의 1/6에 지나지 않으며 평지가 적다. 개척이 진행된 200∼300m의 구릉지 및 산록부가 2/3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1000m 이상의 고지 또는 산지이다. 남북 두 섬의 척량산맥은 제3기(紀)에서 제4기의 홍적세에 걸친 카이코우라 조산운동으로 오늘날의 윤곽이 완성되었다. 북도는 척량산맥이 동부로 뻗어 있고 중앙부는 타우포 화산대라고 하는 용결응회암(溶結凝灰岩)의 화산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루아페후 화산(2,797m)·응가우러호이 화산(2,291m), 통가리로 화산(1,969m)의 3개 활화산이 솟아있고, 온천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서쪽 끝에는 원뿔꼴의 에그몬트산(2,515m)이 솟아 있다. 남도에는 서쪽 연안에 가깝게 서던알프스가 북북동-남남서방향으로 뻗어 있고, 최고봉 쿡산(3,764m)을 비롯하여 3000m급의 높은 산이 이어진다. 태즈먼과 폭스 등의 빙하, 와카티푸호 등의 수많은 빙하호를 비롯한 빙하지형이 있으며, 남서안에는 대규모 피오르드(협만)가 발달한다. 산맥 동부에는 이 나라 최대의 캔터베리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남부에는 오타고 고지가 이어져 있다.
#기후
편서풍대에 위치하므로 북단부(北端部)의 아열대지역과 고산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섬 전체가 서안해양성의 온화한 기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북섬의 오클랜드가 15℃, 남섬의 남단 인버카길이 9.8℃이며, 연교차도 대략 8∼9℃로 한서(寒暑)의 차는 크지 않다. 연강수랑은 대부분의 지역이 1,000∼1,500㎜이나, 서던알프스의 서사면(西斜面)은 2,000∼6,00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광범한 지역에 걸쳐 빙하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서사면의 빙하는 밀생하는 온대우림 사이를 지나 해발고도 200m까지 하강하고 있다. 반대로 동쪽은 500㎜ 미만의 지역도 있으며 때때로 푄현상도 보여 타소크(벼과식물)의 초원이 되어 있다.
#지지(地誌)-북섬
자연환경과 행정구분을 가미하여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으나 여기서는 ① 노스랜드 ② 오클랜드 ③ 와이카토 지방 ④ 중앙부(화산대지) ⑤ 타라나키 지방 ⑥ 마나와투 저지 ⑦ 웰링턴 ⑧ 이스트랜드 등 8지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① 북부의 노스랜드는 전부터 범선의 마스트 재(材)로 사용하는 카우리 송(松)의 벌채로 일찍부터 개척되었으며 독립 이전의 중심지였다. 최초의 수도 러셀(오클랜드 북서 약 184㎞)이 이곳에 있다. 오늘날 황거레이는 석유정제기지로 알려져 있다.
② 오클랜드는 이 나라 최대의 상공업도시이며 모든 공업이 집중되어 있어 전국 공업생산액의 1/4을 차지한다. 외항 와이테마타는 양모와 유제품(乳製品)의 수출항이다. 오클랜드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③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와이카토 지방은 집약적 낙농과 면양의 사육이 활발하다.
④ 중앙부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있는 화산지대이며, 로터루아·타우포 등 관광·휴양지가 있다.
⑤ 서단부(西端部)의 타라나키 지방에는 에그몬트 산록에 예부터 낙농지대가 있다. 그리고 이 나라 최대의 천연가스전(田)인 카푸니가 있다. 타라나키 지방의 중심도시는 뉴플리머스이다.
⑥ 또한 낙농지대는 남서의 마나와루 저지에 펼쳐져 있으며 왕거누이·파머스턴노스의 두 도시가 그 중심이다.
⑦ 남부에는 수도 웰링턴이 있다. 배후의 구릉지 때문에 수도는 북쪽의 헛밸리에 걸쳐 발전하고 있다.
⑧ 동부의 이스트랜드는 목양지대(牧羊地帶)이나 네이피어에서 헤이스팅스에 걸친 호크만안(灣岸)은 원예농업지대로 되어 있다.
#지지(地誌)-남섬
서던알프스에서 남서부의 피오르드랜드에 걸쳐서는 무거주지(無居住地)로 되어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① 웨스트랜드 ② 태즈먼 만안(灣岸) ③ 알프스 동록(東麓) ④ 캔터베리평야 ⑤ 오타고지방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산맥의 서쪽 웨스트랜드에는 탄전과 석탄을 실어내는 항구가 흩어져 있다.
② 북부의 태즈먼 만안은 과수원지대이며 출하항 넬슨이 있다.
③ 알프스동쪽 기슭의 빙식호 지대는 관광지이며, 허미티지·퀸즈타운 등의 관광도시가 있다. 그리고 대규모의 방목지가 전개되어 있다.
④ 그 동쪽으로 이어지는 캔터베리평야는 소맥과 면양의 혼합농업지역이며, 캔터베리램이 사육되고 있다. 중심도시는 크라이스트처치이다.
⑤ 남부는 오타고 지방이며 북쪽 절반은 혼합농업, 남쪽 절반은 낙농지역으로 되어 있으며 중심도시는 더니든, 인버카길이다.
#역사--탐험과 식민
뉴질랜드에 최초로 건너온 사람은 모아헌터(모아를 사냥하는 사람)라고 불리는 폴리네시아계의 인종으로 8세기경 타히티 방면에서 남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13∼14세기에 마오리족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고, 주로 따뜻한 북섬에서 살았다. 유럽인으로서 최초로 이곳에 온 사람은 타스만 이었고, 그 뒤 영국사람 쿡이 1769년이래 수차 탐험을 하였다. 당초에는 포경(捕鯨)·바다표범을 잡는 기지로 이용되었으며, 1814년 영국인 선교사 S. 마스덴이 전도소를 세우고 마오리어(語)로 교화하였다. 1839년 6월 15일에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 웨일스령에 편입되고 영국 해군 W. 홉슨이 총독대리로 취임하였다. 다음해 1840년 2월 6일, 마오리족의 추장과의 사이에 와이탕기조약이 체결되고 통수권은 영국왕에게 이양되었다. 그 뒤 뉴사우스 웨일스로부터 분리되어 영국 본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이는 당시 남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있었던 프랑스세력을 저지하는 의미도 있었다.
#역사--식민지의 발전
본격적인 이민은 1840년 뉴질랜드회사의 식민지가 포트 니콜슨 서안(웰링턴)에 건설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오타고협회·캔터베리협회 등에 의하여 이민이 보내어졌다. 당초의 개발방식은 뉴질랜드회사의 경영자 E.G. 웨이크필드에 의한 것인데 영국식 사회경제제도를 유지하면서 자급적 농업경영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가구당 16ha의 경영규모로는 너무 적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자급적 농업경영 대신 대규모의 목양지(牧羊地)가 오지로 뻗어나갔다. 북섬에서는 토지소유와 그리스도교 포교를 둘러싸고 이주자와 마오리족 사이에 2차에 걸친 전쟁이 일어났다. 한편 남섬에서는 1861년 오타고 중부에서, 65년에는 웨스트랜드에서 잇따라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 남섬이 번영하였다.
#역사--독립국으로서의 발자취
1907년에 자치령이 되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으나, 영국 본토와는 두터운 유대로 이어져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유럽에 파병하였으나 자국(自國)은 주 전장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전을 계속하였다. 1930년대의 세계적인 불황은 뉴질랜드에도 타격을 주었다. 1935년 불안정한 보수정권은 노동당에게 패하고 그동안 사회입법이 착실히 정비되어 복지국가로서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이 연합군에 가담하여 미군의 보급기지로서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이에 따라 전후에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또 영국의 상대적인 국력 쇠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여러 나라와의 유대를 강화하였다. 1947년에는 영연방을 구성하는 자치령과 영국 본국이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을 확인한 웨스트민스터헌장의 채택으로 정식으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정치--국내정치
정체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국이며, 임기 5년의 총독이 여왕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어 있다. 헌법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의회는 1951년까지는 영국을 본으로 한 이원제였으나 현재는 단원제이다. 1879년이래 3년마다 총선거가 실시되고 있으며 1984년 95명의 의원 중 4명은 마오리족을 위해 확보되었다. 여성참정권은 1893년에 주어졌고, 피선거권은 1919년에 확립됐다. 오늘날 선거권은 18세 이상 남녀에게 주어져 있다. 1993년 11월 새 선거제를 국민투표로 확정, 직선의원 60명, 나머지 마오리족 5명, 비례대표 55명으로 모두 120명 의원으로 개편하였다.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 노동당과 국민당의 양당제가 확립돼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노동당은 1984년 7월과 1987년 8월 총선에서 승리, 집권하였다가 1990년 10월과 1993년 11월 총선에서 국민당에게 패배, 야당으로 전락하였다. 1996년 총선에서는 국민당이 뉴질랜드제일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집권에 성공하였으나, 1999년 11월 총선결과 헬렌 클라크 노동당 당수가 이끄는 좌파연합이 승리해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2002년 총선에서도 헬렌 클라크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정치--외교
영연방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연방제국, 특히 같은 연방가맹국인 이웃나라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관계가 깊다. 국토의 지리적 위치가 남태평양이라는 점에서 안전보장을 위해 강대한 방위력을 가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3국이 1952년에 군사동맹 앤저스(ANZUS)조약을 체결하였다. 또 아시아태평양협의회(ASPAC)에도 가입하여 태평양을 둘러싼 군사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1950년 콜롬보계획의 창설과 함께 가맹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개발원조에 힘썼고, 1963년에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에, 1966년에는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여 아시아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맹한 오늘날, 농축산물시장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북아프리카 및 서아시아에도 접근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통화, 상법, 세제상의 장벽을 완전 폐지해 양국경제의 완전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2000년 2월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합의하였다.
#국방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육·해·공군 3군이 있으며 최고사령관은 총독이다. 병력은 육군 4400명, 해군 1980명, 공군 2800명이고, 국방비는 8억 400만 달러(2000년 통계)이다. 1950년이래 징병제가 시행되었으나 1962년부터는 선발식 의무교련제로 바뀌었고, 1970년이래 지원제이다.
#경제--개요
뉴질랜드 경제의 특색은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국민 1인당 무역액도 세계의 상위권에 들고 있다. 수출의 70%가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한 제1차 생산품이며 수입의 약 50%가 중화학공업제품이라는 데서 농업국형 또는 개발도상국형 무역구조이다. 산업별 노동인구도 제1차 산업이 8%로서 다른 선진 여러 나라에 비하여 높으며, 제3차 산업도 64%(1997년 통계)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생활수준이 높은 복지국가로도 알려져 개발도상국형과 선진국형의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많은 것도 특색의 하나이며, 금융·운수·통신·동력·자원·관광 등 국영사업의 비율이 높다.
#경제--자원
석탄·사철(砂鐵)·수력·목재를 제외하고는 자원이 부족하다. 석탄의 확인 매장량은 2억 1000만t, 연간생산량은 약 327만t이며 국내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남섬의 북서부에는 불러·리프턴·그레이머스 등 주요 탄광이 집중되어 있으며, 북섬의 티탄·마그네사이트 사철광상(鑛床)이 수출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부한 강수량과 산지·호소(湖沼)로 수력발전이 성하며, 이것으로 전력의 3/4을 충당하고 있다. 총발전량 343억 7500만 ㎾h. 삼림은 국토의 1/4이며 개발 가능한 것은 10% 정도이다. 최근에는 식목효과가 나타나 라디아타송(松) 등이 수출되고 있다.
#경제--농·목축업
농지면적은 2,122만ha에 이르고 있으나 이른바 경작지는 49만ha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뉴질랜드 농업은 <초지농업(草地農業)>이라고 하여 목초에의 의존도가 높고, 목축·낙농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면양 4,739만 마리, 소 895만 마리, 돼지 40만 마리(1997년 통계)를 보유하며, 평균 경영규모는 면양의 방목이 460ha, 면양·소맥의 혼합농업이 약 190ha, 낙농은 약 60ha이다. 농업종사자 1인당 경작지는 18ha이며, 농업의 노동생산성은 세계적 수준이다.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율은 10%에도 못 미치나 농산물은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 나라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경제--공업
제2차 산업 노동자의 비율은 21%(1997년)이며, 농업의 약 3배를 차지하고 있으나, 국내총생산 중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7%로 다른 산업부문에 비하여 생산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식육가공·낙농품 등의 중소공장이 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알루미늄정련, 선강일관공장 등 중공업부문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알루미늄은 수출산업으로 확립되어 있다. 공장의 70%가 북섬, 특히 오클랜드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경제--무역
수출 142억 달러, 수입 124억 달러(2001년)로 2001년 세계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 수출품목인 낙농품, 육류 등의 수출가격 상승과 자국화 저평가에 따른 국제경쟁력의 강화 등으로 경제 호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수출의 대부분이 식육·낙농품·양모가 차지하고 있으나 1976년 이후 알루미늄이 추가되었다. 수입품은 석유 외에 기계·수송기계(자동차) 등의 공업제품이다. 주요 무역 대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일본·미국·영국이다.
#교통
섬나라이므로 항공·해상교통이 중요하고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에는 국제공항이 있고, 항만도시로서도 그 지위가 높다. 국내교통은 근거리에서는 도로교통이 주종을 이루며, 자동차는 2명에 1대 꼴로 보급되어 있다. 장거리 여객수송에는 항공기가 이용되며, 항공망도 완비되어 있다. 철도연장은 4,273㎞로 화물수송이 주류를 이루나, 오클랜드-웰링턴 사이는 특급·침대열차편이 있다.
#관광
관광사업은 주요산업의 하나로 성장 중에 있으며, 1996년에는 152만 9000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주요한 외화 획득원이 되어 있다. 통가리로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에그몬트산·쿡산·피오르드랜드 등 9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주민·인구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1840년 당시 인구가 10만여 명을 헤아렸으나 1886년에는 4만 3927명으로 격감하였다. 그러나 1896년이래 증가일로에 있으며 오늘날에는 약 50만명(1997년)을 헤아려 총인구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90% 이상이 북섬에 거주하며 마오리어와 고유문화·전통·관습을 지켜 내려오고 있다. 백인과의 인종차별은 거의 없으며, 정부는 1996년 10월 영국식민지시절 때 토지를 빼앗긴 선주민 마오리 니타프족에게 부정토지취득을 정식으로 사죄·보상하였다. 마오리족 이외의 유색인종은 총인구의 약 10%(1996년) 정도이며 총인구의 90% 가까이가 백인이다. 그리고 인구의 74%가 북섬에, 26%가 남섬에 거주하고 있다. 국내총생산은 754억 달러, 1인당 1만 9500달러(2001년)이며,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의 도시집중이 현저하여 오클랜드·웰링턴·크라이스트처치·더니든 등 4대 도시권에서 총인구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복지
가장 진보된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국민의 평등정신의 발현의 결과이다. 노령연금법은 1898년에, 사회보장법은 1938년에 성립되었으며, 1945년에는 최저임금제가 확립되어 이것이 사회복지정책 추진의 기반이 되었다. 의료를 포함하여 사회보장비는 국가예산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4월부터 복지정책을 수정하여 가족수당 폐지, 실업수당 감액, 의료비 인상 등을 실시하였다.
#교육
교육은 6∼15세까지가 의무교육, 19세까지는 교육비 무료이며, 신체장애자와 벽지의 어린이들에게는 통신교육제도가 있다. 대학은 모두 국립이다.
#스포츠·문화
옥외 스포츠가 활발하고 육상경기에서는 세계적인 중·장거리 선수를 배출하였다. 스키는 북반구가 여름일 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문학가로는 1923년에 프랑스에서 객사한, 《원유회(園遊會》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K. 맨스필드가 있다. 마오리 문화는 목각이 뛰어나며, 건물입구·기둥·벽·천장 등을 추상적인 조각으로 장식하고 있다. 로토루아에는 이들의 전통예술을 보존하기 위한 회관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남한단독수교국으로 1949년 7월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1950년 6·25 때는 육군과 해군 5,350명을 파병, 참전하였고 사상자는 119명에 달하였다. 1962년 3월에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1971년 주한 뉴질랜드대사관과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다. 양국간의 경제·통상관계는 대뉴질랜드 원자재 수입에 따라 한국이 계속 수입초과를 보이고 있다.
2000년 뉴질랜드의 대한수출액은 7억 200만 달러였으며, 수입액은 2억 8600만 달러에 이른다. 또한 양국은 1967년 무역 및 경제협력협정에 이어 1978년 어업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오양·동원 등 다수의 수산업체에서 트롤선·오징어어선 등이 뉴질랜드에 진출, 조업 중이다. 그러나 자국 어업 육성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다소 난점이 있다.
합작투자에 있어서는 한·뉴펄프합작회사가 설립되어 1978년 10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그밖에 양국간에 맺은 주요협정으로는 국제운송소득면제협정(1978), 이중과세방지협정(1981),항공협정(1993), 사증면제협정(1994), 취업관광사증협정(1999) 등이 있다. 2000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참석 중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간 자유무역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했다. 교민 1만 2,710명, 체류자 4,295명(2001년 통계)이 있으며 재뉴질랜드교민회가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지난 5월 뉴질랜드 최고 일간지인 뉴질랜드헤럴드에 톱뉴스로 나온 양이 있다.
털깎기를 피해 도망친 10살짜리 양이다. 주인이 6년 동안 찾지 못하다가 집 근처의 동굴에서 발견했는데, "슈랙"으로 이름이 붙은 후 플레이보이 잡지에도 실린 양이다. 6년 동안 한번도 깎지 않은 울(wool)이 무려 27㎏에 달했다. 이 정도면 양복 20벌을 만들고도 남는 양이다.
6년이 되면 울 생산량이 줄어 도살되는 다른 양과는 달리 천수를 누리고 있다. 이 정도의 사건이면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의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는 뉴질랜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