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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는 어떻게 잴까? Quelle est la vraie vitesse de la lumiere? 2004,
장루이 보뱅, 김희경, 민음IN: 029, 2006. P.72
- 보방(Jean-Louis Bobin s.d). Quelle est la vraie vitesse de la lumiere?, 2004
- 김희경: 성심여대 불문학과를 졸업, 프랑스 피카르디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 곽영직: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 미국 켄터키대에서 박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이 책은 빛의 연구에 대한 교과서적인 서술로 되어 있다. 시대와 학자들, 그리고 구체적 실험과 실증들로 시대 순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다기보다, 수험생들은 외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일반인은 그 연구사에서 그 많은 사람 다 외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아래 새로 작성한 “빛의 연구사 연표”를 보면서 중요인물들의 역할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주의 온갖 신비와 비밀은 빛에 있을지도 모른다. 열 또는 에너지 을 나르는데,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은 없을 것 같고, 그와 맞먹는 전자파나 자기파도 마찬가지로 빛과 연관성에서 파생은 아니라도 관계 속에서 현존할 것 같다. 그 빛이 물질에도 생명에도 참여하기에 빛이 만물의 근원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물 불 공기 흙이라는 것이든 아톰은 시대적 한계의 산물이다. 빛 이외 반물질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빛이 근원적임은 아직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47VMA)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이 책 실험에 의한 실증이 과학의 발달이었다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파동과 입자설에서 파동설로 유명한 프레스넬은 여기서 언급될 필요조차 없고, 구체적으로 도구를 사용해서 얻은 수치에 의해 파동의 영향인지 입자의 관점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존의 과학사개론에나 천문학들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 과학 또는 인간의 인식은 하루아침도 아니고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발전해 나간다. 벩송이 그리스전통에서 실증의 정확성을 말했던 것이 실감난다. 그래서 “빛의 연구사”를 따로 정리해보고, 인명록도 이 책의 역주보다 더 많은 인물들을 작성했다.(47VLH)
## 빛의 연구사 연표*** *** ** *** ** * * ****
전490 엠페도클레스(Empedocle, Ἐμπεδοκλῆς, 490-435) 시실리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 아그리장뜨Agrigente)출신, 4원소(물, 공기, 흙, 불) 사랑과 증오. (소크라테스보다 20여년쯤 선배)
전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384-322)(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1270 알하젠(fr. Alhacen, Alhazen, ou Ibn al-Haytham, 965–1039)는 광학연구는 1270년 라틴어로 번역된 알하젠의 광학사전이 있다.
1564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 이탈리아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근대 과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1610 1월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했다.
1668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1712) 탈리아 출신 프랑스 천문학자는 갈릴레이 위성의 식 목록을 만들었다. .
1672 카시니이 루이14세 초청으로 1672년 프랑스 초대 천문대장.
1675 뢰머(Olaus Roemer, Ole Christensen Rømer, 1644-1710) 덴마크 천문학자. 1675년 목성의 위성관찰.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생각으로 1675년 빛의 속도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
17세기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가 빛의 파동이론을 정립했다.
18세기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의 영향으로 빛의 입자이론이 우세했다.
1820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외르스테드(Christian Ørsted, 1777-1851 물리학자)가 전류가 자석의 바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다.
1849 7월 피조(Hippolyte Louis Fizeau, 1819-1896)는 대기 중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최초로 기계 장치를 이용했다. 그리고 프로망(Gustave Froment, 1815-1865)에게 의뢰하여 내부 톱니바퀴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 그렇지만 피조가 얻은 빛의 속도는 31만 5000킬로미터로 아주 정확하진 않았다.
1850년경[1851] .. 푸꼬(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1868)는 두 반사경 사이에 한 가운데에 찬 물이 든 관을 놓아 빛이 이곳을 통과하도록 하면 더 많은 굴절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이는 공기 중에서보다 물속에서 빛의 전파 속도가 떨어진다는 증거였고, 파동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42)..
1856년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콜라우슈(Rudolf Kohlrausch, 1809-1858)와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 1804-1891)는 여러 계측장치로 전기장과 자기장의 비를 측정한 결과 초속 31만 8000킬로미터라는 값을 구했다 .
1864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자기파의 파동 방정식을 이론적으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1864년에 발표했는데 ... 이를 통해 빛도 전자기파라고 주장했다.
1869 그로부터 20년 후 프랑스 물리학자 꼬르뉘(Alfred Cornu, 1841-1902)는 정교하게 개량한 기계를 사용해서 피조의 톱니바퀴 실험을 재현했다.
1882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 1835–1909)과 마이컬슨(Albert Michelson, 1852-1931)은 1878년에서 1882년에 걸쳐서 푸꼬가 했던 실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벩송은 이 실험을 1922년에 책에서 인용했다]
1887 마이컬슨(Michelson, 1852-1931)과 몰리(Morley, 1838–1923) 빛의 속도 측정 실험
1888년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는 실험을 통해 전류를 통해 전류로부터 발생한 전파의 영역에서 전자기파의 존재를 확인했다. - 전파, 자[기]파, 광파가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실증했다.
1896년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은 극히 작은 물체인 전자를 발견했다. 이 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빛의 근본 성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04년 로렌츠(Lorentz, 1853-1928)는 움직이는 전자의 속도를 결정하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상으로 도입했다. 단지 가설에 불과했던 전자이론을 통해 전자기학과 역학이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1905 아인슈타인(Einstein, 1879-1955)의 특수상대성이론(La relativite restreinte)이 발표되었다.
1908년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1864-1909)는 새로운 개념[시공간개념]을 공식화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1916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la relativite generale) 발표.
1919년 5월. 어떤 별에서 나온 빛이 태양 근처를 지나갈 때, 그 빛은 인력 때문에 태양쪽으로 끌려 들어갈 거라는 예측이었다. 1919년 5월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Arthur Eddington)에 의해 확인 되었다.
[1922 베르그송의 지속과 동시성: 아인슈타인 이론에 대하여(Duree et simulateite: A propos de la theorie d'Einstein, 1922)(1923년 판에는 본문의 수정 없이, 새로운 「서문(Aant-Propos)」와 세 편의 「부록(Appendices)」을 첨가하였다.)]
1926 마이컬슨은 1924년에서 1926년에 .. 다시 도전했다. ... 공기 중의 굴절로 인한 오차를 수정한, 진공 상태에서의 빛의 속도 c의 값은 초속 29만 9796킬로미터(오차범위 ±4km)였다. 이 값은 몇십 년 동안 거의 공식적인 기준 값이 되었다.
1944? 레이더는 2차 대전 중에 개발되었다. .. 1940년대에는 파동유도 장치와 공진기가 개발되었다.
1950? 신호대신에 광전지로(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서, ... 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1950년 스웨덴의 베르그스트랜드[Carl Osten Emanuel Bergstrand, 1873–1948]는 빛의 t속도 측정한 결과 그 수치가 29만 9793.1킬로미터(오차범위 ±0.25km)라 발표했다.
1953 메이저(le maser, 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는 분자 증폭기이다. 1953년 메이저(Le maser)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토운즈(Charles Townes), 고든(James Gordon), 제이즈라(Herbert Zeigera)에 의해 발명되었다.
1960 5월 16일 레이저 첫 작동 실험 미국 기술자 물리학자인 마이만(Theodore H. Maiman 1927–2007) On May 16, 1960,
1983년 제17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빛의 속도는 진공 속에서 정확히 초속 2억 9979만 2458미터라고 공인했습니다.
## 이 시리즈 속에서: 빛과 연관하여 참조할 수 있는 책들*************
우리는 어떻게 볼까?(Comment voyons-nous? 2005)(실비 쇼크롱 와 크리스티앙 마랑다즈, 김성희, 민음IN: 006, 2006, P. 63)
빛의 속도는 어떻게 잴까?(Quelle est la vraie vitesse de la lumiere? 2004)(장루이 보뱅, 김희경, 민음IN: 029, 2006. P.72)
E=mc² 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의 혁명을 이룬 위대한 공식(장-루이 보뱅, 김성희, 민음IN: 055, 2008, P.73)
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relativite?, 2005)(프랑수아 바누치, 김성희, 민음IN: 009, 2006, P.71)
** 내용 ## *** :
빛의 속도는 어떻게 잴까?(Quelle est la vraie vitesse de la lumiere? 2004)
보방(Jean-Louis Bobin s.d)
차례 5
질문 / 빛의 속도는 어떻게 잴까? 7
“빛에 속도가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던 거군요?” / “그렇지요. 2000년 동안 빛이 순간적으로 전달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야 천문학자가 빛도 유한한 속도로 전파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1650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물리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데 공헌해 왔습니다.”(7) [2000년이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갈릴레이까지 일 것이다.]
“1983년 제17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빛의 속도는 진공속에서 정확히 초속 2억 9979만 2458미터라고 공인했습니다.” (8)
제1장 옛날에는 빛이 어떻게 전달된다고 생각했을까? 9
[빛은 물리학적 현상에, 색은 감각적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그럼에도 색도 마찬가지로 물리학적 현상인데, 인간의 눈에 빛의 일부만이 지각되기 때문이다.]
1절, 왜 빛에 속도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11
프랑스에서 ‘햇빛을 보다’(voir le jour)와 ‘태어나다’(naitre)는 동의어이다. (11)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아이작 뉴턴은 흰색이 혼합된 색[빛깔], 즉 모든 색[빛깔]이 합쳐진 결과물임을 증명했다. (12) [빛깔의 혼합은 흰빛깔이며 물감의 모든 색들의 혼합은 검은 색이다. (47VLH)
더군다나 최고의 권위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elēs, 384-322: 62살)]가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빛이 순간적으로 전달된다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통념은 그 후 2000년 동안 과학계를 지배해 왔다. (14)
2절. 빛에 속도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을까? 14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가설들을 논박하면서 엠페도클레서의 가설을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엠페도클레스[(Empedocle, Ἐμπεδοκλῆς, 490-435)]는 빛이 전달될 때 매우 짧은 시간 간격이 있어서 이들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5-16)
또한 에피쿠로스(Epicure, Ἐπίκουρος, 전341-270; 71살)는 모든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로부터 그 물체의 정보를 갖고 있는 입자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현대사상의 선구자인 그는 원자보다 빠른 입자, 즉 이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차원을 넘어서는 최고 속도를 갖춘 입자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16)
[빛의 유한 속도를 동양에서 주장한 사람으로 알하젠과 이븐시나가 있다. 알하젠(fr. Alhacen, Alhazen, ou Ibn al-Haytham, 965–1039)는 광학연구는 1270년 라틴어로 번역된 알하젠의 광학사전이 있다. (17)
케플러는 빛이 순식간에 무한까지 전달되는 무형의 형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의견이 달랐다. 그는 굴절광학에서 이븐시나와 비슷한 견래를 펼쳤다. / 그러나 데카르트 역시 월식을 관찰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어 빛이 즉각적으로 전달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17-18)
제2장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빛의 속도에 접근했을까? 19
1절. 빛의 속도를 어떻게 측정할까? 21
속도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로 자동차 주행 거리계처럼 일정한 시간 동안 움직인 길이를 계산하는 방업이 이있고, 다음으로 주어진(또는 기준이 되는) 길이를 통과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21)
이 상태에서 셔터를 열면 빛이 빠져나와 한쪽 기준점에서 다른 쪽 기준점에 도달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 갈릴레이는 빛의 속도를 재는 데 이 원리를 처음으로 적용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22)
2절. 광속 측정의 토대는 어떻게 마련되었을까? 23
•갈릴레이의 위성 발견 23
1610년 1월에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했다. (23) [위성중의 하나인 이오(주기 1.8일)의 식(蝕)을 기준으로 자연셔터를 만들 수 있단다. ]
목성의 위성들은 태양과 달의 시운동과 함께 자연의 또 다른 시계로 불릴만큼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자연 시계와 인간이 만든 시계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 이 시기에 천체 망원경이 발명되었으며, 처음으로 기계 시계가 나타난 이후 5세기 동안의 갖은 노력 덕택으로 마침내 0.1초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24) [이집트 해시계(grec γνωμων)이래로, 기계 시계의 첫 발명은 언제인가? 1300대이란 설이 있는데, 그렇다면 1800년대에는 0.1초 단위를 측정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
•뢰메르의 유한 속도 증명 24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1712)는 1668년에 갈릴레이 위성의 식 목록을 만들었다. .. 1672년 그는 당대의 최첨단 연구소였던 프랑스 천문대 소장으로 임명받았다. (25)
뢰메르(Olaus Roemer, Ole Christensen Rømer, 1644-1710)는 이와 같은 현상은 빛이 유한 속도를 가진다는 증거라는 의견을 밝혔다. ../ 1676년 9월 뢰메르는 이오의 식이 기존 운행표에 예견된 것보다 10분 정도 늦을 것이라고 과학원에 보고했다. 그의 예측은 맞았고, 세계최초의 학술지 주르날 데 사방은 이에 대해서 역사적인 단평을 실었다. / 하지만 뢰메르는 빛의 속도를 직접 측정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26-28) [그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생각으로 1675년 빛의 속도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위의 내용상으로 보면, 아니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시니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뢰메르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크리스티안 호이엔스와 뉴턴은 이를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여 각각의 저서인 빛에 대하여[1690]와 광학[1704]에 그 이론을 도입했다. (28)
•브래들리의 광행차 28 [l'aberration de la lumiere]
[브래들리(James Bradley, 1693–1762) 영국 천문학자. 3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장, 1725년에 연주시차를 측정하다가, 1927년에 광행차 현상을 발견했다.]
[그의 계산을 환산해보면] 빛의 속도는 초속 29만 5000킬로미터(오차범위 5천킬로미터)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값으로, 오늘날 공인된 빛의 속도와 2퍼센트 정도의 오차 범위에 있는 것이다.(30)
제3장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빛의 속도에 접근했을까? 31
1절. 빛의 성질은 무엇일까? 33
천문학자들은 빛의 속도를 측정할 때 행성 궤도의 데이터를 이용한다. 이 데이터가 정확할수록 빛의 속도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 안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지 못한다면, 외부 데이터에 끊임없이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그 임무는 물리학자들에게 넘겨졌다. 현재 c라는 문자로 표시하는 기준 값, 즉 진공상태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 물리학자의 몫이 된 것이다. (33) [외부에서 기준을 찾으면 상대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내부에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데아와 같은 동일율을 외부 기준이다. 그것은 내부에 적용하는 것이 오류이다. 들뢰즈가 정신분석학의 오류의 첫째 이유가 이 외적 기준을 개인 인격에 적용하는 것이라 했다.] / [생명 진화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간이외에 종에서 연구가 아무리 되어도, 유비적이 된다. 인간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고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은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학문이 된다. (47VLH)] ...
2절. 빛은 파동일까 입자일까? 34
17세기에 호이겐스는 파동이론을 정립했다. 빛은 물 표면에 이는 잔물결처럼 진동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파동의 세기는 한 주기의 시간과 한 파장의 공간에서 되풀이되는 진동으로 표시한다. (34) [이 당시까지는 빛은 소리처럼 종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빛은 횡파이다
[횡파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물체들 사이의 모든 간격을 채워 주는 빗물질적인 유체(流體)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즉 빛은 진동으로 구성되며, 에테르라는 가상의 매질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이다. (35)
한편 18세기에는 뉴턴의 영향 때문에 빛이 매우 빠르고 작은 방사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자이론이 우세했다. (35)
그러다가 19세기 초인 1803년 영국의 토마스 영은 빛의 간섭실험을 통해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는 논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35)
파동이론에서는 빛이 물이나 유리에서보다 공기 중에서 더 빨리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입자이론에서는 .. 공기 중에서보다 물 속이나 유리에서 더 빠르게 전달된다고 보았다. (36)
3절. 광속 측정법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36
19세기에 우주 공간에서 빛의 속도가 밝혀진 후, 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무(無)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길이의 기준치가 주어졌다는 것은, 곧 측정할 시간이 정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이에 따르면, 빛이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으로 길이를 측정할 수 있다.(37)
아라고(Francois Arago, 1786-1853) .. 피조(Armand Hippolyte Louis Fizeau, 1819-1896) 와 푸꼬(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1868)
•톱니바퀴 방법 38
1849년 7월 피조는 대기 중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최초로 기계 장치를 이용했다. (38)
그는 정밀 기계 제작자로 유명한 귀스타프 프로망(Gustave Froment, 1815-1865)에게 의뢰하여 내부 톱니바퀴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38-39)
그렇지만 피조가 얻은 빛의 속도는 31만 5000킬로미터로 아주 정확하진 않았다. (39)
그로부터 20년 후 프랑스 물리학자 꼬르뉘(Alfred Cornu, 1841-1902)는 정교하게 개량한 기계를 사용해서 피조의 톱니바퀴 실험을 재현했다. .. 초속 29만 8500킬로미터와 초속 30만 30킬로미터로 측정되었다. 넉넉하게 잡아 오차는 초속 1000킬로미터 정도였다. (40)
1902년 앙리 빼로땅(Henri Joseph Anastase Perrotin, 1845–1904)은 ..초속 29만 9880 km/s(오차범위 ±84km)라는 측정치를 얻었다. (40)
신호대신에 광전지로(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서, ... 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1950년 스웨덴의 베르그스트랜드[Carl Osten Emanuel Bergstrand, 1873–1948]는 빛의 t속도 측정한 결과 그 수치가 29만 9793.1킬로미터(오차범위 ±0.25km)라 발표했다. (41) [1950년은 착오인 것 같다. 아니면 천문학자의 연대가 착오이든.. ]
• 반사경 방법 38
1938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아라고[Francois Arago, 1786-1853]는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휘스톤[Charles Wheatstone, 1802–1875)]의 발명품[회전 반사경]을 사용해 실험하자고 제안했다. (41)
1850년경1[1851] .. 푸꼬는 두 반사경 사이에 한 가운데에 찬 물이 든 관을 놓아 빛이 이곳을 통과하도록 하면 더 많은 굴절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이는 공기 중에서보다 물속에서 빛의 전파 속도가 떨어진다는 증거였고, 파동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42)
20세기 초 빛의 입자 또는 광자(光子)로 인해 파동이론에 다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이는 부분적인 논의에 그쳤다. 사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띤 이중성을 갖고 있다. (42-43) [광자(光子, photon)는 전자기파의 양자(量子, quantum)이다.] [아인슈타인이 이 문제를 전환시킬 것이다]
푸꼬[의 업적 중에서] .. 파이프 오르간 설계자인 아리스티드 카바이에꼴의 영향으로 ... 각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했던 일이다.(43)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 1835–1909)과 마이컬슨(Albert Michelson, 1852-1931)은 1878년에서 1882년에 걸쳐서 푸꼬가 했던 실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43)
마이컬슨은 1924년에서 1926년에 .. 다시 도전했다. ... 공기 중의 굴절로 인한 오차를 수정한, 진공 상태에서의 빛의 속도 c의 값은 초속 29만 9796킬로미터(오차범위 ±4km)였다. 이 값은 몇십년동안 거의 공식적인 기준 값이 되었다. (44)
제4장 광속 연구를 도운 현대의 이론과 기술은? 45
1절. 전자기를 통해 빛의 속도를 알 수 있을까? 47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외스테드[Christian Ørsted, 1777-1851]는 실험을 통해 전류가 자기장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여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밝혀냈다. (47)
1856년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콜라우슈[Rudolf Kohlrausch, 1809-1858]와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 1804-1891]는 ..계측장치[로] .. 전기장과 자기장의 비를 측정한 결과 초속 31만 8000킬로미터라는 값을 구했는데.. (48)
1898년에는 프랑스 알프레드 뻬로[Alfred Perot, 1863-1925]와 샤를 파브리[Marie Paul Auguste Charles Fabry, 1867-1945]가 측정한 초속 29만 9784킬로미터(오차범위 ±30킬로미터)라는 갑이 빛의 속도로 공인되었다. (48)
• 헤르쯔의 전자파 48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자기파의 파동 방정식을 이론적으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1864년에 발표했는데 ... 이를 통해 빛도 전자기파라고 주장했다. (49)
1888년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는 실험을 통해 전류를 통해 전류로부터 발생한 전파의 영역에서 전자기파의 존재를 확인했다. (49)
전파, 자기파, 광파가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실증했다.
• 레이더와 레이저 50
[레이더(le radar: de l'anglais RAdio Detection And Ranging)] [1940년대 전쟁 중에 이용가능성을 알았고, 1950년대에 해결 방안을 발명했고, 1965년에 쿨리(Cooley)와 터키(Tuckey)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레이저(Un laser: acronyme de l'anglais ≪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 ≫), 레이저 메이저의 후신이며, 레이저는 처음에는 광학메이저로 불렸다. 왜냐하면 메이저 발견이후 1970년 말에 이용할 수 있었다.]
레이더[le radar]는 2차 대전 중에 개발되었다. .. 1940년대에는 파동유도 장치와 공진기가 개발되었다. (50-51)
1947년 루이[스] 에센[Louis Essen, 1908–1997]은 전쟁 중 영국의 전파 탐지기를 관찰해 얻은 정보를 실험에 사용했다. ./. 에센연구소 동료인 케이트 다비 프룸[s.d.]은 에센이 반복하여 얻어낸 결과가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가 측정한 최종갑은 초속 29만 9792.5킬로미터(오차범위 ±0.1킬로미터)로 레이저가 등장하기 전에 발표된 것 중 가장 정확한 값이었다. (51) [영위키(en.Wiki)에는 1946년 실험에는 고든스미스(A.C. Gordon-Smith, s.d.)의 협력으로 측정했다고 하고 프룸에 대한 언급은 없다. (47VMA)]
레이저[le laser]는 1959년에서 1960년 사이에 처음 만들어졌다. .. 레이저는 레이더에 비교해 더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52) [레이저의 이용은 1970년 말 이후이다. 이 책 63쪽 참조, frWiki도 그렇게 서술했다.]
1972년 K. M. 이벤슨[s.d.]은 동료들과 함께 이 같은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임의로 빛의 속도를 고정하고 이 빛이 일정 시간 단위 동안 전된 거리를 기준으로 미터자를 다시 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주파수를 측정할 때 불확실한 부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53) 역주: 새로운 미터법 1960년에 국제 도량형 총회는 특정 조건에서 크립톤 원자가 방사하는 오렌지색 스펙트럼 선 파자의 165만 763.73배를 1미터로 정하고, 그것을 미터법의 기준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53)
2절. 빛의 속도는 상황에 따라 변할까? 54
멕스웰은 전자기파를 전달해 주는 에테르라는 매질의 존재를 가정했지만 에테르의 본질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 게다가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으로 인해 에테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54). ..//.. 간섭무늬가 나타나지 않았다.(54)
아일랜드의 조지 프랜시스 피츠제럴드와 당대 최고의 이론가로 인정받던 네델라드의 핸드린 안톤 로렌츠가 손을 잡았다. 1895년 이들은 빛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물체가 수축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 간섭무늬 실험 결과를 설명할 있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이론적인 토대가 부족했다. (55)
제5장 빛의 속도는 시공간을 초월할까? 57
1절. 시간은 상대적인 것일까? 59
고전 물리학은 17세기에 제창된 역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에는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공간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시간과 속도를 안다면, 운동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공간은 평평하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든 무한정 직선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성의 법칙을 공식화하고 뉴턴이 발전시켜 .. 이 원리에 따르면 어떠한 힘의 작용도 받지 않는 물체는 정지 상태이거나, 직선을따라 한결같은 속도로 운동을 한다. 또한 모든 관측자에게 항상 일정하게 측정되는 속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59) [등속도운동의 직선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이론과는 반대로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을 비롯한 여러 실험들은 변하지 않는 속도의 존재를 입증했다. 바로 빛의 속도였다. 이러한 모순은 물리학자들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59-60)
1896년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은 극히 작은 물체인 전자를 발견했다. 이 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빛의 근본 성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60)
1904년 로렌츠는 움직이는 전자의 속도를 결정하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상으로 도입했다. 단지 가설에 불과했던 전자이론을 통해 전자기학과 역학이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60)
로렌츠 이론은 아인슈타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계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기력과 자기력이 통합된 전자기력이 도출되었다. ../.. 새로운 상대론적 역학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은 최고 속도인 빛의 속도 c에 접근할수록 무한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닐 때, 즉 이동 중인 물체의 속도가 c보다 작을 때에는 여전히 고전 역학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61)
그러나 상대시간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려면 시간 지연이라는 낯선 개념까지 수용해야 했다. 때문에 앙리 베르그송과 같은 철학자는 이 이론을 무시하기도 했다. (61-62)
[1905 상대성이론] 기본 원리는 빛의 속도가 속도를 측정하는 좌표계나 광원의 움직임[속도]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마이컬슨과 몰리가 이를 우연히 증명한 이후[1887], 1960년대 메이저나 1970년대 레이저 같이 발달된 기술을 활용해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는 실험은 20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63)
[메이저(le maser, 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는 분자 증폭기이다. 1953년 메이저(Le maser)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토운즈(Charles Townes), 고든(James Gordon), 제이즈라(Herbert Zeigera)에 의해 발명되었다.]
2절. 시공간은 추상적인 것일까? 63
아인슈타인의 대학 시절 교수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1864-1909]는 1908년 새로운 개념[시공간개념]을 공식화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63-64)
민코프스키의 시공세계에서 기준 속도는 주파수, 방향, 움직임과 상관없이 빛의 속도 c와 동일하다. 어떠한 물체도 그 속도에 근접할 수 없으며, 물론 초월할 수도 없다. (64)
이 물질들이 주변의 시공을 변형시킨다고 말한다. 이는 1916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에 포함된 것이다. 일반상대성 이론과 비교할 때,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공간은 춘수 추상의 세계이다. 이는 극히 미세한 물질들로 가득한 구체적인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다. (64)
3절. 빛의 속도 c는 완벽한 값일까? 65
1980년 경에 진공 상태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하여 오차 범위를 소수점 이하 초속미터로 떨어뜨렸다. (65)
1983년 제17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는 이런 의견을 반영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c에 초속 초속 2억 9979만 2458미터라는 단호하고도 결정적이며 완벽한 대표값을 부여했다. (65)
그렇다면 길의 기본단위나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과업은 이제 완료된 것일까? (66)
제6장 앞으로 빛의 속도를 얼마나 더 연구해야 할까? 67
1절. 현대 과학 이론의 한계는 무엇일까? 69
지금까지 구했던 측정치들 가운데 가장 정확한 근사치가 추상적인 크리 c로 제정되었다. 실제 세계는 민코프스키가 증명해 낸 기준 속도가 있는 시공간과 다르다.(69)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의 속도가 우주 역사에서도 그만한 가치를 가질지가 문제이다[의문이다]. 현재 이 문제는 물리학의 범주에서 실재로 다루어지고 있다기보다는 실속없는 논의만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리학자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달 방향에 따라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는 지를 실험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등방성(等方性)에 약간의 편차를 끌어낼 수 있었다. (70) [아직도 모든 방향에서 빛의 속도가 같다는 것은 미지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자연의 네가지 힘 중 하나인 중력에 대해서만 논한다. 일반 상대성이론보다 나중에 생긴 양자이론은, 극히 작은 규모의 원자나 핵 등 다른 힘의 영향아래에 있는 기본 분자들에 대한 역학[약력과 강력], 즉 전자기와 권핵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70)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은 쉽게 어우러지지 않는다. (71)
그래서 중력과 양자역학을 양립시키기 위해 개진된 이론들은 특수상대성이론, 즉 광속의 등방석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71)
우리가 진정한 빛의 속도를 영원히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71)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간다. 태양계 또는 은하계 속에서 지구와 연관 속에서 살아간다. 빛이 중요하다 해도, 더 상세히 플어보아야 할, 불, 흙, 공기, 물 등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일 수 있다. 학문은 물리학만이 아니니까 (47VMA)]
* 더 읽어 볼 책들 72
송은영, 뢰머가 들려주는 광속 이야기, 자음과 모음, 2005
송은영, 사고뭉치 아인슈타인, 빛을 뒤쫓다, 이페소드, 2003.
윤혜경, 드디어 빛이 보인다, 성우, 2001.
정완상, 아인슈타인이 들려주는 상대성원리 이야기, 자음과 모음, 2004
루이스 엡스타인외 백윤선 옮김, 재미있는 물리여행2, 김영사, 1988.
* 논술, 구술 기출 문제 73
(47VMA)
****참조 인명 및 잡지
과학자들의 잡지(Le Journal des scavans) 1665년에 1호를 출간했다. 1908년부터는 비명예술아카데미(l'Academie des inscriptions et belles-lettres)가 담당하여 현재는 년2회 출간하고 있다.
*
알하센(fr. Alhacen, Alhazen, ou Ibn al-Haytham, de son vrai nom Abu Ali al-Hasan ibn al-Hasan ibn al-Haytham, 965–1039) 페르샤출신 아랍 회교도. 수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생리학적 시각영역의 작업이 유명한다. 알하젠의 광학사전(1270년 라틴어번역)
아라고(Francois Arago, 1786-1853) 프랑스 천문학자, 물리학자, 정치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e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아비세나, 이븐시나(fr. Avicenne, Ibn Sīnā, 980-1037) 중세 페르샤 철학자, 작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아인슈타인과 논쟁으로 지속과 동시성(1922)를 썼다. [벩송은 생명에 관한한 시간의 절대적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그에게 시간은 상수이지, 가변적 변수가 아니다.]
베르그스트랜드(Carl Osten Emanuel Bergstrand, 1873–1948) 스웨덴 천문학자.
브래들리(James Bradley, 1693–1762) 영국 천문학자. 3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장, 1725년에 연주시차를 측정하다가, 1927년에 광행차 현상을 발견했다.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1712)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천문학자. 루이14세 초청으로 1672년 프랑스 초대 천문대장.
까바이예-꼴(Aristide Cavaille-Coll, 1811-1899) 19세가 오르간 제작의 거장이다.
꼬르뉘(Alfred Cornu, 1841-1902) 프랑스 물리학자. 자외선 방사사진술 연구..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미국 이론물리학자.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1905년 발표하였으며,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 Ἐμπεδοκλῆς, 490-435) 시실리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 아그리장뜨Agrigente)출신, 4원소(물, 공기, 흙, 불) 사랑과 증오 (소크라테스보다 25년쯤 선배)
에피쿠로스(Epicure, Ἐπίκουρος, 전341-270; 71살) 탄생 플라톤이 죽은 후 6년이 지나 태어났다. 알렉산더가 죽을 때 18살이었다.
엡스타인(Lewis Carroll Epstein, s.d.) 30년 이상 과학시리즈를 쓰는 작가. 물리학 생각(Thinking Physics, 1981)(공저: 물리학자 히위트(Paul G. Hewitt, 1931-)와 함께 씀)
루이스 에센(Louis Essen 1908–1997) 영국 물리학자. 그는 아인슈타친의 상대성 이론을 비판하면서 “시간지연”(la dilatation du temps)을 제시했다.
샤를 파브리(Marie Paul Auguste Charles Fabry, 1867-1945) 프랑스 물리학자. 광학 중에서 간섭측정, 광자측정의 전문가이다. 박사논문 Theorie de la visibilite et de l'orientation des franges d'interferences.
피츠네럴드(George Francis FitzGerald, 1851–1901) 아일랜드 자연과 실험철학 교수
피조(Armand Hippolyte Louis Fizeau, 1819-1896) 프랑스 물리학자 천문학자. 전자기파에서 도풀러 효과를 제시했다.
푸꼬(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1868) 프랑스 물리학자 천문학자. 1851년 발견한 아주 유명한 현상으로 전자의 회전현상. 빛의 진동이 횡적이며 종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 (1830년에 푸꼬(foucault)가 이를 검증하였다)
프로망(Paul-Gustave Froment, 1815-1865) 프랑스 발명가, 역학자. 에꼴폴리테크닉 출신/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 이탈리아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근대 과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특히 중력과 운동에 관한 연구에 실험과 수리해석을 함께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근대역학과 실험물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자연은 수학적 언어로 씌어진다'라는 주장으로 수학적 합리주의를 주창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대항했다.
헤르쯔(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 독일 물리학자, 기술자. 전파, 자기파, 광파가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실증했다.
호이겐스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호이헨스Christian Huyghens 네덜란드의 수학자․천문학자․물리학자. 빛의 파동이론을 세웠고 토성 고리의 정확한 모양을 발견했으며 동역학(물체에 미치는 힘의 작용에 관한 연구)에 독창적인 공헌을 했다. 빛에 대하여(Traite de la Lumiere, 1690)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의 천문학자.
루돌프 콜라우슈(Rudolf Hermann Arndt Kohlrausch, 1809-1858) 독일 물리학자.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 네델란드 물리학자. 1902노벨 물리학상.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수학자. 1864년 ‘빛의 전자기파설’을 발표. 1873년 전자기장에 관한 유명한 맥스웰 방정식 발견하여 전기와 자기 사이의 현상들을 설명하였다.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 독일(프러시아) 출신 미국 물리학자. 19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1887년 빛의 속도를 재는 실험을 했다. / 간섭계(L'interferometre de Michelson)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1864-1909) 러시아 태생 유태계 독일 수학자. 기하학적 정수론을 발전시켰고, 정수론, 수리물리, 상대성이론 등 어려운 문제들을 기하학적 방법으로 풀었다. 3차원 물리공간에 시간 차원을 결합시킨 그의 4차원 공간(민코프스키 공간)이라는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기초가 되었다.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 미국과학자.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 실험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 1835–1909) 카나다 미국인 천문학자 수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 런던. 영국 출신의 물리학자, 수학자. 17세기 과학혁명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광학(Opticks 1704)
외르스테드(Christian Ørsted, 1777-1851) 덴마크의 물리학자가 전류가 자석의 바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다.
알프레드 뻬로(Alfred Perot, 1863-1925) 프랑스 물리학자. 광학에 조예있음 파브리와 간섭측정기를 발명했다.
앙리 빼로땅(Henri Joseph Anastase Perrotin, 1845–1904) 프랑스 천문학자. 1902년 빛의 평균속도 v=299 880 km/s 측정
뢰머, 뢰메르(Olaus Roemer, Ole Christensen Rømer, 1644-1710) 덴마크 천문학자. 1675년 목성의 위성관찰.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생각으로 1675년 빛의 속도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
영(Thomas Young, 1773-1829) 영국 의학자, 물리학자, 이집트 고고학자. 빛의 간섭현상(l'interference) - 두 빛줄기가 마주치는 곳에 검은 사각 현상
빌헬름 베버(Wilhelm Eduard Weber, 1804-1891) 독일 물리학자. 전자기장 연구
휘스톤(Charles Wheatstone, 1802–1875) 영국과학자 발명가.
케이트 다비 프룸[s.d.] 에센 연구소 연구자. 에센의 동료.
K. M. 이벤슨[s.d.] 1972년 새로운 미터자를 제안했다.
(47V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