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여 년 동안 죽음과 사후의 삶에 대한 연구 성과와 경험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여러 해 동안 임종하는 사람들과 일을 해보니 수 백 만년 동안 인류가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삶과 죽음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죽음과 사후의 삶에 대한 연구결과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지금이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로 이러한 연구결과를 설명할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임종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을 돕고 카운슬링 할 때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왜 어린나이에 죽어야 하는가?”
우리들은 여러 이유로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임사체험을 연구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연구가 죽음에 가까이 간 경험임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을 발표할 수 없었고, 전이(transition)를 이룬 후 그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이제까지 발표했던 유일한 것은 미국 남부지방에 살고 있는 암에 걸린 9살 소년이 나에게 보낸 질문: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은 어떤 것이며 왜 어린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에 대해 내가 쓴 편지이다. 내 딸아이의 색연필을 사용해서 그 나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어휘로 작성한 작은 그림편지를 보냈다. 그 아이의 반응이 긍정적이었고, 나에게 조그만 그림책을 받았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그 아이는 그것을 부모와 같이 보았고 다른 임종하는 아이 부모들에게도 보여주었다. 나에게는 특별 선물이어서 여러 아이들의 이해를 돕고자 출판을 허락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를 보다 많이 관심을 가졌었고, 하늘나라를 믿었으며 사후의 삶을 믿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육체의 죽음 후에도 삶이 존재하는 걸 진실 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졌다. 우리는 지금 새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기술 물질적 시대에서 영적인 새 시대로 전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종교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을 의미한다. 영성이란 우리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 우주를 창조하고 삶을 창조하고 우리들은 중요하며 의미 있는 한 부분으로 그것의 진화에 공헌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내가 이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사후의 삶에 관심이 없었고 죽음의 정의에 대해서도 명확한 밑그림이 없었다. 죽음의 과학적인 정의를 공부해 보면 신체적 죽음만을 포함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의사이자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그것에 대해 어떤 질문도 없었다. 장기 이식 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환자의 신체 기관을 윤리적, 도덕적, 법률적으로 언제 떼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60년대에 죽음의 정의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죽음의 정의는 중요한 법률적 이슈가 되었다. 환자가 살아있는데 너무 일찍 장기를 떼어낸다고 고소를 하기도 하며, 불필요하게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고소를 할 수도 있었다. 보험회사들은 문제를 가중시켰다. 한 가족이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먼저 죽었는지를 아는 게 매우 중요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돈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가 이슈가 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임종을 맞는 환자의 침상에서 있었던 나의 주관적인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이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회의론자로서 사후의 삶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러 번의 경험들에 깊은 인상을 받고는 이제까지 아무도 죽음에 대한 연구를 왜 하지 않았을까를 궁금해 하기 시작하였다. 과학적인 이유와 법률적인 이슈뿐 만아니라 자연적인 호기심에서도 죽음에 대해 왜 연구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가 존재한지 4천7백 만년이 되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일매일 사람들이 죽고 있다. 달에 사람을 보내고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는 이 사회에서 죽음의 정의를 내리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특이하지 않은가? 그래서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돌봐주고 의학부 학생과 신학부 학생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우리들은 죽음의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 두드려라 그러면 문은 열릴 것이다.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승이 나타난다.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들이 이러한 결심을 하고 일주일 후에 위에 열거한 구절들이 증명되는 일이 벌어졌다. 간호사들이 우리들을 방문하여 중환자실에 15번 입원했던 한 여자환자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매번 위독하여 사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중환자실에 입원 한 후 수주 혹은 수개월 후에 걸어 나왔다. 그녀가 우리의 첫 번째 near-death experience 경우였다. 이 여성 환자의 경우를 경험할 당시에 나는 사망하기 직전의 환자들에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들 중 많은 경우에서 사랑했던 이들의 환상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들과 어떤 형태의 대화를 분명히 나누고 있었으나 나는 그들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나는 또한 분노찬, 다루기 힘든 환자들도 죽기 바로 직전에 이완되기 시작했으며 그들 주위가 고요감에 감싸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 덩이가 전신에 퍼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통증이 없어졌으며, 임종한 바로 직후에 그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는 평화, 고요와 적막감의 표정을 띠고 있어 내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나의 환자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고 그들과 깊고 사랑이 가득한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고 나는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망 후 수분이네에 그들에 대한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종종 생각하기도 하였다. 내가 그들을 볼 때, 그들은 봄이 되어 벗어버린 겨울코트처럼 보였다. 나는 이런 믿을 수 없는 껍질의 이미지를 가졌고, 나의 환자는 이제 더 이상 그 껍질 속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당연히 과학자로서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스와즈 여사의 예가 없었다면 이런관찰을 그냥 묻어 두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정신분열증 환자여서 매 발작 때마다 막내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스와즈여사는 자신이 죽고 남편이 발작하게 되면 막내아들이 위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무료법률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우리들이 막내아들의 양육권을 친척한테 넘기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안도감을 갖고 퇴원하였다.
그 환자가 거의 1년 후에 다시 우리병원에 입원하여 자신의 near-death experience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여러 책과 잡지에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스와즈여사가 첫 번째 사례였다. indiana에 있는 지방병원의 응급실에서 경험을 하였다. 그 당시 그녀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이곳 chicago까지 올 수가 없었다. 그 병원의 병실로 옮겨졌고, 그녀는 막내아들을 위해 이번에도 이겨내야 하는지 그냥 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할 때, 베개에 기댄 채로 허물을 벗었다. 그녀는 간호사가 자신의 병실로 들어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한번 본 후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이 자신의 육체에서 나와 침대에서 수 피트 위에 서서히 평화롭게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놀랍고 희안하며 두려움이나 초조감이 없었다. 그리곤 응급 소생 팀이 병실로 들어오는 걸 목격하였고, 첫 번째 들어온 사람에서 마지막 들어온 사람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내용 모두, 그들의 생각의 패턴을 완전하게 인식하였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은 괜찮으니 여유를 가지라는 뜻을 전달하고 싶어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그들은 더욱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조치만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자신은 그들을 인식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와즈 여사는 포기하기로 결심하였고 그녀의 표현을 빌면 “나는 의식을 잃었다”라는 상태가 되었다. 소생술을 실시한지 45분 후에 죽음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병원직원들이 놀랍게도 다시 생명력이 돌아왔다. 그녀는 1년 반을 더 살았다. 스와즈 여사는 자신의 경험을 나의 세미나에서 그 반 학생들과 나에게 이야기 하였다(퀴블러로스박사는 원하는 말기 환자들을 자신의 강좌에 등장시켜 강좌를 신청한 학생(의학부와 신학부)들과 대화를 나누게 하였다. 대화 주제는 병과 관련된 어떤 것도 가능 하였다고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수년 동안 의사생활을 하면서 near-death experience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었다. 나의 학생들은 쇼크상태가 되었고, 나는 이것을 hallucination이나 illusion 혹은 depersonalization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에 어떤 용어를 붙였으며 하는 필요성을 가졌으나 다루지 않고 그냥 놔두기로 하였다. 스와즈여사의 경험은 결코 개인적인 일회성의 독특한 일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확신했다. 우리들은 스와즈여사와 같은 사례를 더 모을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해서, 이 현상이 흔한 것인지, 드문 것인지, 아니면 매우 독특한 개인적 경험인지를 알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많은 많은 연구자, 의사, 심리학자와 parapsychological phenomena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례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 최근에 알려지게 되었다(이 글은 1980년에 있었던 강의 녹취록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2만 5천 건의 사례를 모았다.
이러한 사례에서 육체적인 기능이 멈추는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것을 요약하는 일은 간단하다. 우리는 이것을 near-death experience라고 부르고, 이런 환자들 모두 되살아 돌아와 경험한 것을 우리들과 나눌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나중에 말할 것이다. 심장마비를 겪거나 심폐소생술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 중에 10명 중 한 명꼴로 vital sign이 일시적으로 멈출 동안에 경험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비유해 보면 이해가 된다. 모든 사람들은 매일 밤 꿈을 꾼다. 하지만 일부에서만 깨어나서 꿈을 기억하고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미국뿐 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캐나다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사례를 모았다. 가장 어린 경우는 2세 남아였고 97세 자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여러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에스키모인, 하와이 원주민, 오스트리아 원주민, 힌두교인, 불교인, 기독교인, 천주교인, 유대교인, 무신론자,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의 사례를 모았다. 가능하면 다양한 문화, 종교적 배경 등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다. 우리들은 모은 자료들이 어떤 요인에 오염되지 않아 종교나 다른 여러 조건에 무관한 독특한 인간 경험임을 확실하게 하기를 원했었다.
수 년동안 데이터를 모은 후에 우리는 near-death experience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에서 다음의 공통적인 양상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고, 살해시도, 자살시도, 혹은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에서 이러한 경험을 한다는 사실도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사례의 반수 이상은 갑작스런 죽음 경험이어서 near-death experience를 예상했거나 준비한 상태가 아니었다. 죽음의 순간에 여러분들은 일시적인 집인 육체에서 실제의 불멸한 You가 분리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불멸의 자아, 영혼 혹은 실체 혹은 아이들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 언어로 번데기를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나비로 지칭할 것이다. 우리가 육체를 벗어날 때 고통, 두려움, 걱정등이 완전히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육체적 완전함을 경험할 것이며 사건발생 혹은 죽을 때의 주의 환경, 상황을 완전히 인식할 것이다. 병실이나, 집에서 심장마미 후에는 침대일수 있고,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추락사고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응급소생팀이 응급소생술을 실시하고 있거나 구조원들이 사고 난 차 속에서 피투성이의 신체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몇 피트 거리를 두고 지켜 볼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뇌의 활동이 측정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의사들이 어떠한 생명활동의 sign를 발견하지 못할 때 이것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들은 사람들의 대화, 행동, 입은 옷과 그들의 생각을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때 경험하는 우리의 두 번째 몸은 육체적 몸이 아니라 에테르 몸이다(우리는 나중에 이런 형상을 만드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에 대해 말 할 것이다). 두 번째 일시적인 에테르 몸에서 이전에 말 한대로 완전성을 경험한다. 다리가 잘린 사람이라면 다시 다리를 가질 것이고, 농아인 경우는 듣고 말하고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잘 보이지도, 잘 말하지도 못하고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multiple sclerosis 환자들은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다시 출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응급소생술로 되살아난 많은 환자들이 고마워하지 않은 경우를 이해할 만하다. 그들의 나비가 다시 번데기내로 돌아와 갇힐 때 신체적 기능이 되돌아온 후로 고통을 느끼게 되고 본래의 신체장애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에테르몸 상태에서는 고통도 신체장애도 없다.
나의 많은 동료들은 이것은 단순히 소망이 투사된 것이 아닌가 부정적으로 보는데, 이해 할수 있는 반응으로 생각한다. 수년동안 마비상태, 농아, 장님이었거나 신체장애가 있었다면 그들은 고통이 끝날 때만을 손꼽아 고대할 것이다.
단순히 바라는 마음이 투사된 것인지는 조사하기가 매우 쉽다. 우리의 사례는 반 수 이상에서,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서 예를 들면, 뺑소니차사고에서 양다리가 절단되는 경우처럼 예상치도 못한 사고이거나 near-death experience 사례였다. 그 환자는 육체에서 벗어나왔을 때 고속도로 상에 절단된 양 다리를 보았으나, 완벽하고 완전한 에테르몸에는 양 다리가 여전히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우처럼 우리는 그가 양다리를 잃음을 사전에 알아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사되었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사실 기대하는 마음이 투사되었는지 여부를 간단히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전혀 빛을 인지할 수 없는 장님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near-death experience을 경험했을 때 그것이 어떠했는지 경험담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는지 요청했었다. 그것이 단지 기대하는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고 하면, 그들은 스웨터의 색깔, 넥타이의 디자인, 사람들이 입고 있었던 옷의 형태, 색상, 디자인들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시력이 없는 장님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누가 처음으로 병실에 들어왔는지, 심폐소생술에서는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말할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복장, 옷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완전한 장님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에테르몸으로 지칭할 수 있는 완벽하게 시뮬레이트된 몸에서 완전성을 경험하고 고통이 없는 이외에도 사람들은 결코 혼자서 죽을 수 없음을 인식할 것이다. 누구도 혼자서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세가지가 있다. 아무도 없는 사막이나, 우주비행사가 우주미아가 되어 자연사하게 되는 경우에서도 결코 혼자 죽는 경우가 없음을 의미한다. 소아암환자의 경우처럼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죽기 전에 많은 아이들은 육체를 벗어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소위 유체이탈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런 out-of-body experience를 잠자는 동안 어떤 단계에서 경험한다. 우리들 중 아주 소수에서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한다. 내면으로 쉽게 동조하는 사람, 특히 임종을 맞는 아이들은 같은 나이의 건강아보다 더욱 영적이 된다. 그들은 육체에서 벗어나는 이런 짧은 여행을 인식하게 되며, 이 경험은 전이과정에 도움을 주며 그들이 가게 될 세계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유체이탈 동안 죽어가는 환자들은 그들을 에워싸는 존재, 그들을 가이드하고 도와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종종 그들의 놀이친구라고 부르고, 교회에서는 수호천사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가이드라고 부를 것이다. 무엇이라 부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출생 때부터 전이할 수 있는 순간까지 이 육체적 존재가 끝날 때까지 모두 각자의 인간존재는 이런 가이드, 수호천사가 있으며 삶에서 사후의 삶으로 전이할 때 우리를 돕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우리는 자신들 보다 먼저 죽었던 이들을 항상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혼자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로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죽음직전에 비록 일시적이라도, 우리가 육체를 벗어나면 시간과 공간이 없는 존재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생각하는 순간 있고자 하는 곳에 있을 수 있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수지는 엄마가 옆에서 돌보고 있다. 나만 남겨두고 죽으면 않되 혹은 너 없이는 살수가 없다는 엄마의 마음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아이에게 전달되기에 이 아이는 엄마를 떠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수지는 죽음 후에도 자신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고 삶의 연속성을 완전히 자각하게 된다. 수지는 밤동안과 의식의 정상상태동안 육체를 벗어나고 원하는 어떤 곳이든지 여행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종종 이렇게 말을 한다. “엄마는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집에 가서 샤워도 하고 좀 쉬었다 오세요. 지금은 저는 좋아요.” 그 말에 엄마가 집에 가면, 한 30분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유감입니다. 스미스부인, 댁의 따님이 방금 숨을 거두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부모들은 죽음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음을 후회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사람은 혼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지는 부모의 욕구에 대한 부담감 없이 번데기를 벗고 빠르게 해방될 수가 있다. 그러면, 생각의 속도로 엄마, 아빠 혹은 같이 있기를 원하는 사람 곁에 있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위엄, 근엄성의 일면의 부여 받았다. 7백 만년전에 우리는 이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에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과 위기의 순간, 지친 순간, 매우 특별한 환경과 수면의 어떤 단계에서 육체를 벗을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죽음 전에 이것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다.
비터프랭클은 그의 책 [의미를 찾아]에서 유태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썼다. 아마도 그는 그 현상이 널리 알려지기 수십년전 유체이탈을 연구한 잘 알려진 과학자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등산 중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조사하였는데 떨어지는 수초 동안에 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이 유체이탈동안에는 시간이 존재할 수 없을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익사직전 혹은 매우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의 연구는 로버트 몬노와 공동으로 한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우리는 자발적인 유체이탈을 연구했으며 몬노의 감독 하에 실험실에서 유체이탈을 유도해 냈고, 토베카의 메닌거 재단에서 온 여러 과학자들이 이것을 지켜보았고 관찰했으며, 경험을 같이 나누었다. 지금 더 많은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이런 종류의 연구를 반복하고 있으며, 유체이탈은 확실히 증명되어질 수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삶에 대한 3차원적 과학적 접근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에 대한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또한 가이드 혹은 수호천사, 사랑을 품은 사람의 존재 특히 가족 중에 먼저 죽은 사람들, 전이하는 시간에 나타나 환영하는 사람들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음직전에 같은 “환상” 즉 자신들보다 먼저 죽은 친구나 친척들을 인식할 수 있는가는 정신과의사로서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에 대해 어떤 설명이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연구할 방법을 모색해서 이것을 증명하거나 아니면 간단히 바라는 마음에서 투사된 것임을 증명하기로 하였다.
아마도 이것을 조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 사고를 겪은 죽어가는 어린이들 곁에서 같이 있는 방법일 것이다. 독립기념일 연휴, 메모니얼 데이나 노동절 연휴기간동안 우리들은 그런 일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는 가족들이 함께 외출하다 정면충돌사고로 가족 일부가 죽고 나머지는 심하게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관심사의 대상이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심하게 다친 아이들의 병상에 머무는 것은 나의 임무가 되었다. 가족 중에 누가 사망했는지를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누가 죽었는지 인식하여 매번 항상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나는 아이들 곁에 앉아 대개는 손을 잡고 조용히 그들을 지켜본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다, 종종, 죽기 바로 직전에 평화로운 고요함이 덮히는데 이것을 좋지 않은 sign이다. 바로 이때에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을 나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지를 물어 본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개는 비슷한 말을 나에게 한다. “지금 모든 게 다 괜찮아요. 엄마와 피터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애 엄마는 사고현상에서 사망했다고 알고 있지만 오빠인 피터는 죽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피터가 10분전에 사망했다는 소아병동에 온 전화를 받게 된다. 여러 해에 거쳐 이런 데이터를 모으는 동안, 자신들 보다 몇 분이라도 먼저 죽지 않았던 가족을 언급했던 아이를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아이들은 전이하는 시간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나에게 없다. 그리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형태의 삶에서 그들은 재회를 한다.
아이들의 경험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은 다른 경험이 있다. 미국인디언의 경우였다. 미국인디언들은 죽음과 임종에 대해 언급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모은 데이터가 아주 적었다. 이 젊은 미국인디언 여성은 하이웨이에서 뺑소니차에 들이 받쳤다. 그녀를 도우려 한 운전자가 차를 세웠다. 그녀는 차분하게 나를 위해 할일은 없고 만약 어머니가 사는 인디안 보호구역 근처에 갈 경우에 어머니께 나는 괜찮을 뿐 만 아니라, 아빠와 이미 같이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낯선 남자의 팔에 안겨 죽었다. 이 남자는 너무 감동을 해서 사고현장에서 7백마일의 먼거리에 있는 인디안 보호구역까지 운전해 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 남자는 어머니를 만나, 그녀의 아버지가 사고가 있기 한시간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례를 매우 매우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러한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은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려하거나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누려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기꺼이 오픈마인드를 가진다면, 당신은 당신자신의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구하려 하면 얻기 쉽게 된다.
8백명의 청중이 있으면 그러한 경험을 하고 기꺼이 경험을 나눌 사람이 적어도 12명은 있게 된다. 오픈마인드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비판적이지 말아야 하고 부정적이지 말아야 하고 정신과적 딱지를 부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딱지를 붙이고, 헐뜯고, 불쾌하게 하고 자신들의 과학적 혹은 종교적 모델에 맞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부정하려는 우리들의 경향은 경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려는 것을 막는 유일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나누었던 경험들은 위중한 상태에 있거나 임사상태에 놓일 때 여러분들 자신들의 경험이 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경험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되살아 돌아온 이들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에 해당되는 나의 경험 중 드라마틱하고 잊지 못할 예가, 물론 near-death experience인 한 남자의 예가 있다. 그 남자는 메모리얼데이 주말에 시골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기로 하고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과 장모, 그의 부인과 8명의 자녀를 태운 밴은 그를 태우려 오다가 가솔린운반탱커에 들이 받쳤다. 화재가 발생하여 모든 가족들이 사망 하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술과 온갖 종류의 약물로 세월을 보내는 부랑자가 되어버렸다.
내가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할 때였다. 사후의 삶에 대한 두 번째 강의를 방금 끝냈는데, 산타바바라의 한 호스피스그룹에서 또 다른 강의를 요청하여 강의를 하게 되었다. 서두에 여러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 피곤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이여 청중 중에서 자신의 near-death experience을 이야기 해줄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시렵니까, 제가 쉴 수 있게요? 오래된 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대신에 직접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에 강의를 주관한 사람이 메모 쪽지를 나에게 건넸다. 자신의 near-death experience를 나에게 나누기를 원하는 남자에게서 온 메모쪽지였다. 잠시 후에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부랑자 모습이기 보다는 깨끗하게 옷을 입고 있었고 매우 섬세하였다. 강단에 올라오게 한 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도록 하였다.
그는 주말 가족방문을 얼마나 고대했었으며, 그의 전 가족들이 밴을 타고 자신을 태우려고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에 인한 화재로 모두 사망했음을 말하였다. 그 충격으로 중산층 가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술독에 빠졌으며, 온갖 종류의 약물을 사용하고 온갖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완전한 부랑자가 되 버렸음을 이야기 하였다. 말 그대로 부랑자 생활을 하고 2년을 지낸 어느 날 완전히 술에 취해 숲 속 옆으로 난 더러운 길에 누워 있었다. 그는 큰 트럭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을 때 움직일 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트럭이 그를 덮친 바로 그 순간에 도로 위에서 심하게 다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몇 피트 위에서 사고 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에 그 사람 앞에 사랑이 충만한 채로 빛 속에 싸인 그의 가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얼굴에 행복의 미소를 띠고 있었고 말로 하지 않고 일종의 생각의 전달 방식으로 그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 주면서 기쁨과 행복감을 그와 나누었다.
가족과의 재회가 얼마동안 지속되었는지는 말할 수는 없었는데, 그는 가족들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현재의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깊은 경외심을 느꼈다. 그는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고 육체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경험은 2년 동안 죽기 위해 몸부림 쳤던 그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았다. 이런 결심을 한 후에 트럭 운전사가 손상된 그의 몸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았고 사고 현장으로 구급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마침내 육체내로 다시 돌아와 그를 고정했던 견인대를 직접제거하고 말 그대로 응급실을 걸어서 나왔다. 그는 알코올 금단증상이나 어떤 약물부작용도 없었으며, 자신이 치유되고 완전함을 느꼈고, 듣기 원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으로 느꼈다. 산타바바라에 내가 온다는 신문기사를 읽고서 강연하는 나에게 메모를 보냈던 것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청중과 나누게 되어 짧지만 행복한 가족들과의 재회 때 했던 결심을 지키게 되었다.
그 이후 그 사람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불멸하는 어떤 것을 싸고 있는 껍데기임을 인식하고 받아드리는 호스피스 회원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음에 깊은 감사와 기쁨이 담겨있는 그의 눈빛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런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죽은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아주 어린아이들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책이나 잡지 등을 읽지 못하며 이 남자와 같은 이야기를 듣어 본적이 없는 매우 어린아이들이었다. 2세정도의 어린아이들이라도 죽음의 순간에 경험하여 기억한 것을 우리들에게 나눌 수가 있다. 종교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차이점은 그 종교와 관련된 인물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좋은 보기는 2살 남자아이 경우일 것이다. 그는 치료약에 아나필라틱 반응이 나타나 사망선고를 받았다. 애 아빠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애 엄마는 통곡하며 죽은 아이에게 절망적으로 매달렸다. 아마 그녀에게는 영겁의 시간이었겠지만 얼마 후에 2살 남아는 눈을 뜨고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예수님과 성모마리아와 같이 있었어요. 성모마리아는 이번은 내 차례가 아니라고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지만 나는 무시하려고 했어요. 성모님은 내가 듣지 않으려는 걸 아시고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으시고 예수님한테서 나를 떼어내면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돌아 가야해, 그래서 엄마를 불구덩이에서 구해 내야해” 이 순간에 아이는 눈을 뜨고 말을 했던 것이다. “엄마는 알아? 성모님이 나에게 말할 때 나는 달려 집으로 돌아온걸...”
이 엄마는 이 사건을 13년 동안 말할 수가 없었고, 성모님이 한말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약간은 의기소침했었다. 성모님이 한말을 자신의 아들이 불구덩이인 지옥에서 자신을 구해 줄 거라는 의미로 잘못이해 했기 때문에 도대체 자기가 왜 지옥에 가야 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신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징적인 언어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13년 전 성모님이 피터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제야 그녀는 “오 마이갓, 나는 불구덩이의 지옥 속에서 보내겠지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해하시겠어요. 성모님이 당신을 지옥에서 구해내셨다는 것을요?”
복음서는 상징적 언어의 예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인 영감에 더 귀를 기우려 부정적인 감정과 두려움, 죄책감으로 이러한 아름다운 메시지를 잘못이해하지 않는다면,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상징적인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대교의 어린이들은 예수님을, 기독교 어린이들은 성모님을 보게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이러한 어린이들을 돌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것을 항상 얻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죽은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이들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후, 가이드나 수호천사를 만난 후에 종종 터널로 묘사되는 상징적인 전이를 통과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강”으로, 어떤 사람들은 “문”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각각은 상징적으로 적당한 것을 선택할 것이다. 내 자신의 경험에서는 스위스에서 보낸 어린시절이 행복에 대한 이미지이어서 천당의 개념은 산과 꽃을 포함했기 때문에 야생화들로 덮힌 “산길”이었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보기에 매우 아름다운 형태의 전이를 통과한 후에 많은 환자들이 묘사하고 나 자신도 경험을 했던 빛의 근원에 다가간다. 이것을 우주적 의식이라고 부른다. 이빛의 존재를 서구의 대부분 사람들은 christ, God, 사람, 혹은 빛이라 지칭한다. 빛의 나타나면 완전하고 절대적인 무조건적 사랑, 이해 및 애정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이빛이 순수한 영적에너지의 근원이며 더 이상 물질 혹은 정신에너지가 아니다(영적에너지는 인간에 의해 사용되거나 조정되어질 수 없다). 그것이 존재 영역의 에너지로 부정적인 측면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가 나쁘게 살았건, 죄책감을 느끼든 상관없이 어떤 부정적 감정을 경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Christ나 God부르는 이 존재에서는 비난 받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존재는 절대적 무조건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존재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며, 또한 이 존재에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평가하도록 요구를 받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이나 물질적 뇌와 제한된 육체에 구속되지 않게 되어,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한다. 영적에너지의 존재 하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물질적 형태의 필요성이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에테르 몸을 버리고 태어나기 이전에 가졌던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숙명을 완수하였을 때 신과 그 근원에 합쳐질 때 가지게 되는 형태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신에게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에너지패턴을 항상 유지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우주에, 이 물질적인 지구에 살고 있는 수억 명의 사람들에는 똑같은 에너지패턴이 없으며 같은 사람이 없다. 누구든 창조자의 위대성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패턴을 고유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것이 인간존재의 고유성, 유일성이다. 서리결정구조가 같은 것이 없는 것을 안다면 이것과 비유해 볼 수 있겠다. 나는 대낮에 이 육체의 눈으로 이러한 에너지패턴을 볼 수 있었던 신의 은총을 받았었다. 그것은 고유의 빛, 색상, 형태과 모습을 가진 서리결정체들이 펄럭거리고 진동하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이 우리가 죽은 후에 가지게 되는 형태이다. 이것이 역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던 방식이다.
이 별에서 저별로, 이 지구에서 다른 은하계로 가는 것은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런 존재들의 에너지패턴들은 지금 여기에도 우리와 같이 있다. 우리가 볼수 있는 눈을 가진다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가이드하고 우리를 사랑하며 보호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의 운명을 완수할 전과정동안 우리를 따라오며 도와주는 이러한 존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고통을 겪을때나 크나큰 슬픔에 빠졌을 때나 외로움이 클 때 우리들은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우리가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잠들기 전에 그들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꿈속에서 해주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잠자는 상태, 자신의 꿈속으로 동조한 이들은 이런 상태에서 의문에 대하여 답변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자신 내면의 실체에, 자기 내면의 영적부분에 더욱 더 동조하매 따라 나비로 비유되는 불멸의 부분인 자기 자신의 전지한 자아로부터 도움과 지도를 받을수 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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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금 퀴블러로스 박사의 1980년 강연원고입니다. 과학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실험실에서 경험한 신비체험 부분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06.11.26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