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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무지개 빛 유학의 꿈
북경공업대학 건축성시학원 교수 김준봉
중국에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은 다 같으리라. 나 역시 중국에 내 자녀를 보내며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해도 한국 학교만은 낳겠지.”
“중국까지 각오하고 갔는데 잘 할 수 밖에 없을꺼야.”
“본인이 간다고 우겼는데 설마...”
“이곳에서 사고치는 것 보다 그곳에서는 차라리 사고치기는게 더 낳아.”
“한국에서 어설픈 학교 졸업 하느니 중국 이니까 건 다 못 해도 중국 말 하나라도 잘 배우면 되지 않겠어”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을 꺼야....
하지만 우리 아이도 어쩔수 없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인가?
설마 우리 아이가... 철석 같이 공부하겠노라고 맹세하고 갔었는데...그럴리야 있겠는가? 하지만 중국에 유학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전히 해메고 있는 실정인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국제부가 있는 유학원마다. 요구하는 서류와 입학절차의 요구 조건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에는 더욱 강화시켜 북경 80중학의 경우는 한국 현지 부모의 위탁서를 요구하는데 중국에서 적법하게 장기 거주하고 있는 분에게 위임한다는 서류를 작성하여 한국에서 공증을 받아야하고 또 그 자녀를 한국의 부모에게 위탁받은 중국 현지 한국인은 입학할 해당학교에 위탁받은 학생의 중국에서의 모든 책임을 지겠노라는 서약서를 쓰고 중국에서 공증하여 제출해야한다. 이런 절차는 물론 중국에온 외국인를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잦은 조기 유학생들의 사고 때문에 중국 공안이 유학생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허가하고 그 학교에 요구하는 조건이다.
그리고 학사일정도 새벽부터 밤까지 한국에 못지 않게 빠빡하게 짜여져있다.
우리 아이가 학교다닐 때의 시간은 대약 이렇다
아침 5;00 기상
일어나 숙제 정리하고 준비하고 밥먹고
6:00등교
6:30 학교 도착
운동장 5바퀴 뛰어 돌기, 조회, 아침자습
8:00 학과시작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오전 공부하고
(우리 딸 희진이가 다니던 북경의 중관춘 부속중학인 흥기 중학은 3교시가 끝나면 조회를 하는데 한국의 국민체조 같은 체조도하고 광고도하고 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점심11:50-13:30 점심 식사 후 오후 학과 시작
17:20 까지 오후 학과
저녁 식사 한 후
19:00-21:00 저녁 보충 수업(주로 영어, 중국어보충) 후 하교
물론 하교 후에 집에서 숙제를 꼬박 2-3시간 할 분량이 주어진다.
따라서 우수하게 학교를 다니려면 물론 저녁 12기전에 잠을 자기가 힘들다.
중국에서 국제부가 구성되어있는 중국 학교를 중계하는 유학생부의 말만 듣고 있노라면 우리 자녀의 중국 조기 유학은 별로 문제없이 보이고 우리 한국의 부모들에겐 정말로 무지개 빛 희망처럼 보인다.
정말 말처럼 위의 계획대로만 우리 아이들이 2년이고 3년이고 움직여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난 낯설고 물설은 이곳 중국에서 별다른 슬럼프 없이 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슬럼프를 이겨내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과연 누가 하느냐이다.
유학원이 할 수 있을까?
국제반 선생님들이 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할 수 있을까?
내 자녀는 딸 둘 아들하나로 셋으로 참 개성도 다양하고 나이 차이도 있어 중국에서 사는 동안 두루 많은 경험을 했는데 우리 가족 모두 느끼는 공통점은 다 처음의 마음먹은 생각과는 같게 중국의 상황이 우리가족을 순순이 놔두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결국 자신들이 이겨나가야 하겠지만 역시 가장 큰 도움은 우리 부모 밖에 누가 있겠는가. 하는 결론이다.
유학원은 어차피 영리가 목적일 수 밖에 없고 잘 적응하고 성공한 아이들만을 홍보하고 자랑할 뿐이다.
중국 학교 국제반 역시 학교의 안전과 책임이 중요하고 역시 경제적 목적에 그 초점을 맞출 뿐이다. 그래서 계속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곁길로 세 나가지 않게 하느냐에 총력을 기울이고 그에 따른 여러 대안을 만들고 관리하는 기술, 방법, 인원을 확충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점점 더 학비만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영악한 아이들이 그걸 못 빠져 나가겠는가?
친구는 협력의 대상이기 보다는 휴혹의 대상이 더 쉽다는걸 모르는 가?
북경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얘기다.
“ 요줌 한국 얘들 정말 눈 뜨고 못 보겠어요.”
“같은 또래 이성친구와 한 방을 쓰고 있거든요?”
“ 뭐라고 하면 금방 한국 있는 부모께 연락해서 아줌마를 바꿔 달라고 졸라서...더이상 말도 못하고...”
아내 역시 나에게
“아줌마들이 다 알면서로 일부러 모른체 하는 거야 당신 정말 몰랐어?”
그러면 아이들이 좋은 아줌마라고 하기에...
이곳의 조선족 아줌마들은 결국 돈 때문에 파출부로 다니는데 편하고 좋은 곳을 놓칠 수 없고...‘
아내의 계속적인 말
“다 아는 사실을 당신만 모르고 있네... ”
“설마...”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모든 가능성이 있는 일이 아주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고 혹시 한국도 마찮가지지 하고 얘기할지도 모르나 이곳은 정말 자기와 직접 관계가 없으면 절대로 간섭하지 않는 곳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좋은 말로 표현 하자면 스트레스 해소의 탈출구 - 사막의 오아시스 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 친구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쉽게 말하면 중국이 정말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한국 부모들의 패러다임으로는 중국의 교육을 상상할 수 없다는데 있다.
중국의 교육은 우리가 알다시피 시퍼런 공산주의 사회이다.
“공산.사회주의 사상교육 치중 우려”
즉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공산주의)국가이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에서 살다보면 이곳이 정말 공산주의인가? 하고 느낄정도로 돈에 대해 집착하고 돈만있으면 정말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의 자본주의 적 국가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운 민주. 자본주의 개념보다 공산.사회주의 사상에 치중한 교육에 크게 노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이나 중고등학교 모두 중국에는 대학생들이나 중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 모두 예외 없이 사상교육을 심하게 받는다. 아침마다 지금의 4-50대 세대가 격었던 아침조회 군대식 열병 분열등을 연상하면 된다. 더욱이 사상 품성과(思想品性科)라 하여 덕육(德育)-우리의 반공도덕 바른 생활과 유사함-과 공산당 혁명사, 맑스주의 이론, 등소평 이론 , 모택동 사상 등이 필수 과목이고 그것도 토론 보다는 주로 주입식이고 암기식 교육을 엄청나게 받는다.
물론 한국인만 따로 모아 교육하는 국제반에서는 사상교육을 면제해 주지만 중국인들과 같이 교육받지 않고 모든 과목을 따로이 교육을 받는다면, 중국인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 당하고 마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피할 수가 없다. 만약 그렇게 국제반으로 분리 되면 중국 유학의 의미가 있을까? 물론 한국인유학생들은 누구나 중국인들이 묵는 기숙사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고 외국인들이 묵는 숙소에 비싼 돈을 내고 따로 격리되어야 한다. 그것은 외국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 때문이고 결국은 외국인을 금전적으로 환산하여 보는 그들의 상술이 저변에 깔려 있슴은 물론이다.
중국에서의 유치원
특히 중국의 유치원은 그야 말로 탁아소 시설 못지 않는 형태로 거의 종일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리큐럼 또한 기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물론 영어나 한어(중국어) 두 가지 언어를 교유하는 일이나 특별활동이나 특기 지도 등 헤아릴 수 없는 전문적인 다양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학교 한족학교 모두 다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거의가 다 사립형태이기에 비용이 거의 대학생 수준이다,
필자는 중국 대학에서 건축과 교수로서 유치원 건물 설계를 가르치기에 자주 유치원을 방문하여 고찰할 기회가 있다.
중국에서는 유치원은 그 종류가 사실 천차만별이다 가격도 비쌀 경우는 우리 돈으로 월 50-100만원에서 쌀 경우 5-10만원 정도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교육이 기본이고 집단 수용시설을 기본으로 하기에 집단적이 휴식 취침 시간 등 유치원에 침대시설을 모두 구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침실전용 방이 따로 구별되어 있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어김없이 취침 2시간으로 모든 원생들이 간이 기숙사같은 2층, 3층 침대를 두고 자는데 그 중 졸리지 않은 원생이라도 조용히(?) 물끄러미 않아 있어 다른 원생들과 취침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 졸리지 않은 원생이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물론 떠들 수는 없고 잠은 안 오는데 관심 갖는 선생은 없고...
그것은 중국에서는 여성이 일찍 해방되었고 모든 사회진출에 남성과 동등하다는데 기인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육아에서의 해방이 절대적으로 필수 불가결하다. 중국의 사회는 이 육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일찍 해결하였다. 아이들을 낳자마자부터 유치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종일반이라는 것이 아침에 맡겨서 저녁에 찾는 것은 물론 월요일에 맡겨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찾거나 아주 월초에 맡겼다가 월말에 찾는 경우도 있고 학기초에 맡겼다가 학기말에 찾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육아에서의 해방이 중국 사회주의 국가 여성의 해방을 이끌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맡겨 중국인과 같이 사회주의 인격을 갖춘 공산주의자를 만들 것인가? 그러면 필경 물질주의와 무신론에 입각한 유물사관이 투철한 중국인이 될지언정 한반도의 정서를 간직한 한민족 전통의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참 세계인은 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사실 자녀 교육은 부모들의 영원한 주제이자 관심사이며, ! 해외 생활을 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고국에서의 공교육 붕괴와 대학 입시 위주의 파행적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일반적인 자녀 교육의 절차와 제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또한 주변의 나와 같은 처지의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교포들은 모두 자녀 교육이 첫 번째 고민거리이다
중국에 있는 한인 부모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적절한 진로를 결정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냉정한 우리 모든 부모의 속마음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처음 98년 연변에서 중학교 3학년으로 한족학교를 다니고 둘째는 초등학교5학년으로 한국 국제 학교에 막내는 국제 유치원을에 다녔다.
후에 큰아들은 천진 남개대학 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북경 55중(한국의 고등학교) 국제부를 졸업하고 지금은 북경인민대학 3학년생이다. 큰딸은 연변에서 한국 초등학교를 졸업 후 북경의 현지 한족학교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북경 80중학(북경현지의중국 명문고교)를 1년간 다니다가 지금은 북경한국 국제학교 고2이다. 막내역시! 북경 한국 국제학교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현재는 본인의 원에 따라 분당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해외에서의 자녀 교육,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는 선택일까? 어느 누구도 감히 ‘이 길이 정답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끊임 없이 해법을 모색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안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부모 세대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한다.
더구나 ! ‘그가 받은 교육이 그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플라톤의 말이 새삼 새로워진다.
나의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중국 조기교육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몇 가지 생각할까 한다. 처음에는 멋 모르고 중국말을 전혀 모르니까 집에서 놀리거나 학원에만 보내기도 뭐하고 하니까 스트레스 덜받고 민족교육도 혹 잘 시킬까하여 조선족학교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나 이곳에 간 한국 아이들은 불행히도 중국말도 못하고 한국 말도 못하고 연변 사투리만 늘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질겁하여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는 부모들은 거의 없다.
한족학교를 보냈다가 중국 현지학교를 보내거나 국제학교를 보내는 등 그 이동과 경우의 수는 많지만 정답을 고르기는 정말! 힘이 든다. 우리 자녀들을 보면 결국은 본인 자신이 꾸준히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중국에 처음 올때는 다들 아주 열심히 할 각오를 단단히 하지만 - 사실 처음 중국에 올 때부터 논다고 생각하고 오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한 두달 동병상린의 한국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면 초기의 그 결심들은 정말 하나같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정말로 마음 먹는 것과 같이 되지 않는 곳이 이곳 중국이다.
특히 요즈음은 조기유학 열풍으로 중국도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어 내가 살고 있는 북경의 경우도 전문적으로 조기 유학하는 학생들을 취급하는 하숙도 수 없이 많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기유학은 중국의 경우 무리한 대책 없는 조기유학은 천만 위험한 일로 당부하고자 한다. 중국 교육의 특징을 알아야한다
우리 둘째인 희진이의 중국 유학 체험기이다...
중국에서 7년 동안 지내왔는데 처음 중국에 와 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가족여행으로 왔었는데 아무래도 처음 중국에 오는 것 이여서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그래서 4학년 때 아빠가 아예 중국으로 오자는 말씀에 나는 아무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네!' 하고 대답해 버렸다. 여행으로 오는 것과 그곳에 정착하여 사는 것에 대한 차이를 모른 체 말이다.
중국에서 6년 동안 지내왔는데 그 기간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있었던 곳은 연길이다. 모든 사람들이 연길 하면 한국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중국생활을 시작 할 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특히 연길이라서 더욱 그랬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기도 싫어했고, 중국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어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연길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었던 순간 이였다.
연길에서 원래 중국학교를 다니려고 했었는데 겁도 나고, 한국국제학교에 더 가고 싶었기에 한국국제학교로 가게 되었다. 한 반에 많아야 20명 정도밖에 없지만 학생수가 적기에 더욱더 깊은 우정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감도 생겼다. 한국은 한 반에 3,40명이 있는데다가 학급수만 10개가 넘는 곳이 많아서 선생님께서 학생에게 일일이 관심을 가져주실 수가 없는데 한국국제학교는 모든 선생님 분들이 각 학생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소외 당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싫은 것이 있었다. 바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중국어를 싫어했었던 것은 아닌데 난 영어를 더욱 좋아했기에 중국어 공부보다는 영어공부를 더 많이 했다. 그래서 자연히 중국어 실력은 다른 아이들보다 향상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나보다 늦게 온 아이들보다 중국어를 못하게 되고, 결국엔 중국어에서 손을 떼버렸다. 매일 들은 중국어 시간엔 친구들과 떠들기 바빴고, 반을 하나씩 내려가게 되었다. 그때는 중국어를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중국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웬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4년간의 연길생활을 마치고 북경에 왔다. 중국대학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한족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다. 한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4년 동안 중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교장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바로 학교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처음엔 무지 떨렸지만 공부하려고 각오를 하고 왔기에 정말로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수업을 빠진 적도 없었고, 수업시간에 잔 적도 없었고, 체조시간에도 빠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숙제만은 꼭 했었다.
그런데 중국하고 한국은 학기가 달라서 원래 중학교 3학년 1학기로 가야 하는데 3학년 2학기도 들어갔다. 영어는 생각보다 쉬워서 공부를 하지 않고도 8,90점은 맞았었는데 물리 화학은 따라가지도 못하고, 수학도 안배운 것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어문과 정치였다. 시험을 보면 50점을 못 넘었었다.
하지만 선생님 분들이 내가 공부는 잘 하지 못해도 성실함을 알아주셨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중국학교는 3교시가 끝나면 조회를 한다. 먼저 한국의 국민체조 같은 체조를 한 뒤, 한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몇 가지 광고를 하는 건데, 그 광고를 하실 때 내 얘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한국학생인데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아침마다 운동장 다섯 바퀴 뛰는 것을 하는데 그것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한다고 말이다. 선생님께서 내가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아주셔서 정말로 기뻤었다. 그리고 친구들 하고도 조금씩 더 친해졌다. 여자애들 세 명하고 제일 친했는데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놀러도 다녔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중학교의 마지막을 즐겁게, 중국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고등학교는 이곳 저곳을 다녀보다가 80중학교로 정했다. 그 학교는 중국 학생들 반과 국제부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중국 학생들 반으로 들어갔다. 한 학기 동안 한족학교를 경험해 봤기에 이번에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80중학교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80중학교는 북경에서도 손꼽히는 학교여서 그런지 공부를 다 잘하는 아이들 이였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도 없고, 선생님은 화도 잘 안내셨다. 화낼 일이 별로 없으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공부환경이 너무 좋은 게 뭐가 나쁘냐고, 오히려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와 얘기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뀉 물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지만 난 공부보다도 같이 대화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었다. 중국 애들은 공부하기가 바빴기 때문에 내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나와 더 친해지려고 하거나 하는 그런 아이들은 없었다.
내가 중국학교에 오래 다녀서 중국어도 잘하고 중국 아이들과 경쟁할 만한 실력을 갖췄었더라면 모를까뀉 그래서 난 같이 밥 먹을 친구 한 명이 없어서 굶기 일쑤였고, 매일 눈물을 쏟아 내며 지냈다. 이렇게 한 학기를 지내고 나니, 다음 학기 때 또 다시 똑 같은 생활을 맞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난, 한 학기를 마지막으로 80중의 생활을 마쳤다.
난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북경 한국 국제학교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그 곳에 가는 것 보다야 차라리 혼자서 학원 다니면서 중국어만 붙들라고 하셨다. 이때까지 한어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이번 기회에 한어만 열심히 하는 것도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처음엔 나름대로 계획도 열심히 짜고 실천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아침 9시에 한어과외, 오후 2시 한어과외, 저녁 5시 한어 수평 고사 학원, 저녁 7시 영어 회화. 이것이 내 시간표였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한국에 가시는 날이 많아지시면서 난 하루하루 지날수록 긴장감은 줄어들었고, 계속해서 늘어지기만 했다.
두 개의 한어과외는 어느새 한 개로 줄어들었고, 학원도 다니기만 했지 실력이 느는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뭐 내가 예습 복습을 하지 않았으니까 실력이 계속 그 자리에있는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그래도난 이 때 배운 것이 있다. 바로 학교의 중요성이다. 학교가 단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시험의 긴장감은 오히려 학습의 효율을 높여 준다는 것을.
한 학기를 그냥 그렇게 어영부영 지낸 후 오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모두 한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난 한족학교를 다닌 1년, 학원만 다닌 한 학기 동안 한국식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안학교에 가려고 했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서 버틸 자신도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론 한국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빠는 일반 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셨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가보고도 싶어서 분당에 있는 송림고로 들어갔다. 남녀 공학 이지만 분반 이여서 한 반에 여자들만 있었다. 80중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로 활기찬 수업시간이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학교 생활이였는지뀉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그리고 공부도 안하다가 하니까 재미있었다. 중3, 고1 반 학기의 공백이 없잖아 있었지만 학교 수업만으로도 내신은 그럭저럭 따라 갈 수 있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고, 5년 만의 한국 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정말로 한 학기 내내 즐거웠다. 80중에 다닐 때 눈물을 다 쏟아서인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땐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있으면서 난 내가 한국사람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갈림길에 섰다. 한국에 계속 남아 있거나,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난 특례로 한국으로 대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이미 중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과정까지 총 5년을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계속 남아도 특례 자격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어 실력이었다. 난 한어 수평고사 자격증이 없었다. 그것만 따 놨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다시 한족학교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중국 한족학교인 55중으로 결정 했는데 문제는 시험 이었다. 그 학교 역시국제부가 있었는데 국제부로 안가고 바로 수업을 들으려면 시험을 통과해야지만 했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지만 80중에 들어갈 때봤던 시험보다도 더 어려웠다. 결국 난 백지를 냈고 다른 학교를 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다시 80중을 들어가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난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80중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은데다시 그 학교로 들어가라니..
이곳 저곳 생각해 보다가 북경 한국국제학교에 가게 되었다. 연길에 있는 한국 국제학교에 다닌 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겁나진 않았다. 그런데 한국 국제학교라고 해서 그렇게 호락호락 하진 않았다. 이 곳 역시 시험을 봐야 했다. 국어 영어 수학을 보는데 시험 공부 할 시간은 딱 일주일 밖에 없었다. 수학이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이라는 것이 아는 범위의 전부였다.
난 이 학교가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죽자 살자 일주일 동안 수학에만 매달렸다. 드디어 시험 보는 날. 시험 시간은 두 시간 이었는데 수학을 푸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마지막 국어를 풀 때 시간이 모자랐다. 그 다음엔 면접이었다. 선생님께서나에게 5년 동안 한어 수평 고사 자격증을 왜 못 땄냐고 물어 보셨는데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 학교에 들어오면 정말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정말 시험도, 면접도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난 당연히 떨어 질 줄 알았다. 그런데 집으로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합격됐다고,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라고 하셨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다짐했다.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리라.
그렇게 해서 나도 북경 한국 국제학교의 한 학생이 되었다. 분위기는 연길에서 다녔던 연변 한국 국제학교와 비슷해서 적응하기 쉬웠고 선생님 분들도 모두 좋았다. 처음 본 중간고사도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거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니 북경 한국국제학교에서 한 학기를 지낸 지금까지도 안정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둘째 딸인 희진이는 북경의 한국 국제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Professor Kim, June-Bong (김준봉,金俊峰) Ph D.
Dept. of Architecture Beijing Univ. of Technology,100084, P.R.China .
Urban & Housing Environment Research Center
중국도시주거환경연구소 서울북경cafe.daum.net/urbanandliving www.kjbch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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