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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부용산> 눈 산행을 마치고 경기도 양평군 신원면에 자리한 해발 366m의 부용산'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다. 의외로 수도권에서 가까운데 위치한 산이었건만 그 이름도 생소하고 어디쯤에 있는 지도 잘 몰랐던 산이었다. 남한강변에 위치한 산이어서 남한강에 비치는 풍경이 '마치 연당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것 같다'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하였으며,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애매모호한 산 이름 까지 궁금증을 더해주는 그곳은 양수리 즉 두물머리가 걸쳐진 양수교를 건너 바로 눈앞에 위치해 있었다. 양수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편에 공원이 보인다. 여름이면 남양주 세계야외축제가 열리곤 하던 '양서체육공원'이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등산을 시작하면 그리 높지 않은 <부용산>을 가장 오래 걸을 수 있는 등산로(용담리 코스)에 닿는다고 들었다.. 새해 백호랑이 띠인 경인년을 맞아 유별나게 그것도 세기를 헤아리면서 적설량을 측정하는 일기예보와 교통대란까지 불러일으킨 눈의 정취를 쫒아 근교에 위치한 아담한 산 <부용산>에 올라 두물머리 양수리를 뒤덮은 눈 천지와 낙엽 위에 살며시 얹혀져 있는 눈을 밟으면서 느꼈던 짜릿함을 5W1H 가 아닌 How Much라는 량을 측정하는 1H를 추가한 5W2H형식으로 기록 해 본다.
1. WHEN(일 시) 늘 그러했듯이 아랫것들을 챙기는 대장의 역할은 1월7일 금요일 오후에도 지령으로 하달되었다. “8일 토요일 날 오전 10시까지 양수역으로 나와라”라는 간단한 멘트 속에는 더 이상의 의문이라든가 어떤 첨삭마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명약관화하게 하달되었다. 항상 근교 산행은 일요일날 가는 것이 정도였으나 8일날 따라 토요일날 산행이라니 의아심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산행준비를 위해 배낭을 챙긴 뒤 “점심식사할 시간이 없으니까 간식용으로 점심식사를 할테니 누룽지나 빵 같은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주지에 은근히 겁이 났다. 얼마나 산행코스가 멀기에 점심시간을 별도로 가질 수 없다고 했을까 ? 하면서 대응전략을 구사키로 했다. 오후 5시경 가까이에 위치한 코스트코(COSTCO)에 방문하여 간식용으로 필요한 <호밀빵>,<뉴욕 베이커리>,<크로와쌍>의 3가지 빵 종류를 구입한 다음 뜨겁게 마실 수 있는 <크림-스프> 한 박스와 빵에 넣을 햄까지 준비한 뒤 약 2시간 뒤에 귀가하였다.
2. WHERE(장 소) <부용산>은 산이 푸르고 물이 맑아 마치 연당에 얼굴을 마주 비춰 보고 있는 듯 하여 <부용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부용산>에 간다. 양수역에 10시까지 오너라”라는 말만 듣고 좋아라고 대답을 한 다음 <양 수>역이; 어디 있나 싶어 핸디폰에 설치되어 있는 ‘간편메뉴’에서 지하철 역을 살펴보았으나 <양 수>역으로 가는 중앙선 전철노선이 <덕소>까지 밖에 없어서 부득이 배낭을 챙기다말고 임대장한테 “중앙선 맞지 ?”하고 확인 전화까지 하면서 장소를 확인 하였다. 더 자세하게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고 중앙선 전철노선을 살펴보았다. <용 산>역에서 17번 째가 <양 수>역이었다 . 지난 10월 용산 전자상가에 들렸다가 <용산>에서 중앙선을 타고 <서빙고>역을 지나온 뒤 우측방향에 펼쳐진 도심속의 <한강> 풍경에 매료되어 좌석에서 일어나 스쳐가는 낯선 풍경에 매료되어 본 적이 있었고, 작년에는 <국수>역까지만 연결되었는 데 금년에는 4정거장이 연장되어 <용문>역까지 전철이 연결되어 있었다. <중랑>역에서 종착역이었던 <국수>역에 하차하여 유별나게 재배하던 <푸추>밭을 거쳐 <청계산>에 오르면서 중앙선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과 풍광에 매료되기도 하였었다. 무엇보다 중앙선인 <중 랑>역에서 탑승하면 되니까 나는 접근성과 편리성이 좋고, 집에서 도보로 약7-8분 거리여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다시 <부용산>을 찾아볼까 하다가 자세한 것까지 알고 가면 흥미가 없을 것 같아 일단<양 수>역만 제대로 확인해 보았다. 3. WHO (누 구) 금요일 날(8일), 임대장은 누구와 간다는 말이 없었다. 늘 그러하듯 <인덕원>에서 험난한 코스를 즐겨 찾는 팀일 것이다 라는 생각만 했다. 임근호대장, 송무광부대장, 권재갑이 성님, 조원보회장 그리고 나까지 5명이라고 생각한 다음 나름대로 눈 덮힌 산행코스를 그려 보았다.
<인덕원>의 하루 산행 코스는 자그마치 12km였는데 이번 산행에는 유별나게 별도로 식사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통보했으니 얼마나 험한 코스며 장거리인가를 의심하기도 했으나 까짓것 따라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9일날(토) <중 랑>전철역에서 <양 수>역까지 30분 거리였으나 종착역인<용 문>행 전철은 30분 간격이라 9시15분에 탑승한 뒤 <구 리>역을 막 지날 무렵 임대장이 전화로 “<양수>역에 내려 기다리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송부대장이 “<덕 소>역에 하차해서 기다려라, 우리는 뒷 전철로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양 수>역까지 가겠다고 하자 ”우리가 탑승한 전철은 <덕소>가 종점이다. 동행자는 김노보 회장 ,재갑성님과 셋이다“라고 하여 부득이 어렵게 자리 잡았던 좌석을 뿌리치고 <덕소>역에 하차하여 약15분가량 기다렸다. <덕소>역에서 넷이 만나 정답게 악수를 나눈 뒤 15분 뒤에 도착할 <용 문>행 전철에 대비하여 칼바람이 부는 프랫트-홈에 서서 기다리기보다는 에스커레이트를 타고 대기실에 올라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면서 차례로 이동했다. 거기서 비로써 임대장이 늦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WHAT( 무 엇) 이미 수십 차례 산행을 즐겼던 임대장이 <부용산>으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히 가까운 거리에 쉽고, 조망이 수려하고,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임을 알고 정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한테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그렇다 <양수리>하면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TV가 12월1일 KBS-TV에 통합된 다음해인 1981년 4월6일<개그 콘서트>의 전신 코미디 프로 <희한한 세상>을 연출할 때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였기에 평생 잊을 수가 없었던 곳이다. 수상스키를 타다가 가속도를 이용하여 메고 있는 낙하산으로 <행글라이드>되어 공중으로 날게 한다는 것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수상 스키 탈 연기자였으나 그것은 해결되었고 , 다음으로 파워 넘치는 모터-보트였었다. 수소문 끝에 <양수리> 강가에 위치한 故 정주영 회장님의 별장에 정박해 있는 모터-보트가 최고라는 연락을 받고 빌리기 위해 섭외한 결과 쉽게 사용 허락을 받았었다. <양수리>에서 가장 파워가 센 모터-보트여서 안성맞춤이었다. 수상-스키할 때는 운전자 한명만 탑승한 뒤 운전하면 되지만 행글라이드 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운전자 1명, 카메라-맨 1명, 연출자 1명 이렇게 3명이 함께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파워가 약하면 속도가 늦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차례 주지시킨 다음 3명이 탄 모터-보트가 로프를 메달고 쏜살같이 질주하자 수상-스키를 착용하고 등 뒤에는 낙하산을 메고 로프를 잡고 있던 코미디언 <이상해>가 시속 약70km 이상인 모터-보트에 끌려 신나게 가속도를 내며 따라 왔었다. 약4백미터 정도 달렸을 때 큐(QUE)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미리 낙하산 줄을 당겨버려 로프를 잡고 있던 <이상해>는 날아야할 낙하산 대신 물에 가득찬 낙하산에 싸인 채 수상-쇼를 펼쳤으며 가속이 붙은 모터-보트는 속도를 줄여 멀리 돌아와서 어렵게 낙하산을 건져 <이상해>를 꺼집어 냈을 때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비상사태 속에서 체온을 올려야 한다는 소리에 정신없이 정 회장님 바텐더에서 집어 온 술로 정신없이 그의 입에 부어넣고 전신 맛사지한 끝에 마치 연극한 냥 슬며시 눈을 떴다. 일행들이 안도의 한숨을 돌렸으나 내 손에는 한쪽 눈을 가린 애꾸눈 선장이 그려진<캡틴 큐>빈병이 쥐어 있었다. 그 날이 4월6일이었으나 <양수리>의 4월은 늦 겨울처럼 날씨가 무척이나 차거웠다.
5. WHY(왜)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했거늘 처음 당해 본 임대장의 착각을 일행들은 안타까움보다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재밌는 시체말로 “대장 X도 아니야”를 외칠 수 있었으니.....자초지종은 1시간을 착각하여 집에서 늦게 나왔으니 저절로 한 시간 늦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노보, 권재갑, 송무광 그리고 나까지 4명은 뒤이어 도착한 <용문>행 전철에 탑승했다. 이미 전철 속에는 다양한 등산복 차림의 남녀노소로 가득했으며 끼리끼리 떠드는 소리에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얼마를 갔을 때 뒤따라오던 임대장의 전통이었다. “송부대장이 길을 아니까 먼저 산행을 시작해라 뒤 따라 가겠다“였다. 그러나 의리에 살고 충성으로 맺어진 팀웍이라 ”대장이 없는데 어찌 먼저 갈소냐”였다. 목적지인 <양 수>역에 하차한 뒤 대기실에 배낭을 내려놓고 커피 한잔씩을 나누는 사이에 임대장이 헐레벌떡거리면서 도착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착각하지 ?“라고 자책한 다음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양수>역에서 약600미터 거리를 둔 <부용산>를 바라보면서 역전으로 나서기 무섭게 쌓였던 눈이 얼어붙어 상당히 미끄럽기까지 했다.
오전11시가 조금 지나 <부용산> 아래 약수터에 도착하여 <아이젠>과 <스패치>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임대장의 눈은 <부용산> 산행 코스로 향했다. 누군가가 먼저 길을 터놓지 않았겠나 하는 기다림이었는데 다행히 선행자들의 발자취를 발견 했었다. 6. HOW MUCH(얼마나) 선두주자는 김노보 회장 두 번째로 재갑 성님 그리고 넷째 나, 다섯째로는 임대장과 송부대장이 뒤따랐다. 해발 366미터이라고 했지만 해발에 못지않게 만만한 산행만은 아니였다. 그러나 낮은 산 능선의 설원에 발길을 옮기면서 우리끼리 만끽하기가 아쉬워 산동무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매년 눈 산행을 위해 먼 거리에 위치한 강원도 <선자령>까지 갔었지만 많은 산행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힘이 들었는데 <부용산>은 결코 <선자령>에 밑지지 않을 만큼 겨울 운취가 가득한 곳이라 주저함 없이 산동무들을 챙겨 보았던 것이다. 계속 밋밋하지마는 않았다, 코재까지는 아니였으나 가파른 길이 2-3군데 있었는데 옷 정리한다고 한번만 쉬고 늦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바쁘게 발길을 옮겨 약 두 시간 만에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 근처에 도착하였다. 시장끼가 느껴져 더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오후 1시경에 전망대에 거의 동시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홀로 북풍한설을 맞이하다가 지쳤는지 동작하지 않았고 확터인 양수리의 두물머리 좌우에 꽁꽁 얼어붙은 강 위에는 솜을 뿌려 놓은 듯이 하얀 눈이 하얀 카페트 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망대였기에 속속 도착하는 군상의 산행팀들은 제각기 떠벌이가 되곤 했으나 우리 일행 다섯 명은 전망대 가장자리 눈 위에 간이용 돗자리를 깔고 쿠션 방석에 의지하여 배낭을 펼쳤다. 누룽지를 삶아 온 임대장, 오뎅과 카레를 준비한 송부대장, 보온 도시락을 준비한 김노보 회장, 곰국 육수에 뼈와 고기까지 듬뿍 담아 온 재갑성님, 전날 코스트코에서 준비했던 크림 스프, 버터로 구운 빵, 햄을 넣은 식빵과 <백화 수복> 정종에 복 날개를 구워 넣고 약5-6초간 독기를 불태운 뒤 뜨겁게 보온해 온 <히레 사케>와 양주 <커티-샥>까지 펼쳐놓고 <부용산> 정상의 만찬을 즐겼다. 약 1시간 남짓 정산에서 설원의 만찬을 즐긴 뒤 2시경에 서둘러 경쟁적으로 배낭을 정리하고는 <부용산>366미터 표지석인 정상비석 앞에 서서 기념 촬영까지 하게 되었다. 막 사진 촬영을 마치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할 무렵 눈 앞 약5미터 높이에 <부인당>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내용도 모른 채 앞장 선 임대장 뒤를 따라 나머지 4명은 마치 어미 따라 다니는 새끼처럼 따라 붙었다. 7. HOW(어떻게) <부인당> 팻말 밑에 <등산로가 아님>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었으나 방향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린 뒤 선두에 나서서 내리막길을 택한 임대장 뒤를 따라 신나게 내려갔다. 낙엽 위에 쌓인 눈을 밟을 때 마다 눈 아래 숨겨져 있던 낙엽들이 위로 솟아올라 왔으며 이따금씩 눈 위에 이상야릇한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진 발자국을 보고는 노루냐 멧돼지냐 아니면 어떤 동물이냐를 논하며 내리막 길에서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곤 하는 사이에 우측방향에 조용히 자리 잡은 사찰을 발견하여 잠깐 쉬어 가기로 하고 사찰 마당에 도착하였다. 마침 약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어여쁜 보살님이 나타나서 반갑게 맞으면서 “실내에 들어와서 차 한잔 하시고 가세요”라고 했으니 이런 횡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층계에 앉아 <아이젠>과 <스팻치>를 정리하여 배낭에 넣은 뒤 따뜻한 훈기가 도는 거실에 앉기 바쁘게 보살님이 떡, 감, 차를 내놓으면서 일행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날따라 사찰에서 행사가 있어서 과일과 떡이 푸짐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씨가 든 <감=Persimmon>이 나와 나는 “내 고향 <청도>에서 생산하는 감에는 씨가 없고 당도가 높다”라고 자랑하면서 “오는 가을에 <청도> 감 희망자를 위해 인터넷으로 모집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방송국 몇몇 친구의 부탁으로 정량의 1등품 감상자를 택배로 발송했더니 두고두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감상자의 보통 7kg무게지만 과수원에서는 10kg, 15kg 정량으로 배송하기 때문에 값싸고 많은 양을 얻게 되는 일거양득인 것이다. 떡과 과일까지 추가하면서 골고루 먹은 뒤라 궁금했던 <부인당>이 무슨 뜻이 있냐고 보살님께 물어 보았더니 보살님이 웃으며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고 하면서 들려주었다. 옛날 고려시대 어느 왕에게 시집을 간 왕비가 첫날 밤 왕의 침소에 들어가 첫사랑을 나눈 뒤 조심할 겨를도 없이 지친 나머지 무엄하게 왕 앞에서 방귀를 꼈는데 방귀 소리에 놀란 왕이 노하여 버릇이 없다고왕비를 <부용산>으로 귀양을 보냈는데 그 때는 공교롭게도 첫날 밤 첫 사랑으로 인하여 벌써 왕비의 몸에는 새생명이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왕비는 왕자를 낳았는데 그 왕자는 총명하고 영리한 소년이 되어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었단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날로 총명함이 더하여 어머니에게 자신의 출생과 아버지에 대해 닦달하자 견디다 못해 사실을 들려 주었다. 자신의 출생에 대한 얘기를 들은 소년은 그 날부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아침에 심어서 저녁에 따 먹는 오이 사려"하고 외치고 다녔는데 그 소문이 어느 날 왕의 귀에까지 들어 가 왕 앞에 불려 갔답니다. 왕이 "그런 오이를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는 물음에 그 소년은 물론 보여 드릴 수는 있으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답니다 그 조건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도 방귀를 뀌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답니다. 이 세상에 하루 동안 아무도 방귀를 뀌면 안 된다는 뜻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나 ? 소년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왕이 신하들로 하여금 왕비를 궁으로 불러들이려 하였으나 왕비는 한사코 거절하면서 그냥 그곳에 살기를 원하여 일생을 <부용산>에서 마쳤다고 했다. 왕은 그 왕비의 장례를 후히 치뤄주고 전각까지 지어 '부인당'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으나 세월이 흘러 전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이름만 남았다고 하였으니 17일날 산동무들이 찾아가서 <부용산>의 아름다운 전설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자구요. 푸짐하게- 융숭하게 <부영사> 보살님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뒤 30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용산>행 전철을 타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했더니 3시50분이었다. <신 원>역까지 도보로 약10분 걸린다는 보살님의 말씀 따라 미리 보살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시간 나시면 언제라도 찾아와 달라"는 진지한 보살님의 정감어린 말투에서 참선의 진리가 듬뿍 베어나는 것만 같았다. 10분 거리라고 했는 데 한참을 걸어 나왔으나 <신 원>역은 보이지 않았고 스틱을 잡은 손가락은 점차 시러워졌다. 약20분 후에 겨우 <신원>역에 도착하여 프랫트-홈으로 나가 3시54분 용산행 전철에 올라 따뜻한 좌석에 흩어져 앉았다. 두어 정거장을 지나기 바쁘게 모두들 두 눈을 감고 피로를 씻고 있었다. <운길산>산 역에서 한꺼번에 귀경하는 등신객들이 많이 올라 앞좌석에 앉은 친구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나는 제일 먼저 <중랑>역에서 하차하게 되어 승객들을 비집으면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하차하여 귀가 하였다. 멋진 장소-아름다운 설경-부담없는 전철-<부영사> 사찰에서의 전설 듣기- 산동무 모두 즐길 수 있는 아늑한 <부용산>- 하루가 무척 행복했답니다. 모두들 더욱 건강하시길 빌께요. 17일 봅시다 그려. 2010년 1월 14일 17일 산행을 앞두고 박 순 웅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