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前 병자년(1996년) 重陽節(중양절) 때의 일이다. 중양절은 음력 9월9일인데 陰(음)과 陽(양)의 기운이 우주만물의 바탕이 된다는 陰陽說(음양설)에서는 홀수를 陽數(양수)라 하여, 양수가 겹치는 날을 吉日(길일)이라 했다. 중양절은 음력 1월1일(설날), 3월3일(삼짇날), 5월5일(단오절), 7월7일(칠석)과 더불어 전통 명절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중양절에는 잘게 썰은 유자와 석류알, 그리고 잣을 꿀물에 띄워 花菜(화채)를 마시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이런 유래를 가진 병자년 중양절에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 총재가 서울에서 승용차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태백산 자락의 한 山寺(산사)를 찾아갔다. 김金총재는 이날 밤 자정부터 이 절의 명물인 이른바 「英靈寶塔(영령보탑)」 앞에서 시작된 徹夜(철야) 정진기도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오전 10 시부터 열린 秋季(추계) 慰靈大祭(위령대제)에 참석한 뒤 절을 떠났다.
그 절은 現世(현세·지금 이 세상)의 부처가 있다는 現佛寺(현불사, 054-672-2122). 檀君(단군)이 민족의 뿌리를 내렸다는 태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아홉 구비의 물이 구비친다는 백천계곡 내에 있다. 행정구역은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3리.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영령보탑英靈寶塔은 7층 석탑으로 이 절의 頂上(정상)에 있다.
7층 석탑이 빛을 발하다(?)
雪松(설송) 스님의 이름은 1980년대 후반 政界(정계), 官界(관계), 法曹界(법조계)에 널리 알려졌다. 경북 봉화의 현불사에 주로 머무르는 설송雪松 스님이 가끔 수원에 있는 일광사에 올라오면 그를 만나겠다는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이 설송雪松 스님이 대통령 선거가 있기 1년 전인 1996년에 『다음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씨』라고 암시했고, 이는 신자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김金총재는 측근들의 권유에 따라 현불사에서 중양절마다 치르는 추계 위령대제에 참석했던 것이다.
김金총재가 현불사에 머문 그날 밤, 절 안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 현불사 측 이야기다. 돌로 만든 7층 탑인 영령보탑英靈寶塔에서 느닷없이 다섯 색깔의 빛이 퍼져 나온 것이다. 돌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현상은 위령대제에 참석한 한 신도에 의하여 우연히 촬영되어 전全 신도들이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김金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암시하는 祥瑞(상서)로 해석되었다.
믿기 어려운 이 얘기는 현불사 경내에 세워 놓은 「寶塔光明(보탑광명) 나라발전 - 김대중金大中 선생 방문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이 碑(비)는 설송雪松 스님의 거처 옆에 서 있다. 비문碑文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김대중金大中 선생이 대통령大統領으로 당선되기 십사 개월 전인 병자년 구월 구일 현불사現佛寺를 방문하여 영령보탑英靈寶塔 추계대제秋季大祭에 참석하였는데 그날 밤 보탑에서 오색방광五色放光이 일어났다. 보탑이 방광하는 광경은 한 신도信徒에 의하여 우연히 촬영되어 전全 신도들이 보게 되었으니 모두들 선생의 대통령 당선을 암시하는 상서로 해석하고 함께 기뻐하였다.
당시 대제大祭를 봉행奉行한 청암靑庵 등 제관 일동祭官 一同은 보탑이 보여 준 대로 선생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환희한 나머지 선생의 방문과 보탑의 상서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부대중四部大衆의 뜻을 모아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비에 새긴 (보탑광명寶塔光明 나라발전) 여덟 자에는 대통령의 앞날에 보탑광명의 加被力(가피력)이 항상 함께 하여 나라 발전을 돕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부처님의 약속이 莊嚴(장엄)되어 있다>
그 일이 있은 지 5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10월24일은 현불사에서 추계 위령대제를 지내는 음력 9월9일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14개월여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金大中씨의 대통령 당선을 암시한 5년 전前과 「상황」이 유사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현불사에 간다는 말이 정치권에 파다했다. 기자(禹鍾昌)도 현불사를 찾아갔다.
이날 현불사에는 차들이 새까맣게 몰려 들었다. 50여 대의 대형 관광버스에 수십 대의 중형 승합차, 거기에 중·소형 승용차를 합치면 수백 대가 넘었다. 서울 번호판을 단 차에서부터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차들이었다.
차량들의 대수로 짐작할 때 방문객은 3000명을 넘어 4000명 가까이 되었다. 방문객들은 태백산의 매서운 밤 추위를 견디기 위해 거의가 防水(방수)가 되는 두꺼운 점퍼를 걸쳤거나 머리에 비닐을 덮어쓰고 있었다. 주차장 옆에는 한 棟(동)에 400~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임시 요사채 두 개가 설치돼 있었고, 절 마당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임시 식탁과 임시 수도가 마련돼 있었다.
추계 위령대제는 오후 7시쯤 설송雪松 스님이 신자들을 親見(친견)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8시30분에는 7층 석탑 앞에서 국악 연주와 농악 사물놀이가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펼쳐졌다. 이어 자정부터 두 시간 동안 철야 정진기도가 계속되었고, 새벽 6시 정각에는 탑돌이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밤, 깊은 산중에서 머리에 비닐을 덮어 쓴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북적대니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날 현불사를 찾은 거물巨物 정치인은 여당 대권 후보 중의 한 명인 韓和甲(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李壽成(이수성)씨였다. 이날은 「10·25 재보선」 전날인데도 한韓최고위원은 현불사 신자인 같은 당 趙誠俊(조성준) 의원 등과 동행했다. 한韓최고위원과 이 전 李 前 총리는 설송雪松 스님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자는 그 현장을 보지 못했다.
한韓최고위원을 독대한 자리에서 설송雪松 스님은 『앞으로 할 일이 부챗살 퍼지듯 많아 바쁠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송雪松 스님이 이 전 李 前 총리에게 했다는 말은 들을 수가 없었는데, 나라 걱정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서 천주교 신자인 한韓최고위원은 이 전 李 前 총리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다. 위령대제가 열리는 식장에서 한韓최고위원이 설송雪松 스님 바로 곁에 앉은 반면, 이 전李 前 총리는 한韓최고위원의 뒷줄로 밀려났다. 두 명의 대권 후보가 참석한 이날 현불사에서는 7층 석탑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따위의 상서로운 조짐은 없었다.
현대판 무학대사無學大師?
현불사의 한 스님에게 이 절을 찾아오는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론에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분들 중에서 본인이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그 분은 김대중金大中씨가 대통령이 된 후, 부모위패를 현불사에 모셔 놓고 위령대제가 열리는 3월 삼짇날과 9월9일에는 부모 제사를 모시기 위해 절을 찾는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경우에는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가 1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편이다. 그밖의 분들은 이름을 공개하기 곤란한데 측근들을 대신 내려보내고 있다』
자신을 현불사의 법사(머리를 깎지 않고 불승종佛乘宗을 전파하는 사람)라고 밝힌 한 사람은 대권주자들이 현불사를 찾는 이유에 대해 『왕王의 재목을 타고난 사람들이 왕王이 되려면 설송雪松 큰스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송雪松 스님을 「현대판」 無學大師(무학대사)」라고 평가하고, 『여야 거물 정치인 대부분이 설송雪松 스님을 만났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설송雪松 스님의 살아온 내력이나 수행과정, 그리고 법의 승계에 관한 일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불승종 총무원장 文廣(문광) 스님(58)에 의하면 설송雪松 스님은 경기도 연천군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으로 온갖 세상의 고난과 어려움을 다 겪은 후 굶어 죽기 위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 단식하다가 한 도인道人을 만나 도道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한 셈이다. 그만큼 「전생前生으로부터의 인연이 깊었던 증거」라고 신도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 도道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현재 설송雪松 스님의 가르침 내용과 행적으로 미루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화제의 절 현불사는 대한불교 佛乘宗(불승종)의 본찰이다. 불승종은 조계종과는 별개의 종단으로 설송雪松 스님이 1962년 음력 4월8일에 創宗(창종)했다. 수원水原의 일광사, 광주光州 양백사, 충청도 법정사 등 전국에 사찰이 있으며, 서울 양재동과 대구, 부산에는 禪院(선원)이 있다. 설송雪松 스님이 현불사를 지은 과정을 현불사 측은 이렇게 소개했다.
『설송雪松 큰스님은 태백산 깊은 곳에서 새 사찰 건립을 위한 기도를 올리던 중 홀연 신비인의 계시를 받았다. 검은 수건을 둘러쓰고 긴 수염을 드리운 노인이 나타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이 땅은 태백산 기운이 엉킨 곳으로 뒤에는 문수봉이 있고, 앞에는 연화봉이 있어서 큰절을 지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불법佛法만 중흥할 곳이 아니라 국가의 으뜸 기운이 드높아서 蒼生(창생)들을 널리 구제하고 앞으로 세계 정신 문명을 개창할 중심지가 될 것이다」 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설송雪松 큰스님은 이 노인이 단군성조라 굳게 믿고 태백산 七十二峯(칠십이봉)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태백산과 소백산의 중심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하백천동에 이르러 현불사의 터를 닦았다. 현불사를 세움은 제2의 개국開國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불사의 명물인 이른바 「영령보탑英靈寶塔」 건립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설송雪松 스님이 1985년 일본을 유람할 때 일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戰歿(전몰) 英靈(영령)들이 큰스님을 찾아와 濟度(제도·일체 중생을 부처의 道로써 고해에서 건져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를 청원했다. 그들을 위해 큰스님은 1986년 3월 초3일 英靈招魂祭(영령초혼제)를 크게 올리고, 같은 해 7월 영령보탑을 기공해 1987년 9월 초9일에 준공했다.
이날 크게 호국 영령 위령제와 세계평화 대기도를 올렸으며, 이후 해마다 3월 초3일과 9월 초9일이면 영령들과 소통이 가능한 설송雪松 큰스님이 수많은 영령들의 제도濟度를 위해 유교의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삼촌과 7층 탑
위령탑 혹은 영령보탑英靈寶塔이라 불리는 7층 석탑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말기인 1986년이며, 준공된 날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약 두 달 앞둔 음력 9월9일이다. 탑에 새겨 놓은 건립추진위원장은 文載竣(문재준)씨이며, 신도회장은 鄭韶永(정소영) 前 농림부 장관이었다. 위령탑명을 쓴 사람은 前 국회부의장 尹吉重(윤길중·작고)씨인데, 그는 탑 준공식날 열린 영령 위령제에서 祝文(축문)을 쓰고 읽었다.
탑 건립에 공을 들인 이들의 공통점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盧泰愚(노태우)씨와 가까운 관계라는 점이다. 신도회장인 정소영鄭韶永 장관은 노盧대통령과 경북고高 동기다.
현불사의 한 법사는 『7층 석탑은 노태우盧泰愚씨의 삼촌 盧秉祥(노병상)씨가 조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한 불사佛事 차원에서 지은 것』이라며 그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노盧대통령 형제를 키운 분이 한성기공이란 건설회사를 운영한 삼촌 노병상盧秉祥씨다. 불심佛心이 깊은 노병상盧秉祥씨는 설송雪松 스님으로부터 「일제 말기에 징병, 징용, 정신대, 지원병의 이름으로 끌려가 희생된 孤魂(고혼)들이 아직도 갈 곳을 찾지 못하여 이역만리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이 영혼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7층 석탑을 지으면 당신 조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따라 노盧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탑 건립에 나서 198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준공시켰다』
이때부터 현불사 7층 석탑은 「왕재王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盧泰愚씨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7층 탑을 지었다는 점에 대해 노盧씨 주변 사람들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불사의 법사 중에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시해한 金載圭(김재규) 前 중앙정보부장의 동생 金恒圭(김항규)라는 사람이 있었다. 험한 태백산에서 시작된 7층 석탑 건립은 5공共 안기부에 포착되었고, 안기부는 이 절의 법사인 김항규金恒圭씨가 처형당한 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탑을 짓는 것으로 짐작했다. 이 일로 김항규金恒圭씨는 안기부에 불려가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인간은 매일 점을 치며 산다』
2002년 1월27일, 설송雪松 스님이 대구 시내에 있는 현불사 대구선원에서 정례적인 설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李淸)는 대구로 내려갔다. 선원禪院이라고는 하지만 대명동 주택가의 단층 가정집 하나를 개조한 집이어서 많은 사람이 모일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좁은 마룻방에는 법회 예정 시각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모여든 100여 명의 신도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10시 정각, 설송雪松 스님은 젊은 스님의 안내를 받아 법상에 앉았다. 주장자도 없었고, 별도로 가사 장삼을 걸치지도 않은 채 잿빛의 승복으로 차려입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스님이 법상에 좌정하자 30여 명의 부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찬불가와 청법가(스님에게 설법을 청하는 내용의 노래)를 차례로 불렀다. 보통의 불교 법회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三歸儀禮(삼귀의례:불, 법, 승을 믿고 따르겠다는 신앙고백)는 없었다. 청법가가 끝나자 스님은 설법을 시작했다. 85세 된 노인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윤기가 있었고, 힘이 있었다.
『나는 (설법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묘법연화경(법화경) 28품 묘장엄왕품(사실은 묘장엄왕품은 27품이다. 스님은 27품을 28품으로 착각하고 있었다)을 여러분들에게 풀어 주고 있다. 이 경은 처음 듣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들으면 알게 될 것이고, 알고 나면 힘을 얻을 것이다』
스님은 묘장엄왕품의 다음 구절을 가지고 강의의 내용으로 삼았다.
<그때 두 아들이 그 아버지를 생각하여 허공으로 솟아오르니 높이가 7다라수로서 가지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었느니라(於時二者 念其父故 踊在虛空 高七多羅樹 現種種神變)>
『두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가 누구냐. 묘장엄왕이다. 묘장엄왕은 약장보살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어떤 게 아버지냐. 사농공상士農工商과 인의예지仁義禮知가 아버지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로병사도 같은 얘기다. 즉 사농공상이 우리의 부모이고 인의예지가 그 속성이다』
『인간은 매일 점을 치고 산다. 하늘과 햇빛이 닿을 때 인간은 점을 친다. 해가 땅과 연결될 때 인간은 점을 친다. 우리가 매일 점을 치는데 바로 치느냐 잘못 치느냐가 중요하다. 그날 호흡을 통해 바로 치고 잘못 치는 문제가 생긴다. 마음속 화가 날 때 생각을 하면 입자의 변화가 심해서 제대로 안 된다. 시기하고 화를 내면 몸만 마른다. 자식이 속 썩이는 것은 귀신보다 자신의 호흡 탓이다. 於時二者(어시이자:그 때 두 아들이)에 숨은 뜻은 바로 그것이다. 그 다음 踊在虛空(용재허공)이란 무슨 뜻이냐. 밀고 당기는 데서 화기火氣가 옮겨지니 세상 일이 시작된다. 자식 낳는 일도 이와 같다. 부처님도 이 도리를 경에 말했으니 踊(용) 자字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설송雪松 스님의 설법 내용, 즉 묘법연화경(법화경) 27품(묘장엄왕품)을 해석하는 방법과 내용은 그 자체가 법화경의 난해한 비유보다 더 어려웠다. 그 어려운 이야기를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오로지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듯이 스님의 설법은 이리저리 뛰었다. 계속되는 설송雪松의 말이다.
『이李씨가 안 된다고 말한 일은 없다』
『내가 사과할 일이 하나 있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어떤 사람들이 내게 와서 여러 가지(올해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물었다. 나는 「李(이)씨는 안 된다」고 말한 일이 없다. 그런데 기자들이 나를 만나지도 않고 제멋대로 보도한 것이다.
한화갑韓和甲씨와 목포에 갔다가 그 양반의 고향인 위도로 가는데 뱃길이 아주 고요하고 풍랑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그 뱃길을 다니면서 풍랑이 없었던 때가 없었는데 그날 따라 파도가 없다고 하여 모두 기뻐하고 신기해 했다. 내가 「용왕이 도와 주나 보다」고 했더니 이 말이 또 와전되었다. 모두가 내 실수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살았을 때 김재규金載圭 형제와 친하게 지냈는데 마음속으로 불안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박朴대통령에게 편지 한 장을 써보냈다. 「차모군이 뿌리가 없으니 가까이 마시오」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게송(부처의 공덕을 기린 노래)을 하나 지었다.
<한 송이 매화(梅花)꽃이 눈 위에 떨어지니 봄소식이 오련만은 함박눈 雪花(설화) 꽃이 온 지상을 뒤덮으니 봄소식 아니오네>
梅(매화 매)자의 木(나무 목자)를 뜯어 보면 十(열십자)와 八(여덟 팔) 자가 된다. 이는 박정희朴正熙가 18년을 한다는 뜻이다. 다음 花(꽃 화)자의 획수는 여덟 획인데 이는 전두환全斗煥이 8년을 한다는 뜻이고, 「봄소식 아니오네」는 민주화의 길이 멀다는 뜻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현불사를 찾아오기 전부터 나는 말했다.
「당신이 되면 이북을 찾을 텐데…」 하고 말한 것이 새어나가 예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무슨 예언을 했겠나. 꿈을 꾼 거지.
최근에는 이런 게송을 지었다.
<푸른 녹수가 잠을 깨니 남풍이 숨어들어 설송이 잠을 깨네>
나는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어떤 이들은 「녹수」가 누구냐. 박근혜다, 누구다 하고 말들 하는데 부질없는 일이다. 그 속에 든 의미는 스스로 알아야지. 이걸 아는 법은 踊(용) 자字 속에 다 있다. 초승달이 360도 기울어지니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지구가 비뚤어졌으니 눈도 많이 오고 별일이 다 생긴다. 이런 일은 나만 아는 것이 아니고 다 아는 일이다. 다 아는 일을 옛날 철부지 때 말해 버렸고, 그것이 텔레비에까지 나오는 바람에 시끄럽게 됐다. 그게 모두 踊(용) 자字에 있다』
『모르겠습니더』
설송雪松 스님의 말은 긍정 속에 부정이 있고, 부정 속에 긍정을 감춘 화법이었다. 圖讖(도참:미래의 길흉에 대해 예언하는 술법)을 佛法(불법) 속에 감추고, 불법이 도참에 흐려진 형상이었다. 스님은 계속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이 왔다. 天機(천기)를 누설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당신들 천기를 누설하러 온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것 모른다, 가라고 하여 보냈다.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다 나온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다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오행에 의하여 움직이는 까닭이다』
설송雪松은 결론을 얘기했다.
『세상은 비어 있다. 혓바닥이 입 밖에 나와 공허한 말이 虛(허)이고, 세상에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 空(공)이다. 점치는 대로 찾아가는 것이다. 매일 아침에 점을 쳐라. 내 행동의 잘못을 바로 고쳐라. 잘못을 벗어야 한다. 이것이 용재허공의 모습입니다』
이날 법문은 법화경 27품 속의 한 구절 「용재허공」을 들어 음양오행설과 유교적 세계관이 합해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에 대한 비밀을 언뜻 비치면서 「나는 본다. 그 뜻은 게송에 숨어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암시를 던지면서 끝을 맺은 셈이었다.
기자의 옆자리에 손자를 안고 앉아 법문을 들은 50대代 중반의 여인에게 물어보았다.
『스님이 무슨 말을 한 겁니까?』 『모르겠습니더』 『왜 오셨습니까?』 『영험한 큰스님이라서요』
『사람들이 찾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다』
2월8일, 설송雪松 스님이 현불사에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산 깊은 골짜기를 더듬어 현불사로 찾아갔다. 오전 10 시, 현불사 영령보탑 아래쪽의 처소에서 스님은 기자를 맞았다.
스님은 우선 『나 같은 무식쟁이는 유식한 사람과 할 이야기가 없다』면서 기자를 경원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열어 주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종파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새로운 종교, 종파를 창종創宗하셨습니까.
『종교를 만들자고 한 것도 아니고 종파를 꾸미자고 한 일도 없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기존의 종교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해서 누군가 아예 창종을 하자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불승종의 宗旨(종지:한 종교나 종파의 중심되는 가르침)는 무엇입니까?
『종지宗旨라는 것도 따로 없어요. 전에 김항규(金載圭 前 중앙정보부장의 동생)라는 사람이 창종을 하자 해서 한 것이고, 그가 또 이름을 「불승종」이라 하자 해서 불승종이 된 겁니다. 법인이 돼야 한다기에 법인을 만든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오고 법문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또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내가 말을 한들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요점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도道의 이야기보다는 생활 속의 인륜 도덕을 강조하고 根機(근기)에 따라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변화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세계는 어려운 것이어서 한 번의 가르침만으로는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전국에서 스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물으러 옵니까.
『세상 이치에 대해 묻기도 하고, 기복적인 문제나 앞길이 막연하여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절에 오는 사람치고 마음이 편해서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앞길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다만 법화경을 보고 정성을 들이려는 방편으로 아는 소리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요. 異蹟(이적)이 있고, 부처님의 힘을 보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요』
―앞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스님이 행하는 방편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내가 이치를 잘 모를지라도 오래 살아온 경험이 있으니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도 상대가 질문을 한 뒤 1초 안에 대답을 해야 그것이 진리입니다. 육갑을 짚어 보고 산통을 흔들어 보고 하는 것은 다 틀린 겁니다. 우주의 힘이 내 안에서 순간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앞길을 제대로 보는 소리가 나옵니다』
―특별히 법화경을 說(설)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법화경에는 세상 변화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금강경이 불법의 「씨앗」이고, 화엄경이 김매고 가꾸는 것이라면 법화경은 불법을 「추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법화경 28품을 28년 동안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妙(묘)의 변화를 좀 더 강하게 해서 사람들의 고통을 좀더 덜게 하는 것이 불자의 도리이므로 이 경을 설說하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설說하고 있는 제27 묘장엄왕품에는 말세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단명에는 대한불교 불승종이라 하여 불교의 한 종파임을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유儒, 불佛, 선仙이 혼합되어 있는, 전혀 별개의 종교라는 느낌이 듭니다. 원래 유, 불, 선은 세계가 다른데 스님께서는 이들이 따로 경계가 없다고 보십니까.
『유, 불, 선은 세상 3계를 의미하며,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모두 들어 있습 니다. 그래서 불승종은 유, 불, 선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 조상을 위하여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동시에 불법과 仙道(선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도들이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탑에서 오색방광이 일어나고 종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이적異蹟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우물에서는 갖가지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이 향기에 의해 신도들의 병과 그들의 생각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仙法(선법)에 가깝습니다』
―스님은 그 자연의 섭리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수행을 통해서 貪(탐), 瞋(진), 痴(치)라는 자기를 버릴 때 비로소 세상과 더불어 가게 되고 그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죽으면 무엇이 됩니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화하여 영靈이 되고, 영靈이 변화하여 부처가 됩니다』
『김金대통령, 최선을 다했으나…』
―생각을 지구적 차원에서 한반도로 옮겨 봅시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싸움은 발전을 의미하는데 이 또한 자연의 섭리입니다. 전쟁이 많던 춘추전국시대에도 여러 방면에서 발전이 있었습니다. 싸움을 함으로써 四生(사생)의 변화도 생기는데, 공산당의 濕生(습생)이 지구의 절반 이상을 덮었다가 사라지게 된 것도 그런 이치로서 모두 經(경)에 있는 얘깁니다. 통일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어요. 그것도 국운에 따라 다르겠는데 전해 오는 예언을 무시할 수도 없고, 경에 씌어진 것을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국운國運이란 무엇입니까. 지도자의 지도력도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때 그런 지도자의 출현을 미리 알고 예비하는 능력을 갖춘 스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내가 대통령이 된다고 확신을 가지고 「도와 주라」고 부탁한 사람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고 고생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세상의 끝을 보게 마련이지요. 자신이 어려웠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을 알 만한 사람도 김대중金大中씨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왔고 현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원망하는 사람은 많고 도와 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잘한 것은 묻어 버리고 잘못한 것만 물고 늘어지는 형국입니다. 지도자를 뽑아 놓고 그의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곧 그 나라의 불운입니다. 현재 우리는 미국의 속국으로 되어가고 있는데 미국의 노예 노릇이나 하면서 서 푼어치 안 되는 권위를 주장하고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 국민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우리의 국운입니다. 따라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국민이 협조해야만 나라의 운이 풀리고 자주적인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스님은 미지의 일, 미래의 일을 미리 아는 힘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대통령이 되기 전에 김대중金大中 당시 야당 총재가 찾아와 함께 차를 마신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들어갈 것이고 남북이 왕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다르게 전달되어 미래를 본다고 퍼지게 됐는데… 미지의 세계를 보는 힘은 자신이 직접 그 속에 들어가 봐야만 합니다. 대화로 알기도 불가능하고 수행을 통해서 알기도 어렵습니다』
서울에 가면 100여 명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요즘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스님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 위해 물으러 오고 있지요.
『내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 나가면 내가 머무는 곳에 100명 이상씩 줄을 지어 기다립니다. 그 중에는 정치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염집 아낙들도 있고, 다양하지요. 올해가 마침 정치적으로 중요한 때인지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나는 이미 할 말을 했어요』
―「푸른 녹수가 잠을 깨니…」 그 게송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이미 경에 다 나와 있고, 옛 사람들의 예언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스스로 할 일이지』
―스님이 미래를 열어 보이는 방법 중의 하나로 문자를 뜯어 해석하는 방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 같은데, 문자라는 것이 무슨 주술적인 의미가 있거나,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漢字(한자)는 유무형의 사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속에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 있습니다』
―85세의 연세에도 정정하신데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방법은 없고, 나는 하루도 혼자서 쉬지를 못해요. 법회에 나가면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고, 어디를 가든 누군가와 동행을 하게 돼 있어 혼자서 쉴 새가 없어요. 일하는 것이 유일한 건강법이랄까』
―담배를 피우시던데 해롭지 않습니까.
『담배는 소독제 역할도 합니다. 전에 수원의 일광사에 있을 때 배웠는데, 당시 나는 담배를 안 피웠는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하다가도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밖으로 나갔다 와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나도 함께 피우게 됐습니다. 일광사 山神(산신)이 담배 냄새를 좋아했던 것도 내가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 중의 하나였고요. 그러나 지금도 안 피우겠다고 마음먹으면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안 피웁니다』
―음식이건 습관이건 특별한 금기는 없습니까.
『금기는 없습니다. 肉食(육식)도 가리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육식肉食을 하다가도 절에 와서 먹지 않으면 일종의 가식이지요. 그러나 禪(선)에 깊이 들어가면 저절로 육식이 싫어지는데 섭리가 그렇게 되는가 봅니다』
내일을 묻는 허약한 중생들
기자가 설송雪松 스님을 찾기 전에 지니고 있었던 잘못된 선입견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설송雪松 스님을 불교적인 테두리에서 알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불승종의 수식어에 「대한불교」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데다 스스로 「스님」이라 호칭하는 것은 물론 경전 또한 불교의 묘법연화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송雪松 스님은 그 테두리 안에 있지 않았다. 법화경의 해석도 전혀 달랐다.
기자가 『법화경을 도참서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스님은 『법화경에 담긴 진리 그대로를 전할 뿐』이라 했고, 스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은 『일찍이 법화경을 이처럼 오묘하게 해석한 분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불승종은 불교의 이름을 걸고 있으나 유교와 도교와 신선도가 골고루 함께 숨쉬고 있는 새로운 종교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불승종의 종교로서의 특징, 그리고 종조宗祖인 설송雪松 스님의 정신세계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이 현불사 경내의 영령보탑 입구에 세워진 「태백산 현불사 사적비명(요약)」 중의 다음과 같은 한 부분을 음미함으로써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다.
<…1962년 설송 종조宗祖께서 이 절을 짓고자 발원하신 끝에 단군 할아버님의 계시를 받으시고… 이는 장차 영재들을 길러서 국가와 민족발전에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문명의 대업을 개창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님의 천부경과 부처님의 십이인연법, 유교의 인의를 두루 설명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설송雪松을 찾는 것은 스님보다는 그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어차피 그들은 계절이 되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미지의 「내일」을 묻고 다니는 허약한 중생들이니까. 스님의 방에서 나오는데 시꺼먼 고급 승용차가 마당에 멎고 그 안에서 금배지를 단, 낯익은 사람 하나가 내리더니 황급하게 스님의 처소로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