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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배가 아파. 잠에서 깨며 느끼는 첫 감정은 짜증이었다. 시야 가득히 번진 디지털 숫자는 세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가 움켜쥔 배 위에 손을 얹었다. 둔덕을 이루는 곡선을 따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유난히 부푼 배 안에서 무언가가 마구 날뛰고 있었다. 내 손을 거부하듯 거친 몸짓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아내는 눈을 감은 채 저를 쓰다듬는 손길에 맞추어 호흡했다. 아내 얼굴에 주름이 펴지면서 뱃속의 몸부림도 점차 가라앉았다. 곧 부드럽고 둥근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아내의 나른한 호흡을 떠올릴 때면 뒤따라오는 졸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는 했다. 복도를 걷다가도 소독용 도구를 챙기다가도, 부른 배를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나는 삽시간에 꿈속으로 밀려나 버렸다.
한참 상상과 꿈 사이를 헤매는 나를 구한 것은 조산사 박이었다. 윤쌤, 넋 좀 안 붙잡을래? 눈을 뜨자 박이 차트로 머리를 내려칠 흉내를 내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자 박은 어휴 이 양반을, 하며 꿀밤을 먹였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하지만 나는 뭐라고 답할 말이 없었다. 아내가 밤마다 괴롭힌다는 얘기를 털어놓아 봤자 내 얼굴에 침 뱉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그게 아내가 품고 있는 아기 때문이라고 하면 한바탕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사실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왔을 때도 사람들은 덤덤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잉태는 식사나 수면처럼 일상 일부일 뿐이었다. 박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아내의 것과 흡사하게 생긴 배가 놓여있었다.
“예정일이 언제시라고요?” 산모의 배를 보던 수련의가 물었다.
“삼 주 남았어요.”
가쁜 숨을 쉬면서도 산모는 활짝 웃었다. 얼굴에는 흐뭇함과 자부심 그리고 기대가 가득했다. 수련의도 조산사도 산모를 따라 환히 웃는다. 나 역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내는 거실에 앉아 한참 부산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외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물이 되어있었다.
“어디 다녀온 거야?”
“산후조리원에. 교육 들으러.”
“또 버스 탔지? 길 미끄러운데 택시라도 타고 다녀오라니까.”
아내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룩 튀어나온 배 때문에 상자를 여는 일도 고역이었다. 숨을 한 번 삼키고는 허리를 있는 힘껏 접었다 다시 펴고, 상자를 배 위에 올려도 보고, 옆구리로 상자를 가져다 놓고 테이프를 뜯기도 했다. 보다 못한 내가 아내에게서 상자를 앗았다. 내가 택배 상자를 뜯으면 아내는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었다. 택배 상자 겉면에는 예쁜 우리 아기 딸랑이, 아기만큼 아름다운 천장 모빌, 건강을 생각한 순면 저고리, 우리 아기에겐 특별한―면 기저귀 10매, 까꿍 놀이 포함 장난감세트 6종 따위가 적혀있었다. 아내는 거실 한가운데에 내용물들을 죽 늘어놓은 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샛별이는 뭐 좋아할까? 글쎄. 나오고 나서 물어봐야 알겠는데. 실없는 농에도 아내는 파안대소했다.
아기 옷만 봐도 소리 내어 웃는 아내는, 그러나 머릿결을 헤집는 찬바람에도 울상을 지었다. 품고 있는 것이 형체를 갖추고 덩치를 키워가면서 아내는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한숨 쉬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싶더니 야윈 손으로 눈을 거칠게 닦는가 하면, 눈에 띄게 배가 나오면서부터는 입덧 때보다 더 자주 눈물을 보였다. 아내에게도 태아에게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나는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괜스레 집안일이나 도맡게 되는 것이었다.
아내는 있으나 마나 한 반려자 대신 아내와 비슷한 처지인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어디 댁이니, 누구 맘이니 하는 사람들과 하루가 멀다고 어울리고는 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이들과 정기모임인지 번개인지를 나간답시고 밖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 임산부 동지끼리 만나야지 재밌어.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손에 든 짐들을 내려놓았다. 종이가방마다 ‘맘’들이 준 장난감이며 아기용 옷, 포대기 따위가 가득했다.
“원래 그런 데서 이것저것 주고받고 위로도 받고 그러는 거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박이 이야기했다.
“근데 윤쌤, 언니랑 동갑 아니에요? 세대차이 엄청나다, 그런 것도 모르고.”
외래업무를 보는 장이 신기한 표정으로 날 훑었다. 간호사들도 박도 그 모습을 보고는 재밌다고 웃는다. 깔깔대는 여인네들을 보고 있자니 아내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잠이 밀려왔다.
지척에서 들리는 비명에 눈을 떴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여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앓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 역시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박이 유독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산모님 숨 크게 쉬세요.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고. 산모는 박이 하는 얘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숨 끊어지는 소리만 냈다. 산모도 치료진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분만실 안은 소음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둡고 건조하고 고요한 이 둥지는 그러나 산모가 들어오면 이내 습한 소리가 태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은 새로운 생명이 처음으로 빛을 보는 곳이었고 고통과 신음과 비명이 상주하는 곳이었으며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감정이 제 모습을 숨기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생과 사, 그리고 온갖 감정들이 펄떡이는 이곳은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공정했고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한 무리의 공동체를 이루는 이곳에서 나만이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많은 사람이 큰 소리로 응원하고, 때로는 신중하게 추이를 지켜보기도 하는 이곳은 마치 어린 시절 보던 소싸움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이 소리치거나 어르거나 달래거나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꿈틀대고 날뛰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어두운 조명과 클래식인지 뉴에이지인지 모를 음악으로 가득한 분만실 안에서 나는 소싸움에 관심 없는 외지인이었다. 그러다 보면 꿈속으로 발을 내딛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헤매다 다급한 누군가가 호통을 치면 그제야 소독용 도구를 몇 개 챙겨주었다. 그것이 내 역할의 전부였다.
이런 이방인을 가장 고깝게 보는 것은 지역 주민도, 외지에서 온 구경꾼도 아닌 소 주인이었다. 보호자들은 마치 고통을 함께 나눌 수나 있다는 듯 산모 손을 꼭 잡고 분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모습을 보고 나면 열이면 열 기겁을 했다.
“뭐야, 저 사람 남자 아뇨?” 산모 옆에 서 있던 이가 빽 소리쳤다. 눈이 마주쳤다.
“여기 왜 남자가 있어요? 의사에요?”
꿀 먹은 벙어리인 나를 대신해 간호사가 말을 받았다.
“윤 선생님은 분만실 어시스턴트세요. 여기 시술에 필요한 도구랑…” “저 사람 의사 아니죠?”
남자의 신경질적인 질문에 간호사 역시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온 얼굴을 다 찌푸렸다.
“의사도 아닌데 왜 저 사람한테 이런 걸 보여줘야 해요? 이게 윤리적으로 맞는 짓입니까?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길 와?”
분만실을 떠도는 음악 위로 남자가 토해내는 고함이 뒤덮였다. 산모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산모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고개를 들어 남편, 혹은 애인,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 중 한 명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시술도구들을 카트에 집어 던지고 분만실 문을 나섰다.
분만실 밖으로 나오면 더 많은 시선이 나를 조준하고 있었다. 외계 생명체를 보는 듯한 시선들이 내 몸을 훑으면 몸서리가 쳐졌다. 언젠가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의사며 간호사 앞에서 궁둥이를 까보였을 때보다도 참기 힘들었다. 수술방용 모자를 눈썹 바로 위까지 써보아도, 마스크를 몇 겹이고 걸쳐보아도 시선은 언제나 내 가장 깊숙한 구석구석까지 헤집었다.
이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던지는 눈길을 감당할 수 있는 때라곤 아내를 데리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순간뿐이었다. 그저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금남의 공간에 들어온 불청객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직원임을 알리는 명찰보다 아내의 배가 더욱 확실한 통행증이었다.
“남편이 병원 직원이래도 별 도움은 안 되죠?”
“그쵸 뭐. 애 아버지가 아픈가요. 제가 아프지.”
치프 레지던트가 짓궂게 묻자 아내가 깔깔댔다. 아내의 마지막 검진은 퍽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며칠 안 있으면 진통이 시작될 거라느니, 남편이 병원 직원이니 그나마 남들보다 나을 거라느니 하는 치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는 볼에 홍조를 띠었다. 주의사항은 있는지, 얼마나 아픈지 묻는 목소리는 옅게 떨리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등에서 차가운 땀이 흘렀다.
점심 밥상 위에는 여인네들의 수다가 한창이었다.
“그 교복 입은 애 말이지?”
“말도 마세요. 얼마나 당당한지…”
박이나 장은 물론이고 병동 간호사들까지도 쑥덕거리는 것을 보니 진상 환자라도 온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진료시간에 온 여자 환자 이야기였다. ‘여자 환자’라는 호칭은 ‘여학생’이 되었다가 곧 ‘여자애’가 되었다. 장의 설명을 따르면, 여자애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래 대기실에 들어섰다.
여자애가 오는 것쯤이야 늘 있는 일이라는 간호사의 말에 장이 고개를 저었다. 장은 실감 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작 놀라운 것은 여자애보다 그를 데리고 온 어머니 쪽이었다. 여자는 장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지금 당장 진료를 보겠다”고 생떼를 써댔다. 아이와 함께 오는 어머니라면 고개를 푹 숙인다든가 눈물을 훔친다든가, 쪽지에 ‘우리 애가 아기를…’ 따위 글을 써 보여주는 일도 있었건만, 이 보호자는 오히려 장에게 잘잘못을 따지러 오기라도 한 듯 굴었다. 예약이 잡혀있던 산모 몇을 뒤로 빼는 무례를 범하면서까지 여자아이를 억지로 진료실에 집어넣은 장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는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더 가관이었다. 그래도 진료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겠거니 하던 장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장을 쥐고 흔들었다. 뭐 이런 병원이 다 있나. 내 딸이 뭘 했다고 임신이냐. 다른 교수에게 다시 진료받아야겠다. 실력이 이 모양인데 학력도 위조 아니냐. 이런 쥐똥만 한 병원에서 교수 노릇 하는 게 다 실력 없어서 그런 건 아니냐. 다른 교수 앞으로 예약은 언제 되느냐. 이 병원에 입원실은 있느냐. 몇 인실이 있느냐. 남는 자리는 당장 있느냐. 여자의 항의는 장장 삼십 분 넘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여자는 말없이 씨근댔다. 필시 욕을 퍼부은 끝에 저 스스로 말문이 막힌 것일 테라고 장은 회고했다. 그렇게 시뻘건 얼굴로 장을 노려보기만 하던 여자는 끝까지 뭐라고 구시렁대며 대기실을 나섰다.
“그런 사람 한 명 올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니까요.” 장이 몸을 떨었다. 박도 이도 어느새 옆에 앉은 수련의도 밥알을 한 톨씩 입안으로 넣었다.
아내는 나보다 먼저 잠들어있었다. 아내의 수면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앉을 때나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제 허리를 부여잡는 아내는 밤이 찾아오고 졸음이 한참을 구슬린 뒤에야 겨우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천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엎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모로 누워 가쁜 숨을 쉴 뿐이었지만, 꿈속으로 빠져드는 그 시간은 아내에게 유일한 쉬는 시간이었다. 멍하니 있다가도 가끔 또로록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이따금 찾아오는 복통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간. 통장 잔액이며 육아 관련 사이트며 ‘우리 아기 엘리트 만드는 노하우’ 따위 책을 뒤지며 한숨짓지 않아도 되는 시간. 태아는 태생적인 본능으로 어미가 가지고 있는 근심들을 앗아가고 있었다.
아내의 잠은 나에게 또한 안식이었다. 아내가 잠든 모습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나는 슬그머니 깨금발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캄캄한 거실 한쪽 벽면에 푸른 등이 빛나고 있었다. 아래에는 수십 갈래로 찢어지는 빛줄기와 그 빛 속에서 유유히 춤추는 지느러미들이 있었다.
직육면체 어항 안에서 떠다니던 녀석들은 바깥에서 새카만 그림자가 비치자마자 소스라쳤다. 다리도 없는 놈들이 사람보다 빠르게 도망을 다녔다. 촉촉한 비늘, 미끄러지는 몸짓, 어항 안을 쉬지 않고 헤집는 군집들. 나는 어항 옆 상자를 들어냈다. 겹겹이 쌓인 기저귀며 몇 년이 지난 뒤에야 펼쳐보게 될지 모를 위인전 따위를 한쪽으로 치웠다. 택배 상자를 몇 개나 들어낸 뒤에야 입구를 둘둘 말아놓은 물고기 사료가 보였다.
사료를 한 움큼 어항 안에 담그자 사방에 흩어져있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푸른 불빛이 가려지며 암흑이 드러났다.
나는 수시로 잠에서 깨어났다. 뒤차의 경적소리, 큐렛이며 포셉자며 거즈 따위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 서류 더미가 바닥으로 무너지는 소리, 소리, 소리가 나를 아득한 곳에서부터 일상으로 끌어올렸다. 소리에 이끌려 현실로 올라올 때마다 나는 심해에서 붙잡혀오는 물고기처럼 몸을 짓이기는 기압 차에 괴로워했다.
“요즘 어디에 정신을 팔고 다녀?” 지나가던 박이 서류철로 머리를 툭 쳤다. “예정일도 며칠이나 남았고. 아직 밤이 뜨거울 일도 없을 텐데?”
장황한 변명보다 한숨이 먼저 튀어나왔다. 장이 옆에서 소리 죽여 웃었다.
대기실에는 열 명 남짓한 산모들이 앉아있었다. 긴 소파 위로 둥근 배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 같았다. 드레싱 카트를 옮기는 소리를 비집고 속삭임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어머 세상에. 남자 직원인가 봐. 간호사인가? 의사 아니구? 왜 이런 데엘 왔대? 다른 과도 많은데. 남사스러워라.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신음은 늘어만 갔다. 몸을 일으킬 때에도 어이구, 앉을 때에도 어이구였다. 아내는 세탁기에서 옷 꺼내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의자며 침대에 앉아 집안일 하는 내 모습을 귀신처럼 지켜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맘’들과의 유희 역시 마음껏 즐기지 못하게 되자 아내는 유배당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방구석에 몸을 묻었다.
움직임이 더뎌지면서 아내는 말 대신 한숨을 만들어냈다. 큰 숨을 내쉴 때마다 그렇지 않아도 부푼 배가 한층 더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마치 부화를 준비하는 알 같았다. 알이 된 아내는 굴러다니지도 껍질을 깨지도 못한 채 밭은 숨만을 쌕쌕댔다.
아내가 심란해하는 만큼 지갑은 얇아져만 갔다. 교육용 영어 책자를 사 들고 오거나 ‘착상부터 돌까지’ 스튜디오 촬영 쿠폰을 받아 오거나 서양 동화 DVD 전질을, 아내의 표현대로라면 ‘지른다’거나 하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산후조리원에서 으레 돌리는 전단지 하나에도 전화기를 드는 아내를 나는 몇 번이고 말려야만 했다. 하지만 아내의 지갑이 너무나 쉽게 입을 벌리는 통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아내가 착실히 통장 잔액을 줄여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아내와 태아의 입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러자면 수많은 배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실에서 돌아다니는 산모들을 보고 있자면 그 배 안에 있는 것들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고는 했다.
분만실 안에는 일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전공의 한 명과 간호사 둘, 마취과 의사가 한 명, 조산사 박과 나 그리고 산모. 클래식인지 뉴에이지인지 모를 음악과 환자감시장치가 내는 기계음이 분만실 안을 채우고 있었다. 산모는 입에 커다란 산소호흡용 마스크를 단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스크 안쪽에 흰 입김이 서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놈이… 자꾸 도망 다니네. 큐렛.”
전공의가 지시하면 나는 도구를 꺼내었다. 의사는 넘겨받은 도구를 산모의 몸 안에 집어넣었다. 귀이개용 주걱같이 생긴 쇳덩이가 몸 안을 휘젓는데도 산모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의사는 상체를 굽힌 채 주걱을 점점 더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옆에 섰던 간호사는 새하얀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석션.”
벽에 붙어있는 유리병 중 하나를 골랐다. 병 밑에 달린 다이얼을 돌리자 눈금이 죽 올라갔다. 의사는 장치에 매달린 호스를 산모의 안에 집어넣었다. 곧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료진이 산모에게 집중하는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물컹한 무의식의 덩어리에 몸을 던졌다. 덩어리 안은 수조처럼 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눈 안에 들어있는 물속을 마음껏 헤엄쳤다.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까닥이자 머릿속에 있는 바다도 따라 출렁였다.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홀로 유영 중이던 바다에 누군가가 입수했다. 놀라 눈을 뜨자, 증류수가 담긴 병 안에 웬 덩어리가 담겨있는 것이 보였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살덩어리들이 차례차례 배출구 안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손, 다음은 어깨, 가슴, 발. 그리고… 살덩어리는 몇 번이고 물속에 몸을 담갔다. 텀벙대는 소리가 점점 짙어지며 통 속 맑던 물은 탁하고 누렇게 물들었다.
마침내 만들어지다 만 머리까지 병 안에 빠지고 나서야 청소가 소리가 멈추었다. 살덩이는 마치 유리병 안이 제 어미의 뱃속이라도 되는 양 조각난 몸을 말았다. 살덩이가 눈을 뜨지는 않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왔다.
“시술 마칩니다. 가방.”
나는 발치에 있는 검은 가방을 들었다. 골프채를 담을 때 쓰는 가방이었다. 내가 주둥이를 활짝 벌리면 의사는 벽에 매달린 유리병을 떼어냈다. 의사가 팔을 기울이자 살덩이는 그대로 가방 안에 쏟아졌다. 수백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이제는 손발이 척척이다.
병에 담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내를 떠올렸다.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작은 핏덩이를 위해, 단어 그대로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아내는 그러나 날이 갈수록 창백했고 가냘팠고 안쓰러웠다.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붓는데 얼굴에는 주름이 계속해서 늘어갔다. 뱃속에 있는 놈은 탯줄을 통해 아내의 영양분뿐 아니라 껍데기를 뺀 모든 생기를 갈취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의국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장갑을 벗었다.
시술을 진행하는 삼십여 분 동안 휴대전화에는 다섯 통이나 되는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있었다. 모두 아내가 건 전화였다. 아내는 언제든 내킬 때마다 나를 찾아댔다. 다녀올게, 하고 현관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마자, 병원 정기회의가 있는 시간에도, 분만실에 들어가면서 휴대전화를 옷장 구석에 처박아놓았을 때에도 아내는 나를 호출했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에 아내에게 도움이 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제때 전화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화기 너머의 아내가 안달이 났든 울고 있든 즐거워하든,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말이나 몇 마디 건네고 시답잖은 위로나 해주는 것뿐이었다.
수화기 속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물기 섞인 숨을 토해냈다.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안 좋아? 재차 물어보아도 수화기에서는 흐느낌뿐이었다. 회의실 안에서 세 번째로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서야 나는 전화를 끊었다. 신호가 끊긴 휴대전화 안에서 아내의 울음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아내의 배가 커지면서 나는 확신했다. 아내가 품은 태아는 제 어미의 웃음과 노래를 먹고 자랐다. 아내는 아이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모두 내어주고 있었다. 재미있는 TV를 봐도 배를 내려다보며 아가 재미있어? 했고 음식을 먹어도 샛별아 맛있지, 했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재미있는 줄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내는 태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마치 태아가 제 우울과 불안을 내던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하지만 뱃속에 똬리를 튼 그 녀석이야말로 아내를 갉아먹는 괴물이었다. 아내는 뱃속의 녀석과 관한 일이 아니라면 그 어떤 일에도 웃지 않았다. 샛별이 얘기가 아니면 입도 뻥긋하지 않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내는 제 뱃속에 있는 별과 함께 숨을 쉬고, 고민이 있으면 제 뱃속에 대고 털어놓고, 태아에게 소원을 빌고, 제 분신만을 위하고 있었다. 탯줄을 잡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이가 아니라 아내 쪽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홍합이 잔뜩 담긴 국물 안에 새우를 털어 넣고 있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와.”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쳤다. 숨이 차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나를 보며 아내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꽃피웠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팠어? 아내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아파하는 기색은 없었다. 누가 전화로 뭐라고 했어? 기분이 안 좋았어? 아내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아니. 오늘 괜찮았어. 근데 아까는 샛별이가 막 신경질을 부려서. 그래서 아빠 목소리 들려줬더니 좀 나아졌대. 그러더니 얘가 막 짬뽕 먹고 싶다구 해서 지금 해주는 중이야. 그지이 샛별아? 아내는 국자를 휘휘 저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플라이 미 투 더 문, 앤 렛 미 플레이 어몽 더 스타.
별들 사이를 누비는 아내와 달리, 나는 사방이 유리로 된 벽 안에 갇혀있었다. 벽 너머에는 물이 가득했다. 색색의 조명 위로 모래와 물풀과 플랑크톤 따위가 빛나고 있었다.
벽 바깥은 거대한 수족관이었다. 물고기들이 벽 안을 헤엄치고 있었다. 몇몇 녀석들이 탁한 눈알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은 수족관 한가운데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녀석들은 주둥이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는데, 주둥이에 있는 것들을 물 가운데에 토해냈다. 한가운데에서 모래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녀석들이 뱉은 살점들이 먼지 사이로 사라졌다.
모래 틈에서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그 아가리는 너무나 커서 입안에 고기 한 마리가 다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복어인가 돔인가 아니면 옐로우코리스였던가, 물속 모래에 숨어 사는 물고기들을 죽 떠올렸지만 녀석과 같은 주둥이를 가진 물고기는 본 적이 없었다. 입안에는 포식자의 이빨이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이빨은 모래 폭풍을 일으키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게걸스럽게 씹어먹었다. 다른 고기들의 먹이가 사라지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살점들이 모두 사라지자 녀석은 주변의 물고기들을 하나씩 삼키기 시작했다. 저를 삼키는 포식자 앞에서 물고기들은 지느러미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들이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열 마리, 다섯 마리, 세 마리. 마지막 남은 한 마리마저 몸부림 끝에 사라졌을 때, 나는 비로소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탁한 눈알과 육식동물 같은 이빨, 농구공처럼 둥근 몸, 그리고 이마 사이에 비죽 튀어나온 호롱. 그것은 심해아귀였다.
심해아귀가 몸을 돌려 내 쪽을 향했다. 눈동자 없는 눈알 하나가 내 얼굴보다 컸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쿵. 아귀가 몸을 부딪는다. 수족관이 흔들린다. 쿵. 바닥이 진동한다. 나는 나갈 곳을 찾는다. 쿵. 사면이 유리로 막혀있었다. 나는 아크릴 상자 안에 갇혀있었고, 이 상자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쿵. 상자 밖이 모두 녀석의 영역이었다.
벽에 금이 가고, 물이 새어 들어왔다. 녀석은 계속해서 벽에 몸을 부딪쳤다. 작은 틈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물이 콸콸 쏟아졌다. 언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쿵. 유리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동시에 녀석의 몸이 내게 덮쳐왔다.
정신을 차리자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동그랗게 뜬 아내의 눈을 마주했다. 눈을 뜬 곳은 우리 집 침실이었다. 아내와 나만 남아있는 아늑한 공간.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아내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샛별이두 깼겠다. 아이구 우리 애기. 아내가 제 배를 어루만지자 배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팽창했다. 이거 봐 여보. 샛별이도 아빠가 깨워서 놀랬다잖아. 나를 향해 성을 내는 배를 보자 다시 오한이 덮쳐왔다.
여자와 그 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을 다시 찾아왔다. 어머니 쪽은 외래 창구 앞을 점령한 채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니까 그게 왜 안 되는데. 우리가 돈 주고 시술받겠다잖아 지금. 근데 왜 치료를 거부해? 환자 안 받을 거면 병원이 왜 있어?”
“어머님, 그러니까 요즘엔 법률적으로 저렇게 시기를 넘긴 산모들은 시술이 어려워요. 현행법상…”
“안 되는 게 어딨어 안 되는 게. 현행법? 현행법이 뭐 어쩌라구. 그럼 우리 애더러, 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금?”
여자가 대기실이 떠나가라 악을 써댔다. 중년 여자 한 사람에게 직원들이며 의사들까지 모두가 매달려 허둥대는 모습은 시트콤 같았다. 다른 산모들이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하시라는 장의 말에도 다른 사람이 뭔 상관이야 우리 애가 잘못되게 생겼는데, 했고 지금 시술하기에는 산모 몸에도 무리가 간다고 박이 달래보아도 우리 애 고등학교 들어가야 한다며 막무가내였다. 가운 입은 사람들이 제각기 빨갛거나 하얀 안색을 하고 진정시키려 애쓸수록 여자의 손짓과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직원들을 구원한 것은 병원에 막 들어온 치프 레지던트였다. “알겠어요. 일정 잡아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시죠.” 손에 든 가운을 채 걸칠 틈도 없이, 치프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
모녀가 지나간 자리에 대기실에 있던 산모들이며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치프 앞에 선 이들은 저런 산모를 또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둥, 우리 애 예정일이랑 겹치면 나올 애기도 못 나오겠다는 둥 저마다 무어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치프는 덤덤했다.
“별수 없지 뭐. VVIP잖아. Induced 준비해주세요. 1인실 Admission 예정입니다.”
“뭐, 진짜 시술하려고요? 애기가 저렇게 큰데?”
“못할 거 없잖아요.” 치프는 차트를 넘기며 박에게 툭 던졌다.
“에이 씨. 그럼 내가 들어가야 하잖아.” 박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치프는 말을 받지 않았다.
치프가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장이 데스크를 걷어찼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있던 산모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산모는 유독 둥그런 눈을 하고 외래 창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선의 그것처럼 둥근 눈은 나와 마주치자마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산모는 천천히 두 팔로 배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하루에도 수백 번을 샛별이 얘기였다. 전화로도 샛별이, 집을 나설 때도 샛별이, 자다 깨어나도 샛별이,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도 ‘어머 이러다 샛별이까지 나오면 어쩌지’ 했다. 그놈의 이름, 자주 부른다고 빨리 안 나온다. 듣다 못한 내가 핀잔을 주어도 아내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어차피 우리 아이잖아, 앞으로 훨씬 많이 부를 건데 뭘. 하지만 아내가 제 배를 어루만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부른 배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오한을 느꼈다. 아내는 태아를 품에 안고 깊은 바닷속으로 계속 침잠하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풍선처럼 부푸는 아내의 배를 보며, 장난감이며 옷가지들을 모두 차지하게 될 녀석에게 몰래 말을 걸어보고는 했다. 정말 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싶은지.
아내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분만실 정리를 마친 직후였다. 아내는 짓눌린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가 보세요.”
간호사들은 억지로 내 등을 떠밀어 지하주차장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나는 차 시동도 걸지 않은 채 운전석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병원 안으로. 분만실로. 눈을 감으면 항상 내 앞에 펼쳐지는 작은 바다 안으로. 시시각각 멀어지는 빛을 바라보며 부유하고 싶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내버려둔 채 잠이라도 들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은 나를 물속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눈꺼풀 속 시신경과 싸워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전화 속 아내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뿐이었다. 몇 번의 싸움 끝에, 결국 나는 빈 이를 깨물며 차 시동을 걸었다.
거실 풍경은 참혹했다. 희고 검은 가루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조미료 병이 죄다 깨져 소금이며 후추통이 뒹굴고 있었다. 고추장과 간장 따위가 벽에 무늬를 새겼다. 수화기며 리모컨은 어딘가 부서진 채였고, 바닥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막 전투를 마친 군인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씨근대고 있었다. 거친 숨을 쉬면서도 아내는 손을 배에 가져갔다. 샛별아, 우리 샛별이 뭐 먹을까? 엄마랑 뭐 먹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제 뱃속이 아닌 남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놀랐는지 아내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곧 몸을 비척비척 일으켜 외출복을 입었다.
바람이 얼굴을 찢는 1월이었다. 살얼음 언 바닥 위에서 아내의 걸음은 초보 발레리나만큼이나 위태로웠다. 나는 아내의 양어깨를 뒤에서 붙잡았다. 아내는 몇 번이나 무릎을 휘청이면서도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아내는 몇 술 뜨지도 않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입맛이 없어.”
“역시 보통이 아니네. 다들 식욕이 주체가 안 된다던데.”
아내는 억지로 입 끝을 올렸다. 먹어. 나는 상추를 아내의 입에 밀었다. 고기 몇 점과 마늘과 고추 그리고 쌈장. 아내는 그 큰 덩어리를 입안에 전부 욱여넣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아내를 억지로 재우고 나는 거실로 나왔다. 텅 빈 거실에는 전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마저 커튼이 틀어막고 있었다. 거실은 냉장고 우는 소리도 보일러 도는 소리도 없는 정적의 세계였다.
어두움에는 눈보다 손이 익숙했다. 스위치를 켜고 불이 들어온 뒤 몇 초간, 나는 찔끔 눈물을 흘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이며 웅덩이가 형광등 불빛을 난잡하게 반사했다.
거실에 흐르는 강을 지웠다. 휴지가 물기를 삼키고 또 삼켜도 강은 무어가 그리 슬픈지 계속 울었다. 강물 한가운데에는 어항 파편들이 둥둥 떠다녔다. 물 위를 헤엄치는 돌멩이들과 작은 물레방아와 장식용 해초 따위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나서야 거실 곳곳에 점점이 버려진 구라미며 구피들이 눈에 띄었다. 탁상 밑에 붉은 놈이 한 놈, 식탁 쪽에는 줄무늬가 유독 예뻤던 놈. 그리고 그 뒤에는 골든 구라미가 배를 내놓은 채 누워있었다. 어찌나 몸부림을 쳤는지 어항에서 제법 멀리까지 떠밀려간 녀석도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을 그러모아 두 손 위에 올려놓았다.
꿈속에서 나는 한 마리의 심해어였다. 바다 밑바닥에는 빛도 파도도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따금 내 주위를 헤엄쳐 지나가는 동족들이 저 스스로 발광하는 빛을 보내올 뿐이었다.
벽도 바닥도 없는 진공 속에서 나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골프가방 안에 담긴 작은 조각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조각들은 사람의 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병원을 뒤집어놓던 여자의 얼굴을 게걸스럽게 뜯었다.
몸이 쥐어뜯기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더 깊은 바다에서부터 붉은빛들이 점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긴 세월을 건너오며 검게 퇴화한 추격자의 눈앞에는 새빨간 호롱이 달려있었다. 심해아귀였다. 아귀들이 날카로운 이를 세운 채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꼬리를 놀렸다.
하늘을 향해 헤엄칠수록 나는 수압에 찌그러졌다. 추격자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쫓았다. 수면이 점점 가까워져 왔지만, 그에 비례해 내 헤엄 속도 또한 처졌다. 기압 차를 버티지 못하는 몸은 호흡을 거부했다.
꼬리지느러미에 이어 등지느러미까지 구겨지자 나는 방향을 모두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추격자들이 나를 덮쳐왔다. 한 마리, 두 마리, 날카로운 이빨들이 내게 파고들었다.
여보. 여보. 아내가 짓눌리는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아내는 어둠 속에서 배에 손을 얹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팔을 어깨에 감았다.
응급실 앞에는 치프가 벌건 눈을 하고 서 있었다.
“당직이었어요?” 치프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잡아끌었다.
아내가 멈춘 곳은 분만실 한구석이었다. 찜질방 수면실처럼 어두운 조명에 클래식인지 뉴에이지인지 모를 음악이 흐르는 곳. 나는 언제나 그래 왔듯 산모의 두 다리를 분만용 기구에 고정했다.
박이 드레싱 카트를 끌고 왔다. 나는 카트에서 장갑을 꺼내었다.
“윤쌤 일복도 많지. 일부러 부 탕 뛰려구 왔구나.” 박이 카트를 밀며 말했다. “VVIP가 아프시대요. 아까 촉진제 맞았어.”
아내는 분만대 위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부푼 입은 연신 가쁜 숨을 토해냈다. 분만실에 들어오고 나서 여섯 시간 동안 아내는 몸을 열었고, 무통주사를 끝끝내 거부하고 베개를 쥐어뜯었으며, 세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앙다문 이 사이로 비명을 토했다.
아내가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내 머릿속에 사는 물고기들을 따라 헤엄쳤다. 알비노 구피, 코발트블루 구피, 드워프 구라미. 우리 집 어항 안에서 춤추던 녀석들은 형광등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녀석들을 따라 내려갈수록 세계는 점점 어두워졌다.
해파리와 오징어와 갈치에게 인사를 건네고 더 깊이 가라앉자 뱅돔과 쥐가오리가 나를 반겼다. 가오리들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숲으로 끌고 들어갔다. 두갈래사슬풀과 엷은잎바위주걱이 곳곳에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숲에서 해마들이 무리지어 유영하고 있었다. 바위틈을 기어 다니던 암모나이트가 나를 보고는 몸을 숨겼다. 소리마저 굴절되는 바다 안쪽에 가까워지면서 아내의 비명도 점점 아득해져 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곳으로 잠겨 들어갔다. 채도도 명도도 없는 허공에서 나는 아가미를 뻐금거리며 숨을 쉬었다. 나는 두 무릎을 턱에 붙인 채 바다 안을 부유했다.
눈앞으로 풍선뱀장어 한 마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 투명한 몸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아래쪽에서는 배럴아이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 흉악한 생김새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하지만 배럴아이는 내가 다가오든, 옆을 지나치든 계속 하늘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키아스모돈이 물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소화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제 몸만큼이나 커다란 먹이를 체내에서 녹이는 모습은 영화에서 보던 거대한 뱀을 떠올리게 했다. 키아스모돈의 뱃속에서 천천히 형체를 잃어가는 귀신고기의 모습은 내 몸이 다 아플 정도로 적나라했다. 더 아래에서는 심해아귀 몇 마리가 무리지어 치열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까만 공간을 무대 삼아 검붉은 빛들이 여기저기서 춤추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는 않을까, 나는 꼬리뼈 언저리를 괜히 어루만졌다.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내 몸은 점차 작게 구겨졌다.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심해 어딘가에서 나는 어느새 형태를 잃어버렸다. 한때는 폐였고 다른 순간에는 아가미였던 작은 덩어리를 헐떡이며 나는 보이지도 않는 수면을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한 위에서부터 골프가방들이 눈처럼 내려왔다. 수십, 수백 개나 되는 가방이 물결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물고기들이 가방 주위로 모여들었다. 가방 중 몇몇에서는 덩어리인 것도 같고 연기인 것도 같은 무언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가방 지퍼 틈새에 연신 주둥이를 집어넣어 그것들을 먹었다.
시야를 뒤덮을 정도로 쏟아지는 검정 가방들 사이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수술장갑을 끼고 있는 손바닥은 짝, 소리가 나게 내 따귀를 때렸다.
이런 때에도 넋 놓고 지랄이야. 치프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드레싱 카트에서 도구 몇 개를 꺼내 갔다. 나는 얼얼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분만대 위의 아내 역시 깊은 바다 안에 홀로 누워있었다. 축 늘어진 몸뚱이는 그러나 통증에 맞서듯 수시로 튀어 올랐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를 싣고 온 침대는 아내의 맞은편에 멈추었다. 두 여자가 얇은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몸을 뉘었다. 발을 맞대고 누운 여자들은 서로 대화라도 하듯 거친 숨을 번갈아 쉬었다. 치료진의 뭐라고 떠드는 소리도, 클래식인지 뉴에이지인지 모를 음악 소리도 사라지고 짐승처럼 신음하는 소리만 분만실 안에 남았다.
블레이드. 질경. 시저. 큐렛. 손이 바빠졌다. 여자아이는 분만실이 떠내려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뾰로통하던 입술은 새하얗게 구겨졌다. 박은 여자아이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좋아요. 다 됐습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세요. 박의 표정은 벌레 씹은 것 같았지만, 여자아이는 그 표정을 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듯싶었다. 여자아이는 욕지거리며 비명을 토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산모 앞에 안 있을 거야?” 박이 물었다. 아내의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주먹을 꼭 쥔 채 온몸을 떠는 모습은 마치 감전된 사람 같았다. 사내들이 배우자 혹은 딸의 손을 붙잡고 같이 땀을 흘리던 자리에는 시술기구를 실은 카트가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카트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아내의 뱃속을 헤집고 나오는 그것을 받아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나를 보며 박은 한숨이었다.
다 됐어요, 나옵니다. 여자아이 쪽이었다. 아이의 몸에 얼굴을 디밀고 있던 치프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골프가방을 들어 치프에게 넘겼다. 치프는 여자아이의 파편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간호사가 어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가방이 저 스스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힘껏 달리고 난 뒤의 심박처럼 가방은 이리저리 꿈틀댔다. 치프도, 조산사도, 마취과 의사도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바라보기만 했다. 주둥이를 꾹 다문 가방은 분만대 위에서 마구 요동쳤다. 아니, 마치 호숫가를 산책하듯 사뿐히 발을 놀렸다. 분만실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E장조, 아다지오의 2악장 속에서 춤을 추었다. 그 몸짓을 가만히 보고 있던 치프는 가방을 밀쳐버렸다. 가방은 분만대 밑으로 추락했다.
모두가 눈 둘 곳을 찾아 헤매는 사이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시선들이 자석처럼 아내에게로 옮겨갔다. 아내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잇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 사이마다 박의 들뜬 소리가 끼어들었다. 거의 다 됐어요. 이제 머리 나왔어요.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이제 다 나왔어요. 호흡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뱉으세요!
아내의 몸 안쪽에서부터 무언가가 쑥하고 쏟아졌다.
나는 아내의 몸과 이어진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커다란 대가리, 제 어미의 피며 분비물이 잔뜩 묻어 시뻘건 몸뚱이, 축축한 양수에 떠밀려 내려오는 모양새.
아내에게서 뛰쳐나온 그것은 한 마리의 심해아귀였다.
아귀는 지상의 기압차에 짓눌린 듯 찌그러진 몸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뭍으로 나오면 제멋대로 몸부림치거나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녀석들과 달랐다. 가장 어두운 바다에서 저 스스로 기어나온 녀석은 성대 없는 입을 뻐금대지도, 아가미를 들썩이지도 않았다. 그저 온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박이 헛숨을 삼켰다. 소리를 지르느라 시뻘겠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얘졌다. 치프가 다급하게 아귀를 분만대에 눕혔다. 치프는 아귀의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박이 울 것도 같고 비명을 지를 것도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치프로부터 아귀를 앗아 들었다.
분만실 안에 있는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치프도, 박도, 커튼 사이로 배꼼이 고개를 내민 여자아이도. 분만실 안에서 소싸움을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 냄새가 났다. 뿌연 흙냄새, 얼큰한 탁주 냄새, 긴장과 흥분에 입 주변에 거품진 침 냄새, 그리고… 나는 온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비린내에 그만 아귀를 놓치고 말았다.
병실에 누운 아내는 하염없이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병원 베개를 가슴께에 안은 아내 옆에는 몇 개나 되는 식판이 쌓여갔다. 뚜껑도 열지 않은 식판에서는 쉰내가 피어났다. 여보, 기운 내. 다 괜찮아 응. 의미 없는 말마디들은 아내의 귓가에 닿지 못하고 쏟아져 내렸다. 아내는 내 쪽으론 눈도 돌리지 않은 채 품에 안은 베개를 조물조물 만지기만 했다.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플라이 미 투 더 문, 앤 렛 미 플레이 어몽 더 스타. …인 아더 워즈, 홀드 마이 핸드. 인 아더 워즈, 베이비, 키스 미. 샛별아, 엄마 노래 잘 부르죠? 나는 아내의 배에 손을 얹었다. 아내의 배는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움푹 꺼져 들어갔다.
아내의 콧노래에 맞추어 내 손은 천천히 원을 그렸다.